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쉬운 마음 글쓰기 - 일기, 독서록으로 아이와 씨름하는 엄마들의 필독서
이임숙 지음 / 부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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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부터 서울시 교육청의 재능 기부자가 되어 딸 아이의 학교에서 1, 2 학년 학생들의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어린 친구들이라 각기 차이도 있는데다 학년이 벌어져 내심 쉽지 않겠다 생각했다. 첫 수업 준비를 그간의 경험으로 미뤄보아 결코 적지 않게 했는데도 어린 친구들은 금새 해치운다. '각자 낱말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보고 싶어 그러니 조용히 써 보라' 권유했다. 물론 예를 들기 위해 몇 개를 같이 했는데 재미있었는지 어린 친구들은 신나서 소리 높여 말한다. 그 말을 생각 못한 다른 친구들은 '옳다구나' 싶은지 들은대로 열심히 쓰고 있다.

'에고, 이 시도는 실패구나' 싶었다. 준비한 유인물은 2장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모자라야 정상인데 오히려 남았다. 5학년 언니 오빠들도 시간이 모자라 쩔쩔 맸는데 어린 친구들이 어찌 그리 빨리 끝마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시간이 3분 정도 남았고 그 시간은 생각외로 길었다. 수업을 마치고, 가면서 먹으라고 나눠준 요플레를 어린 친구들은 '좋네, 싫네' 하면서 받고, '역시 글쓰기는 싫다'며 가면서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분명히 재미있게 했는데 뭔지 모르게 낙심이 됐다. 원래 계획은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한 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보게 할 작정이었다. 비록 힘들긴 하지만 단 몇 줄이라도 독후감을 쓰는 것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울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쓴 글을 읽지 않고 구석에 밀어두었다. 괜히 신청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데 다음 차 수업을 위해 아이들의 글을 보며 나는 놀라고 말았다. 아이들의 글이 너무 귀엽고 예뻤다. 함께 했기 때문에 같은 말들이 반복되긴 했지만 각자 자신의 생각을 열심히 적어놓고는 옆에 그림도 그려 넣었다. 12명의 글을 읽으며 속상했던 마음이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크게 깨달았다. 사람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며, 겉으로 드러나는 느낌만으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말이다.

글은 진실로 말과 달랐다. 까불대며 단 몇분도 가만히 있지 않던 아이의 마음을 글로 읽으며, 만약 내가 아이의 글을 읽지 않았다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지를 생각하게 됐다. 그랬다면 나는 수업 태도나 인상만으로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글이 아니었다면 결코 몰랐을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됐다. 아이들의 글에 내 느낌을 덧붙이며 나는 신이 났다. 쓰면서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깊게 느끼고 있었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말로는 다 못할 마음을 전하는 것, 그리하여 읽는 이의 마음까지 온기를 가져다 주는 것이 글이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다. 얼마나 쉽지 않은지 아이들은 글쓰기를 싫어하고 내심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쓰기 힘들어서 싫어하는 것이지 결코 글쓰기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진지하고도 절박한 내 물음에 대한 답이 이임숙 선생의 '참 쉬운 마음 글쓰기'에 있었다.

그녀의 책엔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연륜이 묻어났다. 또한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표현이 있었다. 신뢰가 갔다. 글쓰기에 관련된 책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자칫하면 많은 책 중의 하나로 전락할 위험도 있는 것이 글쓰기 관련 책이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책을 냈을 때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문을 다시 읽기로 했다. 서문에는 종이만 보면 괴로워하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자신이 글쓰기를 어려워했기에 아이들의 고민은 곧 어린 그녀의 고민이었으며, 그 고민을 안고 아이들을 가르쳤기에 그녀의 책은 단순한 지침서가 아닌 아이들을 살리는 글쓰기에 관한 고백록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현실로 돌아가면 또 다른 막막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글쓰기란 선한 의도와 좋은 목적만으로 합당한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갖게 되는 어려움 말이다. 구체적인 방법과 세밀한 스킬이 있어야만 적합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데, 이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선한 의도로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글로 쓰게 하라'는 그녀의 조언은 심도있게 다가온다. 현장에서 아이들과 부딪히며 피드백을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직접적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기에 그녀의 사례담은 힘있는 것이다.

그녀의 글을 통해 나 자신이 지금껏 지극히 피상적이고 당연한 질문을 해왔던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본다. 더 고민하기 싫어 단편적인 질문에 머물렀던 것은 아닌지, 아이 자신의 감정만으로도 많은 질문을 할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었는데 더 나아가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 본다. 그러나 자책보다 기쁨이 앞서는 것은 그녀의 교수법과 그 결과를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누려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는 아이들의 얼굴이 찡그림이 아닌 해맑은 웃음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덧붙여 글쓰기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서이기도 하다.

공부나 학습을 위해서가 아닌 아이들 자신을 위한 글쓰기 지침서를 만나게 돼 기쁘다. 아이들이 글이란 멋진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 또한 기대 가득하다. 글쓰기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 수 있도록 지도해보고 싶다. 지금 내 마음은 아이들 곁으로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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