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의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문학동네 펴냄)은 불편한 감정의 동요 없이 담담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인 한편, 읽는 내내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와 <구구는 고양이다>, 하루키, 김영하, 은희경의 인물들, 또 교양(성장) 소설을 일컬어 근대의 "상징 형식"이라고 한 프랑코 모레티의 소설론까지.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은 성장 소설이면서 성장 소설이 아니었고, '쿨'하지만 냉소적이지는 않은 인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기존 영화의 모티프를 그대로 차용하는 듯하면서 다른 길을 갔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의 조합이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일지도 모르겠다.

기왕의 것들을 적당히 '브리콜라주(bricolage)'하여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재능은 어느 날 찾아온, "장동건을 닮은 아주 잘생긴 고양이"에게 '사라다 햄버튼'이란 이름을 부여한 이 소설의 명명법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고양이는 '나'가 '울버햄튼'의 축구 경기를 보고 있을 때 아파트 베란다를 기웃거리며 들어와 '나'가 먹고 있던 '샐러드'를 "게걸스러워 보일 정도로 맛있게 먹어치웠다."

이렇게 해서 샐러드와 울버햄튼의 우리말 구어체식 합성어인 '사라다 햄버튼'이 탄생하게 되었다. 세련돼 보이면서 약간의 호기심까지 자극하는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이라는 제목과 그에 걸맞는 도도하고 우아한 고양이의 등장은 이 소설의 거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다시 말해 실연 이후 백수가 된 '나'의 좌절과 불안을 각종 문화적 코드들로 드러낸/가려놓은 소설이 바로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이라는 것이다.


▲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김유철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방사선사였던 '나'는 부모님의 이혼 이후 어머니와 생활해 오다 2년 전 어머니마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되었다. 그러다 첫사랑이었던 S를 만나 1년 반에 걸쳐 동거를 하던 중 갑작스레 이별을 고한 S가 자카르타로 떠나면서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이혼 하고 나서 캐나다로 떠났던 새아버지와 '사라다 햄버튼'이 찾아와 '나'의 상처를 보듬어 준다. 또 가끔 찾아가던 '달러웨이'의 아르바이트생 R도 좋은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거쳐 '나'는 '사라다 햄버튼'을 전 주인에게 돌려주고 '결국' 혼자가 된다. 새아버지는 아내 나타샤와 갓 태어난 딸이 있는 캐나다로 돌아갈 것이고 R은 청혼한 일본인 교수와 함께 일본으로 떠나갈 것이므로 '나'는 결국 혼자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소설은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떠나간 S와 R의 할머니는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이고, 항상 고독과 죽음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을 남겼는지도.

하지만 이 소설의 인물들이 '절대 고독'에 빠지는 일은 없다. 특히 '나'에게는 어머니와 S가 떠나간 뒤에도 새아버지와 R, 홀연히 나타난 친아버지와 고양이탐정까지 우호적이고 능력 있는 조력자들이 함께 한다. 이 소설을 성장 소설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조력자가 필요한 삶에서 조력자 없이도 가능한 삶으로의 변화를 담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조력자가 없이도 가능한 삶이란 관계가 없는 삶이 아니라 비로소 진정한 관계가 가능한 삶을 말한다. 조력자-피조력자의 관계가 아니라 단독자와 단독자의 관계로서 타인을 타인으로 인정하는 삶. 하여 S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이 암시되는 PK에게 '사라다 햄버튼'을 되돌려주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타인을 단독자로 인정함으로써 나 또한 단독자로 서겠다는, "절망하는 쪽보단 새롭게 시작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으므로.

그러나 여기에는 프랑코 모레티가 지적한 근대적 젊음의 특정한 이미지, 즉 이동성(mobility)과 내적인 불안정성(interiority)이 빠져있다. 물론 '나'는 자발적 실업자가 됨으로써 유동적인 미래를 갖게 되었고 실연과 실업을 동시에 겪고 있는 '나'의 심리 또한 안정된 상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탈)근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이동성과 내면성이라 말하기는 힘들다. 실제 현실은 자본의 지나친 유동성으로 인해 비정규직 종사자와 실업자가 넘쳐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젊은이들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지만, 소설 속 '나'는 부모님이 물려준 20평대의 아파트에 목수로 성공한 새아버지와 디자인 회사의 사장으로 나타난 친아버지가 있으며 쉽지는 않겠지만 방사선사로서 재취업의 가능성 또한 높은 편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의 좌절과 불안에 동의하기 힘들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R은 "오빨 보고 있으면 정말 세상살이의 근심 같은 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보이니까요"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R이야말로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달리웨이로 출근해 새벽 두시까지 일을 하고도 또 아침이 올 때까지 기말고사와 일본어능력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이 시대 '88만 원 세대'를 대변할 만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가 겪고 있는 좌절과 불안은 신자유주의의 횡행과 자본의 급격한 변동 속에 살고 있는 청년 실업자의 그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청춘의 아픔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이 착하고 따뜻한 인물들에 의해 동화적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를 비롯한 소설 속 인물들은 계급적 상승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세계와 갈등하지 않는다. '나'는 우호적인 시선 속에서 미래를 향해 한 발 내딛는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지금 네가 겪고 있는 불안이, 아픔이, 절망이 결국 너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진부한 경구는 어린 아이에게나 필요한 조언이다. '나' 스스로도 이렇게 고백한다.

"난 어쩌면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그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철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어느 미래학자의 말을 들먹이며 "적어도 미래가 암울하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거죠"라고 말한다. 청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하고 순진한 미래관이지만, 적어도 '88만 원 세대'의 소망 정도는 될 것 같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이 세대의 것이 아니므로, 적어도 암울하지 않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찾고자 하는 이 시대 청년의 소박한 희망.

이렇게 보면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이 동화가 된 것은 '나'의 삶이 안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이 시대가 변화를 꿈꿀 수 없을 만큼 닫혀 있기 때문이다. '성장'할 수 없는 세대에게 필요한 성장기는 "적어도 미래가 암울하지 않다"는 위로이며 불안을 제쳐두고 순간의 고독을 즐길만한 한 줌의 '자유'이다. '나'와 '사라다 햄버튼'이 보내는 고독하고도 우아한 한 철이 '성장'없는 세대의 성장기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안정적인 직장도, 계급적인 상승도, 낭만적인 사랑도 가능하지 않은 세대에게 고독하고도 우아한 고양이는 일종의 '로망'일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사라다 햄버튼'처럼, 그 고양이의 주인인 '나'처럼 고독하고 우아하게 살아가겠다, 아니 살아가고 싶다는 '로망'. 고양이가 등장하는 여느 소설이나 영화가 고양이의 날카로운 응시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면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은 독자가 고양이를 응시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독서를 편안하게 해준다.

'사라다 햄버튼'과 그 주인이 된 '나'는 이 시대 청년의 나르시시즘적 응시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IMF 이후 최고의 실업률" 운운하며 적당히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나'의 실연과 실업을 적당히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만들고 오히려 그 시간적 여유를 활용하여 독자가 즐기지 못하는 우아한 고독을 간접 체험하도록 만든다.

그들의 우아한 고독은 물론 적당히 낯익은 것들로 채워져서 즐기기에 편안하다. 하지만 소설이 독자를 편안하게만 놔두거나 독자 또한 즐기기에 편안한 소설만 찾는다면 이 시대에 필요한 '성장'은 결국 없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가을도 이제 끝난다. 산꼭대기는 시커먼 구름에 덮여 있다. 저곳에서 겨울이 온다. 그리고 나는, 그 호텔을 향하고 있다. 그 호화판 감옥에서 세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 거짓말쟁이 여자들. 자신들의 생활은 물론 타인의 인생까지 엮어 거짓말의 태피스트리를 짜온 여자들. 하지만 그 가운데 정말 죄 많은 여자는 단 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국립공원의 산 정상에 있는 고풍스럽고 호화로운 호텔. 매년 늦가을 이곳에서는 재벌가 사와타리 그룹의 세 자매가 주최하는 파티가 열린다. 올해도 수십 명의 손님이 초대받아 모여든 가운데, 어두운 비밀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 자매의 친척과 관계자들도 이곳을 찾는다.

세 자매의 조카 류스케, 그의 매력적인 아내 사쿠라코, 사쿠라코의 남동생 도키미쓰, 세 자매 중 둘째 니카코의 딸 미즈호, 미즈호의 매니저 사키, 그리고 그들을 모두를 지켜보는 교수 아마치 등. 만찬 석상에서 세 자매는 언제나 자신들이 어린 시절 겪었던 사건들을 청중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허구인지 사실인지 분간이 안가는 그 이야기의 끔찍함과 잔인함에 사람들은 경악하거나 의혹을 느낀다. 그런데 올해에는 유달리, 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호텔을 잠식하고 있다. "악의가 이곳을 뒤덮고 있어"라고, 모두들 중얼거린다. 이제 이곳에서 누군가가 살해당하고야 말 것이다.


▲ <여름의 마지막 장미>(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재인 펴냄). ⓒ재인
2004년에 출간된 온다 리쿠의 스물여섯 번째 작품 <여름의 마지막 장미>(김난주 옮김, 재인 펴냄)는 온다의 소설 중 '어른스러운' 계열에 속한다. 본래 온다 리쿠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10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10대가 주인공이거나 혹은 10대 시절의 기억에 사로잡힌 채 영원히 그 안에 갇힌 어른-아이들이 주인공이거나.

<여름의 마지막 장미>의 등장인물들 역시 온다 리쿠 특유의 '살아남은 아이들', 작가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온갖 시련을 견뎌내고 남은 아이들"로부터 출발하지만, 의외로 어린 시절 감수성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전체적인 톤은 꽤나 건조하고 차갑다. 아마도 그건 <여름의 마지막 장미>가 애거사 크리스티 계열의 고딕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폐쇄된 저택에서 벌어졌던 4년 전 살인사건의 전말을 캐 들어갔던 <목요조곡>(김경인 옮김, 북스토리 펴냄) 역시 그랬다. <목요조곡>과 <여름의 마지막 장미> 두 편 모두 어른들이 주인공이라는 것 외에도 과거의 사건이 기억의 교묘한 조작에 의해 전혀 다른 각도로 재조명될 수 있다는 트릭을 구사하는 미스터리 장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물론 온다 리쿠가 정통 미스터리 작가가 아니라는 건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녀의 본령은, 그리고 그녀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아름답지만 무정한 소년소녀들이 비밀스런 악의를 품고 그들이 속한 세계에 조금씩 치명적인 균열을 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고딕-순정-로망에 가깝다. 다시 말해 고딕 로맨스 풍 줄거리에 과거라는 한정된 시공간에 집중한 채 '그때 그 죽음의 기억'이 어긋나있고 감춰져있다는 미스터리를 기분 좋게 한 겹 겹쳐둠으로써 고딕의 향미를 더하는 쪽이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시네-로망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알랭 레네는 이것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작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환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과정에 더 집중한다. 과거 누군가의 죽음에 관한 비밀도, 6개의 챕터마다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하나씩 밝혀진다. 미스터리 구조를 차용했으나, 죽음의 비밀이 밝혀진다고 해서 대단히 달라질 건 없다.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등장인물들은 변함없이 권태롭고 호사스런 일상을 영위한다.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는 세상의 대단한 진리나 새로운 시각을 맛보기 위함은 결코 아니다. 그녀의 소설은 그야말로 읽는 쾌감에 집중해야 한다. 글자를 눈으로 더듬으며 이 단어들이 상찬하는 요염하고 은밀하고 탐미적인 어떤 세계, 서양을 배경으로 한 일본 순정만화가 그러하듯 미묘하게 양쪽의 특성이 뒤섞인 세계에 대한 황홀한 동경을 심어주는 텍스트기 때문이다.

더불어 일본의 수많은 대중 소설이 그러하듯 연재를 통해 장편으로 묶여 나오기 때문에, 매 장마다 긴장과 기대를 자아내는 극적인 순간 즉, '클리프 행어(cliff hanger)'가 충분히 제시되고 독자들로 하여금 마지막 장으로 빠르게 전진할 수밖에 없는 긴장감과 오금저리는 조바심으로 충만하다. 그것이 온다 리쿠의 소설이다.

하지만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독자의 그런 설렘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여름의 마지막 장미>를 읽을 때, <맥베스>의 세 마녀와도 같은 세 자매가 꾸며내는 이야기가 더 다채롭길 바라는 건 온다 리쿠의 최고작 <삼월은 붉은 구렁을>(권영주 옮김, 북폴리오 펴냄)의 애독자라면 당연한 심리다.

그러나 온다 리쿠는 세 자매의 과거가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친척과 지인들의 삶을 더 주목한다. 밝혀내야 할 과거 비밀의 부피는 예상보다 작았고, 등장인물은 현재 삶을 조금 더 낫게 영위하는 쪽에 더 관심이 쏠려있다. 매 챕터마다 과거에 잠시 몸을 담갔다가 현재로 돌아오는 등장인물들의 패턴이 반복되다보니, 종국엔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마리앙바드의 정원에 온다 자신도 갇힌 것처럼 느껴진다.

알랭 로브그리예와 애거사 크리스티의 세계에 어중간하게 걸쳐, 다소 진지한 엔터테인먼트 문학의 가능성을 실험하고자 한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온다 리쿠만의 기묘한 비일상의 세계를 사랑했던 이들에게, <여름의 마지막 장미>는 <금지된 낙원>(현정수 옮김, 황매 펴냄)처럼 너무 많이 나가지 않았지만 <유지니아>(권영주 옮김, 비채 펴냄)처럼 숨 막힐 듯한 긴장감과 격정을 주지 않는, 애매한 중간에 위치하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근이 우엉보다 비쌀 걸요?"
"그런데 우엉은 일일이 까기가 어렵잖아요."

도서관을 돕는 시민들의 모임인 '도서관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시 광진구 광진정보도서관 문화동 1층 이야기방 문을 두드렸다. 3~40대 여자 다섯, 남자 셋이 우엉이냐 연근이냐를 두고 팽팽한 말을 주고받는 모양새가 심상찮다. 잘못 찾아온 건 아닌지 문패를 다시 확인한다.

일견 도서관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논쟁(?)은 오는 27일 '도서관 친구들의 날' 행사에 올 손님들에게 가장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란다. 따끈한 커피가 담긴 잔을 건네받으면서 이 '친구들', 신경 쓰고 있는 데가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하고 감탄한다. 잔에도 도서관 친구들 마크가 또박또박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 친구들 행사에서 나눠드리는 음식 재료는 윤구병 선생님의 변산공동체에서 직접 길러낸 것만 써요. 주먹밥도 회원들이 하나하나 손수 만들지요."


▲ <도서관 친구들 이야기>(여희숙 외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여희숙 도서관 친구들 대표의 섬세함은 <도서관 친구들 이야기>(여희숙 외 지음, 서해문집 펴냄, 이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절감했던 터다. 정식 기록이 없었다는 이 모임의 5년 역사를 숨결 하나, 손길 하나까지 느껴지도록 정리해 냈기 때문이다.

도서관 친구들? OO동문회, OO향우회에 익숙한 우리에겐 영 생소하다. 도서관 이용자인 주민들(학교·대학도서관일 경우 구성원이나 관련자들)이 중심이 되어, 도서관을 돕자고 만들어진 모임이다. 기금 모금과 도서관 내 자원봉사, 예산을 늘리기 위한 로비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이런 모임은 20세기 초 독일과 프랑스에서 태동하기 시작했고, 미국으로 전해져 꽃을 피우게 됐다. 현재는 10여개 나라에 '도서관의 친구(Friends of Library)'란 이름으로 퍼져있다.

국내에선 2005년 9월 광진도서관에 '도서관에 힘이 되는 사람들'(도.힘.사)이 생긴 것이 처음이다. 그해 12월 도서관 친구들로 이름을 바꾼 모임은 이후 서울동대문정보화도서관, 신묵초등학교도서관 등 전국 18곳 도서관으로 퍼져 나갔고 최근엔 전체 지부를 대표하는 사무국도 만들어졌다. 여희숙 대표는 도.힘.사 시절부터 활동해 온 도서관 친구들의 산증인이고, <이야기>는 그 5년간의 기록이다.

"책을 내면서, 이제 도서관 친구들도 커다란 한 걸음을 뗀 것 같다"고 말하는 여 대표와 지난 1일 한강이 시원히 내려다보이는 광진도서관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돼주실래요?'라며 여 대표가 내민 광진도서관 친구들 회원 신청서에 이름을 적고, 막 1204번째 '친구'가 된 직후였다.


▲ 여희숙 도서관 친구들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프레시안 : 광진도서관 친구들만 해도 회원 수가 1200여 명이다. 큰 홍보 활동이 없음에도 놀라운 인기인데….

여희숙 : 지난 일주일 동안만 해도 17명이 늘었다. 내가 강연처럼 바깥에서 도서관 친구들을 소개할 기회가 많아지면 회원도 함께 늘지만, 대부분 알음알음 합류한다. 우리 활동이 도서관 관리·운영자에게나 이용자에게나 모두 긍정적인 활동, '안티'가 안 생기는 활동이다 보니 너른 공감을 사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안티'가 안 생긴다고 했는데, 실제로 보통 시민단체의 활동이 정부를 감시, 비판하는 역할을 하면서 '관'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지만 도서관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도서관 친구들을 하나의 운동으로 본다면 어떤 지향점과 방법론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까?

여희숙 : 우리 활동은 도서관들이 수준 높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만들어서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게끔 하고, 궁극적으로 물질적인 만족보다 정신적인 만족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의 작은 표현이다.

어떤 운동이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문제를 지적하고 그걸 없애거나 고쳐나가는 방법도 있지만 좋은 부분을 칭찬하고 키워나가는 방법도 있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뭔가가 좀 부족하다는 말과 같다고 보는데, 그 부족을 비판하고 채우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조금 힘을 보태볼까요'라고 말을 거는 게 우리 접근법이다.

그렇게 포지티브(positive)한 방식으로 해나가다 보면 문제 역시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을까? <이야기>에 언급한 '우리가 지키고 싶은 원칙'에도 '도서관 운영에 대해 불평불만하지 않기'가 있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도서관 운영진과의 관계가 언제나 원만하지만은 않았다. 책에는 2006년 도서관을 위탁 운영하는 서울시설관리공단의 책임자가 바뀌면서 겪은 좋지 않은 일화가 나와 있다. 구의회의 도서관 관련 예산 심의 과정을 참관했더니 공단 측에서 도서관 친구들을 매우 부담스러워하며 노골적으로 냉대했다는 내용인데, 결국 활동을 일시 중단하고 광진도서관이 입장을 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을 취했다.

여희숙 : 당시 우리 마냥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지역 도서관 친구들을 활동을 도왔고 안정적인 기금 모금을 위해 CMS 제도를 도입하는 등 다음 활동을 위한 준비를 해 나갔다. 물론 장소를 사용하지 못해 불편하긴 했지만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도 월요모임은 계속했다. 도서관에 와서도 안에 들어가서 하지 못하고 바깥 카페 한 쪽에 자리를 잡고 했는데, 참 추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초조하거나 불안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이 사태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도서관과 어떤 관계로 나아갈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여론 형성의 중요성도 절감했다. 우리가 그렇게 됐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이 '도서관을 잘 이용해보자고 나선 시민들을 쫓아낼 수 있는 거야?'라며 '우리 편'의 반응을 보여주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느꼈다.

프레시안 : 광진도서관 친구들 후원 회원 중에는 광진구민이 아닌 사람이 더 많다. 도서관은 그곳에서 가까운 지역 주민이 주로 이용하는 만큼 후원 주체는 주민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다른 지역 사람이 도와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프레시안(최형락)

여희숙 : 우리 활동이 정말로 우연히 시작됐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가령 처음부터 '한국 도서관 친구들' 같은 전국 조직이 생겨서 지부를 확장시켰다면 후원금은 자연스레 자기 지역의 도서관으로만 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오는 후원금은 직접적인 혜택을 바라서라기보다 도서관 친구들 활동 자체에 공감하고 응원한다는 뜻이다. 좀 크게 생각해 보면, 후원금이나 후원금에 담긴 마음은 한 바퀴를 돌아 결국 나에게 오게 돼 있다. 후원을 함으로써 더 많은 도서관 친구들 지부가 생기고, 결국 자기 동네에도 이런 모임이 만들어지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줬으니까 받는다'는 식의 정신과는 다르다. 내가 A씨로부터 얼마만큼을 받았다고 치자. 그런데 내가 지금 당장 줄 수 있는 것이 A씨보다는 B씨에게 더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면, B씨에게 주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회향(廻向)과도 같다.

그것이 돌고 돌아 언젠가 C씨가 A씨에게 무엇을 주게 된다면 그건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라 '선물'에 가깝게 된다. 주고받는 크기는 같아도 전혀 다른 세상이 되는 것이다. 자기가 건넨 무언가가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후원을 할 때도 나한테 뭔가가 직접적으로 돌아오는 후원보다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에 하자고 한다. 우리 회원들은 도서관 친구들이 되고 난 다음부터 바깥에 후원하는 단체가 늘었단다. 마음은 좋은데 가계에는 도움이 안 되니까 걱정이다. (웃음)

'함께 책 읽기'가 '도서관 친구들'의 밑거름

프레시안 : 전국 18개 도서관의 도서관 친구들을 합치면 2000명이다. 전국 조직을 체계화하고 전국적인 사업을 할 계획은 없는가?

여희숙 : 일반적인 단체는 중앙에 대표성을 가진 상부 조직이 있고 지방에 하부 조직을 두면서 가지를 뻗어 나가듯 커져가는 형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런 틀 지워진 조직을 싫어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도서관 친구들 활동 자체가 그런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성격을 갖고 있다. 어떤 마을의 도서관에 도서관 친구들이 생기면 활동은 그 마을 사람들이 하게 될 테니까, 각자 디자인해가면 된다.

그런 우리 성격에 맞는 방식은 모든 도서관 친구들이 동등하게 연대하는 것이다. 최근에서야 사무국을 따로 둔 전국 조직이 됐는데, 현재 '도서관 친구들'이라는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을 신청하고 완료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 이름이 '한국 도서관 친구들'이나 '전국 도서관 친구들'이 아닌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프레시안 : <이야기>에 보면 도서관 친구들이 태동하려면 '도서관 운영자의 열린 마음과 사서의 협조,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운영진을 맡아 줄 한두 명의 친구'라는 네 가지 조건이 가장 중요하다고 나와 있다. 사실 이 네 가지가 가장 갖추기 어려운 것이라 항상 성공하기만 한 것은 아닐 텐데….

여희숙 : 부천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인 동화기차도서관이 그랬다. 부천시가 교류하는 일본의 가와사키(川崎)의 도서관 친구들을 보고 동화기차도서관도 너무나 큰 관심과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이용자들의 호응은 생각보다 적었고 특히 대표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난관에 부딪쳤다가 아주 열정적인 사서가 한 명 나서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단체를 묶어 일단 도서관 친구들 발대식은 했다. 그런데 그 사서가 도서관을 떠나게 되니까 더 이상 유지가 안 되더라. 지금은 이름만 남고 활동은 없는 상태다. 부천의 복사꽃필무렵 작은 도서관도 같은 경우다.

반면 서울 도봉도서관의 경우 도서관 친구들 태동 당시까지 상황이 별로 좋지 못했는데 대표 맡을 분이 정말 잘 찾아내주었다. 그 분도 그때까지는 단순한 이용자였는데 도서관 친구들에 대해 알고 난 다음부터 달라졌다. 도서관 친구들에 대한 철학이 분명한 분이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 주어서 활발한 활동이 이뤄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표 자리를 지속적으로 해내기 쉽지 않다.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시간과 애정을 많이 들여야 하니까.

프레시안 : 비영리단체·동아리·OO회 등 자발적 모임은 참여자한테 직접적인 이익이 없을 경우 해이해지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 친구들이 5년 간 보폭을 좁히지 않고 걸어 온 비결이 있다면?

여희숙 : '함께 책읽기'가 아닐까 싶다. 한 달에 한 권씩, 선정된 책을 회원들이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인데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임을 다른 단체들과 구별지어주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5년간 사람이 달라졌다'라 말하곤 한다. 강남 일원독서실 도서관 친구들은 작년 12월에 만들어졌는데, 거기 친구들은 주마다 한 권을 읽는단다. 그들이 함께 읽은 책 권수가 우리가 5년 한 것과 비슷하게 됐다. 그 친구들도 '인생을 새로 사는 것 같다', '너무 좋다'는 얘길 참 많이 한다.

이제 새로 활동을 시작하는 도서관 친구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함께 책읽기 모임은 꼭 하라'라는 조언이다. 독서는 혼자 해도 사람을 성장시키지만, 함께 하면 그 변화와 성장을 몸소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것이 우리가 5년 간 활동을 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고. 지난해엔 쑹홍빙의 <화폐전쟁>(홍순도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등 10권을 함께 읽었고 이번 달 책은 가수 이지상이 쓴 <사람을 노래하다>(삼인 펴냄)다.

도서관 2000개가 들어선다면…

프레시안 : <이야기>에서 김영석 명지대 교수가 '한국에서 도서관 운동이 적은 이유는 그만큼 도서관 문화가 존재하지 않아서'라고 지적했다. 이 활동을 해 온 5년 동안 도서관 문화의 척박함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보나?

여희숙 :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여전히 도서관 문화라는 게 거의 없다. 사람들이 도서관을 이용해 본 경험이 거의 없고, 무엇보다 도서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론 도서관 친구들이 여기저기 생기고 도서관 친구들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느는 걸 보면, 미미하게나마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 축에선 (도서관 친구들과는 다른 방식의)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안타깝게도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도서관은 공공시설이다. 다른 말로 하면 주인이 없다는 얘기다. 도서관을 짓고 운영하는 구청 측에서 그런 점을 악용해 인력 배치를 입맛대로 할 때가 있다. 구청장의 선거운동을 도운 사람을 도서관 관장에 앉힌다든지 하는 식으로.

자원봉사자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 '구청 자원봉사 센터장이 정치권 진입 관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자원봉사단이 평소엔 인력 관리 차원에서 활용되다가 선거철엔 선거요원이 되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자원봉사단이 본래 취지대로 운영이 안 될뿐더러 오히려 사서들에게 '시어머니'같은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다.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고개 젓는 사서들도 많다.

프레시안 : 그런데 왜 도서관 문제에 천착하게 됐는가?






ⓒ프레시안(최형락)

여희숙 : '평생 배움', '배우는 기쁨'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테마다. 우리 시민사회가 한 걸음 내딛으려면 누구나 대화와 토론에 참여 가능한 장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공평한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유일한 시설이 바로 도서관이다.

그 역할은 학교가 다 해줄 수 없다. 교편을 잡는 동안엔 학교만이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다. 대기업 회장 아이이건 범죄자 아이이건, 교실 안에서는 동등한 배움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점점 그렇지 않게 되어갔다. 학교에도 등급이 매겨지고 종류가 나뉘어졌다. 신분과 빈부 격차에 의해 공평함이 보장받지 못하는 기관이 돼버렸다. 배움과 가르침이 기쁨이 되기보다 강요받고 강제되는 곳이 되었다.

물론 도서관도 완벽하지는 않다. 도서관이 멀어서 갈 수 없는 사람, 도서관에 갈 시간조차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노력해서 어디서나 걸어서 10분 이내로 도서관에 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사람들이 도서관에 더 자주 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이 생각이 가장 잘 맞아떨어진 활동이 도서관 친구들이었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순진한 생각이라고도 말하는데, 멀리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세상 많은 것들은 천천히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가치 있는 것, 좋은 것은 더 그러하지 않을까?

프레시안 : 현재 전국에 700여 개인 공공도서관 수를 2000개까지 늘리자는 목표가 있다. 2000이란 숫자는 어떤 의미인가.

여희숙 : 우리 사회가 숨 쉴만하다고 느낄 최소한의 숫자다. 어디서든 걸어서 30분 이내에 도서관이 보이는 정도이려면 2000개는 있어야 될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는 2000개라는 숫자가 우리나라 문화 판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분기점이 된다는 데 있다. 책이 2000권은 팔려야 출판사가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도 기업이라 팔릴 물건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그러다 보니 돈이 될 만한, 대중적인 소재와 필자를 찾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다. 세상엔 소외받는 분야에서 깊이 연구하고 온몸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이 분들은 정말 존경스럽다. 그들의 저작물이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음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팔릴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누구도 출판할 엄두를 못 내는 게 안타깝다.

도서관이 2000개 정도 생겨서, 좋은 내용이라면 어떤 책이든 2000권은 도서관이 사 줄거란 보장만 있다면 출판사들로 하여금 무명 필자를 발굴하는 계기와 용기를 줄 수 있다. 결국 우리한테 좋은 거다. 좋은 책을 볼 수 있게 되니까.

우리와 면적이 비슷한 영국에만 6700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는데 우리는 700개라니 한참 멀었다. 하지만 6700개는 너무 멀고, 2000개라면 '10년만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도전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목표다.

프레시안 : 도서관 개수도 문제지만 서비스의 질도 문제다. 도서관에 많은 예산이 배당되어야 할 텐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여희숙 : 우리 도서관 친구들이 늘 안타까워하는 게 있다. 사서 인력 충원이 좀 됐으면 하는 것. 8년 전 서울로 이사해 광진도서관에 처음 왔을 때, 사서가 권하는 책 코너가 있어서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좋은 책에 노란 띠를 붙여서 모아 놨더라. 자연히 그들이 추천해주는 책부터 훑어보게 됐다. 그 때는 추천 목록만 만들었는데 2~3년 전부터는 직접 서평도 쓰시더라.

구에서 예산을 줘서 좀 더 많은 사서를 고용할 수 있다면, 이런 훌륭한 사서들이 자신만의 전문 영역을 개발하고 더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문제를 포함해 우리도 구청에 우리 목소리를 전해 왔다. 책에 '로비 활동'이라고 썼지만 사실 특별한 건 없다. 지방자치단체 선거 기간 중에 구청장 후보 사무실을 방문해 도서관 정책 질의서를 전달하고, 당선 후에 구체적인 도서관 정책을 들으러 가는 것이다.

또 구 의원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도서관 친구들의 여희숙입니다"라고 소개하면서 자연스레 우리 모임을 소개한다. 그럴 때마다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회원 수다. "우리 얼마 안 돼요. 한 1000명 정도?"라고 말하면 의원들이 깜짝 놀라면서 어려운 점은 없느냐고 묻는다. 특별한 로비 활동이 아니어도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는 역시 '사람'에 있다.

내가 광진도서관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연간 자료구입비는 5000만 원에 불과했다. 그랬던 것이 조금씩 늘어나 현재는 3억 원에 이른다. 도서관장님 말씀으로는 우리가 구 의원들을 방문하고 요청했던 게 굉장히 컸다고 한다. 구 의원들이 도서관 예산은 깎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다 회원들의 힘, 사람의 힘이다.

프레시안 : 2개월 남은 올해는 어떻게 정리하고, 내년은 어떻게 나갈 것인지 말해 달라.

여희숙 : 일단 11월 27일에 있을 '도서관 친구들의 날'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도서관 친구들 5주년과 광진도서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다. 도서관 친구들 생기고 나서 가장 큰 행사라 마음이 많이 쓰인다.


여기 광진도서관 문화동 지하2층에서 식을 갖고, 책 시장, 음악회, 사진전 등을 함께 연다. 주먹밥과 떡, 생협에서 구입해 온 여러 가지 차도 마련한다.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일반인도 올 수 있는 행사다.

5년은 어떤 모임의 성격을 분명히 하는 때이자 새로운 걸음을 내딛기 위한 마무리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내년 계획은…, 나는 특별히 '이걸 해야겠다'고 정해서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계획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웃음) 그냥 좋은 인연 따라, 더 많은 도서관 친구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 기원전 770년 주나라가 중국 서북부 지역의 융족에 밀려 동쪽의 뤄양(낙양)으로 옮겨온 시대부터 진(秦)이 전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대략 550년의 기간이다. 진의 뒤를 한(漢)이 이으면서 수천 년을 잇는 중국 '제국'이 비로소 탄생했다. 바로 춘추 전국 시대의 진통을 거쳐서 오늘날 중국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중원의 패권을 잡으려는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춘추 전국 시대에는 수많은 사상가, 정치인, 전략가 들이 출몰했다. 특히 공자, 맹자, 장자, 묵자, 한비자 등 춘추 전국 시대에 실력을 겨뤘던 사상가와 그들의 추종자, 이른바 제자백가는 중국을 넘어서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문화의 주춧돌이 되었다.

제자백가에 대한 수많은 주석과 더불어 춘추 전국 시대는 <열국지>부터 최근의 영화 <공자 : 춘추 전국 시대>(호 메이 감독, 2010년)까지 수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최근에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중국의 원형인 춘추 전국 시대에 대한 관심은 더욱더 커지는 상황이다.


▲ <춘추전국이야기 1 :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공원국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 ⓒ역사의아침
이런 상황에서 역사학자 공원국 씨가 춘추 전국 시대를 한눈에 조감하는 <춘추전국이야기>(전10권 예정, 역사의아침 펴냄)를 펴낸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학, 중국지역학 등을 공부하고 10년간 중국의 오지를 탐사했다. 그간 <인물지>, <귀곡자>, <장부의 굴욕> 등을 펴낸 데 이어서 이제 수년이 걸릴 대장정의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공원국 씨는 이번에 10권 중 1차분 1권(최초의 경제학자 관중), 2권(영웅의 탄생)을 출간했다. 앞으로 나머지 책들에도 춘추 전국 시대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소화한 내용이 이어질 예정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중국을 이해하는 넓고 깊은 시각은 물론이고 미래의 문을 여는 통찰을 제공하겠다"고 장담했다.

공원국 씨뿐만이 아니다. 최근 <철학 VS 철학>(그린비 펴냄),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동녘 펴냄), <상처 받지 않을 권리>(프로네시스 펴냄) 등의 책으로 철학의 대중화를 선도해온 강신주 박사도 노자, 장자를 필두로 한 지난 20년간의 제자백가 연구를 총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약 일곱 권으로 묶일 이 책들에서 강신주 박사는 제자백가 중 공자, 맹자 등 유가에 가려 오해되거나, 폄훼되었던 다른 사상을 적극적으로 부각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공자, 맹자 등 유가에 대한 신랄한 재평가도 예정돼 있어서 책이 나오면 큰 논란이 예상된다. 그는 "그간의 제자백가 '다시 읽기'를 집대성하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춘추 전국 시대의 역사와 사상을 각각 역사학자, 철학자의 시각으로 다시 읽는 방대한 작업을 시작하는 두 지식인이 한자리에 모이면 무슨 얘기를 나눌까? 이런 호기심에서 두 사람의 대담을 마련했다. 각자의 작업 얘기부터 중국에 대한 생각까지, 다음은 10월 14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의 한 카페에서 두 시간에 걸친 대담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 <춘추전국이야기> 펴낸 공원국 씨(왼쪽),와 제자백가 사상을 총 정리 중인 강신주 박사. ⓒ프레시안(손문상)

왜 춘추 전국 시대인가?

프레시안 : 우선 진행 중인 자신의 작업을 소개한다면?

강신주 : 아직 나는 책도 안 나왔는데…. (웃음) 일단 역사학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역사에 대한 내 생각부터 얘기를 해야겠다. 역사가 진보한다, 나는 이런 시각을 부정한다. 보통 2000년도 더 된 춘추 전국 시대를 거론하면, 마치 지금과는 전혀 상관없는 옛 이야기로 여기곤 한다. 또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나은 세상이라고 여기고….

그렇지 않다. 지금과 춘추 전국 시대를 비교하면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춘추 전국 시대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그 시대에 다 제시가 되었다. 제자백가 사상은 바로 그런 가능성이 응축된 원형들이라고 할 수 있다. 춘추 전국 시대만 하더라도, 다양한 미래가 열려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제자백가 사상이 2000년을 거치면서 애초의 활력을 잃었다. 어떤 사상은 잊혔고, 어떤 사상은 폄훼되고, 어떤 사상은 왜곡됐다. 내가 새삼 제자백가 사상을 다시 읽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더 늦기 전에 인간의 다양한 가능성의 원형으로서의 제자백가 사상을 복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더 늦기 전이라면?


ⓒ프레시안(손문상)
강신주 :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염두에 둔 얘기다. 중국의 미래상을 놓고 여러 가지 전망이 엇갈리고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중국의 힘을 얻었을 때 제국의 속성을 가지리라고 본다. 그렇게 되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분명히 제자백가를 제국의 입맛에 맞게 독해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이런 흐름에 미리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긴박한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자면, 노자는 '현실 도피'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상가다. 그는 국가 권력에 반하는 새로운 대항 권력을 공동체를 통해서 모색했던 이다. 이런 식으로 제국에 저항하는 제자백가의 상상력, 불의에 분노하며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열정을 21세기의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프레시안 : 작업이 쉽지 않을 텐데….

강신주 : 그렇다. 우선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다. 그래서 남아 있는 기록의 행간을 읽는 작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게 역사학자인 공원국 선생님 작업과는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공 선생님의 <춘추전국이야기>는 일단은 기존의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을 하는 것일 테니까.

다만 춘추 전국 시대의 역사와 관련된 1차 사료를 뒤적거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공 선생님의 <춘추전국이야기>가 그런 수고를 상당 부분 덜어줄 것 같다. 작업 속도가 뒤쳐진 탓에 본의 아니게 공 선생님의 <춘추전국이야기>에 큰 빚을 지게 생겼다. 이런 작업을 시작한 것에 경의를 표하며 미리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싶다.

공원국 : 나야말로 강신주 선생님의 작업에 기대가 크다. 행간을 읽을 만한 철학 훈련이 안 된 탓에 나는 남아 있는 사료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제 두 권을 펴낸 <춘추전국이야기>는 앞으로 총 열 권이 예정돼 있다. 춘추 시대의 질서를 설계한 관중(1권)부터 전국 시대를 마감하고 진나라를 거쳐 제국 한나라가 탄생하기까지(2권) 방대한 과정이 그 안에 담긴다.

이렇게 춘추 전국 시대를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사학자로서의 목마름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현재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자 역사를 살핀다. 그러나 '과거'의 열쇠로 '미래'의 자물쇠를 여는 작업은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이 섣부르게 현실의 필요에 따라서 역사를 자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면 조금 여유를 가져야 한다. 작은 변수들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긴 역사 속에서 흐름들을 읽고, 또 이 흐름을 충분히 긴 시간에 적용하면 우리는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춘추 전국 시대 약 550년은 현재와 미래를 통찰할 여유를 주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다.

이렇게 춘추 전국 시대의 큰 흐름을 확인하려면 거시적인 관점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 <춘추전국이야기>가 사건과 고사보다는 좀 더 거시적인 흐름에 주목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역사의 주인공은 사람이다. 거시적인 흐름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1권의 주인공이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책은 춘추 전국 시대를 다룬 다른 책과는 달리 지리를 특히 강조했다. 사실 황하, 장강, 태행산맥 등 자연이 인간에게 강요한 한계를 이해하지 않고는 춘추 전국 시대의 극적인 순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 책에서 지도를 부쩍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프레시안(손문상)

맹자는 왜 '육체노동'을 비판했나?

프레시안 :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역사의 큰 흐름으로서의 춘추 전국 시대, 기대된다. 다른 화제로 넘어가기 전에 아까 강신주 선생님이 잠깐 언급한 역사의 진보 얘기를 해보자. 공원국 선생님은 생각이 다른 것 같은데….

공원국 : 앞에서 강신주 선생님께서 역사의 진보에 대한 언급을 했으니, 간단히 생각을 덧붙이자. 역시 춘추 전국 시대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만, 역사는 진보한다. 물질적인 차원에서, 정신적인 차원에서…. 예를 들자면, 유가(儒家)와 농가(農家)의 대립은 그런 진보를 상징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프레시안 : 자세히 설명을 해보면….

공원국 : 제자백가 중에서 '군주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농가가 있었다. 유가의 맹자는 이런 농가를 강하게 비판했다. 나는 이런 비판을 '철기 혁명'이라는 생산력 진보를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분업이 의미가 없었는데, 철기를 쓰면서 생산력이 늘어나니까 분업이 생긴 것이다.

맹자는 그런 상황에서 지식 노동, 비지식 노동 중에서 지식 노동의 가치를 올려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 책도 팔고, 제자도 늘고, 기부도 받고 그럴 테니까. 그래서 육체노동의 가치를 강조했던 농가를 맹비판했던 게 아닐까? 농가가 중원보다 농업의 비중이 높았던, 그러니까 아직 분업이 본격화하지 않았던, 남부의 초나라에 터를 잡았던 것도 한 이유였을 것이다.

실제로 맹자는 농가를 비판하면서, 노골적으로 "촌놈들이 뭘 알겠냐" 하면서 '촌놈의 학문'이라고 무시했었다.

강신주 : 마르크스가 '분업'이 없는 사회를 좋은 사회로 여겼던 것처럼, 역사 속에서 분업이 낳은 폐해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자, 맹자와 같은 유가가 농가와 대립하는 대목에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방금 지식 노동, 비지식 노동을 구분했는데, 농가라고 해서 공자, 맹자처럼 왜 이론이 없었겠나.

농가의 사상은 20세기 중반에 육체노동이 존중하는 사회를 꿈꾸었던 시몬느 베이유와 같은 사상가에서 변주된다. 이런 농가에 속한 이들이 보기에 분업은 지배-피지배 질서를 영속화하는 굉장히 무시무시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농가는 유가처럼 지식을 팔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다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과연 이런 분업이 진보인가? 아니다. 나는 이런 측면을 염두에 두고 춘추 전국 시대든 혹은 다른 시대든 역사에 진보는 없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공원국 : 오늘날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노동 해방', '여성 해방' 이런 걸 진보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춘추 전국 시대에는 밥을 많이 먹는 것이 진보고, 영양을 더 많이 섭취하는 것이 진보였다. 아무튼 '진보'라는 단어 대신 '흐름'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 텐데, 춘추 전국 시대의 그런 변화의 흐름을 살피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프레시안(손문상)

역사의 승자 맹자, 그 실체는…

프레시안 : 기왕에 맹자 얘기가 나왔으니, 좀 더 자세히 얘기를 해보자. 두 분 다 작업에서 춘추 전국 시대의 사상, 인물을 놓고 옥석을 가리는 작업을 할 테니까.

강신주 : 방금 얘기했듯이 맹자는 이런 분업의 과정을 정당화한 장본인이다. 그런데 그런 정당화의 과정을 잘 볼 필요가 있다.

맹자를 읽다 보면 농가, 양주 등 다른 제자백가를 맹공격한다. 당연히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가의 기록 속에서 승자는 맹자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자. 공자도, 맹자도 지금은 승자지만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즉, 맹자는 당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다른 제자백가를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전략을 썼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대의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사상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당대 사람은 '군주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농가와 같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상에 호감을 보였다. 신분 질서를 옹호하는 지배자의 사상이었던 맹자와 같은 유가는 그 시대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공원국 : 사실이다. 실제로 춘추 전국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과대평가된 사람이 맹자 같은 사람이다. 실제로 맹자가 각광을 받은 건 후대의 일이고…. 또 방금 강신주 선생님 얘기처럼 맹자는 당대의 제자백가들을 의식한 논쟁적이고 즉흥적인 말을 많이 해서 하나의 체계로 보기도 어렵다. 오늘날 맹자의 사상은 후대에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

강신주 : 그렇다. 아까 제자백가 사상을 정리하면서 행간을 읽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맹자의 주석가들이 맹자와 관련된 기록을 각 시대의 지배 질서에 부합하도록 해석하는데 주력했다면, 나는 '왜 맹자는 농가를 무서워했는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생각이다.

이런 작업의 궁극적 목적은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었던 난세를 살았던 이들의 분노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일이다.

프레시안 : 기존 학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강신주 : 이 작업을 구상할 때부터 욕먹을 각오를 했다. 기존 학계의 반발이 심할 테고, 심할 경우에는 무시당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선입견 없는 연구자라면 이런 선행 연구에 충분히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 확신한다. '아. 그때 철학자 강신주가 제자백가를 이렇게 해석했지!' 하고 기억될 수 있으면 된 것 아닌가?

사상 최악의 리더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 공원국 선생님의 경우에는 어떤가? <춘추전국이야기>에서 특별히 부각하고 싶은 인물, 사상이 있는가?

공원국 : <춘추전국이야기>와 같은 작업을 이어가려면 독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잘 알려진 사람들을 제대로 다루는 게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1권에서 관중을, 2권(영웅의 탄생)에서 이른바 '패자(覇者)'로 불리던 사람들을 다룬 것처럼. 그러나 앞으로 남은 여덟 권에는 그간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인물도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자면, 오기 같은 사람이 그렇다. 공자, 장자와 같은 이들이 사상가였다면 오기는 근대적 의미의 기업가에 가장 가까웠던 인물이다. <사기>는 진나라의 발전에 역할을 한 '대장부'라고만 언급하고 있는데, 사실은 춘추 시대와 다른 전국 시대 새로운 질서의 틀을 짠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 사람이었다.

프레시안 : 이번에 나온 2권(영웅의 탄생)을 보면 리더십 얘기도 많다.

공원국 : 요즘 가장 큰 문제가 한국 사회의 '사회 귀족'이다. 사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지배자 행세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과 춘추 전국 시대의 리더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춘추 전국 시대에는 맹자든, 아니면 패자들이든 사회 구성원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춘추 전국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전쟁이었다. 그 때 맹자는 '내 말대로 하면 전쟁 없는 사회가 될 수 있어!' 라고 해법을 내놓았다. 2권에서 다루는 춘추 시대의 패자들'은 '나를 따르면 질서가 유지될 수 있어!' 이렇게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리더들이 과연 이런 해법이 있는가?

춘추 전국 시대를 살펴보면, 한숨이 나온다. <춘추좌전>에 나오는 과거의 귀족은 비록 착취자였지만 재력도, 지식도, 교양이 있었다. 리더가 갖춰야할 기본적인 소양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리더들의 상황은 어떤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도 <춘추전국이야기>를 써나가면서 바람직한 리더의 모습을 제시해볼 생각이다.


ⓒ프레시안(손문상)

중국 제국의 앞날은? 또 우리는?

프레시안 : 오늘날 춘추 전국 시대에 관심을 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의 부상이다. 실제로 많은 지식인이 중국의 '중화주의'가 미국의 '제국주의'와 얼마나 다를지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공원국 : 사실 나는 중국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말할 형편이 못 된다. 아내가 중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내륙 지방에서 만나서 결혼했다.

나는 중국과 한국, 이런 국가 대 국가의 관점에서 중국 위협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본 중국은 여전히 굉장히 가난하고 억압적인 사회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바로 그 옆집에서 사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또 노벨 평화상을 받고도 감옥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 중국은 얼마나 지옥 같겠나?

일단 중국은 내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히 대다수 인민의 가난을 염두에 두면, 지금보다 중국의 경제력이 훨씬 커져야 할 것이다. 최소한 13억 명의 먹을거리는 해결할 수 있는 경제력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 세 끼도 제대로 못 챙기는 중국 인민의 처지를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이게 중국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생각이다.

두 번째 생각을 말하자면, 미국은 하나의 대륙이자 섬이다. 미국은 본토를 공격당한 적이 없는 역사상 유일무이한 제국이다. 그러나 중국은 대륙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수개의 나라와 직간접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더구나 그렇게 직간접적으로 국경을 맞닿고 있는 나라의 상당수는 한국,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네팔 등처럼 인구가 많은 나라들이다.

결코 중국은 미국과 같은 '예외적인' 제국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설사 미국이 마치 예전의 로마제국처럼 경제, 사상 양 측면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잃더라도…. 역사상 중국의 명멸했던 제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동아시아 힘의 균형자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까?

강신주 : 사실 세계 입장에서 중국은 고마운 존재다. 앞으로 세계 자본주의가 20~30년은 지탱할 동력이 중국에서 나오고 있으니까. 최소한 중국의 농촌에서 도시로 새로운 노동자가 계속해서 편입하는 한 중국에서 나오는 자본의 세계적인 축적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는?

중국, 무섭다. 사실 일본, 한국의 지식인들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 이런 얘기를 하지만 정작 중국의 지식인은 그런 데에 관심 없다. 아니 13억 명의 중국이 일본, 한국이 눈에나 들어오겠나? 정상과 정상은 만나서 대등하게 악수를 하지만, 사실 중국의 정치인, 지식인은 한국을 절대로 대등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아닌 우리가 '중국 위협' 이런 얘기를 거론하는 것은 우습다. 이미 중국의 힘은 우리를 위협적인 정도가 아니라 압도하는 수준이니까. 어쨌든 앞으로 중국의 경제적, 사상적 우산 아래서 살 수밖에 없는데, 예를 들자면, 우리 아이들이 중국에 가서 노동자로 취업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그런 상황에 대비한 준비가 돼 있나, 그게 걱정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국 제국의 시각에서 재단된 제자백가 사상이 아닌 우리의 눈으로 읽는 제자백가 사상을 빨리 정리하자, 마음먹은 것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이다. 최소한 지금 많은 지식인들이 그렇듯이 미국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전철을 밟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덧붙이자면, 중국의 13억 명 인구가 닭을 한 마리씩 잡아먹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중국이 다른 성장 방식이 아닌 미국과 같은 성장 방식을 따를 때도 그게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지속 불가능한 성장이 실패로 나타났을 때, 우리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생각하면 무섭다.


ⓒ프레시안(손문상)

우리의 인문학, 지금 시작하자

프레시안 : 큰 작업을 이제 시작한 두 분이 서로의 생각을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에게 바람이 있다면….

공원국 : <춘추전국이야기>에서도 7권에서 제자백가를 다룰 예정이다. 특히 7권에서는 제자백가의 중요한 사상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토론식으로 해볼 구상도 가지고 있다. 그 전에 강신주 선생님 책이 나온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웃음) 얼른 강신주 선생님 책을 보고 싶다.

강신주 : 역사학의 가장 큰 미덕은 자료에 대한 존중 의식이다. 철학자들이 쓰면 아무래도 '오버'하는 글이 많다. 일단 공원국 선생님이 빨리 작업 성과를 책으로 내면 내 작업에 많은 참고가 될 것 같다. 또 공 선생님의 춘추 전국 시대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에 적잖이 자극을 받을 것도 같고.

프레시안 : 서로 빨리 쓰기만 바라는 것 같다. (웃음)

강신주 :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면, 공원국 선생님 또 내가 하는 작업이 힘 있는 사람의 무기가 안 되었으면 좋겠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이 가진 유일한 힘은 '생각하는 힘'인데, 그마저도 권력을 가진 이들한테 빼앗겨서야 되겠나. 인문학자로서 요즘 유행하는 'CEO를 위한 인문학' 이런 데에 자괴감을 느낀 터라 덧붙이는 얘기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대작업을 시작하는 각오를 말하자면?

강신주 : 책을 낸 공원국 선생님께서 멋지게 정리를 해주면 좋겠다.

공원국 : 열 권 중에 이제 두 권을 먼저 냈다. 저자 입장에서는 많은 독자들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지만…. (웃음) 가장 큰 소망은 고전 인문학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그것이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나 강신주 선생님의 책이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한길사 펴냄)가 필독서처럼 읽어야 할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제국을 경영해본, 또 여전히 그런 데에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일본 사회에 맞춤한 책이니까. 아직 식민지의 상처, 혹은 경험에서 못 벗어난 작은 나라로서 세계 각국과 공생해야 할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 책이 또 앞으로 나올 강신주 선생님의 책이 그런 지혜를 찾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 기자로 일하기 전, 오지랖이 넓을 때의 일이다. 200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UN) 인권소위원회 정기 총회에 참석했다. 순서 중 하나로 인권단체의 성명 발표가 있었다. 유엔 공식 언어인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아랍어 중 한 가지로 발표하면 동시에 다른 언어로 통역이 됐다.

한인 재일 교포들이 일본에서 받는 차별 사건을 발표할 때였다. 성명 낭독이 3분의 2쯤 지났을 때, 인권위원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발표를 중지시켰다. 발표자의 영어를 통역사들이 알아듣지 못해 통역이 안 되고 있다는 것. 그 발표자는 내내 한국어와 일본어 억양이 뚜렷한 '콩글리시(Konglish)'와 '재플리시(Japlish)' 중간 정도의 발음을 구사했었다.

엄숙하기만 했던 회의장이 순간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재일 교포가 성명서를 읽는 동안 영어를 쓰는 회의 참석자의 대다수가 발표를 못 알아듣고 있었던 것이다. 알아듣는 척 하던 그들은 인권위원의 지적에 웃음보가 터졌다. 발표자는 당황했지만, 끝까지 똑같은 발음으로 발표를 마치고 퇴장했다.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몇 가지 이유가 겹쳤었다. 하나는 인권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태도가 생각보다 가벼운 데 대한 당황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러게, 영어 발음 연습 좀 하지' 하는 동포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의 발표를 완벽하게 알아듣고 있던 나에 대한 민망함도 들었다.

부끄러움. 이것이 한국인 대부분이 영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수학이나 과학을 못했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과는 다르다. 한국 교수가 미국 대학에 방문 교수로 가서 미국인 과외 교사에게 영어 과외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그런 맥락이 아니고선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부끄러워할까? 왜 프랑스어나 중국어는 하지 못해도 당당하면서, 모국어가 아닌 영어는 그토록 부끄러움의 대상인가? 2010년 한국 사회의 구성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영어 유치원부터 취업·승진을 위한 각종 영어 시험까지, 그야말로 영어와 애증의 관계에 놓여있다.

영국에서 태어나 법학자 겸 언어학자로 25년째 아시아에 살고 있는 리처드 파월의 <아시안 잉글리시>(김희경 옮김, 아시아네트워크 펴냄)는 이런 우리에게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영어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사회에 미친 영향은 물론,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아시아가 영어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정통 영어' vs '통하는 영어'


▲ <아시안 잉글리시 : 영어를 삼킨 아시아, 표준 영어를 흔들다>(김희경 옮김, 아시아네트워크 펴냄). ⓒ푸른숲
왜 하필 아시아일까? 아시아의 많은 국가는 한국보다 더 오래 전부터 영어와 얽히고설킨 관계를 이어왔다.

인도, 싱가포르, 홍콩, 필리핀 등 영어권 국가의 식민 통치 시기를 거친 지역에서는 그 영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영어가 법적 공용어인 국가가 많고, 영국 법제를 물려받은 국가에서는 오늘날에도 법률 제도가 영어로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영어는 아시아 국가의 다양한 문화를 거치면서, 그만큼 변형되고 다채로워졌다. 수많은 영어 방언이 생긴 것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영어(English)'가 아닌 '영어들(Englishes)'을 말한다. 한국인은 대개 '콩글리시(Konglish)'를 '잘못된 영어 사용'을 일컫는 말로 쓰지만, 싱가포르에는 '싱글리시(Singlish)'가, 태국에는 '타이글리시(Thaiglish)'가, 필리핀에는 '타글리시(Taglish)'가 있다. 이는 '잘못된 영어 사용'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영어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억양, 단어, 문법이 다른 '영어 방언' 역시 조금만 익숙해지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소통할 수 있다. 앞서 든 예만 해도 그렇다. 통역사들이 콩글리시나 재플리시 억양에 익숙했다면 저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인도 자신만의 '영어 방언'을 쓰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사실 본토 영어조차 다른 언어의 영향을 받는다. 거물을 뜻하는 '타이쿤(tycoon)'은 미국 방송에서 자주 듣는 단어인데, 어원은 일본어의 '대군(大君)'이다.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돼 있는 '국제 영어 말뭉치'는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영어 변형들도 망라한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문화 기술의 전파는 더 이상 예전처럼 일방통행이 아니다. 영어는 훨씬 풍요로워졌다. 나라마다 다양한 영어들 덕분에 '세계 영어'를 보는 시각까지 크게 달라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인의 '정통 영어' 콤플렉스는 유난히 심하다. 미국에서 제일 좋고 비싼 영어 학원을 찾고 싶으면 '한국인이 많은 학원'을 찾으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가 비싼 뉴욕에서도 고가로 유명한 한 사설 영어학원에 가면 수강생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미국인(특히 뉴욕인)과 같은 영어, 정통 영어를 해야 제대로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리라.

그러나 책의 저자는 과연 원어민과 표준 영어를 누가 정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완벽한 영어가 아니라 통하는 영어면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운 나 역시 미국인 발음이 가장 알아듣기 쉽지만, 그것은 단지 익숙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한다거나 못 한다는 기준은 목적에 맞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정복하려는 영어는가 우뚝 서 있는 산이 아니라, 연장처럼 필요에 따라 쓰이고 바뀌는 소통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영어는 '칼'이다

한국에서 영어 숭배가 친미나 사대주의로 비판받은 적도 있지만, 이제 영어는 그 이상의 것이 됐다. 영어 교육은 가정의 재력을 가늠하는 계층의 척도가 됐고, 영어 능력은 취직의 잣대가 됐다. 영어 유치원, 조기 유학, 해외 연수, 국제중학교, 외국어고등학교 등 '돈 없으면 영어 못 배우는 세상'이 됐고, '영어 못하면 출세 힘든 세상'이 됐다. 영어를 못하면 부끄럽다고 느끼는 이유 중에는 일정 정도 이런 요인도 있으리라. 흥미로운 것은 영어에 대한 이런 복잡다단한 심경을 많은 아시아인들이 느낀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부자 학교와 가난한 학교의 격차는 아시아에서 유달리 커 보인다. 그 격차는 영어에 대한 접근성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인도에서는 매년 1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대부분 영어로 가르치는 학교로 유학을 떠나지만, 인도인의 85%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 파키스탄에서는 우르두어로 가르치는 학교와 영어로 가르치는 학교 중 어디에 입학하는지가 학생의 운명을 결정해버린다. 말레이시아의 논란은 여러모로 한국의 영어 몰입 교육 당시와 비슷하다.

"2002년 총리였던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는 교사들에게 1년의 준비 기간을 주고 모든 교육과정에서 수학과 과학을 영어로 가르치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과학뿐 아니라 영어 수준도 더 높일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신식민주의로의 귀환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모국어 교육을 옹호하는 학계도 거세게 반대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스리랑카인은 영어를 '칼'이라는 뜻인 '카다(kadda)'라고 부른다. 직업과 영향력을 얻는데 영어가 그만큼 강력한 무기라는 말이다.

영어가 '영어들'이 된다고 한들…

책은 이처럼 영어를 둘러싼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현실을 재미있게 소개한다. 그러나 다 읽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영어가 '영어들'이 된들,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이 시대의 절대 명제는 그대로지 않은가?

사람들은 아주 실용적인 이유로 영어를 선택한다. 지구화 시대에서 언론, 인터넷, 출판, 무역, 국제기구 등 모두 영어를 통해 소통하는 상황에서 영어는 이미 승자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영어의 현재 지위를 중국어가 대신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는가?

"여러 면에서 영어 차별주의 논란은 경제 세계화 논란과 유사하다. 이는 우연일까 아니면 의도된 것일까? 사람들에게 선택권이 있을까? 영어 사용을 장려하는 다국적 기업만큼이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어 사용이 이득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에 저자는 침묵한다. 다만 그는 언어학자 데이비드 그래돌의 분석을 인용해 "2010년까지 아시아 인구 3분의 1이 매일 영어를 사용하게 되고 또 지구 어디에선가 2주마다 언어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고 담담히 밝힐 뿐이다. 영어는 그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킬러 언어'이자 '언어의 블랙홀'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영어가 '영어들'이 된들, 여전히 영어가 우위인 세상에서 백인-미국인, 혹은 백인-영국인이 우월한 대접을 받고, 영어를 잘하면 출세의 기회가 높아지는 전 세계적 신계급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저자의 간디가 독립 투쟁을 하며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길"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결국 간디의 투쟁은 그의 뛰어난 영어 덕분에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았나? 우리가 이미 영어 콤플렉스의 '영원한 포로'가 되었다고 하면 너무 비관적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