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생한 풍경이 있다. 2003년 폴란드에서 들렀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였다. 이제 유적지가 된 그곳에는 당시의 살풍경을 짐작케 하는 물품이 가득했다. 그중 나치가 수용소에 끌려온 유대인들로부터 압수했던 안경과 신발(의 일부)을 쌓아놓은 전시가 있었는데,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보는 이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
거의 모든 관광객들은 그 소름끼치는 장면 앞에서 말로 들었을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분노를 느낀다. "인간이 어떻게 그런 짓을…" 이렇게 되뇌며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여러 가지 감정의 소용돌이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괜히 아무런 죄 없는 안내원에게 시비를 걸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 자리에서 쉽게 분노가 표출될 수 있었던 건 학습 효과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어릴 적부터 나치와 히틀러의 만행을 익히 배웠다. 그러나 그들이 어쩌다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군국주의와 전쟁, 학살 등의 관계를 벗기고 뒤집어보는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국방의 의무를 당연한 국민의 의무 중 하나라고 배운다. 그러나 그것이 왜 의무인지, 의무라면 어떤 방식으로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고민할 기회도, 의문을 던질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교과서에는 그저 '국방의 의무'라는 활자 옆에 총을 들고 전방을 지키는 군인의 사진이 나와 있을 뿐이다. 그 총이 방위가 아닌 공격을 위해, 무고한 시민을 향해, 혹은 전쟁터에 끌려나온 누군가를 향해 겨눠졌던 역사는 교육 과정에 없다.
그 당위성에 반대하며 병역 거부를 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교리를 지키려는, 평화를 지키려는, 신념을 지키려는 또는 내면의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지난 수십 년간 이들은 꾸준히 병역 또는 집총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수감됐지만 한국 사회는 이들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군사주의라는 거대한 스피커에 묻혔던 병역 거부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 나왔다. 그 자신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고, 현재 평화학을 연구하는 임재성의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그린비 펴냄)다. 지난 2008년 병역 거부자의 글을 모은 책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철수와영희 펴냄)이 출간되긴 했지만 이 책은 한 저자의 관점에서 한국 병역 거부의 역사와 논쟁점을 일목요연하게 담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병역의 의무는 신성하다? 과거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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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임재성 지음, 그린비 펴냄). ⓒ그린비 |
아마 병역 거부 이야기를 꺼내면 상당수의 한국 남성(혹은 예비역)들은 울컥하는 반응부터 보일 것이다. 왜 그럴까? 저자는 그 이유를 '언어의 부재'로 표현한다.
"징병제에 대한 비판의 언어, 저항의 언어가 부재했던 상황에서 피해의식은 결국 '평등주의'에 대한 강박으로 폭주했다. (…) '애국자'들은 자신을 착취하는 국가의 언어에 기대서 '도덕'을 외쳤지만 결국 분풀이 이상의 무엇이 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군대 문제, 징병제 문제에 대한 논의는 늘 이 틀 속에 갇혀 있었다. 여성과 장애인, 병역 거부자 등을 배제하면서 만들어지는 가난한 시민권을 손에 쥔 군필자들은 이 분풀이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보상받고자 하지만 그들 역시 배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작 군필자조차 자신에게 죽을 고생을 시킨 권력에게는 '말할 수 있는 자격'도 '언어'도 갖지 못했다."
일본의 제국주의, 한국전쟁, 군부 독재를 거치며 한국 사회에서 군사주의에 반하는 언어는 사실상 소멸했다. 군사주의가 당연한 무엇으로 머리와 마음속에 박혀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병역 거부를 이어온 가장 큰 집단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었다. 기득권이 된 기독교가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한 상황에서 그들의 행위는 더욱 외면됐다.
그러나 우리가 몰랐던 역사가 있다. 군사 정권이 들어서기 전, 병역 기피 또는 병역 거부는 '보편적 현상'에 가까웠다. 저자는 "5·16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 1960년, 입영 대상자 중 병역 기피자의 비율은 35%에 달했다"고 지적한다. 요즘 예비역들이 외쳐대는 '병역은 신성한 임무'라는 문구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박정희 군사 정권은 권력의 근거인 군부를 강화하고 전 사회의 병영화를 위해 '입영률 100%'를 사회적 목표로 삼는다. 전 사회적인 통제, 기피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사회적 낙인 등의 집요한 노력을 통해 징집 체제를 완성해 나간 것이다."
병역 거부자에 대한 형량도 군사 정권을 거치며 높아졌다. 저자는 "1954년부터 유신 이전까지의 형량은 평균 10개월 정도였지만, 유신 직후인 1973년부터는 2배 이상으로 높아졌다"며 "박정희 정권은 병역 거부자들을 강제 입영시켰고, 이전까지 민간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던 여호와의 증인들이 군사 법정에서 재판을 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결국 병역 거부는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도 떠올리지 않고, 따라서 선택하지 않는 조항이 됐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 중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없었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역사적 상황에 따라 여호와의 증인들의 병역 거부에 대한 평가 역시 달라졌던 점은 병역에 대한 사회의 관점이 얼마나 '가변적'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일제시기에 이들이 했던 병역 거부는 당시에는 '항일 운동'으로 찬양을 받았던 반면 정부 수립 이후에는 반국가적 범죄로 처벌을 받은 것이다.
'마취'되지 않은 사람들
2001년 오태양의 병역 거부 선언이 사회적 관심을 모은 이후 종교가 아닌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이들은 50명에 이른다.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언어를 잃은 한국에서 이런 선택을 한 이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저자는 인터뷰와 글을 통해 한국 병역 거부자들에 대한 분석을 다양하게 시도한다. 그 중 1991년 강경대의 죽음을 계기로 병역 거부를 결심했던 박석진이 "'거부'를 택한 이들이 특별한 '인간'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대목은 곱씹어볼 만하다. 이어 저자는 "나약함을 긍정하기"라고 표현하며 병역 거부는 자신 안의 두려움을 직시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병역 거부자의 경우 역시 감옥행을 감수하면서도 군사 훈련을 거부하는 이유가 강한 신념 때문인 것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를 살펴보면 전쟁과 군사 훈련, 남성성과 위계 질서의 폭력에 동화될 혹은 버텨 낼 자신이 없다는 두려움을 종종 확인할 수 있다.
'국민으로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총을 들고 싸우라는 장엄한 호명에도 마취되지 않은 채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사람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만약 폭력에 동화되거나 저항하는 것 모두가 '두려움' 때문이라면, 평화학이 천착해야 할 대상은 바로 이 두려움일 것이다."
군사주의에 물든 한국 사회에서 지워진 건 폭력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다. 희생자로서의 기억은 남고 가해자로서의 기억은 지워졌다. 베트남에서, 국내 가두시위에서 시민을 향해 총을 들었던 이들은 다름 아닌 한국군,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나갔던 젊은이들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병역 거부자에게 향하는 "강도가 집에 들어와도 가만히 있을 것이냐"라는 질문이 '가장 섬뜩했다'고 밝혔다.
"국가의 공식 기억 속에서 지워진 '가해자로서의 기억'을 가질 수 있다면, 집을 지키는 것과 군인이 되는 것은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일임을 깨달을 수 있다. 만약 집을 지킨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심지어 자기 식구까지 죽였다면 강도가 들어오기도 전에 그 집은 이미 풍비박산 났을 것이다."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이런 두려움과 기억을 잊지 않는 이들이다. 한편으로는 만연할 대로 만연한 군대 내 폭력에 예민한 이들일 수도 있다. 사실, '훈련'을 핑계로 폭력적인 문화까지도 의무라는 '상식'은 조금만 비껴나서 생각하면 누구나 그 허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도 평화도, 생각보다 가깝다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후퇴할 수 있다. 2008년, 양심적 병역 거부자(여기에서 말하는 양심은 '양심의 자유'와 같다)들의 대체 복무를 허용하려던 법안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무기한 보류됐고 아직도 1000여 명의 병역 거부자가 감옥에 있다.
그리고 2011년, 한국은 천안함 침몰, 연평도 사건을 거쳐 다시 전쟁의 그늘 속에 있다. 해병대 자원이 늘었다는 소식에 "20대의 안보 의식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언론에 등장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으로 주가를 올리던 배우 현빈의 해병대 자원 소식은 연초 가장 큰 화제 중 하나였다.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제로 전쟁은 생각보다 가깝다. 긴장이 높아지고, 무력이 오가고, 죽고 또 죽이는 생지옥이 시작되는 것은 역사를 살펴보면 한순간이었다. 지금 병역 거부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지점일 것이다. 자신 안의 두려움을 깨닫고 병역 거부를 하는 이들이 있듯이, 그 두려움을 제거하거나 마취시키면 쉽게 잔혹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 평화는 두려움을 제거하는 군사 훈련으로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나치는 외계에서 날아온 괴물이 아니었고, 가미카제 대원들은 어디서 제조된 로봇이 아니었다.
"20세기 역사 속에서 거대한 전쟁이 지나고 나면 늘 강력한 평화주의가 대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체험과 기억은 희미해져갔다. 매번 전쟁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막지 못했을까? 왜 저항하지 못했을까? 각성과 반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흐려져 간다. 나는 병역 거부자들의 언어가 그들의 체험과 저항이 전쟁과 폭력의 본질을 또렷하게 전해줄 것이라 믿는다."
책이 두껍다. 아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았을 것이다. 지난 10년 간 소수의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상대로 외쳤던 이야기가 어찌 책 한 권으로 정리될 수 있겠는가. 그간 무조건 병역 거부를 감정적으로 대했던 이들이나, 드러나지 않은 역사를 알고 싶은 이, 또는 평화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차분하게 이 책을 들여다보길 권한다.
'군대만이 안보의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한, 전쟁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언어에 공감한다면, 현빈 자신이 극중에서 연기한 김주원의 입버릇처럼 '사회 지도층의 선택'이 당당하게 병역 대신 대체 복무일 수 있는, 그런 세상이 그리 멀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 세상 역시 전쟁과 우리의 거리만큼 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