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의 비밀 - 쿠바로 간 홀로코스트 난민 보림문학선 11
마가리타 엥글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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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소년이 있습니다. 가난한 연주가였던 부모는 소년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포기했고, 그 대가로 소년은 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미국도, 캐나다도 소년이 탄 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선객이 유대인에 난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곳 쿠바에서도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년은 다시 독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 쿠바가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렇게 내일이 보이지 않는 불안 속에 소년은 하루 하루를 지냅니다. 소년의 이름은 다니엘입니다. 나이는 열세 살이구요.

 

'열대의 비밀'은 디아스포라의 숙명에 난민이라는 덧옷까지 입어야 했던 유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춥니다. 보호막 없이 살아야 하는 이들의 설움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대인 노인인 다비드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다비드는 아이스크림을 팔며 삽니다. 그는 여기서 잘 지내기 위해선 무더위와 언어, 외로움과 싸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를 가든 여전히 국외자일 수 밖에 없는 그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 합니다. 미래만 생각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한편 너무 이른 나이에 맞닥뜨리게 된 현실에 다니엘은 아직도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생존이 확실치 않은 부모를 떠올리며 지냅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고통스러운 기억과 희망이라는 부서질 듯한 파편 사이에서 길을 잃은 아이'로 규정합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호의가 없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현지인 소녀 팔로마는 천사와 같습니다. 다니엘에게 팔로마는 쿠바와 자신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며, 공포와 분노 속에서 지탱케 하는 피난처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다니엘과 다비드, 그리고 팔로마의 도움을 기다리는 난민들이 있기에 팔로마가 자신을 지키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팔로마는 아직도 자신과 아빠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간 엄마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게다가 불쌍한 난민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돈벌이로 이용하는 아빠는 팔로마의 내밀한 부끄러이기도 하구요. 팔로마는 비둘기를 돌보고, 난민들을 도우며 어른보다 더 큰 용기와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팔로마는 불과 열두 살인데 말입니다.

 

1939년 6월부터 1942년 4월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피를 말리는 일들이 많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다니엘은 마침내 희망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노래를 만들기도 하구요. 이제 그의 노래 속엔 부모님의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또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어린 난민 소년에게는 쿠바에서 사는 법도 가르쳐 줍니다. 팔로마와 다비드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리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난민들이 쿠바에 정착하게 되었구요. 이제 다니엘은 '음악에 어울린다면 삶의 어떤 부분이든 노랫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독한 불신과 절망이 사람에게서 기인됐습니다. 달콤한 희망도 사람이 불러왔구요. 이웃이 폭도가 되는 상상도 못할 일들을 겪고, 바로 옆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았던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웃음을 가져다 준 건 12세 소녀였고, 나이 많은 할아버지였습니다. 다니엘의 공포를 이해하며 조금이라도 아픔을 나누려는 시도가 한 소년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일 년 후 다니엘과 같은 한 소년을 삶으로 이끕니다. 셋의 공통분모는 쿠바라는 장소에서 만났다는 것 하나였습니다. 그 하나만으로도 작은 평화를 만들어냅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고 함께 했을 때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누군가를 살려냈습니다. 나누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큰 힘인지를 느끼게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한 시간이면 읽어낼 책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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