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십
년쯤 지나서야 좀 읽을만 했지만, 성경 읽기가 여전히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차선으로 택한 것이 신앙 서적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남들은
처음부터 성경읽기로 들어갔다는 데 그렇지 못했기에 조금 속상하기도 했지만, 내게는 성경과 친해질 수 있는 적절하고도 적합한
방법이었다.
신앙 서적을 읽으니 그제서야 조금씩 성경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지만 성경이 하나님의 편지라는 말은 가슴에 와닿지 않았고, 그런 말을
하는 분의 얼굴을 부러워하며 쳐다보곤 했다. 나도 저런 말을 할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꿈꿀 수 없는 꿈처럼 가슴 속 깊이
간직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무릎이라도 치고 싶을 정도로 기가 막혔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도 성경 속의 보조적 설명이나 일
주일에 한 두번 듣는 설교만으로는 갈증이 생겼다. 그렇다고 주석서까지 찾기는 힘들고 그 중간 어디쯤 안내서로서, 성경 읽기의 전체적인 흐름과
맥을 잡아줄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면 했다. 어떤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며 구체적 실천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길잡이로서의 책이,
전방위로 열려있는 요즘 같은 시대의 크리스천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갑게도
이문장 교수의 책이 나왔다. '목회와 신학'을 통해 이름을 접했던 기억이 있기에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또한 말씀에
매진한 분의 책이라 신뢰가 갔다. 단순한 신학자가 아닌 한국 교계의 전체적 상황과 분위기를 잘 알고, 문제점과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돼 열심히 읽었다.
무엇보다 글이 깔끔하고 평신도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 좋았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평생 신앙생활을 하고 성경을 배우면서도 자신들은 성경에 아마추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성경을
배우는 누구라도 말씀에 프로가 될 수 있고, 또한 프로가 되길 바라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
' 수십
권의 신학 서적을 독파하고 많은 강해서를 읽어 말씀의 이치들을 섭렸했다고 해서 성경의 가르침들을 몸에 체득한 것은 아니다. 성경 읽기의 궁극적
목적은 변화에 있다. 말씀을 지정의로 깨달은 후 실천을 통해 체득하면, 우리 자신이 변하게 된다. 더 깊은 깨달음과 더 깊은 체득이 더 깊은
변화를 가져온다. '
그의
글은 관습인양 고착화되어있는 생각들을 교정하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 더 나아가도록 촉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읽기의 최종 목표가 하나님을
아는 것만이 아닌,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임을 천명한다. 말씀의 실천은 생각했지만 예수님을 닮아가야
한다고
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좀 부끄러웠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말씀의
흥왕과 체화만이 한국 교회의 미래와 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보겠다고 조용히 결단해 본다. 책의 놀라운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