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너며 NFF (New Face of Fiction)
카릴 필립스 지음, 안지현 옮김 / 시공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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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F (New Face of Fiction) 라는 시공사의 문학 시리즈의 이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소설에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었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장편소설에, 인물과 형식이 다른 네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으면서도 조화롭지 못하거나 생뚱맞지 않았다. 문체 또한, 아름다웠다. 그리고, 여러 개의 악장이 모여 하나의 교향곡이 이루어지듯, 이야기는 작가가 말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통해 강하고 아름다운 한 편의 장편소설로 탄생되어 있었다.

 

절박한 어리석음이었다. 흉년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팔아넘겼다. (11쪽)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네 편의 이야기는 미국 대륙 곳곳으로 흩어진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서문'과 공통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강 건너, 미국 남부 혹은 또 다른 어떤 곳으로 도피하고 떠나야만 했던 그들의 흔적을 추적한다. 작가는 그들의 삶을 그저 '보이는 대로' 추적하고 잔잔한 문체로 전해주며, 그 속에 품은 '경고'나 '물음'을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먼저,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1부는 자신이 교육하고 지원하여 아프리카로 선교를 보낸 노예 '내시'를 찾아 나서는 주인 '에드워드'의 이야기다. 미국에서 얻은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창조된 땅에 뿌리내리려 했던 모순된 자신감을, 그로 인해 아프리카인이자 선교사였던 '내시'가 받은 상처와 병폐를 지적한다. 2부와 3부에 숨은 이야기는 가장 끔찍하다.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2부는 강 건너 지옥으로 떠나지 않기 위해 개척자로 향하다가 죽어갔던 마사의 이야기를 아주 생생한 증언으로 다룬다. 그리고 3부는 노예를 수송하고 '무역'했던 선박의 항해일지로, 아주 건조하게 당시의 (잔혹한) 일상을 전한다. 가장 분량이 많았던 4부는 언뜻 '흑인 디아스포라'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소외된 한 여성과 그가 사랑했던 흑인 병사와의 이야기를 통해 '흑인 디아스포라'에서 더욱 대상을 확대한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메시지로 목소리를 높인다.

 

버림받고, 뿔뿔이 흩어지고, 상처받고, 차별받고, 소외되었던 모든 사람에 대해 연민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소설 『강을 건너며』. 작가가 남겨놓은 어떤 '여지'와 관련해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내시. 나의 마사. 나의 트레비스. 그들의 부서진 삶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또 다른 '내시', '마사', '트레비스'의 삶의 기록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105쪽,
매디슨은 이 모든 질문을 빨아들인 후 뒤로 돌아 자신의 전 주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에드워드의 얼굴 반쯤은 짙은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춤추는 불길에 따라 그 색깔과 형태가 바뀌었다. 매디슨이 질문 세례를 받고 답을 하려고 하는 찰나에 에드워드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손을 위로 올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매디슨의 손을 맞잡았다. 고향과 자신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너무 멀게 느껴진다고 매디슨에게 부드럽게 속삭였고, 백인과 흑인을 포함하여 자신의 종족이 있는 곳에 있길 원한다고 말했다. 매디슨은 에드워드를 쳐다보며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점점 더 꽉 쥐어오는 손을 신호로 보고 매디슨은 '아니요'라고 답했다. 작은 오두막에 그 말이 퍼져 나갔고, 그 묵직함과 의도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를 압도했다.

 

118쪽,
이제 다시 그는 우리 쪽으로 몸짓을 한다. 내 목은 타 들어간다. 일라이자 메이는 몸을 뒤척이고 나는 아이의 손을 잡는다. 아이가 운다. 조용히 하라고 아이를 꼬집는다. 미안하지만, 아이를 위해 그렇게 한다. 경매인은 상인들을 향해 오라고 손짓한다. 그들은 처음엔 남자들을 구경한다. 상인 한 명이 막대기로 루카스의 알통을 찌른다. 상인이 남자를 사면, 강 아래로 데려간다. 죽음을 향해. 그 정도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집안일을 할 노예가 필요한 가족이나 번식할 처녀가 필요한 농부들은 건너편에 있는 우리를 보고 차례를 기다린다. 나는 번식하기엔 너무 늙었다.

 

183쪽,
사랑하는 당신, 나 역시 심한 역겨움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하오. 하지만 증오심이야말로 나의 자연스러운 열정을 설명하기엔 그 표현이 지나치게 과격한 듯하오. 왜냐하면 이런 식의 무역을 계속 마음껏 하면서 깊은 신앙심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듯, 실로 한 사람의 마음 안에 사랑과 증오심이 서로 싸우며 공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오.

 

215쪽,
그는 서른 하고도 일곱의 나이였다. 그들이 내가 있는 걸 잊고 끄덕거릴 때가 난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랜을 보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나에게 말해주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는지 난 궁금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랜과 나는 한 몸이어야만 하니까, 세상에 대항해 한 팀이 되어야 하니까. 남자와 부인. 그이와 나. 내가 그들 편을 들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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