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나는 어느새 기윤이다.꿈은 있지만 그 꿈이 이루어질 일은 없을 듯하고 그렇다고 놓아버리지도 못해 자꾸 조바심만 난다.변변찮은 현재를 인지할 때마다 초라해지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자꾸 몸이 오그라든다.내 10대의 기억은 봉인되었다.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무의식의 내가 나를 살리고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일을 치른 듯하다.대부분의 기억은 온통 검은색으로 채워진 화면만 재생된다.그럼에도 끝내 다 묻지 못한 장면들이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다시 과거로 빨려 들어가 그 속에 놓였다.유체이탈한 상태처럼 나의 어리석은 결정을, 그것이 불러올 결과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크게 소리치며 막아보려 애쓰지만 장면 속 나에게는 아무것도 닿지 않고 무한 재생되는 숏츠처럼 나는 또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한다.상처받고 상처받고 상처받는다.어설프게 자아를 인식해 나르시시즘에 빠지기도 하고 멋이라는 이름 아래 또래의 시선 앞에 한없이 찌그러지기도 한다.남들만큼만, 보통만큼만 하다가도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특별하기를.고장 난 뻐꾸기시계처럼 창문 안과 밖을 미친 듯이 오락가락하는 마음.좀처럼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던, 바닥없는 어둠.힘이 있는 친구에게 매료되었다가, 혼자만의 세상을 이미 구축한 자아가 단단한 친구에게 매료되었다가, 처음 마음을 준 이성에게 매료되었다가.나이를 먹으면 그 모든 것을 뛰어넘고 달라진 내가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그때의 패배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결코 유쾌하지는 않지만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과거의, 현재까지로 이어지는 저항의 이야기.엄청나게 무언가를 바꿀 수 없어도, 저항 의지를 갖는 순간부터 모든 건 이미 달라지는 이야기.당신에게도 있나요, 저항의 과거가?잠시 내 이야기를 좀 들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