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동양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9
일연 지음, 최호 옮김 / 홍신문화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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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역사는 그 땅에 살고 있는 한 민족의 이야기다. 어떤 민족을 알려면 그들의 역사를 보면 된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 민족의 영욕과 성쇄가 담긴 그 이야기는 그들을 하나 되게 하는 강력한 끈이자 구심점이다. 역사는 민족의 지난날을 알려줌과 동시에 내일의 밑자리가 된다. 따라서 역사를 모르고는 그 민족의 내일을 말할 수 없으며 민족의 자존 또한 세울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의 역사를 알려주는 역사서는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하며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 역사는 결국 우리의 뿌리이자 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대사를 알려주는 역사서에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가 있다. 두 책은 우리 고대사의 양대 산맥이 되는 역사서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정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면 일연의 삼국유사는 야사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우리 고대사에 대한 기록은 이 두 사서를 제외하고는 현존하는 사료가 없다시피해 우리 역사를 알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지않다.

물론 우리 역사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구려의 역사서인 유기는 100권이나 되었고, 백제는 박사 고흥이 서기를 편찬하였으며, 신라는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하였다. 그 밖의 역사서들도 있어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편찬했을 때 인용했다는 표현이 있지만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참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의 고대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중국의 삼국지 위지 동이전, 일본서기 등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삼국유사를 일연이 저술한 동기는 정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거나 누락된 사항과 미비점을 보완하는데 있었다. 낱말 그대로 유사는 이전의 책들에서 빠지거나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연은 김부식이 가지고 있는 사대주의적 편견을 바로 잡음과 동시에 삼국사기에 의도적으로 배제된 우리의 역사를 집어넣어 풍성하고 역동감있게 그려 놓았다.

일연은 우리 역사를 고조선까지 끌어올려 역사의 유규함과 신화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읽는 이들이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당시 고려는 몽고에 의해 휘둘리고 있었고 백성들의 피폐함은 이루 말 할수 없었다. 일연은 자신의 저술을 통해 사람들의 아픈 마음이 위로 받으며 역사의 긴 서사를 통해 그들이 미래의 소망을 갖기 원했다. 또한 역사를 통한 치유와, 이 모든 것들이 지난 역사처럼 지나가리란 걸 알기 바랐던 노승의 소망은 당대 뿐 아니라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유효하다. 그 또한 지나갔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5권 9편으로 되어있다. 글의 구성은 시대적 흐름을 따라 이어지고 있으며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거나 눈물이 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그 글엔 민초를 향한 노승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의 이야기는 깊은 밤의 시간을 역사와 함께 보낼 수 있도록 격려한다.

책을 읽다보면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들의 원천이 바로 여기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많이 들었고 또 보았던 동화와 역사의 이야기가 일연의 손끝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에 놀랍기만 하다. 그러니까 나는 삼국유사를 읽지 않았지만 어설프게나마 다른 책을 통해 조금씩 맛보고는 있었던 것이다.

책은 일연의 글을 최호가 번역한 것으로 원문과 비교해 보면 읽는 맛이 제법 괜찮다. 최호는 운을 살리기 위해 원문에 추임새와 같은 말을 넣었다. 끊어 읽기 한결 쉽고 내용을 다 알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무수히 들었지만 현실감이 없었던 삼국유사에 대한 실체감이 확연하게 다가온다. 천 여년전 한 노승의 나지막한 음성이 조부모의 음성처럼 정겹다.

제 3권 흥법편부터 삼국유사는 거의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아무래도 신라나 고려가 불교를 국교로 하였고 민초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가장 큰 소망도 종교에 있음을 믿었던 승려라 그렇지 않았나 싶다. 우리 역사에 불교가 남긴 흔적들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경로를 따라 문화 유산으로 남게 되었는지 일연은 찬찬히 되짚어준다.

역사는 시간을 품고 있기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시간 속에 숨겨진 놀라운 지혜를 배울 수 있다. 역사가 남긴 흔적들을 주의해 보고 이름없이 살다간 사람들의 신음을 읽어낼 때 우리는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이야말로 일연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가 아닐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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