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를 보는 시간은 나무를 만나러 가는 것만큼이나 행복했다."

강판권이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효형출판 펴냄)의 서문에 쓴 문장이다. 이 문장 속에서 '산수화'와 '나무'의 위치를 바꿔 넣으면 곧 내 이야기가 될 정도로 나는 나무와 꽃을 좋아한다. 만약 다시 대학을 갈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임학과나 원예학과를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서평을 의뢰받았을 때 단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무조건 쓰겠다고 했다.

어차피 읽어볼 책이었는데 서평을 쓰게 되면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내 전공과 관련된 그림에 대한 내용이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특히 공자도(孔子圖)를 연구하고 있는 나는 강판권의 또 다른 책인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민음사 펴냄)와 <은행나무>(문학동네 펴냄)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후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로 이어진 독서는 강판권의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지성사 펴냄), <나무열전>(글항아리 펴냄), <중국을 낳은 뽕나무>(글항아리 펴냄),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 사전>까지 계속되었다. <차 한 잔에 담은 중국의 역사>(지호 펴냄)와 <최치원 젓나무로 다시 태어나다>(계명대학교출판부 펴냄) 등 몇 권은 시간이 짧은 관계로 아직 읽지 못하였다.

이 서평을 쓰고 나서도 책읽기는 계속 될 것이다.

나무에게 배우는 지혜


▲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강판권 지음, 효형출판 펴냄). ⓒ효형출판
강판권의 책을 '모조리' 읽겠다고 결심한 것은 내가 나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하는 나무라도 책을 읽는 동안 그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한 권만 읽는 것으로 그쳤을 것이다. 나는 그의 시선을 통해 나무의 인문학적 의미를 발견하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

나무와 꽃을 무척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강판권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무를 통해 인문학적인 접근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나무를 통해 공자나 맹자, 노자나 장자 등의 성인(聖人)의 가르침에 가 닿는다. 그런 그가 그림에 관한 책을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모든 것을 나무로 보려는 나의 '미친 짓' 덕분에 나무가 등장하는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수화에 대한 관심이 일었다. 나는 한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그림을 나무로 읽기 시작했다. 나무의 눈으로 그림을 보니, 그림 속은 온통 나무로 가득했다. 그동안 멀게 느껴졌던 그림이 사실은 내 삶과 늘 같이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이 책이 쓰이게 되었다. 다른 책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에서는 나무에 대한 정보 못지않게 나무를 통해 배워야 할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나무를 통해 도(道)에 이른다.

조선 초기에 안평대군의 꿈 얘기를 듣고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꿈'과 '망상'에 대해 얘기한다. '꿈'은 언제나 현실에 뿌리박고 있어야 하며 현실에 뿌리 내리지 않은 꿈은 '망상'이라는 것이다. 도연명(陶淵明, 365~427년)의 '도화원기'를 바탕으로 한 <몽유도원도>에는 복사나무가 등장한다. 복사나무는 '언제나 꿈꾸는 자와 함께 등장하는' 나무였다.

복사꽃이 핀 도원은 별천지이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안평대군이 꿈꾼 이상 세계는 어떤 곳이었을까. 그가 꾼 꿈속에는 어떤 욕망이 들어 있었을까. 미술 작품을 두고 그 작품의 제작 배경과 의미를 묻는 과정은 미술사에서도 똑같이 고민하는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고민 위에 "중국 원산의 복사나무는 서왕모도, 곤륜도, 시월동도, 선인도, 설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진대에는 조도, 중도, 만도 등 품종의 분화도 나타났다. 복사나무의 색깔도 송대 무명씨의 <벽도도>처럼 흰색도 있다. 무명씨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벽도는 꽃들이 첩첩으로 쌓여 있는 만첩벽도다. 만개한 벽도는 홑꽃보다 풍성한 느낌을 준다" 등의 설명이 추가되면 그림속의 나무에 대한 정보가 명료해지면서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그림에 대한 이해가 뚜렷해진다. 스물여덟 개의 글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독자들의 가슴에 뿌리를 내린다.

강판권은 꽃만 좋아하고 꽃이 피기까지의 긴 과정을 잊어버리는 조급함에 대해서도 일갈을 잊지 않는다.

"꽃만 즐기는 것은 과정 없이 결과만 즐기는 것과 같다. 꽃이 피지 않아도 나무를 사랑할 줄 알아야 꽃을 좋아할 자격이 있다."

강판권이 이 책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내용이 바로 이런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그가 '나무를 스승으로 삼는 이유는 노력한 만큼 얻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삶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치열하게 살기 때문'이다. 벼랑 끝에 선 소나무가 살아남는 것은 자신을 바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융통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도 누구나 소나무처럼 벼랑에 설 때가 있다. 그 때 사람에서 필요한 것이 '시중지도(時中之道)', 때에 맞게 처신하는 것이다. 역시 나무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다.

생태적인 교육법, 격물치지

대학에서 나무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강판권의 교육 방식은 성리학자들이 즐겼던 '격물치지(格物致知)'다. "살구꽃이 피면 학생들을 데리고 교실을 나서 야외 수업을 하면서" "살구나무 밑에서 공자의 사상을 얘기하는 것"이다. 생태적인 공부법은 그가 학생들을 교육하는 방법으로 활용하기 이전에 이미 스스로가 실천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인근 공원의 벽오동을 만날 때마다 안아본다. 벽오동을 안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이 더 푸르러 보인다. 나는 공원에서 벽오동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자주 사진을 찍는다. 나의 소박한 꿈은 일 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벽오동의 삶을 관찰하는 것이다. 같은 장소에서 한 그루의 삶을 관찰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일 년 동안 한 그루의 나무만 바라보면서 살면 한 존재를 마음에 온전히 심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나무는 자신이 뿌리내린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한계 속에서도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산다. 이런 나무 앞에서 사람만이 최고이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발상 자체는 "오만의 극치"다. "생명체에는 등급이 없다." 저자가 직접 만져보고 안아보고 관찰한 나무에게서 배운 결론이다.

이 책은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나무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길러줄 것이고, 나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그림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현재의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은 이 책을 통해 "매화처럼 누군가를 반하게 만들려면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는 것을 배울 것이다.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 사람은 "나무의 삶"을 통해 최고의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좋은 글을 읽어나가는 도중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림에 대한 정보가 좀 더 상세했으면 하는 점이다. 그림이 어떤 재질에 어느 정도 크기로 만들어졌는가 하는 점은 그림을 그린 화가나 보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간혹 편집상의 오류에서 발생한 오자도 눈에 거슬린다. 2쇄 때는 바로잡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감동받았던 구절을 소개하면서 글을 끝마치겠다.

"나무는 그 자체로 길이다. 수십, 수백 년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도 길을 만드는 게 나무다. 나무는 억지로 길을 만들지 않는다. 미련스럽게 한곳에 머물러 있는 내공이 곧 길이 된다. 이곳저곳에서 찾는다고 길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무처럼 자신의 자리가 곧 길이라는 것만 깨달으면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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