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 파괴력의 폭탄을 주고받은 전쟁이 끝나고 3000년이 흘렀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는 캐터필러가 달린 '견인 도시(traction city)'를 만들어 폐허가 된 지구를 누빈다. 견인 도시들이 누비는 폐허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큰 도시는 작은 도시를 만나면 자원을 빼앗고, 시민은 노예로 부린다.

<반지의 제왕>을 만든 영화감독 피터 잭슨이 영화로 만들기로 결정했을 정도로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견인 도시 연대기 : 모털 엔진>(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머리를 식히려고 들었는데, 스산한 요즘의 분위기 탓인지 소설 속 설정이 가상 같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약간 상투적인 현실 풍자이긴 하지만) 계급에 따라서 철저히 나뉜 견인 도시의 상층·하층의 모습에는 서울의 강남·강북의 풍경이 겹친다. 서울이 지방으로부터 자원과 사람을 빨아대는 모습도 큰 도시가 작은 도시를 잡아먹는 설정과 다르지 않다. 거기다 깨서 잠들 때까지 굳이 흙 한 번 밟아볼 수 없는 상황은…. 바로 서울이 견인 도시 아닌가?

데이비드 몽고메리의 <흙>(이수영 옮김, 삼천리 펴냄)을 읽으면서 <모털 엔진>이 떠올랐다. 과학과 역사를 씨실과 날실로 엮어서 흙의 상실을 경고하는 이 책이 <모털 엔진>의 전편과 같은 한편의 묵시록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이 책은 조용한 목소리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외친다.

"흙을 파괴하는 나라는 스스로 멸망한다."

그 섬에 무슨 일이 있었나?


▲ <흙 :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옮김, 삼천리 펴냄). ⓒ삼천리
해도 해도 안 되니 이제는 흙으로 겁을 주냐며 코웃음을 칠 이들은 이 책의 한 장(9장 : 서로 다른 길을 간 섬들의 운명)만 읽어보자. 몽고메리는 문명과 환경의 관계를 고찰할 때, 늘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태평양의 외딴 섬, 이스트 섬을 통해서 루스벨트의 경고를 섬뜩하게 확인시킨다.

1722년 네덜란드 해군이 태평양의 외딴 섬 이스트 섬을 처음 발견했을 때, 이 섬에는 식량이 모자란 탓인지 사람을 잡아먹는 풍습이 있는 소수의 원주민과 섬 곳곳에 흩어진 수백 개의 기이한 석상(모아이)만 존재했다.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석상들…. 지옥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세상의 끝'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었다.

그러나 이스트 섬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가운데 하나인 플로리다 주와 비슷한 남반구 위도에 있는 이스트 섬은 사람이 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몇 종의 새들이 노니는 '열대의 낙원'이었다. 5세기 경 1600㎞ 이상 떨어진 섬에서 사람들 수십 명이 이주해 오면서 이 낙원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처음 수백 년간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주민이 가져온 고구마는 덥고 습한 환경에서 거의 손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자랐다.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들은 독특한 '예술' 활동-상당수에게는 틀림없이 강제 노동이었을 것이다!-에 전념할 수 있었으리라. 그 산물이 지금까지 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백 개의 석상이다.

이스트 섬의 이 문명은 거의 1000년 이상 지속되었다. 15세기에는 하루 이틀이면 걸어서 돌아볼 수 있는 섬의 인구가 약 1만 명이나 되었으리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이 섬은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서 갑자기 퇴락해, 나중에는 조상의 문명은 기억조차 못하는 식인종이 경우 목숨을 부지하는 곳으로 변했다.

'지상의 낙원'이 '식인종 세상'이 되기까지…

그렇다면, 이런 급속한 몰락의 원인은 무엇인가? 많은 과학자는 그 원인을 '흙의 파괴'에서 찾는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섬사람들은 숲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때 얻은 나무는 석상을 옮기는 데 이용되었으리라.) 일단 숲이 사라지자 화산암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 작용을 거쳐서 마련된 기름지지만 엷은 겉흙은 급속히 사라졌다.

겉흙이 사라진 밭에서 고구마가 자라지 않자, 섬사람은 더 많은 숲을 밭으로 만들었다. 물론 그 밭도 얼마 안 돼 겉흙이 사라진 불모지로 변했다. 숲, 흙, 밭이 차례로 파괴되는 악순환이 몇 차례 반복되자, 섬사람은 부족한 식량을 충당하고자 섬의 새들을 잡아먹었다. 섬의 겉흙을 다시 기름지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구아노(새똥)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이스트 섬의 1000년 이상 지속되던 문명은 한 세기만에 몰락했다. 루스벨트의 경고대로, 흙을 파괴하자 스스로 멸망한 것이다. 이 책은 이스트 섬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몰락한 남태평양의 망가이아 섬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한 번 더 흙을 파괴하는 행동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는지 경고한다.

몽고메리가 지적하듯이 이스트 섬, 망가이아 섬의 사례는 '우주에 존재하는 섬'에 불과한 지구의 미래에 경종을 울린다. 왜냐하면, 지난 100년간 농기계에 의존하는 현대 농업의 결과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등 전 세계의 곡창 지대에서 겉흙 파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7장).

트랙터에 연결된 쟁기로 대초원을 깊숙이 갈아엎으면서 수천 년에 걸쳐서 마련된 수십 센티미터의 기름진 겉흙이 사라졌다. 그 증거는 세계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중서부 한가운데의 (아직 인간이 손을 대지 않은) 초원은 이웃한 밭보다 180㎝ 정도나 높이 솟아올라 섬처럼 보인다. 지난 한 세기 반 동안 무려 150㎝의 흙이 없어진 것이다.

결국은 그 길 뿐인가?

기름진 겉흙이 사라진 곳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려면, 땅에 인공의 양분을 끊임없이 공급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농민들이 화학 비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그러나 화학 비료는 그것을 뽑아내는 가스,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가 고갈되는 순간에 종말을 고한다. 이렇게 화학 비료가 없어지고 나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은 지구가 이스트 섬이나 망가이아 섬의 전철을 밟지 않을 방법을 알려줘 그나마 위안이 된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사회주의 나라들이 망하면서 홀로 살아남아야했던 섬나라(!) 쿠바는 심각한 기아 사태를 겪으며 흙의 비옥도를 높이고 수확량도 늘릴 수 있는 대안을 고안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중 하나인 쿠바는 아이러니하게도 심각한 위기가 닥쳤을 때, 최소한 사람들이 굶어 죽지는 않을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전통의 지혜와 과학을 결합해 흙을 지키면서도 배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화학 비료, 농약을 쓰지 않고, 땅도 갈아엎지 않으면서 위기 이전 수준으로 먹을거리를 공급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섬, 지구가 과연 이스트 섬이나 망가이아 섬이 아닌 쿠바처럼 될 수 있을까? 현실을 둘러보면 대답은 부정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도권 또 전국 곳곳의 (겉흙이 보존된) 멀쩡한 논밭을 갈아엎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쿠바도 예상치 못한 외부 충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나서야 변화에 나섰다. 글머리에 소개한 <모털 엔진>의 주인공(톰)도 견인 도시 밖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야 자신과 인류가 살 길은 철(견인 도시)이 아닌 흙(바깥세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그 길뿐인가? <흙>을 덮는 기분이 답답하다. 루스벨트처럼 토머스 체임벌린도 이렇게 말했다.

"흙이 사라지면 우리 또한 사라진다. 바위를 그대로 먹고 사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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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사장단 젊어졌다."

이달 초 한국 최대 기업 집단 삼성그룹의 사장단 인사를 두고 거의 모든 언론이 전한 핵심 메시지였다. 신임 사장 9명의 평균나이가 51.3세로, 지난해 같은 경우의 53.8세보다 2년이나 젊어졌다는 논평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과 장녀가 신임 사장단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들의 나이는 각각 42, 40세. 이들이 신임 사장단의 평균 나이를 낮춘 일등공신이다. 이들을 제외한 신임 사장은 모두 52세 이상이고 그 평균 나이는 54.3세로 지난해보다 오히려 많으니 말이다.

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자료의 경향을 대표하는 수치로 최빈값, 중앙값보다 '평균'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평균에는 극단적인 자료가 포함되면 대표성이 왜곡되는 허점이 있다. 40대 초반의 이 회장 자녀들을 넣어 평균을 낸 삼성 인사 기사가 바로 그런 예다.

문제는 이런 착시현상이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 기사를 보면 사회 각 부문에서 젊은이를 중용하는'연경화(年輕化)'란 바람직한 현상의 하나로 읽을 수 있다. 당연히 부의 세습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한 걸음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삼성 측의 의도였고, 이를 그대로 전한 언론은 그에 놀아났다고 보면 억측일까.


▲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노르망 바야르종 지음, 강주헌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갈라파고스
언뜻 곁가지로 보이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강주헌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이 힘 있는 세력의 농간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을 바로 볼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인 촘스키란 이름을 제목에 넣어 책의 성격을 한 눈에 짐작 가능하게 하지만 원제는 더 직설적이다.'지적인 자기 방어를 위한 단기 강좌'이니 말이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속고 사는지 모른다. 가격 상승이 '현실화'라 분칠을 하게 된 건 오래 된 일이다. 툭하면 꺼내드는 '파업 손실 몇 천억',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경제 파급 효과는 과연 믿을 만한가. 정치인이나 이른바 전문가의 말장난, 기업의 광고, 언론의 사실 왜곡과 편향 등 따지고, 새겨들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중심을 잡고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거든다는 점에서 바야르종의 이 책은 최근 나온 <거의 모든 것의 미래>(데이비드 오렐 지음, 이한음 옮김, 리더스북 펴냄), <사회적 원자>(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하지만 과학에 근거해 주로 경제 예측의 허구성을 지적한 오렐이나 뷰캐넌의 책과는 조금 다르다. 언어, 숫자, 경험, 과학, 언론 5개 분야에 걸쳐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보기 위한 지침을 다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가치관의 독립을 위한 '기본서'라 할 수 있다.

언어의 유희를 지적한 대목을 보자.

"우주의 심오한 단일성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점성술의 중심축과 핵심은 고대인들의 '우누스 문두스(하나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 합리주의와 계몽정신이 도래하면서 마음과 영혼과 정신이 나뉘었고 이성과 감성이 분리됐다. 수년 전부터 패러다임에서 큰 변화가 있었지만 서구 세계는 아직도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건 점성술을 대학 교육 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프랑스 점성가의 사회학 학위 논문 중 일부다. 한데 알맹이가 없다. 지식을 자랑하려는 듯 학문적 단어와 개념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사용했다. 지은이는 이를 '화장발'이라며 "물리학의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지식의 대부분은 간단한 단어들과 짤막한 문장으로 얼마든지 표현될 수 있습니다"란 노엄 촘스키의 말을 전한다.

어떤가?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가. 촘스키는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당신은 유명해질 수도 없고,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라고 꼬집는다. 지식인들이 현학적 글을 즐겨 쓰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정부도 언어의 조작도 명수다. 영국은 18년 동안 실업자의 정의를 32번이나 바꿨단다. 대부분 일자리가 없어 빈둥대는 사람의 수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우리라고 그런 사례가 없을까. 기업의 광고도 마찬가지다. "탄수화물을 절반으로 줄인" 식빵이 나왔다면 즐기기 전에 비교 기준점을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식빵의 탄수화물 평균치에 비교해서인지 탄수화물 덩어리였던 이전 제품과 비교해서인지 그도 저도 아닌 식빵 크기를 절반으로 줄인 것인지를 알고 사 먹으란 이야기다.

전문가나 유명인 내세우는'권위에 호소하기'도 주의하란다. 그대로 믿을 게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렸거나 전공이 아닌 문제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은 가려들으란 뜻이다.

"박사 학위를 받는 순간 인간의 뇌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때부터 '모르겠습니다' '내가 잘못 알았습니다'라는 말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이건 미국 마술사 제임스 랜디의 말인데 단순한 우스개로 돌려서는 안 된다.

미디어의 거짓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기술도 일러준다. 현대인들은 주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기에 미디어를 접하는 우리의 태도는 아주 중요하다. 그 중 눈에 띄는 대목 두 가지를 들어본다.

미디어의 규모와 소유권과 수익원을 챙겨 보란다. 기업이나 기업을 지배하는 부자가 소유한 미디어는 편향성을 띨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또 미디어는 대중에게 정보를 파는 곳이라기보다 기업에게 대중을 파는 곳이라며 광고 의존도가 높은 미디어도 광고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보도를 할 우려가 크다고 일러준다.

또 하나는 끼리끼리 띄워주는 현상은 아닌지 살피라고 충고한다. 똑같은 엘리트 계급끼리 방송이며 신문에 잇달아 등장하거나 X가 자기 방송에 Y를 초대하면, Y는 자기 칼럼에 X가 쓴 책을 소개하는 식으로 여론을 만들고 부풀리는 식을 경계하라는 이야기다.

책은 읽기 쉬운 편은 아니다. '언어'를 다룬 장(章)에서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사례들이 등장해서이기도 하고 논리학을 설명한 부분이나 통계를 다룬 대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당한 지적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값지고 소중한 내용이 많으니 정히 그 대목이 읽히지 않는다면 건너뛰고 읽어도 얻을 게 충분하다. 가장 바람직하기는 누군가 우리 현실에서 찾은 사례들로 이런 책을 내주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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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류는 전에 없던 역사적 경험을 하고 있다. 세계 사상 초유의 전 지구적 대립 전선이 등장한 것이다. 누구는 이것을 두고 '세계 정부 대 세계 민중'의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고까지 이야기한다. 다름 아니라 <위키리크스> 이야기다.

줄리언 어산지는 이제 미국에게 김정일, 카스트로보다 더 성가신 인물이 되었고, <위키리크스>의 작전 행동은 알 카에다보다 효율적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런 비교 자체가 사실은 어불성설이다. 어산지가 암살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위키리크스>가 사이트 폐쇄 압력 따위에 굴하지 않는 것은 그들 뒤에 인터넷으로 무장한 세계 시민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드디어 정치적 실체로서 제 모습을 갖춰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놀라운 '사건'을 바라보면서 누구보다 먼저 이탈리아 출신 정치사상가 한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름은 안토니오 네그리. 어산지가 열국(列國)의 대적이 되기 훨씬 전인 1970년대 말에 이미 그의 조국에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수인(囚人) 신세가 되었던 인물이다.

1999년 11월 '시애틀의 전투'와 함께 신자유주의 지구화 반대 운동이 막 수면에서 떠오르던 무렵, 네그리는 미국 학자 마이클 하트와 함께 <제국>(윤수종 옮김, 이학사 펴냄)이라는 책을 내놓았었다. 이 책은 지금 인류가, 새로 등장하는 전 지구적 제국과 이에 맞선 대항-제국의 서사시 한 가운데에 서 있다고 단언했다.

이것은 바로 <위키리크스> 사건이 열어놓은 대립 전선 그것이 아닌가! 요즘 언론을 접하면서 '네그리'라는 이름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국>보다 쉬운, <제국> 길라잡이


▲ <네그리의 제국 강의>(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서창현 옮김, 갈무리 펴냄). ⓒ갈무리
하지만 <제국>은 읽기 녹록한 책이 아니다. 네그리와 하트도 유럽 철학의 후예인 다른 저자들과 마찬가지로 번잡한 철학 개념과 과도한 문학적 수사, 서양 고전 인용으로 넘쳐나는 글쓰기를 한다. 더구나 우리는 그들의 인도·유럽 어족 계열 언어를 한국어로 (억지로) 바꾸어 접해야 한다. 그러니 <제국>과 같은 책이 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이 땅의 독서인에게 부끄럼이 될 수는 없다.

이런 참에 최근 <네그리의 제국 강의>(서창현 옮김, 갈무리 펴냄, <제국 강의>)라는 책이 나왔다. 네그리 본인이 <제국>의 내용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유럽과 아메리카 대륙뿐만 아니라 중국까지)에서 강의한 것을 모아놓은 책이다.

각각의 강의는 주제가 조금씩 다르다. 어떤 강의는 <제국>의 주장 중 철학적인 데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강의는 미학이 관심사다. 또 어떤 강의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제국>의 명제들을 재음미하는 데 반해 또 다른 강의는 유럽연합(EU) 헌법 문제와 <제국>의 전망을 중첩시킨다. 아무튼 36개에 달하는 강의를 일관하는 것은 <제국>의 그림자다.

여전히, 쉽지는 않다. 어떤 강의는 <제국> 자체보다 더 어렵게 읽힌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제국>의 해설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아무래도 청중을 마주하고 입말로 풀어내는 강의라서 그런지, 네그리는 이 책에서 참으로 친절하게 <제국>의 명제들을 설명한다. 낯선 개념들의 뿌리가 무엇인지, 그 문제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여러 개념들이 서로 어떤 연관을 맺는지, 하나하나 짚어준다.

그래서 이 책을 <제국>을 읽기 전에 입문서로 먼저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특히 제1장 '제국과 그 너머'에 모인 14개의 강의가 그렇다. 여기에서 우리는 21세기 초 지구 사회를 바라보는 네그리의 시각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동시대 역사와의 끈질긴 대결의 성과 : '제국'과 '다중'

이 책에서 네그리는 이제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으로는 인류의 미래를 밝힐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그는 미국 등의 몇몇 주도적 국민국가들을 부각시키는 제국주의론을 더 이상 주된 이론 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이미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전 지구적 제국 건설의 경향이다. 제국은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공존하는 '혼합된 구성'체다. 미국의 군사적, 화폐적, 문화적 헤게모니(군주정)가 전 지구적 금융 체제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적 다국적 기업들의 공동 통치(귀족정)와 함께 하며 서로 얽혀든다.

이 지구 질서의 '바깥'은 이제 없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과거와 같은 국민국가 단위의 투표나 노사 교섭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도 없고, 진보적이지도 않다.

제국의 정치는 '삶정치'다. 노동자가 공장의 생산 과정 안에서 자본에 지배당한다는 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을 쓸 당시의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다. 이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민중이, 생산 과정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자본의 지배에 종속된다. 사회의 모든 잠재력이 자본의 전 사회적인 '삶권력' 안에 포섭된다. 정치의 이 일반화된 지평을 네그리는 '삶정치'라 이름 붙인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이것은 더 이상 비관적일 수 없는 디스토피아가 된다. 프랑크푸르트학파나 미셸 푸코의 어떤 저작에서 마주치는 것과 같은 끔찍한 디스토피아다.

그러나 네그리는 마르크스 사상의 특정한 측면을 충실히 계승한다. 그것은 자본이라는 '죽은 노동'의 무시무시한 지배력이 사실은 '산 노동'의 잠재력이 거꾸로 선 것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이다. 이 대오각성 덕분에 더 할 나위 없던 비관론은 불굴의 낙관론으로 뒤바뀐다. 현실의 엄혹함은 오히려 이 엄혹함을 극복할 주체의 역량을 입증하는 지표가 된다.

네그리는 삶정치가 등장하고 제국이 출현한 것 자체가 자본이 그 적대자들의 성장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공장 안에서 노동의 저항이 분출하니까 자본의 지배를 사회 전체로 분산시켜야만 했고 그래서 삶정치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삶권력에 맞설 주체들의 성장을 낳았다. 이 주체들이 바로 네그리와 하트가 제시하는 대항-제국, 즉 '다중'이다. 네그리는 다시 한 번 주장한다. 제국이 먼저 있고 대항-제국이 거기에 맞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역이다. 다중의 성장 때문에 국민국가를 넘어선 제국이 건설되고 있는 것이다.

다중은 과거 공장 노동자와는 달리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비물질 노동'의 그물망에 참여한다. 이것이 이들의 초개인적인 역량, 네그리 식으로 말해 '포텐차(potenza)'의 기반이다. 이러한 포텐차에 맞서 비물질 노동을 착취하려는 것이 곧 작금의 전 지구적 금융 자본주의라는 게 네그리의 주장이다.

이러한 네그리의 사상은 그 뿌리가 깊다. 그는 1960년대에 케인스주의적 자본주의가 막 위기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그 위기를 끈질기게 추적해나갔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처음 등장하던 1970년대에는 당시 자본주의의 위기가 포드주의적 대중 노동자들의 저항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했다. 1980년대에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과거와 다른 지적이고 사회적인 노동자들의 성장에 맞서려는 자본의 자기 변신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네그리의 '제국-다중' 이론은 한 사상가의 생애 전체를 일관하는 강인한 사색의 성과물이다. 그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서 이것은 동시대 역사에 대한 성실하고 용기 있는 대결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저자 스스로 자신의 이론과 그 사상적 여정을 적절히 버무려 이야기를 풀어내는 <네그리의 제국 강의>는 <제국>보다도 더 강하게 이를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남는 의문들 : 금융 자본주의, 국민국가…

그러나 '제국-다중' 이론의 모든 주장에 다 공감이 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특히 현대 자본주의의 위기와 변모를 노동 혹은 다중의 성장에 맞선 자본의 대응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 아닌지 의문을 느낀다. 과거 케인스주의적 자본주의의 동요에 대한 네그리의 설명도 그러했고,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격동에 대한 분석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 이것은 분석이라기보다는 거창한 철학적 전제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실제로 자본-노동 관계의 변화는 자본주의의 형태 변화에 중요한 요인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지구적 금융 자본주의의 등장을 이것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는 노동의 새로운 저항에 맞선 대응이면서 동시에 자본 자체의 필요에 따른 거대한 전환은 아니었던가? 금융화의 이면에는 자본의 피할 수 없는 자체 진화의 논리가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이것은 계급 투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분석 과제는 아닐까?

이런 한계 때문에 네그리의 지구적 금융 자본주의 비판은 전반적으로 미완성작의 느낌을 준다. 지구 금융 질서를 구성하는 다양한 자본 분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분석 대신 '군주정', '귀족정' 따위의 현란한 비유만 가득하다. 그래서 이들 자본 세력과 민중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 역시 기대하기 힘들다. '제국-다중'의 거대 서사는 그런 역할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하다.

국민국가에 대한 접근에서도 미래학적 예단이 구체적 분석을 대신한다. 네그리는 지금이 '국민국가의 사멸과 제국의 정초 사이의 공위(空位)기'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화 경향이 결국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비친다. 그래서 국민국가는 더 이상 거대 자본에 맞선 민중 투쟁의 주된 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며, 전 지구적 시민권을 요구하며 초-국민국가적 수준에서 제헌 국면을 여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현실에서 유럽 통합이나 라틴아메리카 통합에 대한 긍정론으로 이어진다. <네그리의 제국 강의>의 제2부 '유럽 : 투쟁을 위한 기회'는 유럽 통합을 대항-제국 형성의 중요한 계기로 바라보는 강의들로 채워져 있다. 네그리는 2005년 유럽 헌법안 국민투표 때도 다른 급진 좌파 사상가들이 '반대' 운동에 합류한 것과 달리 '찬성' 입장에 가까웠다.

하나 네그리가 '다중'이라 부르는 우군의 대다수는 이 투표에서 '반대' 입장을 택했고, 유럽 헌법안은 부결됐다. 대중은 이미 존재하는 공화국의 주인됨을 확인하는 것을 미뤄둔 채 새로운 정치 무대를 찾아나서는 데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국민국가 내부의 투쟁은 여전히 중요했다. 그것은 새로운 초-국민국가적 정치 세계의 구축 방향을 결정지을 만큼의 중요성을 잃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거대한 문제 제기로 읽어야 할 <제국> 혹은 <제국 강의>

그렇다고 국민국가를 넘어선 정치 단위를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는 네그리의 주장을 가벼이 보자는 게 아니다. 이것은 보기 드문 혜안이다. 하지만 이 도전을 위해서도 우리는 국민국가와 지구 질서 사이의 여전한 변증법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역동적 관계에서 눈을 떼지 않을 때에만 오늘의 실천 지침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위키리크스>를 둘러싼 대립 전선에서 드러나듯, 네그리의 사상에는 분명 선지자의 예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와 사회과학 이론은 서로 다른 무엇이다.

요컨대 <제국> 혹은 <제국 강의>는 거대한 문제 제기로서 빛을 발하는 책들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지난 100여 년간 변혁 세력에게 익숙했던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태에 대한 깊이 있고 예리한 문제 제기와 마주하게 된다.

하나 거기까지다. 네그리에게서 지침을 발견하려고 하지는 말자. 그것은 다른 이들의 또 다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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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잘 생긴 다독가는 누구란 말이요?

이제 곧 방송사 드라마 시상식 시즌이다. 배우나 PD, 작가 등 '실존 인물'에게만 돌아가는 영예를 드라마 캐릭터에게도 안겨보자. '올해의 주방장상'은 <제빵왕 김탁구>의 김탁구(윤시윤)나 <파스타>의 셰프 최현욱(이선균)에게, '올해의 수난상'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동성애 커플 태섭(송창의)과 경수(이상우)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프레시안 books'답게 '올해의 다독상'을 꼽아보자면? 단연 인기리에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현빈)이 유력한 후보다. 이 남자, 벽 한 가득 서재를 차려놓고 살며, 혼자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늘 책을 꺼내든다. 드라마 폐인들은 묻는다. "한국 드라마 사상 이렇게 책을 자주 읽는 남주(남자 주인공)가 있었던가?" 물론, 사극을 제외하고 말이다.

심지어 김주원은 한국 트렌디 드라마에서 닳도록 재탕돼 이제는 그 설정만으로 클리셰(cliche)가 된 '재벌 2세'다. 탐욕의 화신이나 "얼마면 돼!"를 연발해야 할 한국 드라마 속 재벌 2세가 시집이나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유영미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를 진지하게 읽고 있는 모습은 신선하다 못해 충격이다.

지난 12일 방영된 10화부터는 여주인공 길라임(하지원)도 책읽기에 가세했다. 라임은 "그 사람(주원) 마음속이 궁금해서. 내가 놓친 그 사람의 진심은 뭐였을까"라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지음, 김경미 옮김, 비룡소 펴냄)를 집는다. 화면 한가득 존 테니얼의 삽화가 들어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표지가 잡혔다.

혹시 이젠 책도 PPL(Product Placement)? 아니다. 상당수 출판사 사람도 책이 드라마에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그렇다면 <시크릿 가든>과 책의 만남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출판계는 이 만남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책이 펼쳐주는 길을 따라 '비밀의 정원' 속으로 들어가 봤다.


ⓒSBS

라임과 주원, 책으로 마음을 연다?

16일 현재 10화까지 진행되는 동안 <시크릿 가든>에는 김남일의 <천재 토끼 차상문>(문학동네 펴냄), 진동규의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문학과지성사 펴냄), 김경욱의 <동화처럼>(민음사 펴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10여 권의 책이 등장했다.

2005년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진헌(현빈)과 삼순(김선아)을 이어주는 매개로 <모모>(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비룡소 펴냄)가 등장해 폭발적 반응을 얻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난 한국 드라마에서 책이 이처럼 여러 권이 자주 화면에 나온 적은 처음 있는 일이다.

등장인물의 직업은 책과 별 관련이 없다. 이 드라마는 학력도 출신도 보잘 것 없는 스턴트우먼 길라임과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백화점 CEO 김주원이 서로의 계급(?)을 뛰어 넘어 얽히고설키는 과정을 그린 로맨스다. 더구나 주인공의 몸이 바뀐다는 설정을 가미한 판타지 로맨스다.

이런 드라마에서 책은 주인공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을 매개하는 좋은 장치로 쓰인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주원은 라임이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나오는, 파리가 날아다닐 것 같은 셋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나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펴든다. 이 순간 책 제목은 그녀를 이해하려는 주원의 가상한 노력으로 비친다.

라임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집으며 아예 노골적으로 이렇게 털어놓는다.

"누군가의 집에 갔는데 (…) 서재를 보는 순간 그 사람은 저 많은 책들을 다 본 걸까. (…)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꼈을까 궁금한 거 있지."


ⓒSBS

한편, '제목'으로만 등장하는 책들은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가령 3화에서는 주원이 라임을 생각하며 시집을 읽다가 그것을 다시 책꽂이에 꽂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을 포함한 다섯 권의 시집의 '제목'이 보란 듯이 오랫동안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곧이어 화면엔 제목들이 한 줄 한 줄 띄워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 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 /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 너는 잘못 날아왔다.'

라임을 향한 독백이 주원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책 제목으로 표현되는 셈이다. 드라마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런 설정을 놓고 "시가 등장하는 부분은 엄밀히 말해 '시'가 아니라 책 제목으로 만든 '문장'이다"라고 말해, 이 장치의 정체를 명확히 밝혔다.


ⓒSBS

<시크릿 가든>을 매주 챙겨보는 이민정(30) 씨는 "드라마에서 보통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긴 해도, 제목으로 문장을 만든 것은 처음 보는 시도라 신선했다"며 "이런 장치들이 시청자의 극에 대한 몰입, 기대감과 상상력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김상미(27) 씨도 "책을 통해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 적극적인 시청자는 책 제목과 내용을 찾아보며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앞으로 전개될 내용의 복선 역할을 하는 건 아닌지 퍼즐을 맞춰보고 있다. '디시 인사이드'의 <시크릿 가든> 갤러리에서 팬들은 화면에 노출된 책을 주문해 '인증 샷'을 올리는 한편, 제목의 의미를 추리하면서 갑론을박도 벌인다.

책은 '개량된 재벌 티내기' 장치?

이렇듯 팬들의 관심은 주로 각각의 책 제목이나 내용이 드라마 전개상 어떤 맥락에 놓여있는지에 집중돼 있지만 주원이 '다독가'라는 설정 자체에 주목하는 분석도 있다. 주원은 거대한 서재를 갖고 있으며 혼자 있을 때는 늘 읽을거리를 들고 있는 인물로, 한국 드라마에서 재현됐던 재벌 캐릭터와는 차이가 있다.

드라마 마니아를 자처하는 한 언론의 문화부 기자는 사석에서 "<시크릿 가든>에는 작가의 전작 <파리의 연인>의 상투성을 자조하는 유머도 등장하는데, 주원의 설정 역시 여러 가지 클리셰 비틀기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책들은 "재벌 캐릭터를 보여주는 개량된 '티내기' 장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으리으리한 집, 비싼 자동차로만 표현됐던 재벌 2세 캐릭터에 일종의 '문화적 취향'을 추가하면서, 틀에 박힌 설정들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장인이 한 올 한 올 엮었다"는 스팽글 트레이닝복이나 "프랑스 예술가가 '인권'과 '꽃'을 주제로 한 땀 한 땀 수놓았다"는 자수 트레이닝복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캐릭터를 비튼다.


ⓒSBS

그래서인지 이런 장치에 부정적인 의견도 상당하다. PD 지망생 허란(24) 씨는 "내용과 별로 상관없는 것 같은데 (책 제목이) 자막으로까지 뜨니 PPL 아닌가 해서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책이 왜 등장했는지 편집자가 다소 의아하게 생각한다"는 출판계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책이 가벼운 소품으로 등장했건, 정교한 의도로 배치됐건 우선 출판계는 '기분 좋다', '반갑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드라마의 인기와 캐릭터의 매력에 힘입어 한 번 등장한 것만으로도 책들이 상당한 주목을 받은 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장의 반응도 있기 때문이다.

서점은 지금 '주원이 대세'

지금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은 <시크릿 가든>의 주원이 대세다. 12월 둘째 주 교보문고(광화문점) 시집 코너는 베스트셀러 1위부터 5위까지 <시크릿 가든>에 나온 시집으로 물갈이됐다. 방송 이후 다섯 권 모두 광화문 점에서는 하루에 7~8권씩, 인터넷 교보문고에서는 4~50권씩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판매량은 5권 다 비슷하긴 하지만 "제목이 노출된 순서대로 조금씩 더 팔린다"(문학과지성사 관계자)는 얘기가 재미있다. 예스24의 김미선 문학 담당 MD에 따르면, 화면에 가장 먼저 나온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1999년)은 2005년부터 지난 11월 1일까지 예스24에서 단 7권이 팔렸지만 방송 이후 약 3주 동안 무려 700권이 주인을 만났다.

지난 1월 나온 <천재 토끼 차상문>도 같은 시기 교보문고(광화문점) 전체 베스트셀러 16위에 올랐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교보문고 전체 순위 20위에 올랐다. 온라인 서점에는 '김주원의 서재'라는 이벤트 페이지가 열려 있어 연말까지 관련 도서를 20~30%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 '드라마 <시크릿 가든> 주원·라임의 테마 도서.' ⓒ민음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다른 책과 달리 드라마 기획 의도에도 언급된 '메인 테마 도서'인데다 10회에서 주원과 라임이 번갈아 읽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반응이 더욱더 폭발적이다. 민음사 측은 "이 책의 원래 판매량이 1이라면 방송 이후엔 100정도다"라는 말로 인기를 짐작케 했다.

출판사 중에서는 민음사 출판 그룹의 대응이 가장 발 빠르다. 10회가 방송된 직후 SBS 로고가 박힌 띠지를 두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서가에 깔렸다. 또 이 출판사는 이 책과 <동화처럼>,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 등 자사 문학 서적 6권을 묶어 '주원·라임의 테마 도서 세트'를 출시했다.

고전이자 어린이 책이라는 쉬운 접근성, 드라마에 직접적으로 모티프를 제공한 책이라는 점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제2의 <모모>가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두 번이나 현빈이 나온 드라마를 통해 책을 히트시킨 비룡소로서는 가히 '현빈 사랑'을 외칠 판이다.

"<조선일보> 서평보다 강력한 주목도"

그러나 출판사들은 당장에 유발되는 금전적인 효과보다도, 책에 대한 주목이 가져다주는 효과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펴낸 갈라파고스의 정다혜 편집과장은 "이 책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원래 꾸준히 나가던 스테디셀러라 방송 이후 폭발적으로 판매량이 늘진 않았다"며 "다만 지금까진 별로 접점이 없었던 트렌디 드라마 시청자 층과의 접점이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소개된 책 가운데 국내 시인, 소설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많은 것도 출판계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다. 문학과지성사 관계자는 "진동규, 홍영철 시인 등이 후속 작품을 쓸 때 독자들의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음사의 정대성 영업부장도 "한 작가는 예전에 <조선일보>에 신간 소식이 나왔을 때도 지인들로부터 전화 한 통 못 받았는데 요즘은 여러 군데에서 전화를 받고 있다"며 저자들에게도 반향이 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 장기적으로 출판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정대성 부장은 "예전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덕분에 그래도 출판계에 활력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프로그램이 다 사라져 아쉬웠던 상황"이라면서 "침체기를 겪고 있는 문학책들이 주목 받아 회사 입장으로서도 좋지만 출판계 전체적으로도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와 책의 만남, 행복 혹은 불행?

이렇듯 책을 드라마에 노출시키는 것은 장점이 줄줄이 따라오는 일이지만, 출판사에서 먼저 자사 도서를 영화·드라마 홍보사로 들고 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시크릿 가든>의 경우에도 일부 출판사는 드라마 홍보대행사 쪽으로부터 먼저 PPL 제안을 받기는 했지만 최소한 1000만 원을 넘는 광고료 부담 때문에 고사했다. 그래서 사전에 협찬 요청을 받은 민음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출판사는 방송 후에야 책이 노출된 사실을 전해 들었다.

출판사 광고 영업 담당자는 "책은 상품 특성상 영화·드라마 PPL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출판사의 영세한 규모나 1~2만 원대 안팎인 책의 가격대 등을 염두에 두면 출판사가 방송 노출에 드는 1000만 원대의 광고비를 감수하면서 PPL에 동참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

또 책은 연출가, 작가의 취향이 민감하게 드러나는 소재인 만큼 출판사 측에서 섣불리 광고 효과만 생각하며 접근했다가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비룡소는 <모모>가 <내 이름은 김삼순>의 인기에 힘입어 100만 권을 팔아치운 경험을 했음에도 "작가가 좋아하지도 않는 책의 반복 노출을 요구할 경우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이유로 PPL을 피해 왔다.

그럼에도 출판계가 <시크릿 가든>으로 일어난 상황을 관심 있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만큼 책 자체가 외면 받고 있어서다.

문학과지성사 측은 "책이 등장한 맥락에 고개를 갸우뚱한 시청자도 있다"는 의견에 고개를 저었다. 이 관계자는 "시를 갖고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 게 아주 좋았다"며 "영화, 드라마, 스마트폰이 대세인 시대에 이런 계기를 만들어서 책, 그것도 시를 읽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좋고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천재 토끼 차상문>의 편집자이기도 한 김민정 시인도 16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텔레비전에 나온 누구누구가 든 가방 봤어?"라는 말처럼 "텔레비전에 나온 누구누구가 든 소설책 봤어?"라는 말이 나오는 시절을 꿈꾼다고 말했다. 과거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시절에도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으나, 요즘처럼 책을 멀리 하는 시대에 어떤 책이든 주목해 주는 것이 어디냐는 말이다.


ⓒSBS

일부 스타 작가 외에는 대중으로부터 책이 외면을 받는 시대다. 여전히 사람은 '이야기'를 갈구하지만, '이미지'라는 두 다리를 얻지 못하면 활자는 잠시 뭍에 머물다가 마치 <시크릿 가든>에서 종종 나오는 또 다른 의미심장한 소재 '인어공주'처럼 물거품으로 사라지기 십상이다.

드라마 연출가, 작가들이 이야기의 원천인 책과의 만남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인어공주 같은 활자의 운명이 좀 더 연장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시도가 많아질수록 (많은 <시크릿 가든>의 시청자들이 바라듯이) 원작과는 달리 두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책)가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김주원의 서재' 열풍은 드라마 종영과 함께 끝나겠지만 책과 <시크릿 가든>의 만남이 만든 한 편의 '행복한 동화'는 영원히 반복되어야 한다.


라임이 두고 간 4만 5000원으로 서점 가기


ⓒSBS

<시크릿 가든>을 열심히 본 사람이라면 4만 5000원의 의미를 알 테다. 주인공들 첫 만남에서 주원이 라임 대신 내 준 병원비인데, 로맨틱 드라마의 공식대로 남자 주인공은 '코 풀어 버려도 될' 이 돈에 끈질기게 집착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라임은 이 돈을 무려 3회에 걸쳐 상환한다.)

4만 5000원 구실로 힘닿는 데까지 밀고 당겨 보고픈 너희들 마음은 알겠으나…, 가지런히 놓인 파란 배춧잎을 보고 있자니 생의 감각이 스멀스멀 치민다. "안 쓸 거면, 차라리 내게 사회 지도층의 양심을 보여줘!" 마침 <시크릿 가든>에 나온 몇 권의 책들을 직접 사 보기에 적당한 돈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라임이 두고 간 4만 5000원 들고 서점 가기! (이하 정가 기준!)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루이스 캐럴 지음, 김경미 옮김, 비룡소 펴냄). ⓒ비룡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인 찰스 루트위지 도즈슨이 1865년 발표한 동화다.

어느 날 템스 강에 함께 피크닉을 갔던 그는 크라이스트 칼리지 학장의 딸인 앨리스 리델과 자매들에게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바로 이 이야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됐다. 회중시계를 꺼내 보는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 앨리스는 우스꽝스러운 세상에서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 일을 겪는다.

이 환상 동화는 현재까지 다양한 판본과 영화, 만화로 수십 번 각색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드라마에 나온 판본은 민음사 출판 그룹 비룡소에서 펴낸 '비룡소 클래식'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캐럴의 친구이기도 했던 존 테니얼의 삽화가 그대로 실린 것이 특징이다. 정가는 1만 원.


▲ <천재 토끼 차상문>(김남일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천재 토끼 차상문>

인간이면서 토끼이자, 좌·우익의 폭력적 결합을 통해 태어난 주인공 차상문을 중심으로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

명석한 '토끼 영장류(학명 레푸스 사피엔스)'인 차상문은 버클리 대학교로 유학을 떠나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남북 관계, 민주주의, 이주 노동자와 같은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고, 인간 중심 세상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토끼 인간의 고뇌와 저항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하게 그려진 작품. 정가는 1만 원.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전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 장 지글러가 기아의 실태와 그 배후의 원인들을 아들과 나눈 대화 형식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 책.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갈라파고스
이 책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기술과 생산력의 발달은 유전자 변형 식품 없이도 120억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정도로 발달했지만, 어째서 8억 이상의 남반구(제3세계) 인구가 만성적인 기아에 허덕이는 것일까?' 저자는 아프리카, 남아시아, 남아메리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아의 참상이 강대국의 정치, 경제 질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정가 9800원.

여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너는 잘못 날아왔다>(각권 7000원),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각권 8000원) 중 마음에 드는 시집을 두 권 골라 보자.

7000원짜리를 두 권 고를 경우 1200원이 남고, 7000원짜리 한 권+8000원 짜리 한 권을 고를 경우 200원이 남는다. 둘 다 8000원짜리를 택할 경우 800원이 더 필요하다. 어쨌든 라임이 두고 간 4만 5000원이면 동화, 소설, 논픽션, 시까지 다섯 권은 넉넉하게 즐길 수 있다!


현빈과 하지원은 출판계의 블루칩?

본문에서 밝힌 대로 비룡소는 5년 전에도 드라마의 힘을 경험했다. 비룡소가 펴낸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MBC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중요한 소재로 쓰이면서, 100만 부 판매라는 메가 히트 기록을 세웠던 것. 그런데 공교롭게도 <시크릿 가든>, <내 이름은 김삼순>의 남자 주인공은 모두 현빈이다.


▲ <그람시의 옥중수고 1 : 정치편>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이상훈 옮김, 거름 펴냄). ⓒ거름
현빈만큼의 파워는 아니지만 여주인공 하지원도 과거에 드라마에서 책 한 권을 띄운(?) 전적이 있다. <그람시의 옥중 수고 1>(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이상훈 옮김, 거름 펴냄). 하지원은 2004년 방영된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가진 것 없는 하류층 여성 수정으로 나왔는데, 극중에서 인욱(소지섭)으로부터 이 책을 건네받는다.

그람시는 이 책에서 지배 계급은 강압적 힘뿐만 아니라 민중의 자발적 동의가 있을 때야 비로소 안정적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극중 재벌 2세인 재민(조인성)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정의 신분 상승 욕구는, 그람시가 얘기한 '지배자에 대한 자발적 동의'에 해당하는 셈이다. 인욱은 이 책을 통해 수정의 욕망을 비유한다.

"계급은 중세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그놈들의 헤게모니가 우리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을 뿐이지. 물론 그 이데올로기 안에서 행복하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인욱)

하나 그람시의 책과 드라마 내용이 적절하게 어울렸음에도 불구하고 <발리에서 생긴 일> 덕에 그의 책이 큰 주목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듣지 못했다.

여담 하나 더! 세 주인공이 모두 죽는 비극으로 끝나는 <발리에서 생긴 일>은 또 다른 책으로 종영 후에도 열성팬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마지막 회에서 죽음을 앞두고 수정이 읽고 있던 책이 바로 '여-남-남' 삼각관계의 고전이었던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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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송년호(21호)는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 서평위원이 의견을 모아서 선정한 두 권의 '올해의 책'(<삼성을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외에도 8명의 서평위원이 나름대로 선정한 '나의 올해의 책'을 별도로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서 쾨슬러는 한국에서는 아주 불운한 작가이다. 그가 소개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냉전 시기 한국의 지성을 마비시켰던 반이성적인 반공주의의 재료로만 가져다 쓰인 작가이기에 그가 경험했던 공산주의 정치 혁명의 어두운 구석을 낱낱이 분석한 그의 저작들이 진지하게 소개되고 이해되는 것이 오히려 방해를 받았던 것이다.


▲ <한낮의 어둠>(아서 쾨슬러 지음, 문광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우파 쪽에서는 <실패한 신(The God That Failed)>(1949년)과 같은 책에 실린 그의 짧은 글만을 내걸었고, 좌파 쪽에서는 그를 일방적인 반공 작가로만 보아왔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그의 10년에 가까운 공산주의 운동에의 투신의 경험을 반추하고 또 반추하여 써낸 이 위대한 20세기의 정치 문학의 절정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아 왔다.

아서 쾨슬러는 이 책에서 자유가 어떻고 폭력이 어떻고 하는 흔해빠진 이야기들을 늘어놓지 않는다. 과학과 이성을 통하여 인간과 사회를 영원히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또 그 믿음에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인간들의 운동이 어떻게 인류 역사상 가히 기록적이라 할 만한 실패와 광신과 논리적 자멸로 이어지게 되는가를 한 땀 한 땀 논리적으로 추적한다.

지금은 소위 포스트모던 운운의 유행과 함께 길거리에 나뒹구는 주간지마냥 범속한 명제가 되었지만, 원래 이 명제 즉 인간과 사회를 이성과 과학의 운동으로 완벽하게 만들어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공포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알베르 카뮈, 에릭 푀겔린 등과 같은 이들이 깊은 충격과 함께 고민했던 질문이며, 아직까지도 풀리고 있지 않은 질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경악할 만한 공포는 공산주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를 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정치 신학이라는 현대의 신화 일반에 대한 고발로 확장할 수 있다.

바라건대 이 책과 꼭 짝을 이루어 읽어야 하는 그의 정치적 자서전 특히 1930년대 공산주의 운동의 경험을 생생하게 서술한 그 2권인 <보이지 않는 글쓰기(The Invisible Writing)>(1954년)도 함께 소개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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