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동이 - 중국 땅별그림책 10
전수정 옮김, 차이까오 그림, 포송령 원작 / 보림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전설의 고향' 세대인 나는 지금도 여우하면 반사적으로 구미호가 떠오른다. 꼬리가 아홉 달렸다는 구미호 얘기는 무서우면서도 재미었었다. 고개를 홱 돌리며 손톱을 치켜세우는 구미호가 화면을 가득 채웠을 때, 어린 나는 심장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순간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무서우면 안보면 그만인 것을 그래도 굳이 봐야한다며 그 시간만을 기다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매운 음식처럼 기이한 이야기에는 그런 매력이 있다.

 

'귀동이'도 그런 이야기에 속한다. '요재이지'라는 책에 수록된 이 이야기는 17세기의 중국 사람인 포송령에 의해 쓰여진 글로, 기이하면서도 흥미로워 아이들도 읽을 수 있도록 이 책의 그림작가이자 편집자인 차이까오가 윤색했다 한다. 으스스하면서도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현실과 환타지의 경계 뿐 아니라 사람과 동물의 경계마저 넘나드는 설화적 요소 때문인지 술술 읽힌다.

 

아빠가 장사 하러 집을 비운 사이, 요사스런 여우가 나타나 엄마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걱정이 된 귀동이는 엄마를 넋나게 한 요괴를 잡기로 마음 먹고, 한밤 중 집을 찾아온 요괴의 꼬리를 자른다. 며칠 뒤 아빠가 돌아왔지만 엄마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아빠도 근심에 젖는다. 엄마의 병이 요괴 때문인 것을 아는 귀동이는, 요괴가 사라졌던 정원으로 가 요괴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아빠를 졸라 여우 꼬리를 사둔다. 그리고는 이모네 집으로 가 쥐약을 얻은 후, 술 가게에서 산 술병에 쥐약을 넣은 다음 주인에게 술병을 맡긴다.

 

 

저녁 무렵 요괴 중 한 명인 늙은 하인이 나타나자, 귀동이는 여우 꼬리를 이용해 자신이 요괴인 것처럼 행세한다. 요괴와 친분을 튼 귀동이는 요괴에게 자신의 술을 가져가 마시도록 유도하고, 그 술을 먹은 요괴들은 전부 죽게 만든다. 다음 날 아침 아빠와 함께 요괴들이 있는 정원으로 간 귀동이는 요괴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아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집에 돌아와보니 엄마의 병은 나아있었고 그후 귀동이네는 행복하게 잘 산다.

 

'귀동이'는 단순한 기담에 머물지 않고, 어린 소년인 귀동이의 활약상을 통해 난제가 해결되는 구조가 돋보이는 책이다. 아빠의 부재도 버거운데 엄마마저 정신이 나간 상황 속에서 어린 귀동이는 침착하게 문제를 풀어나간다. 아빠에게조차 말을 가리는 신중함은 여우들로 뭉친 요괴들을 완벽히 속이고 없앨 수 있게 만든다. 어려서 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이 책은 아이도 어려울 때는 거뜬히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전한다.

 

아이가 밤에 잠 안온다고 치근대거나 책 읽어달라고 조를 때 으스스한 느낌과 동화적 교훈을 동시에 전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그것도 늦은 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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