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예쁜 여자입니다
김희아 지음 / 김영사on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TV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난 그녀의 지난 삶을 짐작하고 말았다. 내게 어떤 신통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 또한 이땅에 살고 있으니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고단했을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왔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내 귀엔 마치 우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자신을 고아원에 버렸다는 엄마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했다. 그리고 이렇게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했다. 지금껏 한번도 못 본 엄마에게 '잘 살고 있으니 걱정마시라' 말을 늘 하고 싶었다며, 그래서 출연하게 됐다고 했다. 그날 앞 부분을 보지 못해 자세히 알 수 없었던 나는 그녀의 삶이 궁금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책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빨리 읽혀지진 않았다. 그 안에 담긴 그녀의 눈물 때문이었으리라. 그녀가 출연한 TV 프로의 담당 PD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에게는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하며 움켜쥐고 태어나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부모, 형제, 이름, 정확한 출생의 기록도 없었다. 대신 그녀는 얼굴에 커다란 붉은 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 책은 고통을 감사로 이겨낸 그녀가 온전히 홀로 겪어낸 삶의 기록이자, 우리가 삶에서 늘 갈구하는 생존과 치유와 희망의 증거이다." 그렇다. 이 책은 그녀, 김희아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하는 자서전이며, 감사의 찬가이자 그녀가 믿어온 신에 대한 간증문이었다.

 

부모가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어쩔 줄 몰라하는 게 아이들이다. 때로 심하다 싶게 설치는 아이들도 부모가 없으면 금새 풀이 죽는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하늘이자 땅이다. 그런데 아이를 지켜줄 부모가 없다. 어린 아이가 어떻게 살았을까? 그 생각만 해도 가슴이 짠해진다. 그래도 고아원에 있을 때는 몰랐단다. 다들 처지가 같았으니까. 학교에 입학하고서야 희아씨는 자신이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아이들의 가슴 한 쪽에 달린 손수건이 그녀에겐 없었고, 제 때 준비물을 챙겨갈 수 없었다. 비가 오면 학교 앞에 와 있는 엄마도 없었고, 고아원의 우산은 그녀의 차지가 되기엔 너무 적었다. 학교 생활이 결코 쉬울 수 없었다.

 

그러나 희아씨가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사람들의 말이었다. 차라리 시선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 말은 비수가 되어 그녀를 찔렀다.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었던 말이지만 들어도 들어도 아팠다. 학교를 다니는 내내 희아씨는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희아씨는 시설에 남아 선생님이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학생이었다 선생님이 된 희아씨를 아이들은 부담스러워했다. 희아씨는 아이들을 엄하게 대했다. 그것이 아이들을 사람들의 손가락질로부터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고, 사랑의 표현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아이들의 거부감을 불러왔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사랑하는 방법을 희아씨는 몰랐다.

 

그렇게 선생님으로 지내다 희아씨도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남자친구와 만난지 2년쯤 되었을 무렵 희아씨의 오른쪽 뺨에서 상악동암이 발견되었다. 뼈를 다 들어내야 된다고 했다. 얼굴이 꺼지고 변형이 올거라고 했다. 오른쪽 얼굴이 멀쩡했을 때, 사람들은 붉은 점만 없었으면 예뻤을 얼굴이라고 했다. 몸도 날씬해서 보육원에선 멋쟁이 선생님이라 불렸다. 수술이 끝났다. 그러나 워낙 중한 수술이라 쉬어야했다. 보육원을 나와 근처 옥탑방에 거처를 마련했다. 깊은 절망에 빠진 희아씨에게 신의 선물이 왔다. 중학교 동창을 근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동창은 그 후 희아씨에게 가족이 되었다. 남자친구와는 아이가 생겨 희아씨는 자연스레 결혼도 하게 되었고, 꿈꿔왔던 가정도 꾸리게 되었다.

 

아이를 낳은 후 희아씨는 그토록 그리워했고 원망도 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을 안고 억장이 무너졌을 엄마를 생각하니 한없이 가엾고 너무도 미안했다. 엄마를 이해하게 되면서 희아씨의 가슴에 감사란 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세상의 편견은 여전했고 혹여 어린 딸들이 상처입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이는 돌봐야겠고 사람들의 시선은 따가웠기에 희아씨는 아이들과 같이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러다 공방을 열게 되었다.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희아씨의 손재주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씩 입소문을 타 자리를 잡게 되었고, 어린 딸의 격려로 TV 프로의 연사가 되어 서게 되었다. 그 결과 이렇게 책도 내게 된 것이다.

 

희아씨의 지난 날은 마치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총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시험하는 것처럼 힘든 나날이었다. 아무도 의지할 데 없는 어린 아이를 격려하기 보다 아프게 하거나 찌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희아씨는 잘 참았고 견뎌냈다. 가슴 속의 응어리를 생에의 분노나 불만으로 표출할 수도 있었건만 그리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녀의 인생도 좌초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존재하는 그 자체로 다른 사람들의 희망이 되었다. 그녀의 아픔이 어느 한 여인의 처절한 개인사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대속의 아픔이 되어 참 다행이고 기쁘다. 그녀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는 그 시간, 나는 TV 밖의 방청객으로 있었다. 그리곤 공간을 벗어나 함께 마음을 나누었다. 그 특별한 시간에 내가 함께 했다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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