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는 한국의 환경공학 연구자의 1세대에 해당되는 학자이다. 그는 1968년에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환경공학을 공부했다.

환경공학은 무엇인가? 그것은 환경을 이해하고 보호하는 학문이다. 여기서 환경은 우리를 둘러싼 가장 본원적인 환경, 즉 자연을 뜻한다. 환경공학은 자연을 지키는 학문이다. 그러나 환경공학을 내걸고 자연을 지키기는커녕 자연을 파괴하고 이용하는 데 앞장서는 학자도 많다. 엉터리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서 파괴와 이용을 정당화하는 자들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는 망국적인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살리기'에서 이 문제를 더욱 더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 교수'와 '업자 교수'가 횡행하는 척박한 학계의 상황에서 김정욱 교수는 학문으로나 도덕으로나 한 모범이 된 학자이다. 그는 1982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재직해서 2011년에 정년 퇴임을 한다. 정년 퇴임을 1년 앞두고 그가 한 권의 책을 발간했다. <나는 반대한다>(느린걸음 펴냄)라는 제목의 이 책은 '4대강 토건 공사에 대한 진실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김정욱 교수는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의 공동대표를 맡아서 지난 2년여 간 망국적인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살리기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애썼다. 그는 정치 교수와 업자 교수가 학문의 이름으로 거짓을 퍼트려서 혈세의 탕진과 국토의 파괴를 정당화하는 것에 정면으로 맞서왔다. <나는 반대한다>는 그 소중한 결과이자 새로운 출발이다.


▲ <나는 반대한다 : 4대강 토건 공사에 대한 진실 보고서>(김정욱 지음, 느린걸음 펴냄). ⓒ느린걸음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였던 에밀 졸라는 1898년 1월 13일 프랑스의 한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프랑스인의 각성을 촉구한 이 글은 1894년에 발생한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쓰였다.

프랑스 군부는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독일의 간첩으로 규정하고 종신형에 처해 '악마의 섬'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얼마 뒤에 그의 친구에 의해 진짜 간첩이 체포되었으나 프랑스 군부는 그를 무죄 방면해 버렸다. 프랑스 군부가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규정한 실제적인 이유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이었다. 이 황당한 사건에 늙은 졸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맞섰다. 졸라는 1902년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글에 힘입어 드레퓌스는 1906년에 결국 석방되었다.

김정욱 교수의 <나는 반대한다>를 접하고 나는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떠올렸다. 노작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프랑스 군부의 편견과 억지에 맞서서 프랑스의 양식과 양심을 지켰던 것처럼, 노학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명박 정부의 거짓과 억지에 맞서서 이 나라의 국토와 경제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정욱 교수가 지키려고 하는 것은 국토와 경제만이 아니다. 그는 더욱 더 근본적인 것을 지키려고 한다. 우리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 일찍이 칸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우리 머리 위에서 영원히 돌고 있는 별에 비겼던 그것, 그것은 바로 양심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도덕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나는 반대한다>는 양심을 지키려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외치는 <우리는 반대한다>로 읽혀야 한다.

<나는 반대한다>는 2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정욱 교수는 "1부는 4대강 토건 공사의 진실에 대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국민들께 드리는 보고서"이고, "2부 '이 땅에 살기 위하여'에서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근원적 물음에 대한 길을 찾고자 했다"고 한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저지르는 잘못을 명확히 밝히고자 정부의 자료를 포함해서 많은 자료를 인용하고 있으며, 가능한 쉬운 말로 사진과 도표를 최대한 활용해서 문제를 지적하고 올바른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망국적인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살리기에 대한 새로운 연구서가 아니라 기존의 연구를 총화하고 해설하는 교양서이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김정욱 교수가 절절히 밝히고 있듯이 40년 넘게 수행해 온 환경공학 연구의 성과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교양서를 넘어서 그의 연구와 인생을 집약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김정욱 교수는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썼으며, 이 책의 주요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머리말'에서 잘 정리해서 제시했다. 따라서 '머리말'을 통해 이 책의 핵심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김정욱 교수는 4대강 살리기가 어떤 타당성도 갖고 있지 않은 사업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4대강 살리기의 실체는 '4대강 죽이기'이자 '대운하 1단계'이다. 이런 점에서 4대강 살리기는, 그가 정확히 지적하고 있듯이, 국토의 파괴일 뿐만 아니라 국어의 파괴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4대강 살리기는 '황우석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과학 사기'가 정부 차원에서 더욱 대대적으로 자행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나는 40여년 연구해 온 환경공학의 모든 성과를 검토해 보았지만 정부의 4대강 토건 공사에는 환경공학적, 수문학적, 생태학적 측면에서 하나의 타당성도 발견할 수 없었다. 타당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강산을 회복 불가능하게 망가뜨릴 큰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주장이 모두 틀리기만 하냐는 물음을 받는다. 우리말에 '일리가 있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말이라도 조금은 맞는 구석이 있기 마련인데, 정부의 주장에 설마 장점이 하나도 없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긍정적인 마음으로 정부의 논리를 살펴봐도 정말 하나도 없으니 나조차도 난감한 노릇이다.

그러나 강의 파괴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이 잘못된 토건 공사를 정부가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자연을 살리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유익한 정책인 것처럼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 책에서 4대강 토건 공사가 어떤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어떻게 강과 자연을 죽이는지, 그러면 왜 사람들이 살 수 없는지를 말할 것이다. 정부의 주장을 하나하나 짚어 반론을 펼치고 근거자료와 도표를 제시했다. 강을 인공적으로 개발하여 피해를 입은 국내외의 사례도 넣었다.

김정욱 교수는 토목공학과 환경공학을 연구한 '공학자'이다. 따라서 그는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살리기의 문제를 공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전문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이 망국의 사업은 개발독재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토건국가의 구조를 떠나서 올바로 이해될 수 없다. 세계 최악의 토건국가가 '이명박'이라는 토건업자 출신의 대통령을 만나서 4대강 죽이기라는 극단적인 문제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4대강 죽이기를 막아야 할뿐만 아니라 여기서 나아가서 토건국가의 구조를 철저히 혁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대해서도 김정욱 교수는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4대강 죽이기는 토건국가의 극단화에 해당되는 것이며, 우리는 토건국가를 개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의 강은 이제 돈 버는 콘크리트 더미가 되어 버렸다. 땅이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 버렸다. 아름다운 강산을 자랑하던 우리나라는 어느새 오염과 낭비의 대표적 나라가 되었다. 반세기 가까이 벌여온 대규모 국책 사업은 5000년을 이어온 아름다운 자연과 전통의 삶을 파괴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나라가 '세계 최대 토건국가'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는 전 국민이 짊어지고 이득은 소수가 가져가는 기형적인 국가가 되었다. 4대강 토건 공사는 이런 국책 사업의 가장 극단적인 것이다.

김정욱 교수는 자신이 '온 삶을 던져' 망국적인 '4대강 죽이기'를 막고자 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토건국가에서 이득을 얻는 소수의 토건족과 투기꾼을 제외하고는 누구라도 그의 '온 삶을 던져' 제시하는 설명에서 하늘의 해처럼 밝은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와 생태를 동시에 파괴하는 망국적인 이중 파괴 사업인 4대강 살리기에서 이득을 얻는 소수의 토건족과 투기꾼은 과학적인 비판에 대해 '좌파'라는 색깔론의 욕설을 퍼붓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장악한 방송과 신문은 이명박 정부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데 혈안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비가 쏟아진다고 해도 그 위에서는 해가 밝게 빛나고 있다. 그는 '온 삶을 던져' 진실의 햇빛을 밝혀주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온 삶을 던져 "나는 반대한다", "강을 죽이지 마라"라고 외치는 것이다. 내 40년 학문은 힘이 없지만, 내 60년 삶은 간절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우리 강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전달되었으면 한다. (…) '4대강 죽이기'라는 이 끔찍한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생태 위기에 처한 우리 시대의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게 바로 내가 '4대강 죽이기' 사업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일리가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는 김정욱 교수를 비롯해서 많은 교수들이 무지해서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살리기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주장해왔다. 그러나 김정욱 교수를 비롯한 많은 교수들은 이명박 정부가 무지하거나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이제 김정욱 교수는 책으로 이 사실을 지적하고 나섰다. 둘 중의 한 쪽은 분명히 무지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 지난 8월 25일 오전에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4대강 지키기 국민 행동 선포식'에서 내가 다시 요구했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누가 틀렸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를 밝히기 위한 공개 토론에 즉각 응해야 한다. 대통령이 계속 토론을 회피하고 4대강 죽이기를 강행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틀렸으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2010년 9월 11일 서울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게 4대강 죽이기의 중단을 촉구하는 국민 대회가 열릴 것이다. 4대강 살리기를 계속 강행하면 이 나라는 머지않아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 생명의 젖줄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면서 흥할 수 있는 나라는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나도 망국적인 4대강 죽이기를 막기 위해 많은 논문을 쓰고 책을 내고 칼럼을 썼다. 그러나 김정욱 교수의 책만큼 포괄적이고 친절한 글을 쓰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반대한다>를 읽고 4대강 죽이기의 실상을 확인하자. 그리고 9월 11일의 국민 대회에 참여해서 "우리는 반대한다"고 힘을 모아 외치자.


함께 읽기

2009년 말부터 4대강 살리기의 실체가 4대강 죽이기이자 대운하 1단계라는 사실을 밝히는 여러 책들이 출간되었다. 여기에서 그 책들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강은 흘러야 한다>(김상화 지음, 미들하우스 펴냄)

35년 동안 낙동강 지키기에 헌신해온 낙동강공동체의 대표이자 운하백지화국민행동 공동대표인 김상화의 진정한 낙동강 지키기 이야기이다.

<한국의 5대강을 가다>(남준기 지음, 내일신문 펴냄)

환경전문기자로서 15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우리 국토의 개발과 파괴를 취재해온 <내일신문>의 기자 남준기가 4대강 살리기로 커다란 위기에 처한 5대강을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많은 사진으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올바른 정책을 제안한다. 지율 스님이 4대강 살리기 이전과 이후를 기록한 낙동강의 사진들을 함께 보는 것이 좋다.

<강은 살아 있다>(최병성 지음, 황소걸음 펴냄)

영월의 서강 지킴이이자 시멘트의 위험성을 널리 알린 환경운동가로 잘 알려진 목사 최병성이 4대강 살리기의 실체가 4대강 죽이기라는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한다.

<생명의 강을 위하여>(홍성태 지음, 현실문화 펴냄)

파행적 근대화의 역사와 토건국가의 구조라는 관점에서 우리 강의 개발과 파괴의 문제를 연구하고 생태복지국가의 전망을 제시하는 생태사회학 연구서이다.

<한강의 기적>(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엮음, 이매진 펴냄)

4대강 살리기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는 서울 한강이 강 파괴의 전형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서울 한강을 대상으로 진정한 강 복원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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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선생님께/독자님께,

대담집 잘 읽었습니다. 2009년 '다윈의 해'에 쏟아진 진화 관련 책들의 홍수 속에서 건질만한 게 별로 없어서 아쉬웠던 차였습니다. 특히 한국적 맥락에서 진화론 150년 역사의 의미를 회고하는 담론이 부족했다고들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 책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역사학자 임지현, 생물학자 전방욱, 의학인문학자 강신익, 동양철학자 김시천, 그리고 대담을 이끌어가는 철학자 최종덕 선생님 들의 면면을 봐도 영민한 독자들을 들뜨게 만듭니다. 이 분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새롭고 의미 있는 시도를 하고 계신 분이지 않습니까? 이들이 함께 펼쳐 보이는 진화론의 과학적 이해와 인문사회학적 함의들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귀한 지면을 빌어 서평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색다르게 써보겠습니다. 다윈 선생님이 이 대담집을 읽었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요. 또 한국적 맥락도 잘 알고 계시다고 해보지요. 이제 저는 다윈 선생님의 서재에 가서 그를 인터뷰합니다. 이 책에 대한 그의 소감과 해명, 그리고 비판들을 들어보겠습니다.


▲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 :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최종덕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
장대익 : 선생님, 책은 어떠셨나요?

다윈 : 음…. 우선 흥미로운 부분들이 좀 있었습니다. 특히, 김시천 선생이 동양 사상의 관점에서 내 이론을 비교한 부분은 아주 독특한 시도였다고 봅니다. 대담자인 최종덕 선생과 의학자 강신익 선생도 동·서양의 비교학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서양 학자로부터는 듣기 힘든 말들이 많았어요. 이 점이 이 책이 내게 주는 새로움이었습니다.

장대익 : 여기 언급된 동양 사상은 이해하기 힘들지 않으시던가요? 저는 그쪽 공부가 짧아서 그런지 다소 추상적으로 읽히던데요.

다윈 : 난들 쉽겠어요? 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긴 했습니다. 다만, 진화론적 사유와 동양적 사유 간의 유사성 및 상관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지식의 계보 그리기와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서 세상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이해나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또, 이건 좀 조심스런 말이긴 한데, 차이점보다 유사성을 강조하는 이런 비교들이 자칫 동양적 사고의 우월성이나 동등성에 집착하는 지적 열등의식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점검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책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장대익 : 한때 '신과학 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말인가요? 이런 우려는 최종덕 선생도 하고 계시잖아요.

다윈 : 내 말은, 단지 비교를 통해 유사성을 찾는 것이 최종 목표여서는 곤란하다는 거예요. 세상의 모든 생각들은 모두 비슷한 면이 있으니까. 뻔한 얘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새로운 통찰과 더 넓은 설명력을 낳아야 그게 의미 있는 비교 아닐까요?

장대익 :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책에서 좋았던 점 몇 가지 더 얘기해주실 수 있으세요?

다윈 : 일단 구성이 맘에 듭니다. 역사, 사회, 생태, 철학적 관점에서 내 이론의 의미와 함의를 짚어줬으니 마치 맛있는 코스 요리를 먹은 느낌이에요. 다만, 구성에 있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진화론의 역사와 함의를 다루는데 진화생물학자나 과학사학자가 한 사람 정도는 대담에 참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어찌됐든 이 책의 가장 특징은 '한국'이라는 상황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는 점일 겁니다.

장대익 : 그러시군요. 그 '한국적 맥락'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더 말씀 나누기로 하구요. 혹시 이 책에서 불편한 점, 또는 받아들이기 힘드신 부분은 없으셨는지요?

다윈 : 으흠. 일단 사실 관계가 잘못된 부분들이 더러 있더군요. 눈에 띄는 것 몇 가지만 열거해보죠.

임지현 선생이 "다윈의 외삼촌은 조시아 웨지우드로 본차이나 기업의 창시자"(40쪽)라고 했는데요, 외삼촌이 아니라 외할아버지가 조시아 웨지우드입니다. 전방욱 선생의 경우, "라마르크의 주장은 다윈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억지"(106쪽)라는 표현을 썼는데, 좀 부끄러운 얘기긴 하지만, 내가 끝까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의존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강신익 선생의 경우에는, "보노보는 계통수로 볼 때 침팬지보다 인간에게 훨씬 가까운 호미니드종이다"(234쪽)라고 했는데, 침팬지와 보노보는 같은 '침팬지속(Pan)'에 속해 있어서 서로가 더 가깝지요. 우리는 '사람속(Homo)'에 속해있지 않습니까? 김시천 선생의 경우도,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의 책이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아내의 연령대를 조사한 결과를 진화심리학으로 해석한 것"(382쪽)이라고 했는데, 그들의 연구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아니라 의붓부모가 자식을 살해한 사례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대담자들이 책을 내기 전에 이런 사실 관계를 좀 더 정확하게 검토를 했어야 합니다.

자칫 똑똑한 독자들에게 신뢰를 잃을 수 있잖아요. 대담을 이끌고 있는 최종덕 선생의 경우에도 몇몇 오류가 눈에 띄었어요. 최 선생은 내가 "비글호 항해 5년 동안 부인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았다"(179쪽)고 했는데, 나는 항해가 끝나고 3년이 지나서야 결혼을 했어요. 내가 장가를 두 번 갔었던가? 하하하.

장대익 : 에드워드 윌슨을 데이비드 윌슨으로 잘못 표기하거나(207쪽, 325쪽), "피로 물든 이빨과 발톱(red in tooth and claw)"이라는 관용적 표현을 계속 "피 묻은 이빨"로 표기한다든가, 45억 년 된 지구의 나이를 "140억 년 이상"(429쪽)라고 오기한 부분들은 분명 옥의 티들입니다.

다윈 : 사실, 글을 쓰고 책을 내다보면 이런 실수들은 흔히 있는 일이니까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아요. 애교로 봐줄 만한 것들도 많았으니까요. 더군다나 이 책의 저자는 실상 다섯 명이나 되잖아요? 정작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불편했던 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장대익 : 어떤 점이었나요?

다윈 : 내 후예들에 대한 평가가 좀 공정하지 못해요. 한마디로 편향적이라는 얘기죠.

장대익 :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다윈 : 이 책에는 진화론의 두 팀이 등장합니다. 편의상 A팀과 B팀이라고 하죠. B팀에 대해서는 사회진화론, 우생학,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환원론 등의 용어가 따라다니고, 스펜서, 윌슨, 도킨스 등이 거론됩니다. 이들은 이 책에서 하나같이 비판받고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도매금으로 비난받는 수준입니다. 반면 A팀의 굴드와 르원틴 같은 학자들은 '좋은 녀석들(good guys)'로 분류되어 칭찬받고 있더군요.

장대익 : 물론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런 관점을 갖는 것 자체는 대담자들의 입장이나 취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좀 그 부분이 걸리긴 했지만요.

다윈 : 오, 물론이에요.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편향이 있다는 점이 아니라 그 편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좀 미약해 보인다는 점이에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죠.

최종덕 선생은, "사회생물학이 아전인수 격으로 자연 현상을 자기 이익에 맞추어 재조립하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87쪽)고, 전방욱 선생은 "한국에는 지극히 일방적인 진화론만 소개되어 있다"(146쪽)고, 강신익 선생은 "인간 사회가 [분명한 위계 질서가 있는] 침팬지 사회처럼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생물학의 횡포에 해당한다"(231쪽)고, 김시천 선생은 "사회생물학이 생물학적으로 밝혀진 인과성을 인간 사회의 다양하고 복잡한 심리 상태나 집단 정신에 무반성적으로 적용하는 몰인간적 폐해를 보였고"(323쪽), "(도킨스와 윌슨)의 입장은 모든 건 다 적응된 결과라는 것"(406쪽)이라며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요.

그런데 보세요. 하나같이 잘못된 근거로 비판하고 있잖아요. 사회생물학이 언제 우리가 침팬지 사회처럼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까? '모든 것이 다 적응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진화심리학이던가요? 한국에 굴드와 르원틴 같은 저자들의 주요 저작들이 소개된 적이 없단 말입니까? 이건 좀 지나칩니다.

장대익 : 저도 공감합니다만, 제 경우에 진화론 논쟁이 이념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와서 그런지 이젠 좀 그런 비판에 무덤덤해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책의 부제를 보며 기대하던 것들이 채워지지 않아 좀 실망한 측면이 있습니다. 부제가 "진화론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했는가?"잖아요. 저는 당연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진화론 관련 논쟁들이 다뤄질 것을 기대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어떤 독자라도 그런 기대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대담자 중 누구도 한국에서 진화론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실명이 등장하지 않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난 100년 동안 한국에서 진화론이 어떻게 수용되고 진화해왔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었습니다. 대신 동서양의 외국 학자들의 이름과 이론이 주로 논의되고 있었어요. 이 책에서도 여전히 '한국'은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윈 : 그런 점이 있었군요. 하기야 나는 한국 상황을 잘 몰랐으니. 그런데 혹시 장 선생 이름이 나오지 않아서 섭섭했던 것은 아니고? 하하하.

장대익 : 에이, 그런 것은 아니에요. 한국에서 진화론의 역사를 논할 때 꼭 언급되어야 할 다른 분들이 있는 것 같아서요. 여하튼 간만에 그래도 깊이 있는 대담집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이제 마무리 해주세요.

다윈 :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최종덕 선생이 나를 가상으로 인터뷰했더군요. 맨 뒤에 보니 출전을 포괄적으로 표시하긴 했지만, 가상 대담이란 게 원래 인터뷰 하는 사람이 인터뷰 당하는 사람의 입을 빌어 결국 자신의 말을 하고자 하는 것 아니겠소? 다시 말해 왜곡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죠.

최 선생은 내가 마치 기독교와 진화론을 '분리된 영역'으로 본 것처럼 서술했던데(442쪽), 이건 진실과 좀 먼 얘기입니다. 나는 세계관의 충돌을 보았어요. 그래서 너무 괴로웠었지. 내가 '분리론'으로 이 문제를 쉽게 해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나는 (내적으로) 맞서 싸웠지만 끝내 분명한 해결을 보진 못했지요. 그게 바로 나에요.

장대익 : 진화론은 과학이지만 과학의 울타리를 넘어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여러 접점들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차분히 앉아 이 책을 읽으며 진화론이라는 과학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살아왔는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윈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서평을 놓고 <찰스 다윈, 한국의 학자를 만나다>의 저자인 최종덕 상지대학교 교수가 '프레시안 books'에 반론을 보냈다. 반론은 9월 3일 발행된 '프레시안 books' 6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련 기사 : 장대익의 서평에 답한다…다윈이 지식 권력의 수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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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의 <반대자의 초상(Figures of Dissent)>(김지선 옮김, 이매진 펴냄)은 서평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말하자면 지금 필자는 서평들에 대해 서평을 하는 셈이다. 정말 남는 게 없는 장사다. 서평 모음집에 대한 서평이라면 비평 대상인 그 서평들보다 더 격이 높아야 할 텐데 필자에게는 도무지 그럴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저명한 저자와 글재주를 겨루는 만용은 애당초 접고, 아주 소박한 관점에서 이 책에 접근하고자 한다. 그것은 이역만리 영국 땅의 신문이나 서평지에 실렸던 서평들을 모아놓은 이 책을 한국의 독자가 굳이 읽을 만한 이유가 있는지 따져보는 일이다.

이미 저자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는 이들은 그 이름만 듣고도 이 물음에 "그럼, 물론이지"라고 답할지 모른다. '테리 이글턴', 이 이름은 영문학계, 좀 더 넓게는 문학이론 진영에서는 명성(혹은 악명)이 드높기 때문이다.

1960년대 말, 70년대 초, 유럽의 대학원은 '68 운동'의 반항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개념들을 전면 재해석한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작업을 나침반 삼아 저마다 자신의 학과에서 센세이셔널한 논문들을 쏟아냈다. 영국의 문학 연구 분야에서는 테리 이글턴의 <비평의 기능 : 현재 문학 이론의 쟁점들>(유희석 옮김, 제3문학사 펴냄, 현재 절판)이 바로 그 역할을 했다.

당시만 해도 새파란 젊은이였던 이글턴은 이 책에서 영문학계의 교황이나 다름없던 프랭크 레이먼드 리비스에게 겁도 없이 도전했고, 심지어는 좌파 선배인 레이먼드 윌리엄스도 한 물 갔다고 준엄한 판결을 내렸다. 이 한 권의 책으로 이글턴은 '악동'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많은 인문학도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고, 마르크스주의 열풍의 끝자락에 대학물을 먹은 필자 같은 사람도 어렴풋이 들어서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굳이 이 사람의 서평 모음집까지 찾아 읽어야 할 이유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소수의 영문학 연구자들이나 관심 있을 법한 일이 돼버린 이글턴의 과거를 알 리 없는 대다수 독자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저자명만으로 읽을 이유 찾기에 부족하다면, 서평집이라는 성격은 어떨까? 서평집이라서 갖는 단점도 뚜렷하지만, 또 나름의 장점도 있지 않을까? 서평집 한 권을 읽음으로써 서평의 대상이 된 책들을 모두 섭렵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약간 반칙의 느낌은 있지만, 서평집만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반대자의 초상>이 다루는 책들의 목록만 봐도 그렇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자크 데리다까지, 예이츠나 엘리엇 같은 현대 문학 거장에서 축구 선수 베컴의 자서전까지, 이 방대한 주제와 다채로운 저자들을 단 한권의 책으로 만난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하지만 목록을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장점도 곧 퇴색하고 만다. 이글턴이 다루는 저자들 중에는 스탠리 피시니 조지 슈타이너니 하는, 영미 문학 전공자가 아닌 다음에는 알기 힘들고 관심 갖기도 힘든 이름들 역시 제법 있다. 미국의 한 독서인이 한국의 국문학 교수나 문학평론가에게 시간을 할애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우리가 이 사람들에 대한 갑론을박에 귀를 기울 이유를 찾기는 힘들다.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의 선봉에 선 만담가


▲ <반대자의 초상>(테리 이글턴 지음, 김지선 옮김, 이매진 펴냄). ⓒ이매진
하지만 저자의 매력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있다. 이글턴의 저작을 읽어본 사람이면 다들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대단한 문장가다. 우아한 미문을 쓴다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인이 흔히 '입담' 혹은 '구라'라고 부르는 재치와 유머가 보통이 아니다. 특히 남을 쏘아댈 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학문적으로 해야 할 말은 다 하면서, 마치 지나가듯 불쑥 능청스럽게 내뱉는 농담들로 상대방의 위세와 위선을 무장 해제시킨다.

필자는 예전에 이글턴의 <미학 사상>(방대원 옮김, 한신문화사 펴냄)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보는 내내 배꼽을 잡고 웃었던 흐뭇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 책 내용은 다 잊었지만, 그 때의 유쾌했던 기분만은 잊지 않고 있다. 적어도 그 책에서 이글턴은 천재적인 만담가였다.

<반대자의 초상>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글턴 특유의 유머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게 이 책을 손에 잡을 만한 한 이유가 될 법하다. 필자가 발견한 그런 류의 문장 중 대표적인 것 하나만을 들자면 다음과 같다. 20세기 중반 영미 문학계에서 문학 평론의 최고 권위자였던 노스럽 프라이의 책에 대한 언급이다.

"나 자신도 '리내커 칼리지의 마르크스주의 얼간이'로 이 책에 잠깐 등장하는 만큼, 그 메모들이 아무리 쓸모없는 신비주의를 담고 있더라도 대단히 박식한 것만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건 평소 내 너그러움의 한도를 넘어서는 일이다." (162쪽)

엄청 비틀리고 꼬인 문장이다. 프라이에 대해서 아니꼬운 것은 모조리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겸손한 쪽은 나라고 생색은 다 내는 식이다. 비평 대상 본인은 발끈하겠지만, 보고 있는 제3자에게는 흥미진진한 일격이 아닐 수 없다. 평소 이런 난타전을 관전하길 즐기는 분들이라면, <반대자의 초상>은 분명 한 번 눈길을 줘볼만한 책이다.

하지만 이글턴은 어디까지나 영어권 문화의 자식이다. 그의 유머 역시도 김치, 고추장에 익숙한 한국인의 웃음보에 정확히 꽂히기에는 버터 냄새가 너무 진하다. 출판사의 선전 문구처럼 이글턴의 책에서 진중권을 찾으려 한다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도대체 웃음의 포인트가 어디냐고 항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이글턴의 농담이 전제하는 영미 사회의 맥락들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웃음 폭발을 방해하는 요소다. 예를 들어, "제프리 아처가 감옥에 있다고 하는 것하고 똑같은 의미로 아름다움이 시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비평가는 별로 없으리라"(110쪽)라는 문장은 아처가 영국의 스타 작가이면서 대처 시절 보수당 정치인으로서 성 추문 위증 혐의로 감옥에 갇혔었다는 것(왜 이 대목에서 자꾸 한나라당 의원들이 떠오를까)을 읽는 이가 이미 알고 있어야 비로소 그 입가에 미소를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런 영미식 농담과는 영 코드가 안 맞는다고 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의 추천 근거로 무엇을 꺼내 들어야 할까? 아마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글턴이 이 책에서 난도질하는 저자들 중 상당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다. 제법 거장이라 할 수 있는 폴 드 만이나 가야트리 스피박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더구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별 상관없는 저자들을 다룰 때에도 이글턴은 포스트모더니즘 유행을 희화화하는 농담 하나 정도는 반드시 끼워 넣는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로서는 참으로 당황스러울 법하다.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자신들을 비판하는 자가 정색해서 깃발을 흔들고 구호를 외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그토록 너그러이 대하는 만담으로 싸움을 걸어오니 말이다. 더구나 농담에 관한 한, 농담을 찬양만 하는 그들에 비해 이글턴이 한 수 위다.

따라서 이 서평집은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서로서 뚜렷한 용도를 지닌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반대쪽 바리케이드에 소속감을 느끼는 인문학도들이라면 이 책을 적들에 맞설 작지만 날카로운 무기들의 보따리로서 구비해놓을 만하다.

뜻밖에 조우하는 '자기 포기'의 윤리학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자체가 이미 한 물 간 사상이다. 관련 분야를 전공하는 인문학도가 아니라면, 굳이 그것을 비판하는 책자에 마음 뺏길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뿐이라면 결국 이 책의 독서 이유에 대해 낮은 평점을 줘야 했으리라. 뭐, 좀 더 웃기는 대목은 없나 책장을 뒤적이다 느닷없이 발견한 뜻밖의 문장들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노베르트 보비오의 책을 다룬 '이름 없는 묘비의 무덕'이라는 글에서 저자는 진지하게 윤리학이라는 주제를 꺼내 든다. 그는 좌파에게 부족했던 것 중 하나가 윤리학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다고 지적한다. 마르크스 사상에 담긴 혹은 채 담기지 못한 윤리적 측면에 대해 논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 사상을 재발견한다. 그러면서 문득 읽는 이의 가슴을 꿰뚫는 문장을 발사한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자기희생을 하는 혁명가는, 해방된 미래의 이미지를 보여 주기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혁명가는 미래의 표상이 아니라, 미래를 확보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보여 주는 표상이다. (…) 유사한 사례로, 수도사나 종교적 금욕주의자는 천국의 심상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불의의 세상에서 천국에 이르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버려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기표일 뿐이다." (184쪽)

이글턴은 갑자기 '버림'의 윤리학을 이야기한다. 한국 독자들이 흔히 법정 스님의 책에서 발견하길 기대하는 문장들이 이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혁명가를 수도사에 견주는 언사도 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반대자의 초상>과 함께 최근 국내에 소개된 이글턴의 또 다른 책이 놀랍게도 <신을 옹호하다>(강주헌 옮김, 모멘토 펴냄)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 책은 DNA 결정론 식의 속류 유물론을 바탕으로 기독교 전통 전체에 선전포고를 한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에 대한 맹공이다. 한 마르크스주의자가 진화론자들에 맞서 '신을 옹호'하는 것이다!

이글턴이 기독교 전통에서 주목하며 또한 '옹호'하고자 하는 게 바로 그 윤리학이다. 조너선 돌리모어라는 국내에는 낯선 저자를 다룬 글('제대로 살아야 제대로 죽을 수 있다')에서 우리는 이러한 윤리학의 사뭇 감동적인 윤곽을 발견한다.

"성 바오로가 우리는 매순간 죽는다고 말할 때 그 뜻은 삶이 곧 죽음이라는 순교자적인 의미였다. 삶에서 자아를 없앤다는 것은 자아가 해체된 상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떤 특정한 양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지를 잃지 않고 자아를 적절히 쾌활한 상태로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 진정한 자기 포기는 정치적 순종이나 격렬한 성적 쾌락 같은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을 살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197쪽)

이글턴은 이러한 '자기 포기'의 윤리가 역설적으로 인간 주체에 대한 가장 강력한 긍정이며 이것으로부터 혁명적인 좌파 정치를 복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 문장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몇 년 전에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이글턴의 소설 <성자와 학자>(차미례 옮김, 한울 펴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에서 이글턴은 1916년 더블린 봉기로 정치적 순교자가 된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널리의 죽음을 강박적으로 돌이킨다. 이글턴에게 이 죽음은 2000년 전의 또 다른 정치적 순교자, 예수의 죽음과 다를 바 없는 것이고, 이 죽음의 의미를 체득하는 것은 곧 삶을 제대로 사는 것, 그래서 지금 여기의 우리 삶을 바꾸는 것의 출발점이 된다. 진심으로 자기를 버리는 자들만이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과거에는 그것을 '하느님 나라'라 했고, 몇 세기 전부터는 그것에 '민주주의', '사회주의', '코뮌주의' 같은 이름을 붙여왔다.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글턴-지젝-바디우 연합 전선

기독교 사상을 재음미하여 좌파 정치를 재구성할 토대를 찾으려는 시도는 이글턴만의 희한한 행보는 아니다. <반대자의 초상>의 서평 대상들 중 한 명인 슬라보예 지젝도 이 노선의 동반자이고,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더구나 이글턴이 이런 입장을 취한 게 최근의 일만도 아니다. 그에게는 까탈스러운 알튀세르 학파 마르크스주의자만도 아니고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의 선봉에 선 만담가만도 아닌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그것은 일찍부터 자본주의의 극복은 기독교 윤리 전통과 사회주의 운동의 만남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어온 가톨릭 좌파의 얼굴이다. 그는 이미 1960년대부터 가톨릭 청년 좌파의 길을 모색한 <슬랜트(Slant, '경사'라는 뜻)>라는 잡지를 낸 바 있다.

사실 이러한 추구가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은 이미 함석헌을 만났었고 안병무, 서남동을, 민중 신학과 민중 불교를, 동학과 같은 민중 종교의 재해석 시도들을 조우한 바 있다. 하지만 한 동안 사회 변혁 사상과 운동의 이러한 차원은 망각의 대상이 되어왔다. 세속의 사상(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은 자신이 채 갖추지 못한 성스러움에 대해 무감각했고, 성스러움의 담지자들(제도화된 종교들)은 세속에 투항하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저 멀리 영국의 한 문학 이론가의, 신문 문예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던 글들을 통해 뜻밖에도 함석헌의, 안병무의 말들을 다시 듣는다. 우리의 삶이 더욱 비루해지고 비참해지기 전에, 정말 그 전에, 삶을 더 없이 '진지한' 무엇으로 바라보아 왔던 두 흐름이 서로 합류해야 한다는 요청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

이것이 필자가 <반대자의 초상>의 독서를 독자들께 주저 없이 권하는 가장 확신에 찬 근거다. 이 책이 선사하는 이 뜻밖의 조우는 시의적절하며 뜻 깊다. 위에 소개한 이글턴의 다른 책들(<신을 옹호하다>나 <성자와 학자>)을 이 책과 함께 읽는다면, 더욱 뜻 깊은 독서 체험이 될 것이다.

사족 삼아 덧붙이면, 몇 군데에 낯을 붉히게 하는 오역이 있어서 아쉽다. 루소의 <신(新) 엘로이즈(La Nouvelle Hélois)>를 <단편 소설 엘로이즈>라고 하거나(210쪽) '국가 개입주의자(state interventionist)'를 '주간 개입주의자'라 한 것(267쪽)이 그렇다. 교열만 제대로 봤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오류다. 재판을 낼 때에는 반드시 시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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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람도 죽는다

"그런데 그렇게 제대로 된 나라가 왜 망했어?"

얼마 전 평자(評者)가 <조선의 힘>(역사비평사 펴냄)이란 책을 냈을 때, 어떤 선배가 던진 질문이었다. <조선의 힘>은 대중서의 성격을 지향했지만, 평자의 연구 노트이기도 하다. 아마 그 책에 기존의 견해와는 다른 접근이나 관점, 해석이 많았기 때문에 나온 질문이었을 것이다. 질문의 행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조선 시대에서 '힘'을 읽어내려는 평자의 시도에 대한 냉소가 섞인 반박이 포함되어 있다. 평자도 역시 약간 코웃음을 섞어 대답하려다, 그 연배에서는 충분히 할 만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반문하는 데 그쳤다.

"건강한 사람은 안 죽나요?"

물론 건강한 사람도 죽는다. 마찬가지로 건강했던 문명이나 나라도 언젠가는 망한다. 사람으로 치면 자연스럽게 수명이 다하고 죽듯이 망하기도 하고, 사고를 당하여 급작스럽게 죽듯이 망하기도 한다. 앞의 경우는, 고대(古代)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이 대체로 그렇고, 뒤에 경우는 많은 정복 전쟁의 사례, 앵글로색슨의 기습으로 보호 구역에 갇힌 아메리카 인디언 등이 그렇다.

한창 젊은이가 자동차 사고를 당하면 억울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돌아가실 때 된 노인이 암이나 횡사를 당하면, 그런 욕을 당하기 전에 돌아가시지 그랬냐며 안타까워한다. 한 사람의 생명은 슬픔과 안타까움에 그친다. 그런데, 나라나 왕조의 경우는 그 흥망을 둘러싸고 복잡한 심사가 교차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조선의 경우는 어떤 죽음에 해당될까? 나는 둘 다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사(自然死)할 만큼 나이가 먹은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격이랄까? 새로운 문명의 전환이 필요할 시점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을 당한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망국의 실제를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조선의 망국을 이해하는 우리의 관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빨리 망했으면' 관념

일단 이 경우에 생겨나는 안타까움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안으로, 하나는 밖으로.

먼저 밖으로. 일본의 침략, 나아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비판이다. 하긴 이 선명한 비판조차도 근대화라는 망상에 빠져 호도하는 모양이다. 제국주의 침략의 부당성을 오히려 부정하고 근대화 논리에 휘둘려서 오히려 식민지의 긍정성을 부각하는 주장이 있다. 물론 통계(統計)와 실증(實證)이라는 이름으로. 그 끝은? 돈이면 자식도 팔 것이다. 이 얘기는 그만하자.

그럼 안으로는? '빨리 망했으면' 관념을 형성한다. 좀 더 빨리 망해서 사회나 나라가 바뀌고 왕조든 뭐든 정체(政體)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면 식민지로 전락하는 욕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애처로움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 '빨리 망했으면' 관념은 하나의 가정(假定)이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는 말은 역사가 가정이 낳을 '허구'에 기초하지 않고 '사실(史實)'에 기초해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빨리 망했으면', '빨리 망했다면'이라는 가정은 이미 역사학의 궤도를 이탈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조선은 망할 때가 되어 망한 것이고, 하필 그때 사고를 당한 것이다. 어떤 노인이 팔순, 구순이 되어 돌아가실 때가 되었는데, 불행히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치자. 우리는 그때 운이 나빴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라, 민족, 문명이 망했을 경우에는, 이렇게 '쿨'하게 운이 없었다고만 말하기가 어렵다. 특히 그 망하는 당사자가 되었을 때는 그 가정에 온갖 사념이 개입한다.

아쉬움이 원망으로, 다시 원망이 바람으로, 바람이 다시 원망을 낳고, 원망은 다시 아쉬움으로 돌아온다. 이 사이클은 당사자의 논리로만 전개되지 않는다. 거기에 슬쩍 제국주의의 선전이 흘러들어온다. 식민지의 곤혹은 이미 불리한 지형에 서 있는 그 자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빨리 망했으면' 관념 자체가 이미 심각한 상처의 소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관념은 이미 식민사관으로 범벅이 될 운명을 타고 난 것이다. 그래서 평자는 '빨리 망했으면' 관념이 보이는 모든 글을 경계한다.

망국을 돌아보는 이유

평자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옛 이야기가 재미있는 경우이다. 아이들이 옛날 얘기 해달라는 것은 재미있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대부분 재미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다만 역사라는 이름만 빌린 소설책이나 연속극이 많은 게 안타깝다.

둘째는 역사의 교훈을 얻는 것이다. 시대는 변하지만 같은 인간이라는 보편성 때문에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근대 진보사관은 근원적으로 역사의 교훈을 부정한다. 그런 점에서 근대 진보사관은 역사학의 이름을 빈 신학(神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은 믿음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보의 이름으로' 현대인은 과거의 인간들에게 지독하게도 오만하다.

셋째는 인과(因果)를 이해할 수 있다. 지층처럼 형성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연관성을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인과성에 대한 집착은 변이와 우연을 놓치게 되고, 그 무력감에서 자칫 환원론으로 내닫기도 한다.

이 세 가지 역사의 효용 중에서 김기협의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돌베개 펴냄)은 둘째 효용을 중심에 놓았다. 김기협은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에서, '지나친 애국심에 휘둘리지 말고 망국의 상황을 좀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은 '전통의 가치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위기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한 채로는 극복도 있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1부는 '조선은 어떻게 시들어갔는가(17~18세기)', 2부는 '조선은 어떻게 쓰러져갔는가(19세기)', 3부는 '조선은 어떻게 사라져갔는가(대한제국기)'로 나누었다. 그 아래 25항목의 세부 주제를 설정하여 '망국의 과정'을 살피고 있다. 3부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크게 보면 조선이 망해가는 과정과, 직접적인 식민 침탈 과정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나라, 민족, 문명


▲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김기협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아울러 김기협은 식민지=망국을 세 차원에서 보겠다고 했다. 하나는 500년을 통치해온 조선 왕조의 멸망이다. 둘째는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한민족이 이민족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셋째는 한국이 속해 있던 동아시아 문명권으로부터 유럽에서 발원한 근대 문명으로의 전환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이 때 필자가 말하는 동아시아 문명이란 '유교' 문화를 기반으로 한 문명이라고 생각된다.

평자도 '조선 문명'이란 표현을 즐겨 쓰고 있다. 평자는 이때 '문명'을 '자연 상태'와 대비된 용어로, 그러니까 일상생활부터 국가 같은 제도에 이르기까지 인간들의 '유위(有爲)'에 의해 이루어진 삶의 양식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여기에는 왕조도 들어갈 수 있고, 서원(書院)도 들어갈 수 있으며 동네 생활도 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왕조는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지속되지만, 조선식 동네 생활은 중종 이후(16세기 초반)부터 1970년대 새마을운동 이전까지 지속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시스템이 '문명'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 시스템의 하나이며, 매우 유력한 힘을 갖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 제도는 흉기일 수도, 보험일 수도 있다.

인간은 한 문명 속에서 살면서도 여러 차원의 공동체나 제도를 넘나든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홍경리(弘慶里)는 행정 구역상으로는 대한민국 충청남도에 속하지만,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동네 사람과의 연대에 더 영향을 받고, 같은 동네 사람이라도 학교에 다니는 학동들은 학교에,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교회나 절에,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직장에 삶의 중심이 놓여있었다. 삶의 다영역성(多領域性)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는 이유는 국가주의를 경계하자는 뜻도 있다.

'근대'의 상대화

김기협은 그동안 망국을 이해할 때, '근대화 과제의 내용을 후세 사람의 기준으로 규정하고 그에 따라 당시의 상황을 음미하는' 시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변화 주체의 주체성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근대 유럽의 독선적 문명관으로부터 20세기의 대부분 기간을 통해 압력과 충격을 받은 결과다. 그리고 이 관점이 대한민국의 특권구조 유지에도 적합한 것이기 때문에 편향성의 보정이 지체되고 있다.'

따라서 김기협은 '근대'라는 용어를 '중세의 해체' 이후의 무엇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산업화, 식민지, 소유권 등으로 표현되는 근대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직도 일부 유럽의 근대를 절대화하여 그 밖의 세계를 재단하는 '오리엔탈리즘'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주의적 관점은 역사적 사실과 어긋날 뿐 아니라, 앞으로 모색할 새로운 시대에 대한 다양한 검토와 실험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볼 때도 반성해야할 시각이다. 평자는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조선 이후'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그러나 김기협이 '근대'를 포괄적인 열린 개념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조선 이후'를 그려냈던 다양한 시도들에 대해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발굴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동학(東學)이든 서학(西學)이든, 또는 성리학의 자기 분열을 통해서든, 또한 정체(政體)가 무엇이든 새로운 '조선 이후'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검토했어야 문명사적 전환의 의미가 드러났을 것이다.

고종에 대한 '재조명'

김기협은 박규수, 박영효, 김홍집, 대원군, 고종, 민비 등의 인물을 통해 '개화'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증거로 삼는 자료와 시각에 따라 역사의 해석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학계의 연구 성과를 대체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평자도 잘 모르는 데가 많기 때문에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이 펼치는 국제 관계를 포함하여 비교적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하도록 서술하고 있다.

한편, 고종에 대해서는 근래 일본에 저항한 능력 있는 군주로 해석하는 일련의 경향을 김기협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매천야록> 등의 자료, 사사로운 왕실 경비 운영, 을사늑약 당시 대신(大臣)의 구성 등을 근거로 고종의 무능과 기회주의를 비판했다.

사실 500년을 이어온 나라가 운명이 다할 때, 사람들은 여러 가지 새로운 모색을 하게 된다. 사람들의 삶의 영역은 왕조만이 아니라, 가족(가문), 사회, 고향, 나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굳이 왕조에 집착하지 않는다. 당연히 조선 왕조에서 벼슬한 사람들이나 조선에 가치를 부여한 사람들이 자결을 하거나 의병을 일으킨다. 그러나 식민지 상황으로 넘어가면 왕조로 돌아가는 복벽운동이 아닌 독립운동으로 저항운동의 대세가 바뀌게 된다. 이는 '새로운 시대'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다시 고종으로 돌아가서, 고종이 능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평자로서 알 도리가 없으나, 김기협의 말대로 일제의 침략성이 고종이 성격이나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일반 백성들도 의병으로 나서고, 독립군으로 나서는데,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는 일이나, 의병에게 거병의 명분을 부여하는 정도야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아닌가? 500년 왕업이 무너지려는 때에 군주가 되어 그 정도도 안 하면 오히려 그게 '사람 노릇'을 못하는 게 아닐까?

유교 정치와 권력의 사유화

김기협이 망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맞서, '지금 단계에서는 극단으로 치우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긍정의 관점을 시도하는 것이 편향성 보정을 위해 필요한 일 같다'고 결의를 다진 데 비해서, 적어도 조선 후기에 대한 서술은 별로 진전을 보지 못한 듯하다. 이는 역사학계의 탓이 크다. 그중 역사상으로 그려내는 방법이나 구도, 그리고 오류 몇 가지를 논의에 부쳐 그의 문제의식이 더 깊어지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자 한다.

김기협은, '15~16세기 한국 사회의 상황에는 유교 정치 질서가 적합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9세기에는 상황이 크게 달라져 있었다. 조선의 망국은 그 사이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결과'로 보았다. 그러니까, '조광조 (…) 이 시기 사림(士林)은 학문적 권위는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지만 스스로 정치적 권력을 지향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선 '유교'(이 용어가 유학(儒學)의 종교성을 부각시키고 천황제의 근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문 듯하다. 앞으로 평자는 '儒家' 또는 '儒學'이라고 쓴다) 정치에서 권력의 공공성을 위한 논리와 제도가 발달했다는 필자의 지적은 적절하다. 특히 유가의 르네상스였던 성리학에서는 환관, 외척, 종친이 아닌 공식 정부 조직을 중심으로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국가를 디자인했다. 경연, 언관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기협은 '15~16세기 한국 사회의 상황에는 유교 정치 질서가 적합'했다고 하면서, 조광조 등의 사림이 정치 권력을 지향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먼저 정치 권력을 지향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분명히 조광조 등은 정치 권력을 지향했다. 아니면 과거 시험은 왜 보고, 현량과는 왜 설치하겠는가. 정치 할 사람을 등용하기 위한 것이다.

사림이 배제되어야 할 중간 권력?

이런 이상한 이해 때문에 필자의 논리는 점점 수렁에 빠지는 듯하다. '유교 국가가 잘 운영되려면 임금에게 도덕적 권위가 모여야 하고 실력 있는 인물들이 관료 집단에 최대한 편입되어야 한다. 국가 체제와 거리를 둔 집단이 사림이란 이름으로 별개의 도덕적 권위를 누리는 상태가 일차적으로는 국가 기능의 저하를 보여주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국가 체제의 안정을 해치는 것이다.'

그럴까? 첫째, 관료 집단에 최대한 편입되어야 한다는 발상이 걱정된다. 누차 말했지만 평자는 사람들의 삶의 영역이 관료 집단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또 도덕적 권위가 임금에게 모여야 한다는 것도 이상하다. 도덕적 권위가 다양한 계층에 곳곳에 있을수록 바람직한 것 아닐까? 필자의 말대로 되면, '국가'는 강해질지 몰라도, 사회나 삶, 문명은 피폐해지지 않을까? 왜 이렇게 국왕에게 기댈까?

급기야 필자는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드러난 권력 조직과 병립하는 감춰진 권력 조직이 사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하극상', '음성적 권력 조직'이라고 표현한다. 나아가, '한 사회의 지식층 주류가 현실 변화에 대응하는 경세의 과제를 외면하고 형이상학적 과제에만 매달리는 퇴행적 풍조는 왜곡된 권력 구조에 말미암은 것이었다'고 단정했다.

이쯤에서 한 가지만 확인하자. 집현전부터 퇴계, 율곡에 이르기까지, 세조의 찬탈부터 선조가 즉위해서 사림이 조정에 들어오기까지 줄줄이 사화(士禍)가 이어졌다. 사화에도 불구하고 정치, 사회의 변화 방향이나 성격을 보면 정치가 개별 이익보다 공공의 안녕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조가, 연산군이, 중종대 공신이, 남곤이나 이기, 윤원형이나 문정왕후 같은 자들이 정변을 일으키고 무고를 자행해서 그 노력을 억눌렀다.

바로 사림은 이런 노력을 통해 성장한 사회 세력이자 정치 세력인 것이다. 필자가 말한 권력의 공공성은 바로 성리학을 내면화, 자기화 했던 사림들의 성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생겨나지 말았어야 할 중간 세력이라고 보는 것은 사실(史實)과 정반대일 뿐 아니라, 현재성의 측면에서도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종종 조선 시대사 개설서 등을 보면, 조선이 '빨리 망했으면' 하는 사람들이 퇴율 시기 이래로 성리학은 경직화했다고 단언한다. 임진왜란까지 터졌으니 타이밍도 그런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좋다. 그래서 임진왜란 무렵 조선이 망했어야 한다고 한다. 이거, 전형적인 식민사학의 논리와 같지 않은가?

평자는 학부 다닐 때 이런 해석이 너무 이상했고, 이런 해석 때문에 평자가 성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퇴율 시기에 성리학을 자기화했는데, 긍정적 기능할 새도 없이 곧바로 경직화 단계에 들어갔다는 주장이 이해가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한다는 말도 성립하긴 하니까 이런 주장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통상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쳐서 노년기를 맞는 것 아니겠는가.

왕권과 신권의 구도

김기협은 결국 '중국과 한국의 유교 질서는 군주와 평민 사이에서 중간 권력의 성장을 억제하는 데 핵심적 원리가 있었다'며, '왕권이 중간 권력의 힘을 통제함으로써 서민을 보호하는 역할이 동아시아 전통 질서의 핵심'이라고 정리했다. 평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유학(유가)을 연구하는 어떤 학자가 이런 주장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유가의 정치 이론에는 왕권이든, 중간 권력이든 공도(公道)에 어긋나면 통제한다. 그 공도 또는 천리(天理)를 익히는 것이 공부이고, 그 공부를 통해 세상을 바로잡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교목지가(喬木之家, 존경 받는 명문가)를 말했고 입현무방(立賢無方, 편견 없는 인재등용)을 가르쳤다. 그뿐이랴! 임금답지 못한 임금은 그저 필부(匹夫)에 지나지 않는다는 역성혁명의 논리도 함께 전해 주었다.

이는 문민(文民) 정치를 우수한 유가 전통으로 이해했던 김기협의 논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조선은 논리, 근거, 명분이 딸리면 정치판에서 행세를 할 수 없던 나라였다. 그게 문치의 힘이다. 사림을 나라의 으뜸가는 기운(元氣)라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퇴율을 존경하고 의병장들을 기렸던 것은 바로 이러한 사림들의 도덕성과 책임의식을 사람들이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의 행동을 국왕권에 대한 '하극상' 정도로 보거나, 이들이 형성한 정치 세력을 '음성적 권력 조직'이라고 이해하는 한 조선 시대사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왜곡으로 빠져들 위험이 커진다.

김기협은 '왕권과 신권을 같은 평면 위에 놓고 보는 근대적 시각을 넘어서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아마 민주주의적 시각을 '중세 권력 구조'에 투영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걱정 이전에, 대통령이 관료제의 우두머리라는 점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권력의 고하, 권위의 존귀는 있다. 그나 여타 연구자들이 구사하는 왕권-신권 구도의 문제점은 다른 데 있다.

여러 연구자들이 즐겨 쓰는 왕권-신권의 구도가 그다지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적이 없었다. 이유는 왕권-신권을 정말 소박하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두 가지만 정리하자. 첫째, 왕권은 원래 신권보다 강한 것이다. 관료제의 정점에 군주가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로 그렇게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국왕의 수양을 강조했던 것이다. 둘째, 어떤 왕권이고 어떤 신권인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이를 따지지 않으면 권력 게임만 남는다. 이것이 당쟁론이다. 단순한 정치 공학, 그것도 재미없는 정치 공학, 그래서 독자들이 꺼려하는 정치 소설이 되고 만다.

또 반복되는 광해군의 부활

그리고 김기협은 광해군, 북벌론, 예송(禮訟), 실학(實學) 등에 대해서 식민사관이나, 식민사관을 극복하려던 또 다른 근대주의적 시각인 자본주의 맹아론(내재적 발전론)에 의해 왜곡된 조선 후기 시대상을 반복하고 있다. 실학의 근대주의적 해석을 비판하는 듯하면서도, 내용은 근대주의적 해석에서 한 발자국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광해군, 또는 광해군의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는가가 조선 후기를 어떻게 보는가의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라고 나는 생각한다. 식민사학자 이나바에서 시작된 광해군 띄우기가 얼마나 황당한 사료 왜곡과 교묘한 식민주의, 패배주의, 기회주의 논리에 의해 자행되었는지는 평자가 이미 <조선의 힘>에서 골격은 정리했으므로 또 반복하지는 않겠다. 그 책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했던 두 가지만 추가하겠다.

김기협의 논리대로라면 유교 정치의 진수로 문치주의의 제도적 장치이자 공적(公的) 제도라고 할 수 있는 경연(經筵)을 광해군은 미루고 미루다 신하들의 비판을 받고 마지못해 참석했다. 참고로, 광해군처럼 경연을 게을리 했던 임금에는 세조와 연산군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광해군 시대에는 역사 편찬도 지지부진하였다. <선조실록>을 편찬하는 데 9년의 세월을 보냈고, 그나마도 왜곡이 심해서 나중에 <선조수정실록>을 다시 편찬해야했다. 이런 것이야말로 김기협이 강조하는 시스템의 붕괴가 아닐까? 이런 붕괴를 바로 잡은 계해반정(癸亥反正, 인조반정)이 왜 그리 비판을 받아야 할까?

왜 의병만 좋아하는지…

논리가 이렇게 되다보니, 후금(청)의 침략으로 시작된 정묘호란, 병자호란에서도 청의 '침략성'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조선의 '분별없는 비현실적 대응', 즉 척화파(斥和派)에 대한 비난만 남는다. 의병운동, 독립운동을 당장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 지라도 미래에 씨앗을 남기는 대의로 이해할 수 있었던 김기협이 호란 때의 의병이나 척화에 대해서는 왜 그리 야박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첫 번째 후금과의 전쟁인 정묘호란만 해도, 이 전쟁은 후금의 느닷없는 도발로 시작된 것이다. 후금은 명과의 전쟁을 위해서는 조선을 먼저 처리해두어야 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전쟁을 피해야했다. 광해군이 궁궐을 짓느라 파탄 낸 재정도 복구가 안 되었고, 방치했던 군비도 정리가 안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 관계를 유지한다는 화의가 성립했던 것이다.

병자호란은 또 다른 트집, 즉 군신 관계를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필부필부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먹질 하며 협박한다고 아무나 보고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명색이 한 나라인데, 그것도 나름대로 자기들 문화와 문명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인데, 죽기로 저항한 것이 그리도 흠이 될까? 우리 사회에 좋은 게 좋다는 생각이 만연하고, 기회주의가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것이 이런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비약일까?

안 나오면 이상한 서술들

이외에도 조금만 생각하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기존의 조선 시대 해석을 김기협이 그대로 따르면서 서술하고 있어서 많이 아쉽다. 북벌론을 '정권 독점을 위해 대외적 긴장을 이용한 것'이라고 했는데, 아마 이승만의 북벌론을 연상하지 않았나 한다. 그러나 효종 당시 북벌론은 이승만처럼 떠벌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또 침략을 당했으면, 분하다는 사람부터 당장 원수를 갚자는 사람까지 다 있는 거 아닐까? 그걸 이해하기가 그리 힘들까?

김기협은 청나라에 대한 인식이 '박지원이 이어받은 현실적 대청관이고, 또 하나는 노론 정통론에 따르는 소중화주의'라는 둘을 가른다. 하지만 둘은 같은 것이다. 북벌론이나 소중화주의가 있어야 북학론이든 현실적 대청관이 나온다. 그리고 박지원이란 사람은 노론이다. 참 이상하다. 왜 이럴 때는 노론과 박지원을 나누는지. 이렇게 나누다 보면, 노론엔 누가 남을까 궁금했다.

서인-노론 하니까, 또 송시열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권력 사유화의 장본인으로. 송시열? 권력 사유화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다. 효종-현종-숙종대 정치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송시열을 놓고 '권력 사유화'라는 말은 못한다. 효종-현종-숙종 내내 송시열은 가시방석이었다.

나중에 경종이 되는 장희빈의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는 것이 너무 이르다는 말 한 마디로 숙종에게 사약을 받고 죽음에 이르지 않았던가? 이런 말, 결코! 요즘 우리가 아는 '정치적인 사람'은 절대 못할 일이다. 아니 안할 일이다. 필자의 말대로 '권력을 사유화'한 사람은 이렇게 당하지 않는다. 곧잘 잘난 척하는 평자였다면 아마 입 다물고 몸보신했을 것이다.

김기협은, '지배 집단이 권력 투쟁에 매몰되면서 정치와 학문이 모두 선명성 경쟁에 매달리게 되었다'고 서술하면서, '이항로의 학설은 주리론으로서 존왕양이를 춘추대의, 즉 최고의 도덕적 명제로 삼는 것이었다. 조선 후기 정치와 학술을 지배해 온 서인-노론 계열이 주기쪽으로 기울어졌던 경향과 대비되는 자세였다'고 했다.

이항로? 노론이다. 앞에서는 박지원을 노론에서 빼더니, 이번에는 이항로를 노론에서 뺀다. 또 궁금하다. 이렇게 나누다 보면, 노론엔 누가 남을까.

다문궐의(多聞闕疑)

다카하시가 도식화했고 이병도가 이어받아 조선 유학사를 뒤틀어버렸음에도 여전히 학계에서 주기-주리라는 도식을 사용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평자가 이미 <조선의 힘>에서 지적했다. 그런데 여기서 김기협이 이항로의 '주리'라고 할 때와, 서인-노론의 '주기'라고 할 때는 그 논리 차원이 다르다.

이런 논리 차원을 혼동한 결과, 다카하시와 이병도는 17세기 이후 당쟁과 학술 논쟁이 불일치한다고 보았고, 당쟁이 이념적 지향도 없는 권력 다툼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다카하시나 이병도에게 인물성동이 논쟁은 너무 버거웠을까? 근대주의의 청산을 주장하는 김기협이 다카하시나 이병도의 오류를 반복할 이유가 있을까?

김기협의 혼동은 이어진다. '기정진, 이진상 등 같은 시기의 거유들이 모두 주리론에 접근했던 것은 왕권의 쇠미가 심각해진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고 했다. 그런데 리(理)가 왕권에만 있다고 보는가? 리는 천지 만물에 내재한다. 왜 굳이 왕권의 쇠미하고만 관련시키는가?

김기협의 글을 보면서, 모처럼 내가 역사 공부를 시작하면서 품었던 의문을 되씹어보는 기회가 되었다. 처음 역사를 공부할 때는 근대주의의 맹목성에 눈뜨게 되었고, 차츰 조선 시대 연구를 통해 앞뒤가 맞지 않는 해석과 견강부회식의 사료 절취에서 생긴 숱한 의문점을 노트하기 시작했다.

공자는, 많이 듣고 보되, 의심나는 것은 일단 빼놓으라고 했다. 평자는 많이 듣고 본 것도 아니면서, 의심나는 것만 늘어갔다. 의심이 풀릴 때면 그걸 글로 남기고 발표도 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다. 질문이나 의문이 많은 것은 좋은 것이다. 그리고 함부로 답을 내지 않는 것도 좋은 일이다. 우리는 너무 답을 빨리 내려고 하는 세상에 살고 있나니.

김기협의 조선 시대 서술의 경우, 비교적 평자가 낯익은 자료와 주제가 많아서 아는 척을 겸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의 글을 통해 배운 바가 적지 않다. 특히 콤플렉스 없는 역사 서술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깊은 동료애를 느낀다. 그리고 김기협처럼 성실한 학자이기 위해 평자도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에 대한 오항녕 교수의 서평을 놓고, 저자가 의견을 보내왔다. 저자의 의견은 아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오는 9월 3일 발행되는 '프레시안 books'(6호)에 실렸다. (☞관련 기사 : 오항녕의 서평에 답한다…"조선 시대 밖에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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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일이다. '평화 연구'라는 제목의 수업의 첫 시간, 교수가 앙케트 질문지를 돌렸다. 질문은 '평화로운 상태, 평화롭지 않은 상태란 어떤 것인가', '일본은 평화로운 상태인가 아닌가', '일본은 아름다운 나라인가' 등이었다. 모두 익명으로 답한다는 전제였다.

다음 수업 시간, 교수는 회수된 답변을 들고 왔다. 그는 설명 중 기자의 답변을 인용하면서 "일본인에게선 절대 나올 수 없는 답변이다. 유학생 중 한 명이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교수는 그런 반응을 노리고 있었다. 대다수 일본인 수강생은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이므로 일본은 평화롭다'고 썼다. 기자는 이렇게 썼었다.

"움직이지 않는 사회, 의견이 대립하지 않는 사회를 평화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일본은 평화롭지 않다."

평화로운 일본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권혁태 지음, 교양인 펴냄)를 읽고 당시의 장면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평화라는 말을 듣고 그런 '이상한 답'을 써낼 정도로 위화감을 느낀 건 왜 나 뿐이었을까?

권혁태는 이렇게 일본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들을 파고든다. 그는 10년 이상의 일본 체류 경험과 연구를 토대로 평화헌법부터 스시까지, 후지산부터 오키나와(沖縄)까지 일본의 '평화로운 것', '아름다운 것'들에 서린 분열과 트라우마, 불안과 자기기만을 읽는다.

평화가 싫다는 나라가 어디 있겠냐마는 전후 일본에선 그 인기가 유별났다. 패전 직후 공모한 복권 교환용 담배 이름이 압도적인 표차로 'PEACE'로 낙점됐을 정도로 최대 유행어였고, 피폭지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거리에는 아직까지 평화 공원, 평화 거리 등 평화투성이다. 물론 앞서 떠올린 일화에서도 드러났듯 지금도 많은 일본인은 현대 일본의 상태를 평화롭다고 여기며, 저자 역시도 "현대 일본을 드러내는 열쇳말은 여전히 평화"라고 말한다.

일본은 항상 '전쟁 상태'였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늘 '전쟁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쟁과 무장을 포기하는 헌법9조(평화헌법), 핵무기 제조와 반입을 금지하는 비핵3원칙으로 평화를 제도화시키기도 했다. 사회·문화적으로 일본은 평화로운 시절을 누려왔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적은 피를 흘리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으며, 1990년대 이전까지는 경제적 양극화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의 평화 뒤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군사력을 보유했음에도 '자위를 위해 필요한 전력'에 불과하다는 자위대와 '일본의 군사력이 아니다'라는 명분을 가진 주일 미군이 존재한다. 그 평화는 주일 미군 기지의 75%를 강제로 끌어안은 오키나와와 한국전쟁으로 반공의 전투기지 역할을 했던 한국의 희생을 먹고 자랐다.

또 일본이 북한의 핵실험을 가리키며 자국의 핵보유를 역설할 때, 그들이 이미 미국의 핵우산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주변국들에 '유사 핵무기'로 작용할 수 있을 가능성은 망각한다. 평화주의의 명분이자 원동력이었던 피폭 경험도 관광 상품처럼 되어버린 지 오래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평화 공원으로부터 조금만 벗어나면 군사 기지, 군수 산업 시설이 즐비하다.

이러한 모순에 대해 저자는 "일본의 헤이와(heiwa·平和의 일본어 발음)는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의미에서는 실체적이지만, 그 전쟁이 없는 상태라는 실체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실체에 대해서는 자각하지 못하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일본에 평화주의를 가져온 주체가 외부, 즉 미국이었다는 점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의 집단적 자기기만에 있다. 일본이 기만하는 실체란 바로 오키나와와 한반도, 그리고 역사다.


▲ 피폭도시 나가사키의 평화 공원 내에 있는 평화의 상 앞에 비둘기가 날고 있다. 나가사키 평화 공원에서는 올해도 1945년 8월 9일의 원폭 경험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로이터=뉴시스

움직이는 일본, 움직이지 않는 일본

기자가 앙케트에 '움직이지 않는 사회'를 적어내며 얘기하고자 한 것은 사실 일본인들의 우경화였다. 2000년대의 일본인들은 점점 정치에서 멀어지고 개인적 안위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자위대복을 차려입은 우익 아저씨들의 퍼레이드는 있어도 격렬한 데모대는 없는 사회였다. 일본은 사회·정치적 쟁점이 집단 간의 격렬한 대립으로 비화되지 않는 '조용한' 나라였다.

그러나 다른 의미에서 당시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은 그와 정반대였다. 그때 일본은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존 연공서열형 장기 고용 체제가 능력주의 단기 계약형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은 변화에 내몰렸고 관료제, 공공사업, 공기업 등은 운동량이 적다며 경쟁의 칼날을 맞게 됐다. 정체된 사회가 아니라 유동성이 점점 격해지는 사회였다.

한때 일본은 스스로를 '1억 총중류(總中流)'라고 불렀다. 일본 국민 모두 중산층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신문 지면에서 그 자리를 대신하는 용어는 격차(양극화), 프리터, 니트, 워킹푸어 등이다. 이렇게 일본 사회가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바뀐 것은 대략 1990년대부터인데, 이는 '개혁'이란 말이 유행한 시기와 일치한다. 1989년 우노 소스케 내각이 '개혁 전진'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이후 '대화와 개혁'(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내각), '성역 없는 구조 개혁'(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등 내각부터 적극적으로 개혁을 외쳤다고 저자는 전한다.

저자는 사회 양극화로 인한 불안이 변화와 개혁이라는 강박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서 개혁은 결국 우경화를 추동해왔다는 것이다. 일례로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파벌 정치, 공공 사업, 공기업 등 기존 자민당의 정권 기반을 파괴하는 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교과서 왜곡을 방치·주장하며 내셔널리즘을 북돋았다. 북·일 정상회담을 하긴 했지만 북한을 만능에 가까운 공포의 기호로 만드는 데에도 성공했다.

개혁이란 과거를 파괴하는 것이고, 일본에서 그것은 전후 민주주의 체제로부터 탈피하는 일, 전후 사회를 극복하는 일을 말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대체로 비핵 3원칙 폐기, 평화헌법 개헌, 자위대의 군대화 등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여기에 중앙으로부터 지방이 소외되고, 잘사는 사람으로부터 못사는 사람이 분리되는 현상도 우경화를 밑으로부터 끌어올렸다. 결과적으로 정치인들의 개혁이 추동한 '움직이는 일본'과 그 안에 포섭된 일본인들의 '움직이지 않은 일본'은 모두 우경화란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책임


▲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권혁태 지음, 교양인 펴냄). ⓒ교양인
권혁태는 들어가는 글에서 애국심과 전쟁 위기, 북한·중국·한국 때리기 등 우경화의 공기가 만연해진 2000년대 이후 일본 사회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전후 체제의 탈피'를 외치는 우경화 흐름에 맞서 우경화 이전인 전후 공간으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그곳은 과연 어디인가를 묻는다.

1956년 일본 경제기획청은 1945년부터 10년간을 전후로 규정한 바 있다. 전범 재판, 평화헌법 제정, 반인권적 제도 철폐, 전쟁 피해국들과의 관계 회복 등 개혁이 이뤄졌던 시기이다. 여기엔 한국전쟁 발발로 정반대로 바뀐 미국의 대일 정책이나 1953년의 전격적인 전범 사면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니 사실 일본의 전후란 "미군이 만들어놓은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축에 냉전 질서라는 또 하나의 축이 얽히는 과정과 기간"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후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과정을 두고 일본은 쉽게 미국과 냉전이라는 외부에 책임을 돌릴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일본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이 '어쩔 수 없는 문제' 혹은 개개인의 문제로 귀결되는 경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폭은 전쟁을 종결시켰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는 2007년 당시 방위청 장관의 발언과 2004년 이라크에서 인질로 붙잡혔거나 살해당한 젊은 일본인들에게 꽂혔던 "스스로 구명해라"라는 비판은 무엇을 공통적으로 말하는가. 2008년 도쿄 아키하바라(秋葉原) 거리에서 십수 명을 살해한 범인이 범행 전 파견 사원으로서의 울분을 밝혔음에도, 언론은 그의 비정상성에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사회에서 '책임'의 시스템이 어딘가 고장이 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 시스템은 전체가 모여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감각의 제국>이라는 영화로 잘 알려져 있는 전공투 출신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는 전성기에 <일본의 밤과 안개>라는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 영화는 1950년대 무장 노선을 취했던 일본의 구(舊)좌파와 그 노선을 포기한 1960년대 신좌파 간의 대립을 중심으로 좌파 운동의 몰락에 관한 격렬한 비판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생소한 내용보다는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에 더 주목이 되는데, 장소가 다름 아닌 결혼식장이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자 지난 일은 덮어두는 곳이다. 그러나 영화는 한 가정의 화평을 빌어줘야 할 자리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집단 토론과 판이 깨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치 그렇지 못했던 일본의 전후를 비유하는 듯하다.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결혼식의 흥을 깨려는 시도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책에서도 자주 인용되지만 일본의 평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히려 재일조선인이나 오키나와 사람들처럼 그 평화에 희생된 자들의 몫이었다. 일본 정부가 이미 오래 전부터 책임을 방기하고 있지만 2010년 오늘날에도 매주 수요일이면 종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문제가 계속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권혁태의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역시 같은 작업의 일환이다.

나아가 '일본에 책임을 묻는 책임'은 종군 위안부 피해자, 재일조선인, 권혁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책 속에서 저자는 한국은 식민 피해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해방 이후 일본의 평화가 한반도 상황과 비대칭적으로 이어져 왔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찾아오자 일본은 미국의 반공 기지가 돼 경제 발전을 누렸으며 남북한이 가까워질수록 일본에선 핵무장론이 득세했다. 한국이 일본 사회의 변화와 관련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그건 주변국으로서의 숙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이 미국이라는 커다란 동맹을 축으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한·일이 과거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하면서도 의뭉스럽게 미래를 논하는 것은 미국의 움직임에 따라 서로 간의 끈을 늘이기도, 줄이기도 하는 관계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마침 아시아 중심 외교를 외치던 총리가 미군 기지 이전 문제의 역풍을 맞아 퇴진하고, 일본 해상자위대가 한·미 연합훈련에 참관하는 등 동북아 냉전 구도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기다. 그래선지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속에서 한국의 불안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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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ppo 2011-03-1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입니다. 언제나 일본을 알아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며, 쓰라린 일이기도 하지요. 자주 들러 고언 듣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