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청년 바보의사 - 개정판
안수현 지음, 이기섭 엮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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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5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멋진 청년이 세상을 뜬 지. 그토록 선량하고 사랑이 넘쳤던 청년은 왜 그리 일찍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했을까요? 더 오래 지상에 머물며 알콩달콩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면 안 되었던 걸까요? 그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던 것을 생각해서라도 하나님께서 좀 봐주시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이른 죽음이. 그가 이 땅에 남아 외롭고 힘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위로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청년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지만 데려가시는 것으로 자신의 뜻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사람, 따뜻하고 진실했던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이 그입니다.

『그 청년 바보의사』는 안수현이 생전 여러 매체에 실었던 글을 엮은 책입니다. 그의 육성이 들어있는 책이지요. 33년을 지상에 머무는 동안 안수현은 예수님의 흔적을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워 난동을 부리는 환자를 껴안고 진정될 때까지 함께 했고, 만취해 실려온 환자를 위해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식판을 들고 지하 1층에서 2층의 응급실까지 갔습니다. 스스로도 지나친 게 아니냐며 갈등했지만 환자를 위해서라면 그런 겸연쩍음 정도는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뿐인가요. 백혈병 치료를 받고 퇴원한 어린 환자를 위해 선물을 들고 찾아가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환자를 위로하기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으니까요. 그런 예를 들라면 책 어디를 펴도 접하실 수 있습니다. 만나는 누구에게도 항상 자신을 내어 주었던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아직도 안수현을 가슴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네가 날 위해 시간과 마음을 포기한다면 내가 정말로 기쁘게 그 예배를 받겠다. 하지만 너는 그로 인해 성적이든, 이성 교제든, 사람들과의 관계든 무엇에선가 분명히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도 내게 그 부분을 주겠니?"
이 질문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손해 보는 일'을 할 때마다 스스로 되새겨보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하지만 뚝심 있게 하나님 편에 서는 결정을 내리다 보면, 점점 더 그렇게 결정하기가 쉬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기에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손해'를 분명히 보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것을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때 한 결정 역시 후회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님의 방법으로 손해를 다루시며 역사하시는 손길을 분명히 보았다." 43쪽

안수현의 글을 대하며 눈물이 났습니다. 그가 아름답기도 했지만 손해를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도 삶에 손해는 옵니다. 물질적으로도 그렇고, 감정적으로도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안수현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다 의대생 시절 유급을 당하기도 했으니까요. 당시 가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부모님 뵙기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다 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잠시 저를 돌아봅니다. 그의 백만 분의 일만큼도 못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손해가 왔습니다. 얻는 게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손해는 안 봐야 되는데 오래도록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게 싫었습니다. 아까워서가 아니라 이런 일을 겪는 게 화가 났습니다. 한 번은 사역할 때 담당 부장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린 적도 있습니다. "권사님, 저는 이제 손해 보는 게 진저리가 나요." 얼마나 봤다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안수현과 저는 얼마나 다른가요.

안수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항상 나누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 간호사, 식당 아줌마, 선후배, 교회의 지체들, 처음 만나는 사람들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그에게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의 가방 속에는 언제나 선물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신앙 서적이나 찬양 테이프가 있었고 각기 다른 상황에 맞는 선물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안수현은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의사였습니다. 깊은 밤 조용히 와서 기도하고 가는 의사를 부담스러워하는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마음을 다하는 기도를 듣자 그 기도로 힘을 얻고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시간을 직면하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훌륭한 의사는 병을 치료하지만, 위대한 의사는 환자를 치료한다고 합니다. 안수현은 참 의사였습니다.

"하나님, 마른 막대기 같은 제 삶에 불을 붙이사 주님을 위해 온전히 소멸하게 하소서. 나의 하나님, 제 삶은 주의 것이오니 다 태워주소서. 저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주 예수님처럼 꽉 찬 삶을 원합니다-짐 엘리엇(에콰도르 선교사)
일반 세상이 보기에 이것은 젊은 생애의 허망한 낭비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사에 뜻과 계획이 있으시다-엘리자베스 엘리엇(짐 엘리엇의 아내)" 269쪽

2005년 12월 18일 주일 저녁,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안수현이 유행성출혈열로 고대 병원에 실려옵니다. 입대 전 내과전문의로 일했던 모교의 병원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위해 기도했고 거뜬히 털고 일어날 것으로 믿었습니다. 178cm의 건장한 몸을 가진 33살의 청년이 그깟 병에 쓰러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믿었습니까?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새해가 불과 5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의 숨이 멎었습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의 영정 사진이 장례식장에 걸릴 것을요. 회복을 위해 기도했던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황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4,000명이 넘는 조문객들이 속속 젊은 의사 안수현의 장례식장을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누구도 몰랐던 그의 사랑과 헌신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그토록 기도했지만 그가 떠났습니다. 우리의 짧은 소견으로는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 함께 하는 게 좋지 싶은데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셨습니다. 그가 여기에 있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그가 사랑했던 하나님을 더 크게 전하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떠나자 그의 이야기가 메아리가 되어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그의 사랑이 더 큰 사랑을 만들고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사람들은 안수현을 그리며 그가 했던 사랑의 흔적을 자신 속에서 발견합니다. 그리고는 안수현이 됩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성경은 말한다. 주님은 "너는 내 사랑하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두 팔을 넓게 벌려 우리를 맞으신다. 나의 어깨를 꼭 끌어안고 입을 맞추시며 말씀하신다.
"잘했구나,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단 한 명의 청중'으로부터 듣는 그의 사랑의 음성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이것이 내가 사는 이유가 되길 기도한다."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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