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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1 ㅣ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 후의 감상평이라는 것도 어차피 읽은이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니 누가 옳다 누가 그르다 왈가불가 할 노릇은 못된다. ...이 점은 동시에 이 책의 핵심적인 테마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이 사물 속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개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것인가...
저자는 책이 끝날때까지 여기에 대해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누구나가 알만한 시사논객으로서, 지성인 사회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아웃사이더'. 그러나 그는 그러한 지식들을 총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명제에 대해선 여전히 명쾌한 실마리를 잡지 못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이 독자들에겐 오히려 거부감없는 겸손함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이제껏 그 누구도 풀어내지 못한 딜레마였으니...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못할...
본 저작은 혹자들의 평가와는 달리 전혀 피상적이지 않다. 아주 훌륭한, 이 시대의 교양전범이다. 각 챕터와 하부 내용물들의 유기적 구성, 자료물들의 적절한 배치와 주석, 거기다 대화형식의 서술을 통한 독자에 대한 배려까지...형식적인 통일성에 있어서나 독자의 연상력을 배가시키려는 여러 시도들에 이르기까지, 과연 이러한 양질의 도서를 폄하할 자격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차피 가치판단이라는 것이 상대적이니까 평가는 상이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상이'의 차원을 넘어 감정적인 어휘들로 나타난다면 이는 저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전혀 쉽지않다. 철학에서 예술,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피상적이지만 나름대로 지식의 폭이 넓다고 자만(?)해온 나로서도 닷새에 걸쳐서 완독을 해냈을 정도로 이 책은 꼼꼼하고 내용 하나하나 깊이가 있다. 밑줄을 긋고 저자의 말에 대해 떠오르는 내 생각이 있으면 그때그때 주석을 달고..새 책은 어느새 너덜너덜한 일기장처럼 변해있었다.
과연 혹자의 표현처럼, 이 책의 내용이 피상적이다라고 느껴질 정도로, 대한민국민들의 일반적인 교양수준이 높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혹 높다고 하더라도, 그 교양이라는 것이 단편적인 지식들의 조합에 의한 '자칭교양'이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진중권은 본 저술을 통해, 독자들의 머릿속에 단편적으로 산재해있는 개별 지식들에 유기적인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만큼 그의 사고와 문체에는 끊기지 않는 흐름, 맥이 있다.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지도 벌써 10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어쩌면 그 사이에 더 훌륭한 양질의 미학 관련 서적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저작들이 과연 실질적으로 이 책보다 얼마나 더 앞서있을 것인지-특히 통찰력적인 측면과 직관력적인 측면에서-에 대해서는..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미학은 예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학적인, 머리를 쓰는 접근보다는 직관적인, 가슴으로 느끼는 접근이 선행되어야 하는 학문인 것이다. 만약 전자와 같이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면...그는 출판을 자신의 밥벌이로나 생각하며 쓰레기같은 잡서를 양산해내는 3류 '협잡꾼'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저작을 한국어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겨우 이정도의 책을 가지고 그런 평가를?" 이라고 반문할 사람들에 대한 나의 대답.
"그렇다. 그만큼 이제까지의 대한민국 출판문화 수준은 저질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