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은 아무런 경제적 가치도 없는데,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 다이아몬드는 왜 이렇게 비쌀까? 1776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저술하면서 부딪힌 이 딜레마를 '애덤 스미스의 딜레마'라고도 부른다.
아마 애덤 스미스가 오늘날 살았다면, 이런 문제에 그렇게 논리적으로 고민하지는 않아도 좋았을 것 같다. 우리도 1991년 낙동강 페놀 사건 이후로 물을 사 먹는 게 부자, 아니 부자는 아니더라도 중산층의 상식처럼 되었다. '물은 사 먹으면 되잖아?' 이게 한국 중산층의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리가 있나?
세상에 대가 없는 일은 없다. 우리가 마시는 생수를 공급하기 위해 오래된 지하 대수층을 건드리거나 협곡의 생태계를 무너뜨리게 되고, 점점 더 상상치도 못했던 깊은 곳의 태곳적 생태계도 무너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 '마피아'를 형성하면서, 물 공급 민영화와 함께 신자유주의를 공고히 하고, 동시에 깨끗한 수돗물에 고의로 위협 요소를 준다. 필요하지도 않는 댐이나 보 공사를 은근히 부추기는 사람들은 토건업자와 인근의 토지 소유자만이 아니라 생수 공급자이기도 하다. 물이 더러워지고 수돗물이 지저분해질수록, 생수는 잘 팔리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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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수, 그 치명적 유혹>(피터 H. 글렉 지음, 환경운동연합 옮김, 추수밭 펴냄). ⓒ추수밭 |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깊숙이 작용하는 이런 자본의 메커니즘을, 드디어 체계적으로 조망한 책이 나왔다. 저자는 수돗물 연구로 일명 '천재상'으로 불리는 '맥아더 펠로우십(MacArthur Prize Fellowship)'을 수상한 피터 글렉이다. 생태학 분야에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비운의 천재 맥아더를 애석해 하면서 사람들이 만든 이 재단의 후원을 받는 것은, 관련 분야에서 최고의 영예이다. 결국 세계 최고 수준의 물 전문가가 된 피터 글렉은 2010년 <생수, 그 치명적 유혹(Bpttled and Sold)>(환경운동연합 옮김, 추수밭 펴냄)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의 조사로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진짜 충격 그 자체이다. 우리는 가뜩이나 사막화 현상에 대해서 국제연합(UN) 등 세계적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을까 고민하는 중이다. 그런데 다국적 기업 네슬레가 그런 사막의 오아시스에 담긴 물을 생수로 공급해서, 결국 아프리카를 더욱 더 곤란한 상태로 만들어가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못해 전율이 흐를 정도였다.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드는 생수 한 병이지만, 과연 플로리다에서 북극의 물을 마시는 게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가, 혹은 생태적으로 효율적인가, 그런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물 민영화와 생수 산업화, 결국 그 대가는 지구의 어느 한 구석에서 누군가 생태적으로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현지에서 피해보는 사람들에게 그 지급금이 가지는 않는다. 여기나 저기나, 가난한 사람의 고통은 배가 된다. 생수 공급이 원활한 일부 국가에서는 수돗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노력에 게을러지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그런 것 아닌가? 생수도 공급하고, 물도 안전해지고? 그렇게 모든 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이렇게 진행되다 보면, 결국 도시의 중산층은 수돗물의 중요성을 망각하므로, 정부는 지표수와 지하수를 지키는 데 필요한 노력을 덜 기울이게 된다. 아주 남의 얘기가 아니다. 자, 여러분 생수병을 한 번 들어보시라. 충분한 정보가 있지 않지만, 과연 이런 지하수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태계에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장기적으로 공급이 가능할 것 같아 보이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길. 책의 후반부에는 서울환경운동연합에서 한국의 현황 및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서 정리되어 있다.
지난 10년간 생수 산업을 일으키고 물 민영화로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외화를 벌어오자는 얘기가 한국을 지배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결국 물을 빼앗기는 지역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수돗물을 비싸게 먹고, 장기적으로는 부자들도 생수 아닌 물을 마실 수 없게 되므로, 강물을 안전하게 지키고 지하수를 보존하자는 또 다른 논리가 있었다.
이 두 개의 힘은 팽팽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라는 논리와 국가를 등에 업고 한 편에서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피터 글렉의 이 책을 읽고 물을 공공의 영역에서 안전하게 관리하고 공급해야 한다는 시민이 늘어나게 되면, 우리는 '생수파'와의 10년 이상 지속된 싸움에서 처음으로 승기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안전한 물 그리고 상업적이지 않은 물, <국부론> 이후 무너진 상식을 우리가 다시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의 물만 안전하게 해서는, 우리 자식들이 안전하게 마실 수 있는 물과 안전한 생태계를 물려줄 수가 없다. 귀여운 아기를 생수로 목욕시켜줄 것인가, 아니면 그가 평생 안전하게 있을 자연의 물을 물려줄 것인가, 우리도 선택할 순간이 다가온다. 제주도 물을 서울 사람들이 마시는 상황에서, 온실 기체 대책도 없고, 원자력 발전소 추가 건설을 막을 방법도 없다.
생수는 이제, 경제와 생태의 한가운데를 가르는 핵심 이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