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깜박이와 투덜 투덜이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5
런룽룽 지음, 신영미 옮김 / 보림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몇 권 안되는 책을 읽고 한 나라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한 작가의 책만이 아니라 여러 작가의 책을 읽었는데도 비슷한 느낌이 난다면, 그건 공통적으로 흐르는 어떤 정서가 있음을 뜻하는 것일 터이다. 최근 중국 아동문학을 연이어 읽고 있다. 분명히 다른 작가가 쓴 글인데도 마치 한 작가가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 든다.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런지, 그도 아니면 오랜 세월을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서 그런지, 중국 작가들의 책엔 왠지 모를 느긋함이 느껴진다. 때로는 능청스러운 느낌마저 드는데, 그래서일까 읽는 사람도 덩달아 느긋해지고 여유마저 생기는 것 같다.  

 

이달에 만난 작가는 런룽룽이다. 1923년생이니 요즘 아이들에겐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 뻘쯤 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의 이야기 속에 시간의 낙차가 느껴질 법도 하건만, 약력을 몰랐다면 이 시대의 작가가 썼다 해도 모를 정도로 신선하다. 런룽룽은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면서도, 자신이 들려주려는 바를 흔들림 없이 7편의 동화에 담아 전한다. 아이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유쾌하게 답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작가가 동화 속에 자신의 의도를 잘 녹여냈기 때문이다. 엉뚱하고 제멋대로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즉각 반성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부모들에게도 대리만족을 준다.

 

『깜빡 깜박이와 투덜 투덜이는 아이들이 친근하게 생각하게 하는 신선을 등장시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는 이야기다. 늘 뭔가를 놓고 다니는 깜빡이와 온종일 투덜대고 살면서도 자신이 고쳐야 될 점이 무엇인지 모르는 투덜이에게 어느날 신선이 나타난다. 신선은 두 아이를 미래로 데려가 훗날의 자신을 보게하면서, 자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작은 습관이 얼마나 큰 일을 부르는지를 알게한다. 일일이 혼내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찰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진지하게 생각케하는 것은, 몇 번을 생각해도 지혜롭고 적절한 동화적 대응이라 생각된다.  

 

천재와 어릿광대는 탁월한 실력을 가진 서커스 선수가 자신의 재능만 믿고 운동도 안한채 먹기만 하다 수모를 당한다는 이야기다. 평소 그가 하찮게 여기던 어릿광대는 꾸준히 연습한 끝에 뚱보가 된 서커스 선수를 손가락 하나로 돌리게 되는데, 뻔하지 않은 결말인데다 비아냥이 아닌 가벼운 웃음을 일게 해 더 참신하게 와닿았다. 

 

『할머니의 이상한 귀는 버릇없이 구는 손자를 지혜롭게 다루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요즘 어른들에게 예의없게 구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아이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이를 세태라 하며 손놓고 있는 부모가 있는데,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쉽게 할 말은 아니지만 세태가 내 아이를 책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은 부모들에게 주는 전(前) 세대의 부드러운 조언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화다.디얼의 주문사고뭉치 디얼은 디얼이라는 작은 요정이 등장하는 연작 동화다. 전편은 수학을 못한다고 여기는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풀 수 있도록 디얼이 격려하며 이끈다는 내용이고, 후편은 수사적인 표현을 아이들의 시각으로 쉽게 풀어주는 내용이다.

 

『네 몸 속에 있는 요정을 조심해!는 미운 세살 쯤 되는 아이의 이야기다. 착하고 예쁜 짓만 하던 아이가 어느날부터 떼를 쓰고 자기주장을 할 때 부모는 힘들다. 이럴때 조부모는 아이와 부모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아이의 입장에서 자신을 제어하고 잘 넘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구체적인 방법을 동화로 제시하는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동화다.  

 

『다다다와 샤오샤오의 모험은 걸리버 여행기에서 모티브를 따와 시작되는 이야기다. 거인국의 다다다와 소인국의 샤오샤오는 걸리버를 통해 자신들도 모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행을 떠난다. 그러던 중 샤오샤오가 파도에 휩쓸려 다다다의 배에 떨어지면서 둘은 만나게 된다. 주의해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은 샤오샤오에게 다다다는 여러 차례 도움을 받으면서도, 늘 자신도 모르게 샤오샤오를 무시하게 된다. 마침내 샤오샤오의 도움으로 자신의 나라에 돌아가게 된 다다다는, 세상에 큰 것은 큰대로 작은 것은 작은대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7편의 동화 속에는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한결같이 전달되는 것은 아이들이 잘 자라길 바라는 작가 런룽룽의 마음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으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교훈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심하며 지었을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읽자마자 박장대소할 동화는 아니지만, 은근히 웃기고 은근히 세심하며 속속들이 교육적 신념으로 꽉 찬 동화였다. 책 표지 안에 '좋은 문학은 지역과 언어를 뛰어넘어 마음으로 이해된다'는 말이 적혀 있다. 이 책은 그 말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동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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