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아래 올리브 (사인인쇄본) ㅣ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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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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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일 때문에 얼굴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당신은 이후 어떤 선택을 할까?

"당신 머릿속에 있는 건 평범한 신경세포가 아닙니다.
고분자 합성 뉴런으로 만들어진 합성 뇌가 있어요."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하고 육중한 물음표가 머리 위로 떨어진 기분일 것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레가 들은 말이다.

그녀는 현재 수녀다.
엄마를 병으로 잃고,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에 빠졌다가
신앙의 힘으로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푸른 아녜스 수도회 소속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장에 나가 직접 몸을 굴려가며 활동하고 있다.
어느 날, 자원봉사로 만나게 된 재온과 희에게
합성 뇌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고 충격에 빠진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 솔민은 정책 연구소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평화롭던 어느 일요일, 푸른 아녜스 수도회에 대해 취재를 해보라는 요청 전화를 받는다.
가볍게 거절했지만 전화는 다시 걸려오고,
다시 한번 칼같이 내치려던 그때, 전화 속 상대방은 솔민의 약점을 언급한다.
텍스트 기반 소셜 미디어의 팩트 체크 계정, MINOT(미놋)의 계정을
솔민이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녀회를 조사하게 되고,
그곳에서 살벌하게 싸우고 연을 끊었던 8년 전 룸메이트 이레를 만나게 된다.

'합성 뇌'라는 단어 앞에 영영 겹칠 리 없었던 이레와 솔민의 시간은 다시 교차하고
이야기는 한국에서 시작되어 동남아 여러 나라까지 판을 키워간다.

다양한 의문이 풀렸다가 다시 샘솟고
이 두 사람은 과연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흥미진진하다.

한국 SF 소설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킨 김초엽 작가의 신작,
<태양 아래 올리브>에 대한 줄거리 소개다.
전작들도 그랬지만, 매번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새롭고 흥미로워
새 작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바로 구매해서 읽게 된다.
이번 작품도 과연 김초엽이 김초엽했다,는 말 이외에는 달리할 말이 없다.
그녀만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번 이야기가 많은 독자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작은 힘을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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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작별 - 돌보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남유림 지음 / 도서출판 독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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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어린 가슴에도 삶이 버거워 자주 숨을 헐떡였다.
아무도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주지 않았고 소심했던 아이는 스스로 괜찮지 않다 말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내가 있어 주길 강요했다.
좀처럼 경도 높은 마음을 타고나지 못한 나는 서서히 내부에서 곪아가고 있었다.
서러운 감정이 자주 끓어올랐고, 세상은 색을 잃었으며 자꾸만 정지 버튼을 누른 채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날 지배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발적으로 모든 걸 멈출 용기는 없어 아주 오랜 시간을 죽은 듯이 살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살다 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
울감은 깊어지기도 옅어지기도 하지만 숨이 붙어 있어 가끔 기쁨도 느끼며 아직 여기 있다.


17p
'죽고 싶지는 않지만 살고 싶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가 더 정확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대부터, 아니 훨씬 이전부터 품던 마음이었다.
늘 죽음이, 그 언저리가 궁금했다.

나와 닮은 한 여인이 여기도 있다.
그녀의 고백이 꼭 내 이야기 같아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나 하나만 건사하면 되지만 저자의 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6p
내 뱃속에서 시작된 아이의 10년 7개월의 생이 끝났다.
아이가 죽었다.

9p
아이는 40주를 채우지 못하고 31주 5일 만에 태어났다.
1.77kg으로 성인 남성의 팔뚝보다 작은 여자애였다.

10p
일찍 태어났지만, 건강에 이상이 없어 2kg만 넘으면 퇴원할 거라던 아이는 태어난 비 일주일 뒤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고열이 나서 모유를 소화하지 못했고, 담즙을 토하기 시작했다.
신생아에게 발열은 치명적이었다.
특히나 이른둥이에게는.
아이를 지켜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간절한 기도와 달라 아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패혈증을 시작으로 세균성 뇌수막염, 뇌염, 뇌수두증 등 처음 들어본 병명들이 계속 더해졌다.


11p
"아이의 뇌는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입으로 먹지 못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스스로 호흡하지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어 누워만 있어야 해요.
아이가 사는 동안 당신이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할 것이고, 당신의 삶은 앞으로 집과 병원만을 오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를 살리시겠습니까?"

결혼 후 얻은 아이가 많이 아프다.
그 연약한 몸으로 수십 번에 걸친 수술을 받았고 치명적인 흔적이 몸 곳곳에 남았다.

49p
해든은 나와 남편의 자랑이다.
기쁨이다.
웃음이다.
행복이다.
슬픔이자 통곡이고 가끔은 비명이 되기도 한다.

누구보다 죽음에 가까이 있던 그녀는
아이와 함께하며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늘 갈망하던 완전한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아이에게 주었다.
안타깝게도 해든이는 10년 7개월의 짧은 생을 끝으로 천국으로 유학을 갔다.

해든이와 함께한 그 시간들이 이 에세이 속에 있다.
나는 만나본 적 없는, 햇살처럼 눈 부신 아이를 떠올리며 기도한다.
부디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엄마와 아빠의 오늘과 내일을 잘 지켜주기를.

227p
우리 나를, 서로를 잘 돌보고 살아요.

솔직한 이야기를 아프게 드러내 준 작가님 덕분에 나도, 다른 독자들도 치유의 순간을 맞았음을,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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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뜨거운 여름에 우리는 죽기로 했다
다카야마 간 지음, 이정미 옮김 / 허밍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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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가장뜨거운여름에우리는죽기로했다 #다카야마간 #허밍북스 #일본소설

건강하지 않은 생각이란 걸 알지만
종종 앞에 남겨진 미래를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돈벌이는 늘 고단하고 힘든 일은 늘어만 가고
나이를 먹는 것도 서러운데 이곳저곳 아픈 곳은 끝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대체 내 수명은 얼마나 남은 걸까?
너무 알고 싶다.
그게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 알면
그동안에 먹고 살 돈만 적당히 벌고
너무 아둥바둥하지 않고 살다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늘 소개할 작품의 주인공 시야는 고1 남학생이다.
연휴가 끝난 초여름의 어느 날, 수업을 땡땡이치고 해안가를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고양이를 구해주게 된다.
착한 일을 한 덕에 사무라이의 모습을 한 사신 미나모토를 만나게 되고
갑작스럽게 자신의 여명이 2년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삶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살았다고는 해도
앞날이 창창한 고1 학생에게 2년 뒤에 넌 죽는다,는 선언을 듣게 되는 건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게다가 사신이라면서 왜 작은 사람 형태의 사무라이의 모습인지도 모르겠고.
얼씨구?
갑자기 그 자리에 나타난 가에데라는 소녀는 또 무엇이며
그 소녀의 여명은 1년이라고 한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이야기를 덜컹덜컹 흘러가기 시작한다.

시야는 자신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에데를 만나게 되고
딱히 살고 싶은 이유가 없었던 터라 자신의 여명을 소녀에게 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시야의 여명을 같이 쓰게 되기 시작하고
시야는 가에데에게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
가에데는 집에 들었던 도둑이 가져간 봉투를 찾고 싶다고 말하고
사건을 쫓아가면서 두 사람에게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이 차근차근 드러나며
이야기의 재미 농도가 점점 깊어진다.

2022~2023 일본 아마존 로맨스 부분 1위를 차지한 이 소설은
단순 로맨스 소설이 아닌 미스터리 성격도 지니고 있고
우리가 일본 청춘 영화나 드라마에서 느끼는 여름의 청량함과 눈부심,
그 뒤에 시간차를 두고 찾아오는 약간의 쓸쓸함을 같이 섞은 칵테일 같은 작품이다.

작가 다카야마 간의 이력도 독특한데
중학생 때부터 소설을 썼던 문학 소년이
IT 관련 회사에 취직한 후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신인상에 꾸준히 응모를 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큰 수술을 받게 되고
우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직장 생활을 정리한 후
전업작가로 전향하여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마지막 날이 오면 누구나가 평등하게 삶을 마감한다.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줄곧 이어질 것처럼 굴지만
사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이 얼마나 수많은 기적이 층층이 쌓여 유지되고 있는지
일상이 깨어져보면 알게 된다.

책을 읽으면 서두에 말했던 내 생각이 조금 더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이를 막론하고, 어차피 인생은 누구에게든 한 번뿐이다.
후회 없이, 낭비 없이, 의미 있게 일상을 유지하며 감사하며 살아보자고 다시 한번 다짐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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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
오현일 지음 / 도서출판이곳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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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아재 #오현일 #장편소설 #도서출판이곳

문장을 눈으로 따라가고 있자니
머릿속에는 익숙한 시골 풍경이 떠오른다.
인간은 경험한 세상의 크기만큼 보지 못한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고 했던가?
작가가 풀어내는 1980년대 해남의 작은 정착지 마을의 모습 속에서
나는 조부모가 한 평생을 살아낸 터전을 생각했다.

8p - 1. 1981 봄 中
누군가를 내려놓은 버스는 영감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송암리 쪽으로 달려갔다.

10p - 1. 1981 봄 中
흑두부 같은 초가집들이 저수지 방죽을 따라 기차처럼 일렬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16p - 1. 1981 봄 中
그날 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 논에 쏟아져 나온 개구리 떼 울음소리가 자갈밭을 달리는 경운기 같았다.
천장 위에서는 쥐들이 운동회를 열었는지 떼를 지어 미친 경주마처럼 뛰어다녔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 빗자루로 천장을 후려갈겼다.
그러자 놈들은 사람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기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오히려 더 귓가에 사각거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19 - 2. 우물 中
두레박 줄을 손바닥에 몇 번 감고, 나는 우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우물 속에서 동그란 하늘이 출렁거리는 바람에 현기증이 났다.

소설 속 화자 오수동은 열 두 살 소년으로
전쟁 피난민들이 정착한 해남의 땅끝에서 부모님, 형과 함께 살고 있었다.
매번 큰소리가 나는 집이 지긋지긋해 강호와 가출을 도모했지만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친구의 배신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온 길이다.
그런데 집에 모르는 남자가 있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이 바로 아재다.

11p - 1. 1981 봄 中
집 앞에 한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짙은 카키색(내 기억으로는 그랬다.) 반코트를 걸친 도회풍의 남자였다.
길과 개울의 경계쯤에 위태롭게 선 그는 마을 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독서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푸른 하늘에 비친 얼굴이 거울처럼 맑았고, 까만 정수리에 쏟아진 햇살은 산산이 부서져서 은가루가 날리는 듯했다.

34p - 2. 우물 中
갸름한 얼굴에 그려진 방죽길 같은 턱선과 조각배를 닮은 입술,
깊은 자리처럼 움푹 꺼진 두 눈과 초가지붕 같은 검은 눈썹, 봄날의 밀밭 같은 머릿결.

비밀스러운 아재의 등장으로 수동의 세계는 크게 일렁이고
이후 이야기는 어린 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아재의 이야기가 빼곡하게 담겨 있다.

목수이자 작가인 오현일 저자의 이력이 특이한 만큼
새로운 비유가 많아서 신선하고 반가웠다.

9p - 1. 1981 봄 中
혼자라도 도망갈까 궁리를 해보았지만,
강호가 없는 나는 날개 부서진 풍뎅이나 다름없었다.

10p - 1. 1981 봄 中
정착지에는 없는 것이 많았다.
앞집도 뒷집도 없고, 담장이나 대문도 없고, 나무도 없고, 우물도 없고,
미래나 희망 따위도 없는 찢어진 고무신 같은 마을이었다.

11p - 1. 1981 봄 中
나는 창자 속 비밀까지 다 들켜버린 것 같아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12p - 1. 1981 봄 中
아버지는 근면한 무능력자였다.
몇 마지기 되지 않는 논과 밭에 겨울부터 가을까지 자신의 피와 땀으로 거름을 뿌렸지만,
한 해는 가뭄 탓에, 또 한 해는 물난리 탓에 농사는 늘 흉작이었고,
어디선가 그물처럼 끌어온 빚들은 이마의 주름살과 함께 늘어만 갔다.

14p - 1. 1981 봄 中
와지직! 그의 하얀 얼굴에서 종잇장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중략)
몹시 지친 듯한 두 눈은 공벌레처럼 작은 방 안을 헤맸다.

23p - 2. 우물 中
수레가 지나온 길에 뱀 꼬리처럼 긴 물 자국이 남았다.
물을 길어서 집으로 돌아가려면 물통에 담긴 물의 삼 분의 일은 통행세로 내야만 했다.
그것은 신작로의 법이었다.
통에 물을 많이 담든 적게 담든 간에 목마른 길은 언제나 삼 분의 일을 요구했다.

25p - 2. 우물 中
눈알이 바삭바삭 부서질 것 같았고 턱은 빠질 듯이 덜덜거렸다.

33p - 2. 우물 中
생경한 하모니카 소리가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이건 뭐지? 하는 식의 호기심이 배불뚝이의 단추처럼 툭, 풀렸다.

55-56p 3. 상어 中
흙탕물은 도랑 표면에 빗물처럼 떨어졌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몽당연필처럼 서 있었다.

이 이야기는 글쓴이가 열 두 살에 구상했던 이야기가
소설의 형태로 갖추어졌다고 한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작가의 마음인 어떤 것일지,
그런 배경으로 이야기가 부쩍 뭉근한 온도를 내내 품고 있는가 싶기도 하다.

약 340 페이지의 긴 분량이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수려한 문장들을 보는 재미와
읽는 리듬이 좋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더운 여름, 잠시 현실을 잊고 과거로 추억 여행 잘 하고 돌아온 기분이다.

차기작도 꼭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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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자리에 태워줘
애덤 마스-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에이유앤씨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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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뒷자리에태워줘 #애더마스존스 #에이유앤씨 #영화원작소설
#뒷자리에태워줘원작

세월이 흔적이 녹아있는 베이지색 바탕에
옆구리와 팔, 다리 일정 부분에 검은색과 청록색이 들어간 바이커 슈트를 입은,
누가 봐도 잘생긴 남자가 나를 본다.
조금 시선을 내리니 그에게 잘 어울리는 매끈하게 잘 빠진 오토바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위화감을 느낀다.
남자의 다리 사이, 있다.
뽀글뽀글한 머리에 눈이 땡그란 남자가.
심지어 앞서 말한 그의 허벅지를 한 손으로 끌어안고.
다시 보니 잘생긴 남자의 한쪽 손은 바이크 위에,
나머지 손은 아래에 있는 남자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다.
아니 이게 뭐야?

오렌지빛 배경색의 포스터 위에 놓인
민트색 폰트를 읽는다.

<뒷자리에 태워줘>.

쉬이 잊기 힘든 비주얼이 포스터였다.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너무 강력하게 매력적이었다.
쉽게 미혹되는 나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영화를 보고 말았다.
장면 자체의 수위가 높아 흠칫하기도 했지만
표면적인 장막을 걷어내고 보니
작품 속 콜린의 모습에서 내가 너무 많이 보여 괴롭고 아팠다.
퀴어 영화라는 자극성을 떼어놓고 보면
사랑 앞에서 자꾸만 쪼그라드는 우리의 모습이 그곳에 있다.

영화 감상 후 멋진 외모의 레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콜린은 또 왜 그렇게까지 건강해 보이지 않는 관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지,
진짜 둘의 마음은 어떤지 궁금증이 차오르던 차에
영화의 원작 소설 발매 소식을 들었고
운 좋게 서평단에 당첨되어 책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와 소설이 꽤나 닮아있을 줄 알았는데
일단 기본적 시대 배경이 다르고
작품의 화자인 콜린의 외모 묘사도 꽤 다르다.

영화는 지금과 크게 멀지 않은 동시대의 이야기지만
소설은 1975년도를 중심으로 이어진다.
영화 속 콜린은 꽤 마른 인물인데
소설 속 콜린은 꽤 살집이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두 작품 속 콜린은 모두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고
관계에 있어서 약자의 포지션을 갖고 있다는 점은 궤를 같이 한다.
콜린이 반해버린 레이도 두 작품 속 모두에서 외모가 굉장히 뛰어난 설정으로 같다.

다만 영화에서는 대사로 나타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문들의 눈빛이나 행동, 어떤 분위기로 그들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상상하며 이해하게 되는데
소설에서는 화자가 직접적으로 자신의 기분이 어떠했는지를 이야기해 주어서
조금 더 쉽게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며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최근 몇 년 간은 없는 과거처럼 생각하며 지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어리숙했고 서툴렀고 또 스스로에게도, 상대에게도 해로웠던
나의 모습들이 떠올라 마음이 꽤 괴로웠다.
레이의 일방적인 모습의 잘잘못을 차치하더라도
해로운 관계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레이에게 끌려가는 콜린의 모습이 꼭 내 모습 같아서였다.

영화과 소설의 엔딩이 꽤 다른 것도 놀라웠지만
어느 쪽도 아직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 스포를 하고 싶지 않아 말을 아낀다.

모쪼록 그 어느 세계의 콜린이라도
그때보다는 덜 아픈 사람을 하며 살고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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