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궁전 리리 이야기 1
이형진 글.그림 / 시공주니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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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속엔 내 어린 동경이 숨어있다. 책을 펼칠 때마다 나타나는 새로운 세계는 내게 경탄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늘 기대를 가득 담은 채 책을 펴게 된다. 글과 그림이 어울어진 동화책을 본다는 건 대단한 기쁨이다. 글만도 아니며 그림만도 아닌 두 세계의 조화는 내 상상력을 거침없이 확장시킨다. 그 열려진 세상에 발을 디딜때 나는 또다른 내가 된다. 책 속에 빨려 들어간 나는 책 세상의 곳곳을 마음껏 즐기고 음미한다. 그 맛있고 황홀한 여정에 내 아이도 동참시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맛보아야만 한다. 냠냠, 이 책은 무척 맛있구나.


오래전 부터 나는 우리나라에는 왜 앤서니 브라운이나 존 버닝햄, 데이빗 새논이나 마르쿠스 피스터 같은 작가들이 나오지 않는지에 대해 의아해했다. 글과 그림이 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게 쉽지 않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부문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작가의 탁월한 재능이 전제되어야 하고 문화적인 토양 또한 무시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쁘게도 그런 조짐이 보이더니 좋은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호백과 이억배, 권윤덕과 조은수, 백희나가 등장했다. 그 대열에 이형진이 오래전 합류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서야 알았다.

나는 이형진을 그림으로 먼저 만났다. 그의 그림에는 위트가 있었고 순간 순간의 상황이 기막히리만큼 정확히 표현되어 있었다. 그의 그림이 들어가 있으면 어떤 책이든 글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장난기어린 모습이 사랑스레 표현된 그림을 보노라면 뭔가 모를 풍성함이 전해졌다. 그래서 이형진이란 이름은 내 안에 소중한 기억처럼 남아 있었다.

                                          

아기였던 어린 딸이 이제 스스로 글을 읽을수 있을 무렵, 나는 이형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린 딸과 함께 그의 그림이 들어간 글을 읽고 또 읽으며 깔깔거렸던 시간들은 내 삶까지도 포근하게 만들었다. 딸은 그림속의 모습을 따라하며 나를 웃겼다. 그런데 이번에 이형진이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냈단다. 내 가족의 일인양 기뻤다. 알고보니 그는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몇 권이나 낸 작가였는데...... 나만 몰랐었던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기쁨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자신의 것으로만 온전히 채운 책은 어떤 책일까? '돼지 궁전'을 받게 된 날은 고대하던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내게 설레는 날이었다.

                                   

 

책을 펼쳤다. 그 안에는 이형진의 다부진 결의가 보였다. 세상을 꿈처럼 달콤하게만 그리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는 면면에 드러나 있었다. 많고 많은 동물 중 돼지를 택한 것도 그랬다. 또한 결손가정의 어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택하여 어른들의 시선에 완전히 노출시킨 것도 그랬다. 그는 무모하리만큼 용감했고 삶에 정면도전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굳건히 보여주었다.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어린아이가 말의 횡포 속에 던져졌을 때 나올 수 있는 자구책이란 가면 밖에 없었다. 그 가면 속에 자신을 숨긴 어린 리리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러나 리리의 가면은 얼굴만 가릴 뿐 리리 자신까지 덮을 수는 없었다. 리리는 외할머니네서 사귄 유일한 친구인 수미의 할머니를 통해 가면을 벗게 되는 전기를 맞게 된다. 수미 할머니의 이중성은 리리가 자신을 똑바로 보게 되는 거울이 되었다. 비록 자신이 골칫덩어리라는 말을 듣지만 그것은 자신의 환경탓이지 리리의 잘못은 아니었다. 리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이제 자신을 감추지 않고 보여주리라 마음먹는다. 리리가 벗어던진 가면은 리리의 아픈 삶이었고 이제 리리는 자신의 얼굴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보리라 다짐한다.

어른들의 시선에 홀로 던져진 어린 리리의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생각없이 던지는 어른들의 말에 상처 입은 어린 리리가 안스럽다. 버림받은 환경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아이일텐데 더하여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까지 견뎌야하는 리리가 너무 측은하다. 그러나 리리는 당차게도 자신을 더이상 가두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는 마음껏 눈물을 흘린 다음 큰 숨을 쉬며 가만히 중얼거린다. 리리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내 귀가 쫑긋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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