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전쟁>(홍순도 옮김, 비아북 펴냄)은 서구 자본의 경제 식민지로 전락한 중국의 현주소를 고발한 책이다. 저자 랑셴핑은 미국과 유럽의 초국적 기업이 치밀하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해 들어오는 과정을 현대판 제국주의로 규정한다. 중국과 서구 자본의 정면충돌을 상징하는 19세기 중엽 아편 전쟁(1840~1842년)의 현대판 버전인 셈이다.

지난 30여 년간 기적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루어내고 세계 경제 대국 2위에 올라서서 미국을 넘보는 중국 경제가 사실상 서구 자본이 마음대로 이용하는 바둑알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이면서도 참담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서구 자본의 경제 식민지화를 우려하는 랑셴핑이 이 책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개발도상국들이 쫓아갈 수 없는 첨단 기술 분야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물과 먹을거리 시장이다.


▲ <자본전쟁>(량셴핑 지음, 홍순도 옮김, 비아북 펴냄). ⓒ비아북
농축산물 시장, 상하수도 인프라, 유통 시장 개방이 가져온 결과에 대한 랑셴핑의 미시적 분석은 의미심장하다. 13억 인구의 먹을거리 시장이 서구 자본에 의해 잠식당하는 과정은 경제 대국 중국의 치명적인 허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신흥 시장국은 산업화를 위해 농업을 포기했다. 제조업 수출 성장을 위해 농업을 희생시킨 이들 국가에게 <자본 전쟁>이 던지는 뼈아픈 교훈이기도 하다.

<자본 전쟁>의 전반부에서는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아 중국의 농업을 초토화시키는 현대판 동인도회사인 종자 회사와 곡물 거래상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식용유의 주원료인 대두, 사료 산업의 기반인 옥수수, 중국의 주력 수출품 방직 제품 원료인 면화, 채소 종자 시장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핵심 농업 시장이 서구 자본의 수중에 들어갔다.

중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인 돼지고기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골드만삭스는 돼지고기 가공 공장과 양돈장을 매입하고 유통 시스템까지 구축해 중국 양돈 산업 사슬 통합을 완성했다. 주식인 쌀과 밀의 경우는 중국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통제의 실패를 틈타 "서구 자본의 독수"가 뻗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서구 자본의 침투가 겉으로 드러난 부분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가 식량 안보와 관련된 국가 기밀이라는 이유로 정보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농축산품 시장에서 서구 자본이 어느 정도까지 파고들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고 한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중국의 식량 공급과 가격 결정이 미국 기업의 통제 하에 들어가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상하수도 기반 시설 개방은 또 다른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중국의 중대형 도시에서 외국기업이 상하수도 사업을 장악하고 물 값을 원하는 대로 올려 받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정치적 업적을 위해 외자 유치 경쟁에 눈이 먼 지방 정부가 벌인 일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를 집안으로 불러들인 꼴"이 된 셈이다.

서구 자본의 사악한 제국주의적 침탈이 총칼을 앞세워 강제된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위기의식도 없이 다국적 기업에게 물 산업과 농산물 시장을 공손하게 갖다 바친 중국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랑셴핑은 무지하고 무능하고 어리석은 중국 정부와 기업에 대해 울분을 참지 못한다. 심지어 서구 자본의 치밀한 계략에 놀아나는 것이 체면을 중시하고 실속을 따지지 않는 중국의 민족성에서 기인하는 "문화적 저주"라며 개탄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서구 제국주의 본질과 진면목을 파헤치고 있다. 특히 현대판 제국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의 음모를 폭로하는데 집중한다. 이 부분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리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난무한다. 랑셴핑은 미국이 수십 년 동안 중국에 대한 변함없는 적개심을 품고 중국을 해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구의 아프리카 자원 침탈이 제국주의적이라면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은 진정한 우정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서구 자본의 제국주의적 실체에 대한 랑셴핑의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은 모든 악의 근원이 미국 정부라는 음로론적인 비약으로 흐른다. 홍콩 기업이든 프랑스 기업이든, 오스트레일리아의 기업이든 간에 저자의 눈에는 "악마와 같은 다국적 기업 배후의 최대 조정자"는 미국 정부이고 최근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상승도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사주를 받은 월스트리트가 국제 유가를 조정한 결과이다. 물론 증거는 없고 근거도 제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음모론적 의혹에 덧붙여 중국 경제가 미국에 손에 달려있다는 심각한 피해 망상적 시각이 더해진다. 오바마가 환율 전쟁과 무역 전쟁을 무기로 내세워 중국의 수출을 타격함으로써 중국 경제를 불황의 수렁으로 밀어 넣고 원가 전쟁을 이용해 중국에 스태그플레이션을 앞당길 것이라는 우려를 토로한다.

이러한 랑셴핑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원자재 가격 급등이나 중국의 스태그플레이션은 미국 정부가 바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미국 경제에게는 악재이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미국 경제는 원자재발 인플레나 중국발 인플레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설사 일부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 세력이 원자재와 위안화 투기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챙겨간다 해도 미국 경제 전체에 인플레의 고통은 치명적이다.

또 파렴치한 월스트리트의 금융 권력은 오바마에게도 정치적인 골칫거리이다. 더구나 국제 원자재 가격을 원하는 대로 조정하고 거대한 중국 경제를 수렁에 빠뜨릴 정도의 영향력을 미국 정부는 가지고 있지 않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이 세계 경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의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을 때에도 미국 정부의 시나리오대로 세상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자본 전쟁>의 음모론적 경향은 이 책의 가장 큰 약점이다. 중국의 반미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는 데는 충분하겠지만 학자로서 랑셴핑의 의미 있는 고민과 중국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연구 작업마저도 평가 절하하는 위험한 모험이다.

랑셴핑이 생각하는 중국의 미래는 초강대국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세계적인 패권국이다. 제국주의의 덫에 갇혀 허우적대는 중국의 현재 모습에서 패권국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랑셴핑은 중국이 패권국이 되기 위해서는 서구가 만들어놓은 불공정한 세계 경제의 게임 법칙에서 벗어나 중국 스스로 룰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랑셴핑의 주장처럼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룰을 만든 것은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이다. 그 룰을 바꾸는 것도 그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이 룰 메이커가 되지 못한 것은 서구 제국주의의 계략 때문이 아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랑셴핑이 책 곳곳에서 중국의 이익과 영혼을 팔아버린 중국 정부와 기업의 무능과 무지몽매함에 분노와 절망을 토해내고 있듯이 중국이 앞으로 풀어야 할 가장 큰 난제는 외부가 아니라 중국 내부에 있다. 세계는 미래의 패권국으로서 중국을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현재 중국의 대응은 서구의 룰에 저항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중국이 만드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게임의 법칙이 무엇일지에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 <자본 전쟁>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중국이 지향하는 게임의 법칙은 무엇인지, 서구의 법칙과는 다른 것인지 정작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저자는 침묵한다. <자본 전쟁>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