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족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욕망 무한, 실로 욕망 무한이로다 <뱁새족 - 박경리>

 

 

 

 

 

 

   우리나라에서 '뱁새'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아는 속담 때문에 부정적으로 얘기되는 경우가 많다. 박경리 작가의 <뱁새족>또한 그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노골적인 비판의식이 담긴 책이며, 1960년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 산업화 시대의 경제성장으로 많은 이들은 세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자본주의 파도에 견뎌내기 위해 힘썼다. 그 중 지식인과 상류층을 대상으로 박경리 작가는 이 소설을 펴냈다. 작가는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미술평론가 (지적 욕망만을 꿈꾸는) 병삼의 입을 빌려 그 당시 상류층과 지식인들의 허세를 비판한다모든 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답답해보이기까지 하는 병삼은 자신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의 속물적 욕망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 당시 서울의 가장 핫플레이스였던 공간에서 각자의 인물들이 대화를 통해서 드러내는 허세를 보면 참으로 다양하다. 실력도 없으면서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 지고지순하게 사랑에 목매는 사람, 학자 행세를 하는 사람,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입으로 삼키기도 하는 사람 등... 이것이 자기 주제를 모르고 다리가 찢어질 정도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마구 달리는 뱁새족들의 모습들이다. 말 그대로 욕망무한이다. 병삼은 이를 보고, 자신을 재능도 없으면서 천재가 되어보겠다고 파리까지 비싼 여비 쓰고 갔다온 놈'이라고 욕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뱁새족을 비판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넘어 우스꽝스럽고 어이없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60년대의 뱁새족들이, 지금은 과연 없는 것일까? 결국 인간의 욕망과 허세는 시대에 발을 맞추기 위한 몸부림 끝에 어떻게든 따라오는 요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상황 서술보다는 대부분 인물들의 대화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특별한 사건들보다는 그들의 일상을 통해 그 시대 지식인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실제로 있었던 시대의 산물인 영화와 소설 등의 이름은 문화 속에 투영된 사람들의 욕망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었던 장치로 존재한다. 아직 박경리 문학의 핵심인 '토지'를 읽어보지 못했지만, 박경리 작가의 소설 몇권을 읽어보니 이젠 약간은 박경리의 문체가 느껴지는 것 같다. 무언가 모르게 독특하다. 


 

  - 시뻘건 해는 빌딩 뒤편에 걸려 있었다. 꿈속의 풍경처럼 놀이깔린 시가는 너무 황홀하여 불안했다. 잇달아 밀려오는 차량, 그것들을, 전등 둘레를 미친 듯 선회하는 풍뎅이, 포도에, 건널목에, 구름다리 위에 군중들은 민적민적 떼 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서로의 어깨를 비비며 떠밀며. 음향과 음향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 황혼의 도시는 무성영화와도 같이,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며 지나가는가, 자동차는 무슨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가, 짓눌린 침묵에 싸여 있는 것만 같았다. 병삼은 짙은 색채와 침묵이 덩어리로 엉켜, 그 덩어리가 전등 둘레를 미친 듯 선회하는 풍뎅이처럼 선회하는 것 같은, 광란의 의식에 쫓기며 길을 횡단한다. (51p)

 

  - '모두 허기가 들어서 저러는 거다. 눈앞에서 황금덩이가 번쩍번쩍하는데 구경만 하고 있으려니까, 답답하고 조갈증이 나서 저러는 거다. 욕망 무한, 실로 욕망 무한이로다.' 병삼은 묘하게도 자기 자신까지 슬퍼지는 생각이 들었다. (86p)

 

  - "가발 같지 않지? 글쎄, 말도 말어. 이젠 식모까지 미니컷이란다. 온 창피스러워서, 모두들 원숭이처럼 흉내는 자알 내지. 처지도 모르고, 어울리고 안 어울리는 것 가릴 것 없이, 줄에 엮은 동태처럼 너도나도야. 외국에선 유행이라면 상류사회를 돌다 마는 건데." (101p

 

  - 진실이 모욕이 되는 세상이죠. 뭐 오늘날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랑이가 찢어져도 황새를 따라갈려는 뱁새의 비극은 바로 그것이 희극이라는 데 있죠. 재능이 없으면서 천재가 되어보겠다고 파리까지 비싼 여비 쓰고 갔다 온 놈을 위시하여 돈푼이나 긁어모은 상놈이 어느 명문 호적에 기재된 이름 석자밖엔 가진 것 없는 거지 처녀를 비단에 싸서 데려오는 위인, 졸업장 한 장 우물쭈물 얻어둔 덕택으로 학자 행세하게 된 인사, 남의 재산을 계산하고 장래의 대재벌을 꿈꾸는 사람, 사업가 호주머니 털어서 여자나 끼고 다니며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를 넘보는 건달이 (...) 그리고 또오...... 많죠. (1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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