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리처드 포드 지음, 곽영미 옮김 / 학고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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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포드 (지은이) | 곽영미 (옮긴이) | 학고재 | 2016-01-20

 

 

남겨진 생각들

 

 "나는 우선 우리 부모가 저지른 강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다음에는 나중에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라는, 이 책의 첫 문장을 보고 놀랐고, 『이방인』의 "오늘 엄마가 죽었다." 라는 문장 만큼이나 강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다음에 오는 문장에 난감해하고 말았다. "이 세상에 절대로 은행을 털지 않을 사람이 딱 둘 있다면 우리 부모님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부모님이 왜 은행을 털었을까. 금전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필연과 우연이 뒤섞여있었던 것일까?

 '만약에'와 '나였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보지 않고는 지나칠 수가 없다. 만약에, 나였다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한순간에 엎질러진 모든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었을까? 소설 『캐나다』는 한 가족을 뒤엎은 '나쁜'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공군 대위였던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가 은행강도가 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델'이라는 한 소년은 그 모든 상황을 바라본다. 여느 때와 다른 부모님의 아주 작은 변화의 행동들, 불안한 예감들, 미스터리하기까지한 상황들, 묘한 긴장 속에 있는 것 같은 순간들을 소설 속에서 아주 차분하게 살펴낸다.

 모든 것을 곧게 바로잡아주고 있던 '가족'이라는 기둥이 무너진 그에게 인생은 막다른 길에 불과하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고 나름대로, 거침없는 항해를 시작한다. 엄마가 들려주었던 시인 예이츠의 명언 "찢겨 보지 않은 것은 완전해질 수 없다"라는 말이 '델'의 인생 속에서 절대로 잊히지 않고 남아있는 것처럼 '델'은 계속해서 걸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땅을 발견한다. 부모님을 잃은 소년 혹은 미국인, 그 어떤 것으로도 대변될 수 없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는 곳, '캐나다 (Canada)'.

 소년의 길고 긴 항해는 최근에 감명 깊게 읽었던 책, 『황금 물고기』속 소녀의 모습과 비슷해서, 코끝 찡한 감동이 일었다. "그런 상황에 부닥쳐 보기 전에는 어떻게 행동할지 아무도 모른다(213쪽)"는 말처럼, 우리 누구도 인생을 확신할 수 없지만, 그저 나아가고 노력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미스터리 인생에서, '내 삶의 증거'와 '내가 누구라고 믿는 것(411쪽)'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해주고 있었다.

 인생의 교훈을 차분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전해주었던 소설 『캐나다』. 이야기적인 부분에서는 지루함 없이 읽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각각 맞닿은 사건들과 문장에서 삶에 관한 차분한 시선이 느껴져서 여운이 깊게 남았다. 소설의 긴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잔잔한 물결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Written By. 리니

 

내게는 이것이 매혹적이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절벽 끝처럼 느껴진다. 표면적으로는 삶이 변한 게 없었던 만큼 두 사람은 여행하는 내내 이야기하고 비밀을 나누고 애정 섞인 말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그때 흉악범이 아니었다. 정상(正常)이라는 것이 얼마나 멀리까지 연장될 수 있는지 놀랍지 않은가.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가면 육지가 점점 작아지듯, 아니면 기구를 타고 대초원의 바람기둥에 휩쓸려 올라갈 때 땅이 넓어지고 평평해지면서 아래 세상이 점점 흐릿해지듯, 정상으로부터 멀어지면서도 어찌 하여 여전히 그것이 시야 안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127쪽)

"학교는 걱정하지 마."

"계획을 얼마나 많이 세워 놨는데." 내가 말했다.

"나도 알아.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어." 어머니는 이런 어리석은 대화를 그만하고 싶은지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나를 보고 안경 너머로 눈을 깜박였다. 지쳐 보였다. "유연해져야 한다." 어머니가 말했다. "유연하지 않으면 큰 사람이 될 수 없어. 엄마도 유연해지려고 노력해."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같았다. "이치에 닿다"라는 말처럼. 나는 어떤 유연함을 뜻하든 내가 그렇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188쪽)

나는 지금 동화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동화되거나 그들을 위해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 동화되었다. 동화되는 건 그렇게 어렵지도 위험하지도 영구적일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들자 또다른 해방감을 들면서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고, 앞서 말했듯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듯했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사람 말이다. 움직임은 세상 만물의 섭리였다. 좋든 싫든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내가 어떻게 느끼든 계속 변할 것이다. (330쪽)

플로렌스는 뻣뻣하게 일어섰다. 그녀는 키가 크지 않았고 어머니처럼 날씬하지도 않았다. 갈색 코르덴바지를 솔로 털어 낸 뒤 몸이 추워졌는지 온몸을 흔들고 양어깨와 펄럭이는 모자를 툭툭 쳤다. 나는 격자무늬 재킷을 입고 있었다. 확실히 추웠다. "여기가 캐나다여서 그럴 걸." 그녀는 히죽 웃었다. "우리가 늘 정해 놓고 다니는 건 아니잖니." 그녀가 말했다. "때로는 그냥 그곳에 닿는 거지. 아서가 그랬어. 그렇게 된 거야. `난 미국에 가는 게 아냐, 파리를 떠나는 거지.` 이건 위대한 예술가 뒤샹이 한 말이야. 그가 내 그림을 보았다면 정말 웃기다고 생각했을걸." 그녀는 우체국과 텅 빈 거리 - 우리 앞 광경 - 를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난 맘에 들어. 전부는 아니지만." 그녀가 말했다. (3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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