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작별 - 돌보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남유림 지음 / 도서출판 독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터였을까?
어린 가슴에도 삶이 버거워 자주 숨을 헐떡였다.
아무도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주지 않았고 소심했던 아이는 스스로 괜찮지 않다 말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내가 있어 주길 강요했다.
좀처럼 경도 높은 마음을 타고나지 못한 나는 서서히 내부에서 곪아가고 있었다.
서러운 감정이 자주 끓어올랐고, 세상은 색을 잃었으며 자꾸만 정지 버튼을 누른 채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날 지배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발적으로 모든 걸 멈출 용기는 없어 아주 오랜 시간을 죽은 듯이 살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살다 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
울감은 깊어지기도 옅어지기도 하지만 숨이 붙어 있어 가끔 기쁨도 느끼며 아직 여기 있다.


17p
'죽고 싶지는 않지만 살고 싶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가 더 정확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대부터, 아니 훨씬 이전부터 품던 마음이었다.
늘 죽음이, 그 언저리가 궁금했다.

나와 닮은 한 여인이 여기도 있다.
그녀의 고백이 꼭 내 이야기 같아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나 하나만 건사하면 되지만 저자의 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6p
내 뱃속에서 시작된 아이의 10년 7개월의 생이 끝났다.
아이가 죽었다.

9p
아이는 40주를 채우지 못하고 31주 5일 만에 태어났다.
1.77kg으로 성인 남성의 팔뚝보다 작은 여자애였다.

10p
일찍 태어났지만, 건강에 이상이 없어 2kg만 넘으면 퇴원할 거라던 아이는 태어난 비 일주일 뒤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고열이 나서 모유를 소화하지 못했고, 담즙을 토하기 시작했다.
신생아에게 발열은 치명적이었다.
특히나 이른둥이에게는.
아이를 지켜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간절한 기도와 달라 아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패혈증을 시작으로 세균성 뇌수막염, 뇌염, 뇌수두증 등 처음 들어본 병명들이 계속 더해졌다.


11p
"아이의 뇌는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입으로 먹지 못하고 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스스로 호흡하지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어 누워만 있어야 해요.
아이가 사는 동안 당신이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할 것이고, 당신의 삶은 앞으로 집과 병원만을 오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이를 살리시겠습니까?"

결혼 후 얻은 아이가 많이 아프다.
그 연약한 몸으로 수십 번에 걸친 수술을 받았고 치명적인 흔적이 몸 곳곳에 남았다.

49p
해든은 나와 남편의 자랑이다.
기쁨이다.
웃음이다.
행복이다.
슬픔이자 통곡이고 가끔은 비명이 되기도 한다.

누구보다 죽음에 가까이 있던 그녀는
아이와 함께하며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늘 갈망하던 완전한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아이에게 주었다.
안타깝게도 해든이는 10년 7개월의 짧은 생을 끝으로 천국으로 유학을 갔다.

해든이와 함께한 그 시간들이 이 에세이 속에 있다.
나는 만나본 적 없는, 햇살처럼 눈 부신 아이를 떠올리며 기도한다.
부디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엄마와 아빠의 오늘과 내일을 잘 지켜주기를.

227p
우리 나를, 서로를 잘 돌보고 살아요.

솔직한 이야기를 아프게 드러내 준 작가님 덕분에 나도, 다른 독자들도 치유의 순간을 맞았음을, 감사를 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