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저란트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지음, 김진혜.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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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도, 종착점도 없이 떠도는 여행 <파저란트 -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After Reading

 

 

 

   독일 현대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자, 수없이 논문에서 다뤄지는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 뜻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들이 많지만, '조국 Fatherland'를 독일식으로 발음할 때 나온 말이라는 해석이 가장 많다고 한다. 소설 전체에서 배경인 '독일'에 대한 서술이 여럿 등장하는데다가, 독일의 전후상황과 사회를 파악하는 것이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정처없이 떠도는 여행을 시작한다. 목적지도 없고 코스도 없는, 모든 것이 우연으로 다가오는 여행이다. 이야기는 여행 중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다뤄지지도 않는다. '나'가 친구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그저 계속해서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뿐, 그 중간에 사회에 대한 '나'의 의식이 조금 드러나있다. '나'는 훔쳐입은 바버재킷으로 허세를 부리며, 그 허세에 넘어가는 사람들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 밖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회의와 전쟁이 끝난 현재에도 남아있는 과거의 잔재 '나치즘', 환락과 타락에 대한 '나'의 관점은 부정적으로 드러난다. 그저 허무한 모습에, 방랑하는 주인공. 그는 급격하게 변화된 독일 사회에서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떠한 목표도 없는 허무한 사람으로서 그 시대에 대응한다. 그 시대와 동떨어져 있는 다른 차원의 사람이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 의미없어보이는 여행이 그의 정체성을 찾기위한 여행이며, 많은 독일인들의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큰 사건을 여러번 짊어졌던 독일사회 속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이 큰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경제적 원조로 살아남을 길을 모색해야 했던 독일 통일,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 남아있었던 사회주의와 나치즘의 잔재 (과거청산에 적극적이었던 독일이지만, 현재도 일부 변형된 나치즘이 존재한다.) 그리고 급격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비틀거리는 독일은 생각보다 많은 문제에 대항해야했을지도 모른다. 그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의미없는 행동들로 공허한 감정을 달래야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해석해봤지만, 소설을 읽는 당시에는 뚜렷한 사건도 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독자인 나마저도 의미없고 허무한 대화들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 특별하게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냥 주인공의 행적과 의식을 조용히 따르는 느낌으로 읽어지는 소설이라 큰 맘 먹고 골라들어야 할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굉장히 어렵다. (그리고 별로 재미도 없다.) 대신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우리는 호수 한가운데에 당도할 것이다. 머지않아' 라는 마지막 대사는 굉장히 좋은 여운이 남았다.

 

 

 

Underline

 

 

 

    - 택시가 출발하고, 나는 살짝 내린 차창 틈으로 연기가 구불구불 빠져나가는 모습을 관찰한다. 함부르크가 깨어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는 갑자기 2차대전 중의 폭격의 밤들과 폭풍 같은 불길 속의 함부르크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진화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나는 기꺼이 택시 운전사와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그는 입 냄새가 나고, 게다가 노인 냄새가 나고 썩은 냄새를 풍긴다. 마치 비오는 발코니에 너무 오래 방치되어 이제 곰팡이가 난 한 권의 책처럼. 뒷좌석까지 그 냄새가 전해온다. 담배 연기를 뚫고. (65p)

 

 

  -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 편지에서 알렉산더가 하고자 한 이야기를 내가 이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정확히 이해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티셔츠에 대한 나이젤의 태도를 이해했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갑자기 다시 모든 것이 내게서 빠져나간다. 나는 그것이 뭔가 독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더 나아가 독일의 끔찍한 '나치적 삶'과 관련되어 잇다는 것, 그래서 내가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투쟁적 태도를 가지게 되고, 일단 그렇게 되고 나면 그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사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이러한 태도의 발단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시작되는 방식을. 그럴 때면 나는 자문해본다. 그렇게 늘 이해할 수 없었던 걸까? 그리고 나도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나도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게 아닐까? (97p)

 

 

  - 나는 다가올 몇 년 동안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때에는 언제나 모든 것이 조감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대체 모르겠다. 그렇게, 보라색, 연두색, 검은색 등 색색의 트레이닝복 분위기로 계속 갈 것인지? 동쪽 사람들은 다 그렇게 입고 다닌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더 참을성이 많고 더 조용하고 훨씬 더 아름답다. 아마도 동쪽은 그 평온한 태도와 트레이닝 복으로 서쪽을 덮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안심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깊이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보라색의 동쪽 사람이 무슨 아케이드에서 굴을 후루룩 먹는 점잔 빼는 서쪽 사람보다 백만 배는 더 좋으니까. 씻지 않은 엄청난 무리의 사람들이 동쪽에서, 몰다비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서 몰려올 것이다. 거기까지는 확실하다. (190p)

 

 

  - 그건 물론 설명하기가 좀 힘들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마치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은 것 같은 약간 그런 기분이다. 더 이상 빨아들이는 소용돌이도 없고, 자기 옆을 막 지나가는 삶 때문에 무기력해질 일도 없이, 그냥 고요하게 있는 것이다. 바로 그렇다. 고요하게 있기. 고요함. (195p)

 

 

  - 나는 아이들에게 독일 이야기를 해줄 거다. 북쪽에 있는 그 큰 나라에 대해서. 저 아래 평지에서 스스로 구축되는 그 거대한 기계에 관해서. 그리고 인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줄 것이다. 그 기계 내부에 사는 선택된 사람들, 좋은 자동차를 몰아야하고, 좋은 마약을 하고, 좋은 술을 마시고, 좋은 음악을 들어야 하는 선민들 말이다. 한편 그들 주변 사람들도 모두 똑같은 행위를 한다. 단지 아주 약간 살짝 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말이다. 그래서 선민들은 오직 그런 걸 약간 더 좋게, 약간 더 세게, 약간 더 세련되게 한다는 믿음에 의지해서만 계속 살아갈 수 있다. (2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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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짧고, 작은 책인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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