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교육 관계로 타이 방문이 잦다는 이유로 <탁신 : 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즈니스>(파숙 퐁파이칫·크리스 베이커 지음, 정호재 옮김, 동아시아 펴냄)에 대한 서평을 부탁받았다. 타이 노동운동가 중에서도 탁신 정부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어서 탁신의 정체에 궁금함이 컸던 터라 공부도 할 겸 선뜻 부탁을 받아들였지만, 타이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전문적인 서평은 불가능할 터. 폼 나는 서평보다는 책 내용을 중심으로 격변에 격변이 꼬리를 무는 21세기 타이 정치사 10년을 짧게 살펴보자.

중국계, 경찰, 미국 박사, 통신 재벌, 부총리

1949년에 태어난 탁신은 중국계다. 중국 광둥 출신인 그의 증조부는 19세기 후반 타이에 이주해 타이 여성과 결혼했다. 증조부는 타이 치앙마이 지역에 기반을 둔 무역상으로 성장했고, 탁신 가문은 아버지 대를 거치며 부흥했다.

"거의 모든 타이 소년들은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어했"기 때문에 탁신은 사관학교를 거쳐 경찰학교에 들어갔고, 1973년 최우등으로 졸업해 미국으로 국비 유학을 떠났다. 켄터키 주에서 형사법 석사 과정을 마친 다음 1975년 귀국해 국회의원이던 아버지를 돕던 탁신은 1976년 아버지의 정치 경력이 몰락하자 경찰을 그만두고, 같은 해 경찰 고위 관료의 딸인 포자만과 결혼했다. 이후 장인의 주선으로 미국 텍사스에서 형사법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78년 타이에 돌아온 그는 경찰로 복귀했다.

경찰로 일하면서 호텔업과 영화 배급업 등의 부업을 하던 탁신은 1981년 IBM 컴퓨터를 정부 기관에 임대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1986년에는 삐삐(페이징) 사업을 위한 벤처기업을 출범시켰고, 결국 1987년 경찰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사업가의 길로 나서게 된다. 그의 사업 기반은 통신업이었다. 타이통신공사(CAT), 타이전화공사(TOT)와 사업을 하면서 부를 축적한 탁신은 케이블TV, 위성통신, 이동통신사업, 데이터 네트워크, 민간 자본 고속도로로 사업을 넓히면서 1991년 이후 타이 재계를 이끄는 거대 사업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다.

1998년 타이락타이(TR) 창당


▲ <탁신 : 아시아에서의 정치 비즈니스>(파숙 퐁파이칫·크리스 베이커 지음, 정호재 옮김, 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1994년 12월 전직 군인이자 불교 수행자로서 반부패로 유명한 짬렁이 만든 당의 내각 쿼터제를 통해 외무장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탁신은 타이락타이(TRT) 당을 창당한다. 이 때 1970년대 학생운동권과 공산게릴라 출신들이 TRT에 참여했다. 그들은 탁신에게 언론인과 활동가를 소개시켰고, 이를 통해 정치가 탁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었다. TRT는 재벌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금융계, 건설회사, 미디어회사 업자들이 당에 참여하고, 돈을 댔다. 1999년 TRT의 예비내각은 군부·경찰의 지도부 출신과 대기업 사장에서부터 전직 공산당 간부까지 폭넓은 색깔을 보여줬다.

1997년 금융 위기로 파생된 타이 사회의 불안정을 당시 민주당 정부가 수습하지 못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이에 맞춰 TRT는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금융·자본 시장 개방 △부채 문제 해결 △소득 창출과 실업 문제 해결 △타이 농가 부활 △교육 지원 확대 △마약 근절 △부패와의 전쟁 △의료 제도 개혁 △여성 지위 향상 △국영 기업 민영화 △새로운 지역 정책 추진 등이 TRT가 내세운 '국가 의제'였다.

2001년 1월 집권에 성공

TRT는 민주당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비굴하게 처신하면서 IMF의 국내 경제를 파괴하는 정책에 협조하면서 국내 산업을 보호할 정부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농민 시위를 비하했던 민주당 정부와 달리 농가 부채 해결과 농가 금융 지원을 약속하면서 농민층을 파고들었다. 또한 '30바트 의료 제도'를 내세우면서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빈민층의 지지를 끌어냈다. 그리고 TRT 정당 활동에 다단계 판매 방식을 적용시켜 당원을 대거 확충했다.

그 결과 2001년 1월 선거에서 의회 500석 중 TRT가 248석을 차지해 1당이 되고, 정당명부 투표에서는 40.6%를 얻어 탁신은 총리직에 오르게 된다. 그의 첫 내각은 전통 엘리트, 신흥 기업가, 전직 급진운동가들로 채워졌다.

하층민들 꿈꾸기 시작하다

탁신은 자신이 내세웠던 공약, 특히 농민층을 위한 공약을 신속하게 실행했다. 농민 부채를 경감시켰고, 농촌 마을마다 마을 금고를 세워 자금을 제공했다. 30바트 의료 제도를 도입해, 돈 없는 농민과 서민들도 병원에 갈 수 있게 만들었다. 30바트면 우리 돈으로 1000원이다. 탁신 덕분에 병원에 가서 1000원만 내면,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탁신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병원은 그림의 떡이었다. 타이 역사상 어느 정부도 서민들의 의료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30바트 의료 제도 덕분에 이제 서민들도 병원에서 '사람'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의사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 서민들이 어깨를 당당히 펼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의사들은 가장 열렬한 탁신 반대 세력 중의 하나가 되었다.

탁신 정부는 대학교 학자금에 대한 융자도 대폭 확대했다. 저리 장기 융자를 통해 노동자와 서민의 자녀들도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똑똑하지만 가난한 학생이 대학에 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새 정부 덕분에 계급 독점 수단으로서의 교육 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덧붙여 농촌 마을마다 한 명씩 국비 장학생을 선발하여 해외 유학도 보냈다. 탁신의 새 교육 정책 덕분에 하층 계급에 속한 사람들도 자기 자녀들이 보다 나은 사회계급으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이를 두고 필자가 만난 타이의 노동운동가는 "하층민들이 탁신의 정책 덕분에 타이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맛보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국가 기관, 금융 기관, 병원, 대학은 가진 자들만의 것이었고, 하층민의 삶과는 무관한 것이었는데 탁신 정부가 이를 변혁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에 탁신이 소유한 재벌 회사들도 엄청난 돈을 빨아들였고, 탁신 일가의 부도 빠르게 늘어났다. 동시에 탁신과 그의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에 대한 정치적 억압도 커졌다. 부패와 정치적 억압을 이유로 탁신에 반대하는 세력이 늘어갔지만, 서민들의 분위기는 달랐다.

타이에서 정계 지도자와 재계 지도자는 전통적으로 일치해왔다. 근대 시기를 통틀어 왕과 대신들은 대상인 출신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근대 경제가 팽창하자 왕족과 귀족들은 대규모 농장주, 은행가, 도시 개발자, 산업 투자자들로 변모했다. 군사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군 장성들이 주요 기업의 이사회 멤버가 되었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2004년은 "탁신의 정점"이었다. 경제는 1997년 금융 위기 이후 최고인 6~7% 성장했다. 주식시장 지수는 794포인트로 탁신이 총리직에 오르기 직전의 268포인트에 비해 세 배에 달하는 수준을 기록했다.

"TRT의 심장은 인민이다!"

하지만, 탁신이 전성기를 구가할수록 반대파들은 늘어만 갔다. 민영화 정책에 위협을 느낀 국영 기업 노조들은 반(反)탁신 투쟁의 선봉에 섰다. 무자비한 마약과의 전쟁, 독재자 스타일의 비판 여론 억압에 불만을 느낀 NGO들도 반탁신 대열에 동참했다. 경제 회복의 열매가 탁신 주위에 포진한 자그마한 비즈니스 집단과 탁신 일가에게만 떨어지는 데 불만을 느낀 전통적인 재산가과 자본가들도 탁신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탁신의 친서민 정책에 모욕감과 위협감을 느낀 도시 중산층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4년 말, "탁신을 실각시키기" 위한 운동체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탁신의 정계 입문을 도왔던 짬렁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앞으로 4년 안에 집 없는 노동자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자신의 땅이 없는 농민도 마찬가집니다. (…) 교육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치료 받지 못하는 환자도, 홀로된 노인도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도움 받지 못하는 장애인도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서민들을 향한 탁신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서민들은 열광했고, 그 반대편에 서 있던 전통 엘리트들과 교육받은 도시 중산층들은 분노했다. 문제는 탁신의 공약 자체가 아니라, 그 공약이 현실에서 집행된다는 데 있었다. 탁신은 타이 사회가 민주적인 선거 제도를 유지하는 한 국민 다수를 이루는 서민을 위한 공약과 그것의 실천이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보장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이러한 민주주의의 '비밀'을 선거 승리에 적극 활용했다.

2005년 2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탁신은 2001년보다 훨씬 정교해진 공약을 발표했다. 마을 금고의 확대, 토지 소유자를 위한 땅 문서 제공, 서민을 위한 신규 저리 융자, 소의 무상 분배, 빈곤층 교육 훈련 제공, 저렴한 수업료, 빈곤층 아동을 위한 특별 지원금, 신생아를 위한 교육 상품권, 노인복지센터, 체육 시설 확충, 값싼 전화 요금, 슬럼가 철거 연기, 값싼 주택 공급, 국민건강보험 투자 확대, 전국적인 관개(灌漑) 개선, 빈곤 종료 제도.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행동하자"던 2001년 구호는 2005년 선거에서 "TRT의 심장은 인민이다"로 바뀌었다. 그리고 선거운동 방식도 더욱 친서민적으로 전개되었다.

2005년 2월 총선에서 TRT는 500석 가운데 377석을 차지했고, 정당 투표에서 2001년의 1100만 표를 크게 웃도는 1900만 표를 얻었다. 이제 탁신은 타이에서 어느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1인자로 등극하는 듯 보였다.

전통 엘리트와 중산층의 반발

하층민의 표에 기댄 탁신의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전통적인 기득권 세력들의 위기감은 커져갔다. <탁신>에 소개된 타이의 저명한 정치학자 아넥 라오탐마탓이 쓴 <탁신 스타일 포퓰리즘>은 전통 엘리트들의 위기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진일보한 민주주의란 국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하위 계급의 대변자, 중간 계급의 대변자 그리고 상류층의 대변자, 이 세 요소 사이의 균형 잡힌 타협이다. (…) 특히 두 집단이 정치적 영향력에 필수적인데, 첫째 집단은 군주다. 군주의 현대적 의미는 '소수의 상위 계급으로 지도자이거나 통치자, 국가의 최상위 계층에 있는 사람들로 스스로의 존재나 직위에 의해 빛나는 사람들'이다. 둘째 집단은 귀족들로 이들은 '중간 계급 또는 상위 계급이면서 특히 정치와 경영을 많이 해온 지도자'들을 지칭한다. 이 안에는 중간 귀족, 지식인, 언론인들이 포함된다.

2005년 왕실 추밀원은 타이 최남단에 대한 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했다. 2005년 11월 왕실사업단의 수장인 수멧 딴띠웻꿀은 "국왕께서 부패를 걱정하고 있으며 국민이 부패와 싸우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12월 15일 쁘라웻 와씨는 부패 정치인을 가리켜 아예 '죄인'이라고 호칭했다. 그 죄인은 다름 아닌 탁신임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부패하고 불경한 탁신

이 무렵 한 때 탁신의 후원자였던 ASTV의 언론 재벌 쏜티는 "탁신이 부패한 정책을 통해서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특혜를 나눠주고 있으며, 인권을 짓밟고 남부 지역의 학살에 불을 붙였으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홍보하고, 특히 대다수 국민들에게 불이익을 끼칠 자유무역협정(FTA)과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했다"고 비난했다. 덧붙여 "탁신이 국왕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다"고 날을 세웠다.

2005년 8월 몇몇 정치인들이 쓴 <왕실의 위엄>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의 필자들은 "헌법은 어떤 식으로든 국왕 위에 있을 수 없다. (…) 왕의 권위는 헌법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 점에서 현 정치는 오해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전통 엘리트들은 탁신의 부패를 국왕의 도덕성과 대조하면서 탁신을 왕실의 권위에 도전하는 부패 정치인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PAD의 출범과 '사법 행동주의'의 출현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은 일이 2006년 1월 일어났다. 탁신 일가가 보유하고 있던 친코퍼레이션의 주식 49.6%가 싱가포르 정부의 투자 회사인 타메섹홀딩스에게 17억 달러에 팔린 것이다. 이 거래로 얻은 이익에 대해 탁신 일가가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타이 기업 역사상 단일 거래로는 가장 큰 큐모의 기업을 외국 자본에 팔아넘겼다"는 비난이 빗발쳤고, 2006년 2월 탁신 반대 운동을 주도하게 될 국민민주주의연대(PAD)가 출범했다. 이들은 외신에 "옐로 셔츠"로 불리게 된다.

PAD는 탁신 퇴진을 제1의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왕실의 색깔인 노란색 복장을 착용하고 왕실과의 유대를 강화하면서 "우리는 국왕을 사랑한다. 우리는 왕을 위해 싸운다"고 외쳤다. 탁신 퇴진과 '국왕을 위해 싸운다'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민영화나 FTA 문제는 색이 바랬다. 이것은 사회·경제적 요구를 내걸고 PDA에 참여한 시민단체들이 PAD에서 탈퇴하도록 만들었다. PAD의 소요가 점점 심각해졌지만, 군대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탁신>의 저자들은 PAD가 "왕정주의자와 군대의 보호를 받는 중산층 운동이 되어갔다"고 평가했다.

사태가 통제 불능으로 치닫자 탁신은 2006년 2월 의회를 해산하고 4월에 재선거를 실시했다. 또다시 TRT가 승리했지만, PAD는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헌법 제7조에 의거 국왕이 총리를 지명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왕은 거절하면서 사법부가 이를 해결해주기를 요청했다. 이로써 임명된 사법부가 선출된 행정부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법 행동주의(judical activism)'의 시대가 열렸다.

2006년 5월 8일 헌법재판소는 4월 총선이 무효라고 결정했다. 법원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의 중립성을 훼손했다면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을 사임시키고 재판에 회부해 감옥에 보냈다. 그리고 탁신의 당인 TRT 해체 결정을 내렸다. 새 선거는 10월 15일로 선포되었다. 4월 총선을 보이콧 했던 민주당은 10월 총선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지만, 10월 총선은 열리지 않았다. 탁신이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하고 있던 9월 19일 군부가 주도한 쿠데타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군주제 수호'를 내건 군사 쿠데타의 발발

쿠데타 태변인은 성명을 내고 쿠데타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타이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대규모의 갈등, 당파성 그리고 불화들 (…) 국가 행정의 부패와 부정들 (…) 정치적 억압에 의해 합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독립적 기구들 (…) 국왕에 대한 모독 행위가 빈번히 일어나는 세태…"

쿠데타 군의 수장들은 협의체를 만들고 '입헌군주제 하의 민주주의 개혁을 위한 협의회'로 명명했다. 그러나 "그 명칭이 마치 왕족의 일부가 쿠데타에 동참한 것처럼 들린다고 해서 곧 국가안보평의회(CNS)로 고쳐 불렀다.

군은 쿠데타를 일으킬 이유가 충분했다. 반세기 동안 타이를 운영해본 군부는 1992년 민주화의 위기 이후에 권력과 권위를 눈에 띄게 상실해갔다. 일례로 군은 1991년에 국가 예산의 16%를 할당받았지만, 그 규모가 축소됨에 따라 2006년에는 전체 예산의 6%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군 원로들 역시 탁신이 군부의 인사에 관여하여 군에 대한 민간의 영향력이 증대하는 데 불만을 토로해왔다. 쿠데타는 '군주제의 수호' 또는 '대중의 요구'라는 정당화 논거 이외에도 군의 명예 회복은 물론 (민간정부에 대한-필자) 독립성을 다시 확보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 감소만 하던 국방 예산은 (쿠데타 이후) 불과 2년 만에 무려 50%나 증가했다.

탁신 당의 재승리, 그리고 선거 무효

2007년 말 TRT 지지자들은 새로운 정당인 '민중의 힘(PPP)'을 만들었다. PPP는 탁신 지지 세력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쿠데타 이후 치러지는 첫 총선인 2007년 12월 총선에서 PPP의 승리를 막는 일이 '국가 안보' 차원의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PPP는 탁신의 정책을 고스란히 계승했고, 결국 12월 23일 치러진 선거에서도 승리하였다. 2008년 1월 친탁신 내각이 꾸려졌고, 얼마 후 탁신이 슬그머니 귀국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PAD는 다시 시위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헌법재판소 판결로 2008년 7월 재산 내역을 잘못 제출한 친탁신 내각의 보건 장관이 해임되었다. 헌법재판소는 8월 신속한 재판을 열어 내각을 이끌던 사막 총리가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에 나가 수당을 받아 공무원의 규정 외 수입을 금지한 헌법을 위반했다며 총리 해임을 결정했다.

탁신 반대 세력들은 2001년, 2004년, 2006년, 2007년까지 연거푸 네 차례에 걸쳐 선거에 패배하자, "1인 1표제를 버리려고 계획"했다. 그들은 탁신이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둔 것은 돈이 쓰였기 때문"이라며 "시골 사람들은 너무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아서 몇 백 바트면 표를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의회가 국민을 대표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PDA는 재산에 따른 선거권을 거론하면서 전체 의석의 70%를 지명직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군대는 내각이 아니라 국왕의 지휘를 직접 받아야 하며, 정치권의 부패나 국왕불경죄를 결제할 수 있는 '항구적인' 권한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망가진 민주주의와 사법부가 임명한 정부

2008년 8월 말 PAD 지도부는 총파업을 선언했고, 공공부문 노조 43개가 파업 호소에 동참했다. 대학 교수들이 거리로 나왔고, 대학생 단체들이 시위에 나섰다. 재계와 경제 단체들도 반탁신 요구를 내걸고 거리로 나왔다. PPP 정부가 무너질 지경에 이르자, 탁신은 다시 망명길에 올랐다.

친탁신 세력들도 결집하기 시작했다. 2006년 출범한 '독재반대 민주연합전선'(UDD)은 '레드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PAD가 입으로는 민주주의와 도덕성 그리고 법치를 말하지만 사실은 군부 쿠데타의 지지로 존립하고 있으며, 선거로 선출된 합법적 정부의 전복을 획책하고, 공공 자산을 악용하고, 처벌을 피해 법을 무효화시킨다"고 주장했다.

PAD가 '군주제 수호'를 주장하고 '1인1표제'에 도전한 결과는 너무도 명백했다. 한편에서는 옐로셔츠를 입고, '군주제 수호'를 주장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레드셔츠를 입고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고 있었다. (…) 군주제에 반대하는 쪽과 민주주의 반대하는 편의 거리 투쟁은 이제 서서히 종반부로 치달았다. 그간 PAD, 군부, 사법부, 재계 단체들은 친탁신 정당인 PPP를 몰아내고 새 정부를 세우자는 데 합의하고 결정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리고 2008년 말 헌법재판소는 PPP 정당의 해체를 결정했다. PPP는 새로운 정당인 푸에아타이(PT)를 만들어 새 출발을 기약했지만, 재계에서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타이상공회의소 회장은 "국제적 신뢰와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연립내각이 출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2008년 11월 15일 국회 투표에서 민주당의 아피싯 웻차치와가 총리로 선출됐다.

<탁신>의 저자들은 "1997년 외환 위기 시점에서 보면, 민주당이 이끄는 연립내각은 증가하는 정치적 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해 군부의 지지에 의해 성립됐지만, 이제 다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재계에 의해 민주당이 기용되었다"고 평가했다.

이제 분노의 불길은 UDD, 즉 레드셔츠에게서 불타올랐고, 그 불길은 2009년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전국적인 시위를 거쳐 2010년 군대와 방콕 시내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제2판이 필요했던 이유, 민중의 영웅이 된 탁신

<탁신>의 필자인 파숙 퐁파이칫과 크리스 베이커는 부부 사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퐁파이칫은 타이인이고, 베이커는 영국인이다. 영어로 된 타이 관련 저서를 몇 권 냈고 이 때문에 타이의 지식인들 사이에 인지도가 높다. <동아일보> 기자인 정호재가 옮긴 이 책의 표지를 보면 탁신이 "민중의 영웅인가, 부패한 정치인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져 있다. 저자들이 내놓은 답은 '둘 다 맞다'이다.

저자들의 생각이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2004년 영어로 쓴 이 책의 초판이 나왔을 때 저자들은 "부패한 정치인"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듯이, 저자들은 이 책의 제2판을 내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5년간의 정치 상황이 너무도 특별했기에" 확장 증보판이 나오게 되었다.

왜냐하면 "다른 한쪽", 즉 노동자·농민·빈민들이 탁신을 "구시대 엘리트들에게 박해받는 민중의 영웅"으로 여기면서 타이의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9년 나온 재판(再版)은 "더러운 정치인이기도 하지만, 영웅이기도 하다"고 결론내리면서 "현실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엄청난 규모의 돈을 벌기 위해 정계로 진입한 비즈니스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는 민중의 지도자로 등극했습니다. 여기에는 소득과 부(富) 그리고 권력의 편중에서 야기된 타이 사회의 부조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민중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습니다. (한국어판 서문)

정주영인가, 노무현인가, 이명박인가?

<탁신>의 전반부를 읽을 때는 정주영이 떠올랐다. 1992년 대통령 선거하면 김영삼과 김대중을 기억하지만,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도 중요한 후보였다. 선거 결과는 김영삼 997만 표, 김대중 804만 표, 정주영 388만 표였다. 공산당 합법화를 언급하고 아파트 반값을 약속한 정주영의 모습이 탁신과 겹쳤다.

하지만, 한국은 대통령중심제고 타이는 의원내각제다. 승자독식의 대통령중심제에서 정주영이 얻은 400만 가까운 표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결국 1992년 통일국민당 창당 및 대표, 제14대 국회의원(전국구) 당선, 제14대 대통령 선거 출마로 이어지며 무서운 속도로 꽃피우던 그의 정치운(政治運)은 1993년 통일국민당 탈당 및 국회의원 사퇴로 막을 내렸다.

2004년 이후부터를 다루는 <탁신>의 중·후반부를 읽으면서는 노무현이 생각났다. 서민들을 열광시키고 변화와 개혁의 열정으로 국민들을 파고들던 '포퓰리스트' 노무현. 그러나 거기까지다. 노무현은 당선되자마자 공약은 공약일 뿐이라며 자신의 약속에서 한발 빼기 시작했다. 공약은 표를 얻기 위한 것일 수단이라는 발언으로 지지자들과 국민들을 정치적 허무주의로 내몰았다. 그리고는 이회창도 공약하지 않았던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탁신은 당선되자 농민과 빈민을 위한 공약부터 바로 밀어붙였고, 이게 탁신의 정당이 총선에서 연거푸 4연승을 거두는 밑거름이 되었다. 공약과 실천의 일치와 불일치는 탁신과 노무현의 차이점이다.

<탁신>의 책을 덮고 나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났다. 반(反)탁신 운동의 핵심이었던 언론 재벌 쏜티는 탁신의 동지였고, 탁신 정부 1기 때의 정책으로 언론 재벌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다가 정치적 입장이 갈리면서 배를 갈아타고 PAD와 군부를 부추겨 탁신 정부를 몰아내는 데 앞장선다. 그리고 지금 타이 정계에 막강한 입김을 과시하고 있다.

정주영의 분신(分身)으로 여겨지던 이명박은 정주영의 정치적 몰락이 분명해지던 무렵 배를 갈아타 김영삼의 민자당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고, 결국 2007년 대선에서 대통령 자리를 거머쥐었다. 정치 비전은 이명박이 정주영에 비길 거리도 못됐으나, 정치 감각은 이명박이 정주영을 앞섰던 것이다.

정치는 더러운 진흙탕이 아니다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다시 짚어보니, 지지율 80%로 임기를 마감하며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브라질의 룰라와 탁신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민중을 열광시키는 데 능했고, 그 열광을 선거에서의 정치적 지지로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았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핵심은 노동자·농민·빈민을 위한 공약과 이를 현실에서 실천해내는 정치력이었다.

지금까지 정치인은 출세주의자·정상배·기회주의자와 동일시되었고, 정치는 더러운 진흙탕으로 비유되었다. 그와 함께 선거는 독재자의 치장물로 인식되거나 정상배들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4년에 한번 유권자들한테 굽실거리며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관문으로 이해되었다. 또한 대중은 권력이나 선심공약, 금권에 휘둘리어 투표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인식되었다. "민도가 저러니 어쩔 수 없다"라는 지적이 선거철마다 유행가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민의가 어떻게 선거를 통해 표출되며, 선거가 한국 사회를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화시켰느냐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한민국 선거 이야기>(역사비평사 펴냄)의 머리말에서 저자 서중석 교수가 한 말이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선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코 상식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탁신>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이보다 더 잘 요약한 표현도 없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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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서울 하얏트 호텔 라운지

투명한 푸른 눈이 반짝거린다. 스티글리츠는 신나는 일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이정우(당시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의 수첩에 명단을 적어 나갔다. 유명 학자들 사이에 소로스의 이름도 끼었다. 지금은 소로스가 대단한 혜안의 소유자라는 걸 알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나에겐 잉글랜드은행을 물 먹인 투기꾼이었을 뿐이었다. 그는 내 눈 속의 의아함을 읽었다는 듯, "놀랄 만한 상상력을 가지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이지요" 하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가 바로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아니 그런 명성보다는, 모든 걸 잃어버린 심정으로 버클리와 케임브리지를 떠돌 때, 나에게 다시 경제학에 희망을 걸게 한 사람이기에 더 반가웠다. 그가 한국 대통령의 해외경제자문단장을 맡기로 했다. 그가 지금 적고 있는 이름은 자문단의 위원들이다.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워회(CEA)보다도 화려하면 화려했지 결코 못하지 않은 이름들이다.

이틀 전 스티글리츠는 당시 대통령 당선인 노무현을 만났다. 동석했던 이정우에 따르면, 두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스티글리츠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을 때(2001년), 내가 한 언론에 최대한 쉽게 쓴 스티글리츠 이론 소개를 당선인은 들고 있었다. 당선인이 해외경제자문단장을 제안하자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즉각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한국을 잘 알았고 또 좋아 했다.

<동아시아의 기적>(1994)은 스티글리츠가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부총재)로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성장의 비결을 정리한 책이다. 그는 외환 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정책, 특히 고금리 정책을 맹비난했다. 비슷한 국제기구에 있는 사람 사이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스티글리츠는 클린턴의 경제자문위원장 시절부터 미국이 한국의 금융 시장 개방을 강요하는 데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에도 그의 정반대에는 오바마의 경제자문위원장인 서머스가 서 있었다. 스티글리츠는 강요된 금융 개방으로 한국이 위기를 맞았고 미국은 IMF를 통해 또 한 번 한국을 죽이고 있다고 했다.

요즘 말로 하면 경기 증폭적(pro-cyclical, 대부분 '경기 순응적'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의미나 어감으로 봐서 '경기 증폭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counter-cyclical'도 '경기 역행적'보다는 '경기 완화적'이 낫겠다) 정책, 즉 경제 위기에 고금리 처방을 써서 경기를 더 악화시키는 잘못된 정책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IMF와 월스트리트 그리고 미국 재무성, 즉 워싱턴 컨센서스의 3주체를 맹비난하던 그는 결국 세계은행 부총재직을 사임해야 했다. 이번 금융 위기가 터지자 그는 곧바로 "위선"이라는 칼럼을 썼다. 한국에는 고금리를 강요했던 미국이 자기 나라의 금리를 제로로 낮추는 것이야말로 위선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스티글리츠는 한 책에서 한국이 바라봐야 할 곳이 있다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모델이지 결코 미국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제 소개할 <스티글리츠 보고서>(동녘 펴냄)에도 나오지만, 그는 "자유무역협정(FTA)이나 GATS(WTO의 일반 서비스 협정)를 통한 금융 개방을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책에서 그는 자신이 경제자문위원장 시절에 통과된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투자자 국가 제소권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결코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스티글리츠가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해외자문단장이 되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중에 이정우에게 들은 바로는 청와대 내부(그리고 재정경제부)에서 (이번 위기의 주범인) "월스트리트가 싫어할 것"이라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알리고 사과하는 편지를 보낼 시점도 놓쳐 버렸다. 만에 하나 다시 그를 만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


▲ <스티글리츠 보고서>(스티글리츠위원회 지음, 박형준 옮김, 동녘 펴냄). ⓒ동녘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스티글리츠위원회가 펴냈다. 2008년 리만브러더스 파산으로 세계 금융 위기가 본격화하자 유엔(UN)은 스티글리츠를 위원장으로 하는 전문가 위원회를 소집했다. 나도 이름을 아는 오캄포나 굿하트 등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 총재나 관료 그리고 기업가들이 참여했다.

2009년 6월 유엔의 192개국은 만장일치로 <스티글리츠 보고서>를 채택했다. 그해 9월 영문판이 완성됐고 이제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 나는 우선 역자(박형준 진보금융네트워크 상임연구위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나 스스로 번역하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이유, 또 게으름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이렇게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에 번역이 나왔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아직 세계는 위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G20 정상회의가 계속 열리면서도 뚜렷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패닉 상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반 국민이, 아니 제 아무리 경제학자라고 해도 10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사태를 꿰뚫어 보고 방향을 제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앞으로도 10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혼돈의 시기에 이 책은 훌륭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당연히 이 책은 스티글리츠 혼자 쓴 것은 아니다. 네 개의 분과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보고서는 완성됐다. 그러나 그 옛날 <동아시아의 기적>이 그랬듯 <스티글리츠 보고서>도 그의 체취를 아주 짙게 풍기고 있다.

현재의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 근본주의(Market Fundamentalism, 우리는 시장 만능론이라고 흔히 부른다)의 파탄"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효율적 자본 시장 이론에 입각한 금융 자본 자유화, 증권화가 불러온 파탄이다. 미국 재무성과 IMF 등 국제기구에 가득 찬 경제학자와 관료들이 빚어낸 명백한 "인재"이다.

스티글리츠가 다른 책 곳곳에서도 강조하듯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이유인 정보경제학으로 정보의 불완전성, 비대칭성으로 가득 찬 시장은 언제나 실패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외부성, 그리고 유사외부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국가의 규제가 필요하다.

이미 <세계화와 그 불만>으로 시작된 세계화 시리즈에서 논파했듯이 금융 세계화는 시장 실패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이번의 세계 금융 위기는 그의 주장을 여실히 증명했다. 시장에서 기업은 파산하는 것으로 자신의 실패를 책임진다고 하지만 거대 금융 회사나 기업이 파산하면 시스템 위기로 이어진다.

따라서 세계화한 외부성(global externality)을 교정하고 글로벌 공공재(global public goods)를 공급하는 것이 이번 위기에 대한 해법이다. 또 위기 시의 모든 정책은 케인스의 주장대로 총수요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글로벌 총수요가 증가할 수 있도록 정책을 짜야 한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또 하나의 원칙이다.

그러나 글로벌 규제와 글로벌 공공재의 공급은 한 나라가 해결할 수 없다. 세계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IMF와 같은 국제기구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외부성을 무시하고 공공재를 부정한다. 이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문장처럼 "세계의 (정치 등) 조정 기구가 만들어지기 전에 금융과 경제가 먼저 세계화했다". 따라서 유엔 192개국이 참여하고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기구, "세계경제협력이사회(GECC, Global Economic Coordination Council)"가 만들어져야 한다.

IMF가 제 역할을 하려면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지배 구조부터 바꾸기 시작해서 새로운 경제 철학을 갖출 수 있도록 철저한 개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이나 최빈국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그리고 그럴 의사도 전혀 없는 G20은 그저 아시아와 중동 몇몇 국가의 IMF 쿼터를 5~6%로 늘리는 것을 '지배 구조의 개혁'이라고 부르고 있다.

G20의 논의에서 발전의 면모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생각에 가장 큰 발전은 경기 증폭성에 대한 인식이다. 그동안 주류 경제학은 민스키와 그의 제자들(주로 포스트 케인지언)의 주장을 간단히 무시했다. 첫째, 버블의 존재는 증명할 수 없으며, 둘째 존재한다고 해도 터질 때까지 알 수 없으며, 셋째 사전에 터뜨리는 것보다는 터진 뒤 수습하는 쪽이 비용이 덜 든다는 것이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국제기구 학자들의 주장이었다. 이런 얘기는 우리 귀에도 익숙한데 우리나라의 부동산 공급론자, 그리고 기획재정부나 국토해양부가 줄곧, 지금까지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 와서 이런 주장을 강하게 내뱉을 간 큰 경제학자는 별로 없지만(속으론 시간이 지나기만 기다리겠지만)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최근에 쓴 글에서 부동산 버블은 저금리 등 금융 당국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모기지 제도 때문이었다고 변명했다. 스티글리츠는 경제학이 이런 상태에 머무는 한, 그리고 이 책이 제시하는 진정한 개혁을 하지 못한다면 위기는 또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경기 증폭성은 여러 측면에서 겹치고 또 겹쳐졌다.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면 경기는 증폭된다. 지금 한국이 그렇다. 2009년에 엄청나게 풀린 돈들이 그래도 경제 상황이 나은 동아시아로 몰려들고 있다. 또 다시 주가는 오르고 사람들은 낙관에 빠진다. 그러나 우리가 2008년 겨울에 이미 경험한 것처럼 이 돈이 빠져나가면 주가는 급락하고 더 나쁜 경우 또 다시 달러 걱정에 시달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의 자본 적정성 기준 등 건전성 규제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은행이 담보로 잡은 자산의 가치가 올라가면 대출 여력이 늘어난다. 이른바 레버리지가 한없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순간 반대 방향으로 수축할 수밖에 없다. 신용 평가도 여기에 한 몫을 한다. 사전 예측으로 위기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가 급락한 뒤에야 평가를 한꺼번에 몇 등급씩 내리니 경기는 더 빠른 속도로 움츠려든다.

이제 IMF도, 그리고 G20도 이 점은 인정하고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개별 금융 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감독 정책이 오히려 경기 증폭성을 강화하므로 호황기에는 높은 자기 자본 비율을 적용하고 불황기에는 낮은 자기 자본 비율을 적용하는 완충 자본을 설정하고, 시장 가격으로 자산을 평가하면 호황기에는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과대평가하고 불황기에는 과소평가하게 되므로 공정 가격 개념을 도입하고 직접적으로 레버리지 비율을 규제하게 될 것이다.

또한 금융은 외부성이 강하게 작용하므로 BIS 규제가 양호한 금융 기관도 파산할 수 있다. 이러한 전이 위험을 막기 위해 최저 자기 자본 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후순위채 등을 제외한 양질의 자본(Core Tier1 Capital)을 자기 자본으로 규제하고 단기적 유동성 관리 평가 기준으로 유동성 커버리지 비율을, 장기적 유동성 관리 평가 기준으로 순안정자금 조달 비율을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도 시장 가격 평가를 제외하고 대체로 같은 방향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 ⓒ뉴시스
이들과 <스티글리츠 보고서>의 결정적인 차이는 자본의 이동에 관한 견해에서 나타난다. 보고서는 외환가변유치제나 무이자 증거금의 부과 등 자본의 이동, 특히 자본의 유입을 제한하는 정책(이른바 "과속 방지턱")을 각국의 특성에 맞게 신축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경우 이런 정책 공간의 확보는 대단히 중요하다. 보고서는 자본 이동의 속도를 얼마간 늦출 수 있는 금융 거래세(토빈세와 케인스세)도 보완적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 하나의 차이는 대형 금융 기관에 대한 것이다. "너무 커서 실패할 수 없는(too big to fail)" 상황, 즉 대마불사에 이른 금융 기관은 당연히 도덕적 해이에 빠진다.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글로벌 외부성을 특히 강조한다. 이들 기관에게 구제 금융을 제공해서 살려 놓으면 세계의 돈은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바로 2008년 말 상황이다. 건실한 정책을 사용하던 개발도상국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피해를 입는다.

따라서 각 금융 업무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하고 특히 예금보험이라는 국가 보증을 받는 은행에 대해서는 위험 감수 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해야 하며 규모에 따라 규제는 더 강해져야 한다. 보고서는 규제의 범위가 포괄적이고 일관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CDS(신용부도스왑)는 파생상품이지만 사실상 보험의 기능을 하므로 보험감독위원회에서도 규제를 해야 한다.

G20은 이 문제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 기관"의 문제로 취급한다. 2010년 1월 오바마는 금융회사의 대형화와 위험 투자를 직접 규제하는 '볼커 룰'을 제안했다. 그러나 입법화 과정("도드-프랭크법")에서 시스템 정리 기금(Systemic Dissolution Fund)은 삭제됐고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규제한 조항은 'Tier1 자본'의 3% 이내로 완화됐고 장외파생상품 취급을 금지하도록 한 조항도 완화됐다. 이런 미국의 상황은 G20의 논의에도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간접적으로 규모의 제한을 꾀하는 은행세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금융활동세를 제안할 것인지가 관심일 정도이다. 만일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은행세 논의에 불을 붙인다면 그건 평가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막상 국내에서 기획재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을 통과시켜 금융 기관 몸집 불리기에 일로매진하고 있다. 한국 기획재정부는 금융 위기 이전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병원이 금융 위기가 터진 후에도 "물에 들어가야 수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호언했을까?

서울 G20 정상회의의 최대 쟁점은 환율 문제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답만 말한다면 고정환율제든, 변동환율제든, 아니면 관리환율제든, 소프트 달러페그든 환율 제도는 각국이 택할 일이다. 자본 이동과 변동환율제가 시장 근본주의자들의 처방이지만 이 둘을 택한다고 해서 '트릴레마(trilemma)의 공식'처럼 국내 금융 정책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중국이 변동환율제를 택해서 어느 순간 버블이 붕괴하고 급격한 경기 위축을 겪는다고 상상해 보라. 그것은 더 끔찍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환율이 아니라 글로벌 불균형의 본질을 찌른다. 1997~98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IMF의 조건(conditionality)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은 바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은 외환 보유고를 가능한 늘리려고 한다. 자국 통화가 국제 통화가 아닌 나라에서 외환 보유고는 곧 위기에 대한 "자가 보험(owned insurance)"인 것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그 나라의 국내 수요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글로벌 총수요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아서 모두에게 나쁜 상황을 불러온다. 한편, 미국의 처지에서도 달러 기축통화를 유지하는 비용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국내의 침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미국이 다른 나라의 통화를 동시에 절상시키기 위해서 대규모 양적 완화(quantitive easing)를 하는 것은 스티글리츠가 보기에 상황을 악화시키는 악수일 뿐이다. 미국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으므로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자산 버블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국제 통화 시스템 고안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다. 현재의 미국처럼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가 글로벌 총수요와 유동성 수요를 감안하지 않고 자국 경제를 위한 금융 정책을 사용하면 세계 금융 시스템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느 한 나라의 통화가 아닌 글로벌 기축 통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국제통화증서(ICC, Internation Currency Certificates)"를 새로 만들든 아니면 기존의 SDR을 대폭 확대하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든 케인스가 제안했던 국제청산동맹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구상이다. 이것이 총수요를 유지하거나 늘리면서 불안정성을 제거하는 근본적인 방향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건 미국이 달러의 특권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지역 통화 체제의 확대를 또 하나의 가능한 경로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치앙마이협정을 확대해서 새로운 준비금제도를 만든다면 아시아에 새로운 통화 체제가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지역 통화 체제가 다시 새로운 국제 통화 체제로 모이는 '진화적 경로'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G20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아직 없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 등이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통화 체제를 주장하고 있으니 내년에는 이런 방향의 구상이 제시될 것이다. 다만 한국이 이번에 새로 내놓은 '금융 안전망' 의제가 치앙마이협정의 확대 개편 쪽이라면 파리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모든 주제에 관해서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에 대한 고려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다. 예컨대 보호 무역주의에 관한 논의도 선진국의 보조금을 문제 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위기 시의 각종 보조금, 예컨대 미국 경기 자극 패키지에 들어 있는 "바이 아메리카"는 명백한 보조금이며 불공정 무역이며 덤핑 판정이나 상계관세야말로 문제가 심각한 보호 무역 조치라는 것이다.

<스티글리츠 보고서>의 또 하나의 특징은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보고서는 글로벌 생태 케인스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G20 정상회담이 새로운 의제로 채택한 "개발"이 이런 방향의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진전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2010년 서울 어느 호텔, 그리고 한미 FTA

내용이 거의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G20 정상회의 의제는 그 논의 결과야 어떻든 간에 대체로 방향 자체는 맞다.

<스티글리츠 보고서>가 질타하고 있는 시장근본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국내 정책(예컨대 자본시장통합법이나 금융서비스 완전 개방, 의료 민영화 등)과는 다행히도 상당한 거리를 보이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금년 초에 선물환규제를 도입한 국제경제보좌관 신현송의 영향력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역시 이명박"이라고 할 만한 사건은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도 벌어질 예정이다. 이 기간 동안 발표할 한미 FTA 재협상 결과가 그것이다. 한미 FTA야말로 <스티글리츠 보고서>가 질타하는 시장 근본주의, 금융 서비스 시장 개방의 독소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위기를 통해 얻은 교훈에 비춰보면, 국가의 권한을 제한하는 (한미 FTA와 같은, 인용자) 협정들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 특히 WTO의 금융 서비스 협정 아래서 가능한 합의들이 강제된다면 각 국가들이 성장, 공평성, 안정화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규제 체계를 개선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무역 협정들을 재검토해야 한다."

잘 알다시피 한미 FTA는 WTO의 각종 국제 협정을 능가하는 나프타플러스 협정, 또는 골든 FTA이다. 우리가 금융 안정성을 위해 확보해야 할 정책 공간을 완전히 봉쇄하려는 것이다. 이미 발효된 협정이라도 재검토해야 할 그런 시점에 우리는 쇠고기와 자동차를 더 넘겨주면서까지 미국의 금융 위기를 이 땅에서 재현하려고 국가의 온 힘을 경주하고 있다. G20 정상회의에서 아무리 빛나는 제안을 한들 무슨 소용일 것인가?

사실 현실의 G20 정상회의는 미국 중심의 거대 금융 자본, 그리고 강대국의 이익이 관철되는 장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티글리츠 보고서>의 개혁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누가 뭐라 해도 확실한 것은 이런 방향의 개혁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는 한 현재의 위기가 계속되거나 조만간 또 다른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역자와 출판사에 쓴 소리

앞서도 말했듯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혼돈의 시대에 우리 국민 모두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특히 미래를 꾀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기간,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이 책은 빛을 발할 것이다. 해서 하는 말인데 지금이라도 책의 교열과 교정 그리고 오역을 바로 잡기를 바란다.

거시 경제가 모조리 "겨시 경제"로 되어 있어 볼 때마다 짜증을 자아낸다. 수많은 주제를 다루느라 논증이나 실명 비판을 생략한 책이라 의역하지 않으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거나 또는 좋은 말만 나열한 책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정도라면 원문에 가깝게 문장을 손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때론 용어 자체를 잘못 번역한 것도 있고(예컨대 "national treatment"는 "내국민 대우"라는 통상 용어이다) 심지어 오역을 넘어 반역을 한 곳도 있다. 예컨대 "이러한 준비 통화는 대부분 경화로 유지되기 때문에, 곧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들의 재원이 이들 국가로 이전되는 것을 의미한다"(278쪽)가 그렇다. 미국으로 재원이 이전된다는 게 올바른 번역이다.

또 281 쪽의 "그런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그저 각국은 거시 경제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율성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도 반역에 속한다. 실제 내용은 자율성을 갖게 되리란 기대도 충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른바 '트릴레마'를 염두에 두고 의역을 하다 보니 생긴 실수이다.

이 책은 그런 이론적 명제들을 넘어선 복잡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일이 영문을 대조하면 훨씬 더 많은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신속한 번역에 또 한 번 감사들 드리지만 한 번 더 땀을 흘려주는 수고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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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쓰레기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끝나지 않은 추락>(장경덕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을 읽는 내내 이 나라에는 온통 'G20 광풍'이 불고 있다. 그 광란의 바람은 이 책의 제목대로 끝나지 않은 추락을 준비하는 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스티글리츠의 경고와 충고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이런 상황은 펼쳐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도대체 이명박 정권의 정신상태가 틀려먹었다. 이 정권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자신을 위한 선전장으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현실에서 우리 국민들은 오늘날 세계 경제가 어디에 고장이 났고, 그걸 어떻게 고쳐야 우리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되고 있다.

더군다나 "악취가 나니 음식물 쓰레기 배출하지 마라"고 조처를 취하는 정부 기관의 후진성을 대하게 되면 국민적 모멸감마저 느끼게 된다. 아예 "밥도 먹지 마라"고 그러지. 쓰레기가 나오면 신속하게 치워야 그게 진정한 선진국이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누구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우려하는 것은 음식물 쓰레기보다 더한 악취가 나는 이러한 자세와 유치한 조처들이다. 그게 진짜 쓰레기다. 그것부터 배출하지 말아야 세상이 상쾌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오늘날 세계 경제가 고통을 당하고 신음하고 있는 진정한 원인에 대한 진단과 그 대처 방안에는 고민하지 않고, "의장국 역할"이라는 자리가 주는 환상에 취해 뭔가 대단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양 하는 것도 가관이다. "성공적" 개최라는 단어에서 "성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노점상을 내쫓고 소득 불평등 시정 요구를 하는 시위를 막고 런던, 피츠버그, 토론토에서도 이미 있었던 세계 시민운동의 국제적 연대를 차단하는 것으로 그 성공을 도모하려는가? 그렇다면 그 성공은 과연 누구를 위한 성공인가?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 더는 없다


▲ <끝나지 않은 추락>(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장경덕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북스
노턴(Norton) 출판사에서 나온 스티글리츠의 책을 손에 넣은 지 얼마 뒤, 국내에 번역판이 이미 나온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라는 이름의 무게나 평판이 물론 한몫 했겠지만 그렇게 빠른 속도로 그의 책을 우리말로 소개한 작업이 있었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의 책이 솔직하고 날카롭게 정리해낸 논지들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진 가치만큼의 주목과 평가가 이뤄지지 못한 점이었다.

본래 "자유 낙하"라는 뜻을 가진 그의 책 제목 "Free Fall"은 어떻게 해도 막아내기 쉽지 않은 추락, 또는 그가 표현한 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하강(a decline without an end in sight)"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더는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워진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에 대한 정직한 자기고백에서 대안은 출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2008년에 충격적으로 겪었던 미국 경제의 위기와 거품 파열이 늘 있어왔던 경기 순환의 일시적 현상이라고 여기면 큰 코 다친다는 것이다. 이제 미국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이전과 같은 동력을 가진 수준으로 회생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논점을 가진 그의 책에서 스티글리츠는 자신이 단지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를 파헤치고 대안을 내놓는 작업에만 그 관심이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대하는 시선, 생각, 이론에 있다면서 "시장의 자율성", "시장의 자기 조절 능력" 등에 의존하는 경제학은 폐기되어야 한다면서 일종의 이론 투쟁을 선포한다.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위기에서 진정한 교훈은 배우지 못한 채 적당히 땜질로 그 순간을 넘기고는 또 다른 위기를 촉발할 조처나 정책을 되풀이하고 만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시장의 자기 조절 작용을 전제로 하는 미국 모델에 따른 세계 경제에서 이미 수차례 "시장의 실패"를 경험해왔는데 뭘 더 이상 이런 이론과 모델에 신뢰를 보내는가라고 일갈한다. 그는 시장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규제에 대대적인 반발을 하는 기업들이 막상 자기들의 처지가 힘들어지면 "정부, 너는 뭐하는가?" 하면서 손 벌리는 도덕적 해이와 이중적 태도를 지닌 점을 비판한다. 그는 이익은 자기들이 챙기고, 부담은 정부 즉 납세자인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파렴치함과 욕심 사나운 거대 금융자본에 대해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미국 자본주의의 최대 책임은 규제받지 않고 덩어리를 키운 거대 금융 기관의 방만한 투기에 있으며, 이를 감독하고 규제할 책임이 있는 정부와 연방은행의 책임 방기, 그리고 이들 금융 기관에 대한 평가를 기만적으로 해온 신용평가기관이 일차적으로 져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놓아둔 채 개혁 조처에 미적거려온 전 연방은행 총재 그린스펀 같은 경우는 그 책임감을 제대로 지지도 않고 뒤늦게 "시장의 자동 조절 기능에 대해 자신이 다소 오판을 했다"는 식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

스티글리츠의 미국 자본주의 문제 분석은 매우 일상적인 현실을 놓고 알기 쉽게 풀어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그것은 이 책이 가진 상당히 놀라운 설득력이다. 미국 자본주의 경제를 대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건 마치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는 것 같다. 노련한 의사가 그 병인과 대책을 짚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경제학적 전문 용어를 동원하지 않고도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경제적 현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경제학자의 소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절감하게 된다.

금융 자본의 영향력이 일방적으로 커지면서 문제가 생겨도 정부가 알아서 구제해주겠지 하는 식으로 위험도 높은 투기를 함부로 하는 행태를 지적하는 대목에서나, 공적 자금을 투입한 이후 고위급 임원들은 보너스까지 챙기고 일반 노동자들은 집단 해고되고 있는 상황을 자세히 분석하고 전달하는 대목에서나 우리는 미국이나 우리나 다르지 않는 상황에 있음을 보게 된다. 부자 감세가 투자가 아니라 투기로 이어지고,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재정 악화로 연결되면서 국민들에게 그 부담이 넘어가는 현실도 미국과 우리가 다르지 않은 것을 목격하게 된다. 1999년 금산분리 법안인 '글래스-스티걸 법안(Glass-Steagall Act)'의 폐기를 통해 금융자본의 몸집이 커지고 이들에 대한 규제 장치가 해체되면서 위험도가 그만큼 높아져 결국 미국 경제가 파국을 맞이한 과정에 대한 분석도 우리에게 실감있게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주택 신용 대출을 근거로 만든 증권 상품들이 여러 가지 포장을 통해 파생상품화해서 세계 경제에 거래된 결과, 서브 프라임 위기가 전 세계적 경제 위기로 이어진 구조적 과정에 대한 그의 분석도 현실감 있게 우리의 눈을 틔워 준다. 결국, 시장의 자유를 내세워 자본의 방만한 투기가 규제되지 못한 끝에 1년에 20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의 집을 잃고 마는 상황에 이르게 되고, 이것이 미국 경기 전반에 충격파를 몰고 왔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그 위기의 늪으로 끌고 간 것에 대한 그의 엄중한 논고는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일깨워준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스티글리츠는 세계 금융 시장의 구조 개혁과 미국 달러에만 의존하는 상황을 극복하는 여러 대안을 내놓고 있는데 우리로서는 무엇보다도 그가 부자 감세 정책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게 된다. 부의 불균형 분포가 일반 국민들의 소득 감소와 소비시장의 위축으로 나타나 결국 경기 하강을 촉진하고 경제 위기를 막아낼 방법을 없게 하고 만다는 진단과 분석은 정부가 국민들의 삶에 대한 사회경제적 안전망 확보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진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에 더해 그는 보험과 복지 정책의 확장을 위한 정부의 재정 지출과 이를 위한 부의 재분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주목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가 겪는 경기 불안정의 밑바닥에는 투기적 금융 산업의 팽창에 비해 초라한 소비시장의 현실과 이로 인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의 저하가 존재하고 있다는 그의 분석은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요한 것은 보통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들의 소비를 통한 삶의 질 향상이 새로운 투자를 가져오고, 그에 기반을 둔 일자리 창출과 경기활력의 강화가 뒤따른다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국민들의 사회적 안전을 위한 각종 책임을 지는 일이라는 그의 논지는 신자유주의 이후의 미래를 위한 지침이 된다.

미국 자본주의의 동력 상실 이후의 세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함께 토론할 가치가 있다. 여기서 그 대목까지 거론할 만한 여유는 없고,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감동했던 것은 그가 세계은행의 중요 책임자 위치에 있으면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에 깊은 관심과 책임을 느낀 학자라는 점과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정직하고 날카롭게 파헤치는 학자적 양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나로서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당시 세계 금융 자본주의 질서를 분석했던 시기에 <파이낸셜타임스>의 마틴 울프, 하버드 대학교의 제프리 삭스, 그리고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글에 많은 도움과 통찰을 얻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때의 미국 금융 자본의 약탈성과 투기성은 오늘날 자신의 붕괴를 자초한 기반이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진단과 전망은 더 이상 혼란이 없을 것이다.

G20이 이런 논점과 시선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읽고 대안을 마련해나가지 않는다면, 그건 과거의 실패를 다시 반복하는 일이자 또 다른 위기를 새로 준비하는 과정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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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는 2008년 금융 위기로 확인된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우리 안에 가두는 갖가지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G20 정상회의가 성과 없는 말잔치에 그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우선 지난 30년간 세계를 지배하며 결국 금융 위기를 낳은 '자유 시장 경제학'의 위세가 여전하다. 특히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의제를 제기할 한국, 미국 등은 '시장 만능' 환상을 버리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경제학자, 시민단체가 세계 금융 안전망의 선결조건으로 꼽는 토빈세를 둘러싼 논의는 이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박사가 제기한 토빈세는 '금융 거래 세금(Financial Transaction Tax)'의 다른 이름으로, 투기 자본의 활동을 억제할 목적으로 외환 거래에 매기는 세금이다. 이렇게 외환 거래에 세금을 매기면 특정 국가의 환율이 널뛰기를 하면서 자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일도 막을 수 있다.

또 토빈세를 통해서 마련한 재원으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할 수도 있다. 토빈세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은 "각국이 자국의 금융 시장에서 발생하는 외환 거래의 0.5%만 세금으로 거둬도 매년 6500억 달러(약 710조 원)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투기 자본에 족쇄를 채우면서 경제 분배도 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 시장 지상주의를 강조해온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토빈세 도입 논의를 꺼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되레 이 자리에서는 그간 '환율 조작국'으로 미국의 표적이 돼 온 중국 등을 겨냥해 환율을 시장에 전적으로 맡기는 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이런 식이면 G20 정상회의는 인류에게 또 다른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 ⓒ부키
이런 착잡한 상황에서 <사다리 걷어차기>(2002년), <나쁜 사마리아인들>(2007년) 등으로 자유 시장 경제학의 허점을 비판해온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경제학과)가 돌아왔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이미 이 책은 미국, 영국 등에서 호평이다. 특히 영국의 <가디언>은 지난 9월 29일 사설에서 이 책을 거론하며 영국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 대표에게 장하준 교수와 점심을 함께 해보라고 권했다. 2008년 금융 위기로 고사 직전인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을 장 교수와 함께 모색해볼 것을 직접 권유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대다수 한국의 정치인도 이 책은 모든 걸 제쳐두고 읽어봐야 할 책이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환상을 폭로하는 장하준 교수의 명쾌한 해설을 따라 읽고 나서도 "시장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이라면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 봐도 좋으니까.

'프레시안 books'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중요성을 감안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영국에 있는 장하준 교수의 인터뷰 동영상을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이 동영상은 책 출간 전에 출판사가 진행한 장 교수와의 다섯 시간 분량의 인터뷰 중 일부로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서 <프레시안>에 최초 공개한다.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부터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까지 그들이 말하지 않는 스물세 가지 진실 중에서 열두 개를 꼽아서 인터뷰 동영상과 함께 주요 내용을 공개한다. '프레시안 books'는 다음 호(15호)에서 이 책에 대한 정승일 박사(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서평도 실을 예정이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경제학). ⓒ프레시안(손문상)

두 번째 진실 :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그들의 거짓말

"시장 경제에서는 생산성이 높으면 그만큼 보수를 많이 받아. 똑같은 일을 하고도 스웨덴 사람이 인도 사람에 비해 임금을 50배쯤 더 받고 있는 현실은 모두 생산성의 차이를 반영한 결과지. 인도 같은 곳에서 최저 임금제를 도입하여 인위적으로 이런 차이를 좁히려 해 봤자 결국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대해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인 보상을 하게 될 뿐이야!"

진실은…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의 임금 격차는 개인의 생산성이 달라서가 아니라 각 정부의 이민 정책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나라 간의 이주가 자유롭다면 잘사는 나라의 일자리는 대부분 못사는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임금이라는 것은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47~48쪽)

"시장에 맡겨 두기만 하면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타당하고 공평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라는 널리 알려진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 이 신화에서 벗어나 시장의 정치성과 개인 생산성의 집단적 성격을 이해해야만 더 공평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인의 재능과 노력뿐 아니라 역사적 유산과 축적된 집단적 노력까지 적절히 고려해서 개인의 노동에 대한 보상이 행해지는 사회 말이다." (56쪽)




네 번째 진실 :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그들의 거짓말

"인터넷은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어. '거리의 파괴', '국경 없는 세계' 등…. 국가, 기업, 개인이 이런 속도에 발맞춰 변화하지 않으면 존망의 위기에 처할 수 있어. 이제 개인이나 기업 혹은 국가는 과거보다 훨씬 더 유연한 자세를 견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시장 자유화가 필요해!"

진실은…

"최근의 발전은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19세기 후반의 진보만큼 혁명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인터넷 혁명의 경제적, 사회적 영향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만큼 크지 않았다. 가전제품은 집안일에 들이는 노동 시간을 대폭 줄여 줌으로써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촉진했고, 가사 노동자 같은 직업을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다." (58쪽)

"일부 선진국들, 특히 미국과 영국에서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 기술 혁명에 마음이 팔려 이제는 '구닥다리' 제조업은 필요 없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했다. 그에 따라 많은 나라들이 '탈산업화 사회'의 시대가 왔다고 철석같이 믿고 제조업을 홀대하여 자국 경제를 약화시켰다." (66쪽)




여덟 번째 진실 :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그들의 거짓말

"세계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초국적 기업이야. 본사는 여전히 회사가 설립된 나라에 있을지 모르지만 생산과 연구 시설은 대부분 해외에 있고, 최고 경영진을 포함해서 많은 직원을 외국인으로 채용해. 이처럼 자본에 국적이 없어진 시대에 외국 자본에 대해 민족주의적 정책을 쓰면 잘해 봐야 효과가 없고, 최악의 경우에는 역효과가 날 거야!"

진실은…

"대부분의 초국적 기업들은 국적이 없는 기업이 되기보다는 사실상 해외 지사를 둔 '단일 국적 기업'으로 남아 있다. 핵심 기술 개발이나 전략 설정 등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대부분 본국에서 이루어지고 최고 경영진도 대개 본국 국적을 지닌 사람들로 채워진다. (…) 이 말은 초국적 기업이 가진 혜택의 대부분이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108~109쪽)

"만일 어느 외국 기업이 같은 산업 분야에 해당하는 국내 기업을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인수하는 것이라면 이 외국 자본이 국내 사모펀드보다 낫다. 하지만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면 국내 기업이 국가 경제에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행동할 확률이 더 높다. (…) 자본에는 더 이상 국적이 없다는 신화에 근거해 경제 정책을 세우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발상이다." (123쪽)




열 번째 진실 :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들의 거짓말

"최근 경제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자랑해! 시장 환율을 적용할 경우 미국보다 1인당 소득이 더 높은 나라가 몇 있기는 하지. 그러나 그것이 달러가 되었든 유로가 되었든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은 다른 부자 나라에 비해 미국이 가장 많아!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따라 하려 애쓰는 거지."

진실은…

"소득 분배가 극도로 불균등한 미국과 상대적으로 소득 분배가 고른 다른 선진국을 평균 소득만으로 비교해서는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짐작하기 어렵다. 이 불균등한 소득 분배 현상은 미국의 건강 지표가 좋지 않고 범죄율이 높은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게다가 미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물건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 이유는 이민이 많고 고용 조건이 열악한 덕에 상대적으로 서비스가 싸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에 비해 일을 훨씬 더 오래 한다. 같은 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계산하면 미국인들보다 유럽인들의 구매력이 더 높아진다. 미국인들처럼 여가 시간보다는 물건을 많이 갖는 쪽이 더 나은 삶이냐, 유럽인들처럼 물건을 더 살 돈보다는 여가 시간을 확보하는 쪽이 더 나은 삶이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이 다른 부자 나라들에 비해 생활수준이 단연 더 높은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143쪽)




열세 번째 진실 :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거짓말

"싫건 좋건 투자를 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부자들이야.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지 않고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도 나아지지 않아.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파이 조각이 작아질지 몰라도 결국에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파이 조각의 절대적인 크기가 더 커질 거야. 파이 전체의 크기가 더 커지기 때문이지!"

진실은…

"부자들을 위한 정책은 지난 30년의 세월 동안 성장을 가속화하는 데 실패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1인당 평균 소득이 매년 3% 이상 증가했으나 1980~2009년 사이에는 매년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 조각을 주면 결국에는 전체 파이가 커진다는 이론은 설득력이 없다." (185, 194쪽)

"꼭대기에서 늘어난 부가 결국에는 아래로 '똑똑 떨어져(trickle down)'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지도 모르지만, 이는 보장된 결과가 아니다. (…) 그냥 시장에 맡겨 두면 상류층의 부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정도가 미약하다. (…) 만약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부가 사회 전체의 혜택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국가는 각종 정책 수단을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투자하도록 해서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하며, 복지 국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5, 197쪽)




열네 번째 진실 :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너무 많이 받는다

그들의 거짓말

"미국의 최고 경영진이 받는 보수는 아주 많아.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야. 그런 일을 할 만한 능력을 지닌 사람 수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보수를 지불할 수밖에 없어. 그렇게 영입한 경영자가 좋은 결정을 내리면 수억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

진실은…

"동시대 노동자들의 보수 평균과 비교해서 볼 때 오늘날 미국의 CEO들은 1960년대 CEO들에 비해 10배를 더 받는다. 상대적으로 1960년대 CEO들의 경영 성적이 훨씬 더 좋았음에도 말이다. (…) 다른 나라 회사 경영진들에 비해 미국 경영자들은 절대 기준으로 많게는 20배나 더 받는다.

이들은 또 보수만 지나치게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경영 부진에 대해서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다. 게다가 실제로 미국 경영자들의 보수가 완전히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영자 계층이 지닌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힘은 자신들의 보수를 결정하는 시장 자체를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199쪽)




열다섯 번째 진실 :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그들의 거짓말

"기업가 정신은 역동적인 경제의 핵심이야. 프랑스부터 개발도상국에 이르기까지 경제가 활력을 잃은 나라들을 살펴보면 기업가 정신의 결여가 그 원인의 하나인 것을 알 수 있어. 가난한 나라의 거리에서 어영부영 정처 없이 배회하는 사람들이 태도를 바꾸고 적극적으로 수익을 올릴 기회를 찾으려 하지 않으면 그 나라 경제는 영원히 발전하지 못할 걸!"

진실은…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개인들에게 기업가 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술과 현대식 기업 같은 발달된 사회 조직이 없어서이다. (…) 20세기에는 특히 기업가 정신을 구현하려면 공동체 차원의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집단적 조직력의 부족이 개인의 기업가 정신의 부족 현상보다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더 큰 장애 요인인 것이다." (210쪽)

"토머스 에디슨이나 빌 게이츠처럼 특별한 인물도 수없이 많은 제도적, 조직적 지원을 받지 않았으면 오늘날과 같은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 영웅적인 기업가들이 등장하는 신화를 거부하고 집단 차원의 공동체적 기업가 정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돕지 않으면 가난한 나라들이 빈곤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220, 222쪽)




열여섯 번째 진실 :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그들의 거짓말

"우리는 시장을 그냥 내버려둬야 해! 시장에 참가하는 주체는 모두 자기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야. 그들은 합리적이라고. 시장에 참여하는 당사자들보다 열등한 정보를 보유한 정부가 그들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하고 하려는 행동을 못하게 한다든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든지 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야!"

진실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늘 최선의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직접 관련된 일들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우리가 그런 세상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문제들의 복잡성을 줄이려면 일부러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고, 실제로 많은 경우에 그렇게 하고 있다." (223~224쪽)

"2008년 금융 위기 직전에 우리는 이른바 금융 혁신을 통해 모든 것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우리의 의사 결정 능력은 이런 복잡성에 압도당해 버렸다. (…) 앞으로 유사한 금융 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금융 시장에서는 행위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 (…)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마저 그 내용과 영향을 알지 못하는 상당수의 파생 금융 상품은 폐기되어 마땅하다." (235쪽)




열일곱 번째 진실 : 교육을 더 잘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거짓말

"교육을 잘 받는 노동력은 경제 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해. 교육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루어 낸 경제적 성공과 세계에서 가장 학력이 떨어지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침체를 비교해봐. 더구나 이제 지식이 부의 원천이 되는 '지식 경제'가 출현하면서, 교육 특히 고등교육은 번영으로 가는 열쇠야."

진실은…

"높은 교육 수준이 국가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사실 놀라울 정도로 빈약하다. (…)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산업화된 나라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놀랍게도 선진국 중 가장 낮아서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다른 부자 나라 대학 진학률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237, 246쪽)

"한 나라의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교육 수준이 아니라 생산성 높은 산업 활동에 개인들을 조직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사회 전체의 능력이다. (…)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더 만족스럽고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238, 250쪽)




스무 번째 진실 :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거짓말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등은 기회의 균등이야! 노력과 성취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보상할 경우 재능 있고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성취동기를 잃어버려. 이런 결과의 평등은, 결코 좋은 시스템이 아니야. 단지 흑인이라거나 가난한 집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질이 못 미치는 학생을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 역시 부당하고 비효율적이야!"

진실은…

"기회의 균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아이가 배가 고파서 수업 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면 선천적으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는 생계비 지원을 받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무료 급식을 통해 밥을 굶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277쪽)

"기회의 균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를 굶기지 않을 정도로는 돈을 벌 수 있어야 그 아이도 같은 조건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최소한의 소득, 교육, 의료 혜택 등을 보장함으로써 최소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277, 288쪽)




스물한 번째 진실 :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그들의 거짓말

"큰 정부는 경제의 적이야! 정부가 부자들에게 거둔 세금으로 복지 정책을 추진하면 가난한 사람은 게을러지고, 부자는 부를 창출하려는 의욕을 잃어서 경제 전체의 활력이 없어져. 생기 넘치는 미국 경제와 비대해진 복지 정책에 눌려 활력을 잃은 유럽 경제를 비교해 보라고!"

진실은…

"잘 설계된 복지 정책이 있는 나라 국민들은 일자리와 관련된 위험을 감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에 오히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다. (…) 유럽 사람들은 자기가 종사하는 산업이 외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문을 닫는다 해도 실업 수당을 받아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고,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데 필요한 직업 재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에 반해 미국 사람들은 한 번 일자리를 잃으면 생활이 심하게 어려워질 뿐 아니라 다시 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복지 정책이 가장 잘 갖춰진 나라들이 이른바 '미국의 르네상스'라 부르는 1990년대 이후에도 미국과 비슷한 성장을 하거나 심지어 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290쪽)




마지막 진실 :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거짓말

"좋은 경제 정책을 실행에 옮기려면 경제학 지식이 필수적이야! 경제학에 문외한인 관료들은 자기의 한계를 깨닫고 선별적인 산업 정책 등 '어려운' 정책에 손대지 말고, 정부 역할을 최소화하는 '쉬운' 자유 시장 정책을 고수해야 해. 그러고 보면 자질 없는 관료들이 개입할 여지가 적은 자유 시장 정책이야말로 가장 좋아."

진실은…

"역사적으로 경제를 가장 잘 운영한 경제 관료는 대부분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었다. '기적'적인 성장을 구가하는 동안 일본, 그리고 일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한국도 경제 정책은 법대 출신들이 맡았다. 타이완, 중국에서는 공대 출신들이 이 역할을 담당했다. 정책 입안에 경제학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경제학은 자유 시장 경제학이 나닌 다른 종류의 경제학이어야 한다." (316~317쪽)

"위험한 것은 지난 30여 년 동안 세상을 풍미해온 자유 시장 경제학이라는 특정 부류의 경제학일 뿐이다. (…) 지난 30여 년에 걸쳐 벌어진 경제 현상들을 보면 우리는 자유 시장 경제학보다 (카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프리드리히 리스트, 조지프 슘페터, 니컬러스 칼도, 앨버트 허시먼 등과 같은) 다른 경제학자에게서 배울 점이 훨씬 많음을 알 수 있다." (323,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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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크리스토프 사를은 <공간적 사회적 위치 : 19세기말 문학장의 사회적 지리학에 대한 에세이>에서 수도 파리 내부의 사회적 격차에 의한 차별적인 공간 점유와 문학장에서의 위치에 따른 주거지 관계를 고찰한 바 있다.

당시 파리는 부르주아지의 주거지인 파리 중심·서쪽/서민 계급이 사는 파리 주변부와 북부로 특징지어지는데, 전반적으로 부르주아적인 작가들은 파리 서쪽에, 가난한 작가들은 대부분 파리 북부나 라틴 구역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분석함으로써, 글쓰기라는 내면적이자 존재론적 경험이 어떻게 그들의 생활 양식과 관계 맺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파리 서부 거주자들인 부르주아 작가들은 대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인거나 성공을 거둔 작가들, 대부분 대학 종사자들이었던 심리주의 소설가들이었다는 것, 그리고 가난한 지방 출신들이 대개 당시 돈과 무관한 아방가르드 시인, 통속극 작가, 자연주의 소설가였다는 것은 작가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형편이 어떻게 문학적 지향성이나 당파성을 좌우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이를 지금의 한국에 적용해본다면? 일산에 밀집해 있는 작가군과 홍대 근처를 중심으로 한 작가군, 그리고 수도권 외곽과 지방 거주 지역의 작가들의 문학적 성향과 수입을 비교해보면 주거지와 한국 문학 지형도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나올 것이다. 이에 대한 가설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논외로 하고, 분명한 것 중 하나는 강남에 거주하는 작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작가들이 강남에 살지 않는다는 것은, 문학이 부와 크게 인연이 없다는 말일 게다. 그렇다면 부자들은 왜 문학과 거리가 먼가? 그들에게는 내면이란 없는 것일까, 혹은 상처가 없다는 것일까, 문학 예술에 흥미가 없다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만, 존재론적 상처, 내면에 대한 관심이 있고 심지어 그런 글쓰기를 했다 하더라도 이를 생업으로 발전시키지 않았거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 이는 작가, 예술가 집단이 어떻게 과거 귀족의 후원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획득하고, 부르주아와 서민 대중들을 새로운 패트론으로 설정하면서 또 어떻게 상업화되어갔는가라는 또 하나의 묵직한 문학사회학을 요구할 터이나, 각설하고.


▲ <오렌지 리퍼블릭>(노희준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모음
노희준은 강남 출신의 작가이고 <오렌지 리퍼블릭>(자음과모음 펴냄)은 그러한 자전적 사실에서 길어 올린 강남 오렌지족들의 삶과 풍속에 대한 기록이다. 주인공 노준우의 중학교 시절부터 대학 입학까지를 그렸으니 성장 서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우리가 읽어왔던 성장 소설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른과의 단절, 가정 불화, 제도 교육과의 갈등, 첫사랑, 우정, 성, 죽음 등 성장 서사의 키워드는 공통되지만, 이들을 채우는 '세트'와 '소도구'들은 낯설어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강북 출신인 필자의 관점일 수도 있을 터이나, 어쨌든 이 강남 오렌지족들의 성장 서사는 <회색노트>로 상징되는 교환 일기나, 헤르만 헤세, 루이제 린저, 자율학습 땡땡이, 하루 동안의 가출 등 1980년대의 평범한 강북 청소년들의 반항 소품과는 이질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또 하나 이 작품은 청소년기의 방황을 그리고 있긴 하지만, 이 방황을 거쳐 인물들이 성숙한 주체로 성장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성장 소설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는 랭보의 말마따나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상처가 있고, 작가 노희준은 그 상처의 속살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펼쳐놓는다.

주인공 노준우의 왕따 진입은 이렇게 출발한다.

"아시안 게임이 끝나자마자 강남의 중학교에는 순식간에 나이키 물결이 밀어닥쳤다. 나이키는 바라지도 않았다. 퓨마나 프로스펙스도 바라지 않았다. 월드컵이나 까발로 정도만 돼도 황송했다. 나는 기차표를 신고 있었다."

나이키를 신지 못해 왕따를 당해야했던 중학생은 한국 정치, 경제, 법조계의 거물들을 낳았던 명문 X고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만의 '신분 계급' 질서 속에서 자신의 초라한 위치를 발견한다. 1980년대 개발 붐에 의해 형성된 강남의 계층 구조란 작가에 의하면 이렇게 나누어진다.

"재래종인 감귤, 개발 전부터 살던 원주민이거나 개발 초기에 집값이 싸다는 이유로 들어온 사람들로, 운이 좋은 편이기는 했으나 부자라고는 할 수 없었다. 신흥 귀족을 형성한 것은 1980년대 유입된 외래종으로 그들 중 일부가 이후 '오렌지'족으로 불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강을 건너온 '탱자'가 있었다. 강남에 살지만 온몸으로 강북인 애들. 자연산 토종이지만 재배종은 아닌 경우."

감귤 노준우는 오렌지족들에 의해 '이름 없는 애'로 취급당하다가, 비상한 전술과 음모로 오렌지족의 비행을 은폐시키고 해결해 준 대가로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 학년 캡인 짐승과 입술, 외교관 아들 성빈, 킹카 하진, 국회위원 병신 등으로 이루어진 이들 그룹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부와 권력을 향락하지만 그는 곧 그들의 실체를 목격하게 된다.

카페에서 만난 여자들을 꼬셔 여관에서 스트립 포커를 치고 집단 강간하는 성빈과 입술의 야만성과 폭력성. 감귤 노준우는 이들을 배제시키고 킹카 하진, 조폭 아들 세한, I여대 1학년 퀸카인 예은과 성북동 저택의 재벌 딸 신아를 구성원으로 하여 'un'(그 무엇도 '아닌',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지는 '않은'이라는 의미)이라는 모임을 형성하고 그 수장이 된다. '소수 정예의 부르주아 공산당'으로 규정한 'un'은 3대 강령으로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공산주의, 모든 인간과 모든 가치가 평등하는 평등주의, 속물들의 사회에 구체적으로 저항한다는 실천주의'를 내세우고 강남 유흥가 일대를 돌며 활약한다. 그들의 활약이란 여장하고 백화점 돌기, 메이커 옷이 아닌 양아치, 빠순이 복장을 하고 나이트에서 놀기 등인데, 결국 이들의 놀이는 이태원 외국인 클럽에서의 끔찍한 성폭력으로 일단락된다.

이러한 오렌지족의 유희적, 극단적 행동주의의 한 편에는 연인 관계인 노준우와 신아가 서로 다른 이성들을 만나 자는 '하룻밤 서기(onenight stand)' 경쟁, 예은을 하진과 준우가 공유하는 위악적 사랑 놀음이 들어있는데, 결국 세한의 죽음을 핑계로 댄 이들의 끝 모를 자학, 가학적 행위는 부산에서의 레이스에서 끝나고 이들은 독일 음악학교와 대학교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작가는 이들 오렌지족들의 화려한 복장, 술과 나이트, 난잡한 성행위 이면에 있는 이들의 상처를 들춰내 보여주기도 한다. 노준우의 애인인 신아는 재벌 딸이지만 아버지가 어린 여자만을 밝히는 유아 성애자이고, 킹카 하진은 재벌 2세의 첩인 어머니를 둔 데다가 어렸을 적 교통사고로 다섯 번의 성형 수술을 받아야 했고, 조폭 아들인 세한은 새엄마를 아버지와 공유하고, 병신의 아버지인 국회위원은 정치 비리인이고, 예은은 재력가의 현지처이고 등등.

그러나 이들이 결성한 'un'의 위악적 행위가 향락이 이들의 상처를 구원해줄 것인가? 작가가 밝히고 있듯, 결국 'un'은 이들 가정환경의 상처보다 더 끔찍한 내면적 상처를 만들어준 원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이들의 일탈과 반항이 결국, 나이키를 신지 못한 노준우의 '상처'와 흡사한 인식 위에서 행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맨몸으로 모든 걸 갖고 태어난 놈들을 이겨보"기 위해 오렌지족에 합류한 노준우가 그들의 부에 기생하면서 한껏 그들을 조롱했듯, 이들의 강남 속물에의 반항은 진지한 의미에서의 퇴폐라 할 것도 없는, 지극히 속물스러운 것이다.

쇼윈도가 되어버린 압구정동의 맥도날드 2층의 통유리, 거리와 나이트클럽, 술집의 모든 시선들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무심을 쏘아주는 우아함, '자기만족을 위해 꾸민다는 말은 타인의 시선들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본다는 뜻'을 알아버린 주인공 노준우의 깨달음처럼 이들의 청춘의 방황과 탕진은 자신이 아닌 온전히 '타인 지향형'에 바쳐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방황은 극단적이지만 치열하지 않고, 충격적이지만 감동이 없다.

주인공 노준우가 대학에 입학해서 운동권에 저항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소비 지향적인 삶과 전체주의에 요요마, <마의 산>, <적과 흑>, <옥중 수고> 식의 교양주의를 내세우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운동권이냐 오렌지족이냐, 혹은 리바이스 501 버튼 플라이냐 요요마냐의 문제가 아니다.

행동과 사고가 타인에 대한 반응에서부터 작동한다는 것, 타인의 방식으로 저항한다는 것은 결국, 그 자장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인정욕구에 의한 반항과 모방은 텅 빈 실체이자 허울뿐인 '나'를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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