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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니 별 거 아니었다'는 말은 시간이 지나서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서'라는 말은 곱상한 표현일지 모른다. '나이 먹어서'가 오히려 보다 정직한 표현일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여러 면에서 여유가 생긴다. 감정의 공간도, 삶의 자리도, 게다가 넓어진 공간 못지 않게 비워진 마음도 있다. 그러니 나이 먹는게 꼭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몸만 늙지 않는다면 나이 먹는 것 만큼 멋진 것도 없다.

 

글쓰는 일로 밥벌이를 해야했던 내 20대는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 능력에 넘치는 일로 헉헉댄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내 글이 어떤지를 알았기에 그 자괴감은 표현하기조차 힘들었다. 늘 마음이 무거웠다. 이 지겹고도 고단한 짐을 벗어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자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내 노력까지 멈춰진 것은 아니었다. 글이 버거웠을 뿐이지 글이 가진 매력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세월이 흘러 30대를 지나 40대를 맞을 때까지 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극과 극을 달리는 삶을 만나게 됐다. 고통 정도가 니라 아주 사는게 고역이었다. 남들은 다 알고 있는 것 조차 몰랐던 나는 그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기 위해 있는 힘껏 달려야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내게 유일한 기쁨을 주었던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읽었던 책이었다. 문학의 세계가 그렇게 달콤한지 나는 미처 몰랐다. 각 계절의 여운과 책이 주는 따뜻함, 그 책에 반응하는 내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내 안에서 터져나오는 희열은 세상 어떤 것보다 나를 행복하게 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했던 건 책이었다.

 

그리곤 늦은 결혼을 했다. 남편은 딱히 뭔가를 하지 않고도 나를 편안하게 했다. 그간 칼 같이 곤두섰던 신경과 마음이 남편의 말로 풀어지며 봉합되었다. 그렇게 8년이 지났다. 그동안 딸이 태어나고 자라 올 초 초등 학교에 입학했고, 작년 친정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서 나는 진짜 어른이 되는 관문을 넘어서게 되었다. 자식을 낳고 어버이를 떠나보내고 나니 이제서야 인생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올 4월 블로그에 들어가 글을 쓰게 됐다. 6년 전 블로그를 열어 한 일년 반짝 하고는 그간 바빠서 들어올 시간이 없었다. 다시 블로그를 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기에 남들 다하는 글쓰기가 내게는 가슴 떨리는 순간들이었다. 특히 예전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내 글에 대한 기대가 내게는 어떤 것보다 큰 선물이었다. 글을 대할 때 느꼈던 곤혹스런 감정 대신 기대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이 설레임이 나는 저리도록 좋았다.

 

지난 봄 북 콘서트에 처음으로 가게 됐다. 거기서 저자 나도원과 인디 밴드의 음악을 들었다. 말로만 듣던 인디 음악을 넘치게 듣고 '결국, 음악'이란 책도 구입하게 됐다. 음악을 듣고 사회자와 작가의 맛깔스런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간 친구와도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그 시간들이 재미있어서 블로그에 나름 정성을 다해 포스팅을 했다. 이 포스팅으로 블로그의 문화 전시 관련 쪽 테마링에 뽑히게 됐다. 원래 포스팅을 하기 전 글을 읽어야 하는데 읽지 못한 상태로 현장만 중계했다. 처음, 책을 몇 페이지 넘기다 보니 줄였어도 될 얘기들만 눈에 들어왔다. 내 시건방이 꿈틀댔다. 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최근 다시 펼쳤다. 에고, 갖가지 음악적 정보와 적절한 평이 들어 있었다. 책을 다 읽기 전 누군가에 대해 평한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작태인지를 알게 됐다. 한 사람의 긴 시간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험을 하게 됐다.

 

지난 여름 생애 처음으로 리뷰대회 응모를 했다. 황석영 선생의 '낯익은 세상'으로 인기상을 받았다. 처음 받는 상이었다. 낯익은 세상은 내게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책이다.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황석영 선생님을 뵙게 됐고, 그 분의 이야기를 통해 책을 좀 더 깊게 이해하는 통로를 열었기 때문이다. 예전 새벽같이 글쓰러 나갔던, 직장 근처 샛강의 뿌연 안개와 그 설명할 수 없는 냄새를 '낯익은 세상'에서 다시 만났다. 냄새만이 아닌 바닥 인생의 고달픈 삶이 아이들의 눈 속에서 재조명됐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한 구석, 눈여겨보지 않는 그 곳에서도 여전히 생은 진행되고 있었고다. 또한 문명의 그림자로 얼룩지긴 했지만 결국은 인간만이 답임을 이 소설은 보여주었다. 한 번 읽고 덮기엔 아까운 책이었다.

 

예전 일터는 사실 연예인들이 돈을 벌어들여 다른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곳이었다. 연예인들이 그렇게 들락거렸지만 내가 속한 곳은 연예인을 볼 수 없었다. 나는 그 곳에서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막연히 짐작했다. 그들은 소중히 보호해 주어야 할 사적 문화의 한 부분이 아니라 단회적 소비재로 취급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하정우가 자신의 책 '하정우, 느낌 있다'를 들고 나왔다. 배우와 화가, 자연인으로 나눠 자신의 삶을 소개하는 글에서 감독의 페르소나에 머물지 않겠다는 배우로서의 옹골진 각오와 화가로서의 지향점, 인간 김성훈의 편안한 삶을 만나게 되었다. 무엇보다 연기를 치밀하게 연구하는 그의 자세가 기억에 남았다. 최고의 연기는 최고의 훈련을 통해 가장 자연스런 형태로 나오는 것이다. 내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루한 장마가 마음마저 눅눅하게 만들고 있을 때 은희경의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을 구입했다.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표지의 유혹에 빠져 산 책이다. 사놓고는 작가의 서문에서 걸려 읽지 못한채 책장으로 밀어넣었다. 얼마 전 다시 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얼마 못 읽은 것이 아니라 안 읽은 것이었다. 서울로 오는 기차안에서 무척 행복해하며 읽었다. 은희경의 상큼하고도 톡톡 튀는 글과 엉뚱한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문학의 성에 갇힌 작가가 성문을 열고 사람들 곁으로 걸어나오는 느낌이었다.

 

지난 번 파울로 코엘료의 '알레프' 리뷰대회에서 2등상을 받았다.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바람은 있었지만 그런 꿈을 꾸기는 조심스러웠다. 글 관련 블로그나 카페는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나는 작가를 한 번도 꿈꾸지 않았기에 그들처럼 진지한 자세를 갖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껏 문학을 꿈꾸는 사람을 예전 직장에서나 보았을 뿐이지, 그리고 그게 언젯적 일인가. 이런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고, 성찰적 기능을 가진 책과 글과의 만남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에 마음이 겸허해졌다. 

 

  

이른 새벽, 나도 모르게 눈이 떠질 때가 있다. 그 때 느껴지는 시간은 천년의 무게와 같다. 그러나 그 시간조차도 날이 밝으면 깃털같은 시간으로 전환되고 만다. 나는 지금 그런 삶의 한 가운데 있다. 인생의 반은 알고 반은 모르며, 반은 희망적이고 반은 미심쩍다. 이런 순간 내가 하는 선택은 내 삶이 될 것이다. 내가 하는 선택이 올바를 수 있도록 나는 사람들의 오랜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책에게 도움을 청하려 한다. 책은 내게 소박한 진리의 아름다움과 예술을 통한 정서적 여유까지도 가르쳐 나를 삶의 무거움으로부터 구원해 낼 것이다. 이미 읽었거나 읽혀질 책들은 내 인생을 비추는 빛이 될터이다. 나 또한 그들의 진정한 벗이 되고자 하는한 말이다.

 

 

 

 

사진1, 2 출처: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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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려웠었지.  

그땐 그랬지. 
   

머리엔 이가 버글버글. 

참빗으로 머리를 훑어내면 이가 후두두둑.

코는 왜 그리 흐르던지.

소매끝은  언제나 반질반질.

그땐 그랬지.

  

짜장면은 최고의 외식.

그 날만 기다리며 침만 꿀꺽.

젖가락 몇 번에 짜장면은 바닥을 보였지.

그땐 그랬지.

하루종일 말타기를 했었지.

말이 되는 날은 거반 죽는 날.

그래도 너무나 즐거웠지.

그땐 그랬지.


목욕은 한 달에 한번.

손은 늘 터 있었지. 그땐 그랬지.

동생을 봐주지 않으면 엄마한테 욕을 먹었지.

그땐 그랬지.

형제는 많아 한 이불에 몇 명.

이리뒹굴, 저리뒹굴.

뒤엉켜 자도 마냥 행복했었지.

그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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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8-2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무지 좋아하는 애니예요.
육남매던가?ㅎㅎㅎ
반가워요!^^
 
 전출처 : 아영엄마님의 "162권(그림책)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면서.."

부럽네요. 앞으론 저도 기억해 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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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만 되면 나오는 노래가 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

근 20여년을 들어 온 노래이다.

그런데도 가을만 되면 그 노래가 정겨우니 그도 희안한 일이다.

'가을이 됐나벼. 저노래 또 나오네.' 

이리 생각하지 않고

'저 노래 나오는 걸 보니 가을이 왔구나. 벌써 가을이네.'

이렇게 생각하게 되니, 인간은 참 단순한 존재인가 보다.

'이성' '사고'  운운 하지만

계절이 바뀌면 전에 나왔던 것 또 나오고 또 나오는데도 그를 지겹다 하지않고

새롭게 받아들이니 말이다.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제법 달라졌다.

이제 이 비만 그치면 가을은 우리 켵으로 성큼 다가올 터이다.

이 가을은 내게 어떤 의미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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