채널명은 비밀입니다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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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밤, 나는 보았다.
TV에서 나오는 엄마를.

뭐?
영화 '링'의 사다코도 아니고 어떻게 사람이 TV에서 나와?

저기, 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얘기를 좀 들어보세요.
이번에 읽은 <채널명은 비밀입니다>를 소개해 드릴게요.

작중 화자는 고등학교 1학년 '희진'입니다.
그녀의 풀네임은 무려 '제갈희진'.
너무도 임팩트 강한 이름이라 한 번 들으면 잊을 수가 없는 이름입니다.
'희진'은 엄마 '제갈미영'과 삽니다.
아주 어릴 때 아이는 아빠의 존재에 대해 물은 적이 있는데 엄마는 그런 건 없다고 말했고, 이후로는 아빠에 대해 궁금해도 물어볼 수가 없는 상태로 자랐습니다.

엄마는 늘 TV와 함께 삽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하루종일 TV의 여러 채널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지만 집 밖으로는 나가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가 생활비를 대주고 희진이 잘 지내는지 정기적으로 돌봐줍니다.
그런 엄마의 영향으로 '희진'은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남들보다 조금 빨리 어른이 됩니다.
공부를 곧잘 했고 1등을 하면 아무에게도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어느 날부터 자라나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하지만 마음 속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습니다.
1등이란 자리는 노리는 사람이 너무 많고 또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아주 좁은 자리니까요.
그래서인지 '희진'은 수면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자주 깨고,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리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사건은 희진이 잠에서 깬 어느 날, 일어납니다.
앞에서 말했던 일이죠.

책은 여러 주제에 닿아 있습니다.
엄마와 딸(부모와 자식), 우정, 꿈, 불안, 결핍, 이해.
아무리 피가 섞인 가족이어도 우리는 개인일 수 밖에 없고 타인보다 물리적으로 가깝다고는 하지만 결국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이해하려 노력할 뿐이죠.
하나의 사건을 시작으로 여러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맞물려 돌아가고 영영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이해의 영역으로 주인공들은 건너갑니다.
그리고 어느 새 한 뼘 자라있습니다.

하루종일 TV를 끼고 사는 '미영'의 모습에서 엄마가 많이 겹쳤습니다.
엄마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의 한 토막이 소설에 나와 반갑기도 착찹하기도 했네요.
정작 나도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은, 유튜브와 SNS 중독자면서 TV에 빠져 사는 엄마를 한심해하고 깔보던 못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하기도 했습니다.
9월의 반을 아파서 골골 거리다 흘려보낸지라 나를 간병하다 덩달아 아픈 엄마가 걱정되어 안부 전화를 자주하고 있습니다.
다시 아파서 고생중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걱정만 사니까요.
그래도 엄마는 회복중이라니 다행입니다.
엄마와 건강하게, 개인 대 개인으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잘 지내보고 싶다는 마음을 다시 먹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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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트리플 26
단요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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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플]은 1권에 책에 3편의 소설을 담는 형식으로 한국 단편소설의 바로 지금을 독자들이 큰 시차 없이 만날 수 있게 고안되었는데,
더불어 작가-작품-독자의 아름다운 트리플이 일어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태어났다.
한 손바닥 정도 크기의 작고 얇고 아담한 사이즈로 들고 다니기에 부담이 없고 분량도 200 페이지 정도라 읽기에 대한 압박도 덜해서 종종 읽고 있다.

이번에 접한 단요 작가님의 책은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제발!>,
<Called or Uncalled>
3개의 단편과
<토끼-요리가 있는 테마파크>
1개의 에세이, 그리고
<유행하는 허구들과 전복의 (불)가능성>
이성민 문학평론가의 비평이 담겨 있다.

표지를 보면 얼굴에 손을 올리고 고심하는 듯한 인물이 보이고, 그의 머릿속뿐만 아니라 그의 가슴 앞으로 수많은 나체의 인간 형상들이 물속을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3편의 단편을 읽어나갈수록 이 표지 그림은 이 책에 꼭 들어맞는 옷이 된다.

첫 번째 단편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에서 주인공 건록은 제약회사 회장이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
사내 변호사와 회사 경영진들은 분리술을 실시, 그의 목을 잘라내 생명유지아치에 걸어놓은 후 뇌에 통신 칩을 삽입하였다.
하여 건록은 살아 있어도 산 게 아니고 그렇다고 죽지도 않은 뇌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회사 일도 하고 영화를 보는 등의 취미 생활도 보내지만 캄캄한 우주 속에 둥둥 떠다니는 뇌로만 존재하던 건록은 점점 생생한 육체의 감각을 갈망하게 된다.
하여 회사에서 운영하던 재단의 고아 묵향의 뇌에 칩을 이식하여 건록이 하루 5시간 정도 그의 몸을 빌어 신체의 생생한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묵향은 건록을 하느님으로 여긴다.
그러다 어떤 사고가 발생하고 그에 얽힌 작은 실마리들이 풀리면서 전체 그림이 그려진다.

두 번째 단편 <제발!>은 전쟁 이후의 재건된 세계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군수공장 경영자인 할아버지와 무공훈장을 받은 아버지를 둔 지방 토호 가문의 둘째로 태어난 남자이고 위로 누나가 한 명 있었다.
누나는 대학 진학 후 '별의 인내자'라는 신흥 종교에 빠져 학교를 중퇴하고 사라졌다.
아버지는 누나에 대한 충격으로 자살을 하고 가세는 급속도로 기운다.
나는 가업을 살리려 노력했으나 결국 평범한 군무원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에게 편지와 함께 수표가 배송되어 온다.
누나에 대한 원망으로 편지는 읽지도 않고 수표는 불태워 없앤다.
단 하나 가지고 있던 별장도 더 이상 관리가 힘들어지고 관리비마저 내기 어려워진 상황이었지만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렇게 몇 차례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이전과는 다른 두툼한 편지와 거액의 수표가 도착하고 나는 결국 궁금증을 떨치지 못하고 봉투를 연다.
편지는 누나의 부고와 누나의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별의 인내자' 본부로 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본부로 향하고 거기서 누나의 정신과 대면한다.

세 번째 단편 <Called or Uncalled>는 조현정동장애를 가진 화자가 과거와 현재, 현실과 망각 사이를 오고 가며 엄청난 말을 쏟아내는 작품이다.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글로 풀어둔 느낌인데 그래서 아주 혼란스럽지만 또 묘하게 매력적이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검은 꽃을 피우는 식물과 닮았다.

작가는 이 세 이야기가 SF로 간주되기 보다 '슬립스트림'으로 분리되길 희망한다.
이는 SF와 판타지 그리고 제도권 문학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하하며 기묘함을 자아내는 장르를 일컫는다.
SF 장르를 좋아하지만 조금 더 색다른 맛을 느껴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다.

사실 세 번째 단편도 그렇고 작가님 에세이도 그렇고 나는 읽어도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이해를 못 한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차분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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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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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결과로 보자면 꽤 N 성향이 강한 나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종종 하곤 한다.
그중에는 이런 생각도 있다.
지금 삶이 내겐 너무 버거운 나머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 여길 벗어나면 좋겠다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상상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바로 그 상상이 시발점이 되어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은 클레어와 이바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클레어는 미국 정계에서 케네디 다음으로 유명한 쿡 가문의 남자와 결혼해 꽤나 유명한 인사다.
남들은 속도 모르고 부러움을 눈길을 보내지만 실상은 남편의 가스라이팅과 폭력에 하루하루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쿡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들의 마수는 세상 곳곳에 퍼져있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을 취하기가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상황이다.
하여 오랜 시간을 들여 남몰래 도주 계획을 세우지만 갑자기 일정이 바뀌게 되면서 위기에 봉착한다.
그러다 이바를 만나게 된 클레어.

이바의 어머니는 마약 중독자였고 조부모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그녀를 수녀원에 보낸다. 이후 버클리의 화학 영재였다가 퇴학을 당한 후 아이러니하게도 마약을 제조해 팔며 살아간다.
두 여자는 본인의 삶이 너무 지긋지긋했다.
그런 두 사람이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만나게 되고 각자가 가진 항공권을 바꾸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우리는 모두 각자 삶 속에서 어려움을 여러 개 안고 산다.
그때그때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에 옮기느냐에 따라 인생은 크게 출렁인다.
클레어도 이바도 각자의 어려움이 있었으나 서로의 상황 앞에서 기꺼이 손을 내민다.
두 여인의 아픔에, 연대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크게 공감을 느꼈다.
우리 모두 손을 잡읍시다.
당신도 나도 혼자는 아닐 거예요.

뼈대가 얼마나 잘 서있고 그 사이사이 살을 잘 붙이느냐에 따라 스릴러 소설의 깊이와 맛이 달라지는데 이 이야기는 긴박함도 속도감도 낙낙한 잘 쓰인 작품이라 이런 류를 좋아한다면 강력 추천이다.
정말 몰입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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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를 삭제할까요? 도넛문고 10
김지숙 지음 / 다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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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 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
♪파란 나라를 보았니 맑은 강물이 흐르는♪
♪파란 나라를 보았니 울타리가 없는 나라♪
-'파란 나라' 노래 中

높은 곳에 올라 이 마을을 바라보면 마치 푸른색 빛을 끼얹은 것처럼 보이는 '파란 나라'인 '온새미로'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 태몽에 파란 하늘이 나왔다는 이유로 '파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주인공이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생김새가 다른 76개의 놀이터를 가졌을 정도로 아이들을 키우기에 아주 최적화된 마을이다.
아이들의 꿈을 위해 진로 상담을 하고 꿈과 관련된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섬세한 보살핌 속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 얼핏 보면 이 마을은 완전무결해 보인다.
그렇다.
이쯤에서 눈치챘겠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그 완벽함에 균열이 가고 속내가 드러나는 이야기다.
'파랑'에게는 '우령'이라는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신경 쓰이던 그 친구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다.
학교에서도, 부모님도 모두 우령이네 가족이 다른 곳으로 급하게 이사를 가게 되어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났다는데 '파랑'이는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그 무렵, 이상한 말들을 조우한다.
'삭제'... 라니?
'파랑'의 꿈은 내내 탐정이었기에 자신에게 뚝 떨어진 단서들을 모아 진실을 찾아보고자 한다.

서평 이벤트용 책자에서는 '이 아이를 00 할까요?'라고만 되어있고, 이야기의 후반부는 숨겨져 있어 정식 발간물론 어서 엔딩을 보고 싶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이 마을이 어떻게 생성되고 삭제는 또 무슨 의미였는지를 찾아가다 보니 어질어질해진다.
작가님이 집필할 때 <파란 나라> 노래가 영감을 주었고 본편에도 자주 등장해 읽는 내내 그 노래가 맴돌았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책이 매일 수백 권씩 쏟아지는데도 여전히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니 독자는 오늘도 매우 행복하다.
두 번 읽으면 감춰진 단서들이 보여 더 재미있으니 읽으실 분들은 꼭 두 번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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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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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나는 어느새 기윤이다.
꿈은 있지만 그 꿈이 이루어질 일은 없을 듯하고 그렇다고 놓아버리지도 못해 자꾸 조바심만 난다.
변변찮은 현재를 인지할 때마다 초라해지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자꾸 몸이 오그라든다.

내 10대의 기억은 봉인되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무의식의 내가 나를 살리고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일을 치른 듯하다.
대부분의 기억은 온통 검은색으로 채워진 화면만 재생된다.

그럼에도 끝내 다 묻지 못한 장면들이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다시 과거로 빨려 들어가 그 속에 놓였다.
유체이탈한 상태처럼 나의 어리석은 결정을, 그것이 불러올 결과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크게 소리치며 막아보려 애쓰지만 장면 속 나에게는 아무것도 닿지 않고 무한 재생되는 숏츠처럼 나는 또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한다.
상처받고 상처받고 상처받는다.

어설프게 자아를 인식해 나르시시즘에 빠지기도 하고 멋이라는 이름 아래 또래의 시선 앞에 한없이 찌그러지기도 한다.
남들만큼만, 보통만큼만 하다가도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특별하기를.
고장 난 뻐꾸기시계처럼 창문 안과 밖을 미친 듯이 오락가락하는 마음.
좀처럼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바닥없는 어둠.
힘이 있는 친구에게 매료되었다가, 혼자만의 세상을 이미 구축한 자아가 단단한 친구에게 매료되었다가, 처음 마음을 준 이성에게 매료되었다가.

나이를 먹으면 그 모든 것을 뛰어넘고 달라진 내가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그때의 패배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결코 유쾌하지는 않지만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과거의, 현재까지로 이어지는 저항의 이야기.
엄청나게 무언가를 바꿀 수 없어도, 저항 의지를 갖는 순간부터 모든 건 이미 달라지는 이야기.

당신에게도 있나요, 저항의 과거가?
잠시 내 이야기를 좀 들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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