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탁의 기사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
토마스 불핀치 지음, 한영환 옮김 / 범우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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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점가에는 상당한 종류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진열되어 있다. 특히 주 타겟이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무난한 읽을 거리를 찾는 일반 독자들로 설정되어있기 때문에 책의 문체 또한 부드럽고 부담이 없다. 그런데 그 중 유독 유난히 딱딱한 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토마스 불핀치라는 인물은 확실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대성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심지어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나라 내에서도 계속해서 개정, 보완작업이 반복되면서 업그레이드 된 형태로 독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꿍꿍잇 속인지 현대인의 구미와는 거리가 먼, 불핀치의 원작이 그대로 '꾸준히' 번역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여러 출판사들의 경쟁속에서 활발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원탁의 기사'의 경우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관심있는 독자는 어쩔 수 없이 본 범우사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문제는 이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박진감이나 흥미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런 시절 만화로 먼저 접한데 대한 환상이 너무 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용의 흐름에 대한 최소한의 막힘은 없어야 할 것인데..군데군데 들쑥날쑥한 부분들이 너무 많아 도무지 일관성이라는 말을 떠올리기가 힘들다. 심지어 작은 에피소드 하나 조차도 내용이 일관적이지가 못해 읽는이가 혼란스러워지는 부분은 한두군데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점들이 활발한 번역, 재창조 작업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현재의 양상을 보면 그런 기대를 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제아무리 원본에 충실한 번역을 한다 하더라도, 번역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국내 독자들에게 외국의 지식을 '정확히' 전달하고자 함이 아닌가? 이러한 원래의 의도를 잘 상기했다면 절대로 이런 졸저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본이라도 부실한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과감히 보완해야 하는 것이 번역자의 최소한의 소명이다.

최근 게임산업의 발달과 함께 판타지 콘텐츠가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그런 판타지 콘텐츠의 원류인 북구신화와 셀틱신화 역시 새로운 인기를 얻고 있다. 대중들의 지적 욕구는 갈수록 커지는데, 출판계가 이러한 분위기에 잘 대응하지 못한다면 그건 경제적인 관점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인 결과가 될 것이다.

다시금 출판업계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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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문 밀레니엄 북스 22
앙드레 지드 지음, 김동호 옮김 / 신원문화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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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분위기, 풍경 묘사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서구문학의 악습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었는지 돌이켜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독자를 지키게 한다. 특별히 어려운 어휘를 구사한 것도 아니지만 대화를 제외한 어느 문장 하나 쉽게 이해되는 것이 없다. 물론 옮긴이의 자질부족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특히 후반부, 알리사의 일기부터는 독자의 인내력을 테스트할려고 작가가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하지 않았던가. 난 아직 기독교, 아니 크리스트교 자체를 거의 모르고 음욕주의에 대한 그 무엇도 모른다. 백지 상태에서 읽었으니 뭘 느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을 하더라도..클래식이 왜 클래식인가. 전 세계인 누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클래식 문학 아닌가. 그런 면에서 볼 때 본작이 도대체 언제까지 세계문학 전집의 고정멤버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인지 나는 굉장히 불만스럽다.

완성을 위한 금욕이라...하지만 이 불쌍한 금욕주의자들은 모조리 패배한다. '완성'은 좋은 것이지만, 그 의미자체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듯이 자기 자신에게 자랑스러울 정도의 선(線)이 되면 되는 것이다.

산꼭대기는 하나지만 올라가는 길은 여러갈래다. 금욕만이 '완성'을 위한 유일한 통로는 결코 아닐 것이다. 본문에선 '행복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복으로 다가가는 그 노력의 과정이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다' 라고 했다. 적어도 이 작품 안에서는, 작가 지드는 완벽한 금욕주의자를 택했다.

나같은 쾌락주의자가 소화해내기에는 애초에 무리였던 작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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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ve or Just Breathing
킬스위치 인게이지 (Killswitch Engage)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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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Hatebreed, Killswitch Engage, Shadows Fall 이들 트로이카 삼인방을 위시한 신(新) 스래쉬메탈이 현재 뉴메탈 씬의 거대한 조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얼터너티브의 핵폭탄을 피해 지하세계로 그 모습을 감추었던 메탈음악이 다시 락필드에 하나씩 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동시에 하나의 조류까지 형성해가며 자신감있게 재기해나가는 모습에, 옛 메탈팬의 한명으로서 감회가 새롭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과거의 명성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서는 판단을 일단 보류해두고 싶다. 씬 전체적으로, 선뜻 낙관적인 판단을 못내리게 하는 요소들이 군데군데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밀도감 높은 기타 톤, 중후한 톤의 드럼 그리고 각 파트끼리의 밸런스 등등 녹음상태 전반에 있어서는 흠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은 역력하다. 그러나 이 킬스위치 인게이지라는 밴드에 대해서 '솔직하게' 칭찬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다.

멤버 본인들이 직접 인터뷰에서 시인했듯이, 이들의 음악에서 In Flames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지역적인 특색을 가미하면서 그 부분을 얼마간 희석시키기는 했지만, 초심자가 들어도 그 유럽 데스메탈 밴드의 색깔이 너무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트랙 1, 2, 3...곡 하나하나는 굉장히 힘차고 헤비하다. 암울하고 묵시록적인 분위기도 나름대로 독창적이다. 그러나 앨범이 중반부로 흐르면서 슬슬 따분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닌 듯 하다.

무엇보다도 획일적인 작법이 가장 실망스럽다. 보컬리스트는 샤우팅과 감성적인 필의 싱잉 이 두 가지로 자신의 보이스를 드러내는데, 앨범 전체적으로 똑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피어 팩토리 역시도 이런 전철을 밟기는 했지만, 적어도 수록곡들의 변별력에 있어선 이들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고, 그럼으로써 그 결점을 나름대로 커버해 나갔다.

킬스위치 인게이지가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의 훌륭한 메틀 밴드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압도적인 연주력이 빈약한 아이디어 때문에 늘 빛을 보지 못하는 이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초 고성능 엔진을 장착하고서도 기어 변속을 효과적으로 못하는 꼴이라고나 할까.

더 암울한 것은 헤잇브리드나 섀도우스 폴 역시 비슷한 포맷으로 작곡을 한다는 점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서건, 다양성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부활'하고 있다는 이들 메틀씬에 얼마의 점수를 주어야 할것인지 나로선 굉장히 혼란스럽다.

"십년을 생각하면 기술이지만 백년을 생각하면 철학입니다" 라는 광고의 문구가 문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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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1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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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의 감상평이라는 것도 어차피 읽은이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이니 누가 옳다 누가 그르다 왈가불가 할 노릇은 못된다. ...이 점은 동시에 이 책의 핵심적인 테마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이 사물 속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개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것인가...

저자는 책이 끝날때까지 여기에 대해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누구나가 알만한 시사논객으로서, 지성인 사회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다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아웃사이더'. 그러나 그는 그러한 지식들을 총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명제에 대해선 여전히 명쾌한 실마리를 잡지 못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이 독자들에겐 오히려 거부감없는 겸손함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어차피 이제껏 그 누구도 풀어내지 못한 딜레마였으니...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못할...

본 저작은 혹자들의 평가와는 달리 전혀 피상적이지 않다. 아주 훌륭한, 이 시대의 교양전범이다. 각 챕터와 하부 내용물들의 유기적 구성, 자료물들의 적절한 배치와 주석, 거기다 대화형식의 서술을 통한 독자에 대한 배려까지...형식적인 통일성에 있어서나 독자의 연상력을 배가시키려는 여러 시도들에 이르기까지, 과연 이러한 양질의 도서를 폄하할 자격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차피 가치판단이라는 것이 상대적이니까 평가는 상이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상이'의 차원을 넘어 감정적인 어휘들로 나타난다면 이는 저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전혀 쉽지않다. 철학에서 예술,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피상적이지만 나름대로 지식의 폭이 넓다고 자만(?)해온 나로서도 닷새에 걸쳐서 완독을 해냈을 정도로 이 책은 꼼꼼하고 내용 하나하나 깊이가 있다. 밑줄을 긋고 저자의 말에 대해 떠오르는 내 생각이 있으면 그때그때 주석을 달고..새 책은 어느새 너덜너덜한 일기장처럼 변해있었다.

과연 혹자의 표현처럼, 이 책의 내용이 피상적이다라고 느껴질 정도로, 대한민국민들의 일반적인 교양수준이 높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혹 높다고 하더라도, 그 교양이라는 것이 단편적인 지식들의 조합에 의한 '자칭교양'이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진중권은 본 저술을 통해, 독자들의 머릿속에 단편적으로 산재해있는 개별 지식들에 유기적인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만큼 그의 사고와 문체에는 끊기지 않는 흐름, 맥이 있다.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지도 벌써 10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어쩌면 그 사이에 더 훌륭한 양질의 미학 관련 서적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저작들이 과연 실질적으로 이 책보다 얼마나 더 앞서있을 것인지-특히 통찰력적인 측면과 직관력적인 측면에서-에 대해서는..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미학은 예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과학적인, 머리를 쓰는 접근보다는 직관적인, 가슴으로 느끼는 접근이 선행되어야 하는 학문인 것이다. 만약 전자와 같이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면...그는 출판을 자신의 밥벌이로나 생각하며 쓰레기같은 잡서를 양산해내는 3류 '협잡꾼'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저작을 한국어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겨우 이정도의 책을 가지고 그런 평가를?" 이라고 반문할 사람들에 대한 나의 대답.

"그렇다. 그만큼 이제까지의 대한민국 출판문화 수준은 저질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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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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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발전이든 사회의 발전이든 문화의 발전이든...그 어느것이든 완벽하게 시작되고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없기 때문에 우리들이 '발전'에 관하여 포인트를 두어야 할 부분은 '과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강준만씨의 본 저서는 그 '발전하는 과정'에 명확히 부합하는 출판물이라 할 수 있다.

전작의 연장선상에서 보았을 때 본작의 내용과 구성, 방향은 매우 흥미롭다. 1권이 개별 매체 중심의 미시경제학이라고 한다면, 2권은 행태 사회학에 가깝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서술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루어지는 소재는 인터넷을 위시해 굉장히 구체적이고 미시적이라 여러 성향의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인트로에서 언급된 피에르 부르디외, 장 보들리야르 등과 같은 학자는 둘째치고서라도 책 내용이 전개되면서 상당한 빈도로 등장하는 각종 사회과학자들의 언급에, 저자가 본 저술에 얼마나 철저한 고증작업을 거쳤는지 잘 알 수 있다.

서양의 이론들을 우리식 사고에 맞게 잘 소화해서 편집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점수를 주고 싶다. 다만 고증작업을 거치면서 그 자료가 너무나 방대했는지, 저자가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히 나타내지 못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해는 잘 되지만 백과사전식의 구성이라 저자만의 '의식의 흐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표현하면 비슷한 것 같다.

그렇지만 본 책이 반드시 칭찬해줘야 할 만한 명저임에는 틀림없다. 번역서 일색인 대한민국 출판문화에서 이런 사람들은 선구자적인 마인드를 가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적어도 완벽으로 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더없이 자기 역할에 충실한 '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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