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은 묻지도 않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놈이 꼭 제 증조부님을 닮았다거든."
"게다가 날 닮은 데가 있어."
"어디?"
M은 강보를 들치고 어린애의 발을 가만히 꺼내어 놓았습니다.
"이놈의 발가락 보게. 꼭 내 발가락 아닌가. 닮았거든……."
M은 열심히, 찬성을 구하듯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나 닮은 곳을 찾아보았기에 발가락 닮은 곳을 찾아내었겠습니까?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 중)

<발가락이 닮았다>에 등장하는 M만큼 부성 불확실성(paternity uncertainty)으로 번뇌하는 인간 남성을 잘 보여 주는 예가 또 있을까. 젊은 시절의 방탕한 생활로 생식 능력을 잃은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M은 그 사실을 숨기고 결혼에 골인하지만, 아내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두 가지 갈래 길에서 만일 M이 "그래, 선택했어!" 하고 외치며 생식 능력을 검사하기로 결정한다면, 아내 뱃속에 있는 자식이 제 자식인지, 외간 남자의 자식인지는 확실해질 것이다.

물론 그와 함께 아내의 간통 여부도 명백히 밝혀질 것이고 말이다. 만일 검사하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지금 당장은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고통스러운 의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M은 후자를 택했다. "절망을 스스로 사지 않으려, 그리고 번민 가운데서도 끝끝내 일루의 희망을 붙여 두려 온전히 '검사'라는 위험한 벌의 둥지를 건드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부성 불확실성은 비단 인간 남성만이 짊어진 생물학적 굴레는 아니다. 모름지기 암컷의 체내에서 번식이 이루어지는 생명체라면 그 어떤 수컷도 부성 불확실성의 그늘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1970년대 초 북아메리카 대륙 소택지에서는 수많은 붉은날개지빠귀 M과 그 아내들이 발견되어 학계가 발칵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겨울철 농작물에 해를 끼치는 붉은날개지빠귀의 개체 수를 줄여 볼 요량으로 수컷을 잡아다 정관 절제 수술을 시도했는데(붉은날개지빠귀는 수컷 한 마리가 암컷 여러 마리를 거느리는 일부다처제(polygamy)를 유지하는 탓에 암컷을 많이 거느린 으뜸 수컷부터 수술대에 올랐다), 최첨단 의료 기술이 무색하게도 개체 수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불임인 수컷의 배우자 암컷들이 다른 변방의 수컷들로부터 멀쩡한 정자를 얻어다 자식을 낳았던 것이다. 물론 인간 남성 M과 달리, 수컷들은 자신의 생식 능력이 바닥이 났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마찬가지로 암컷들 또한 수컷의 불임 여부와 상관없이 바람을 피워 댔지만 말이다.

인간 세계에서 유전자를 이용한 친자 확인법이 등장하면서 눈초리, 콧날, 귓불, 심지어는 인중과 발가락까지 동원해 가며 제 자식인지 아닌지를 거듭 확인하던 수고로움이 사라지고 머리카락 한 가닥으로 삽시간에 모든 의문을 날려 버릴 수 있게 되었듯이, 분자 생물학적 기법은 새들의 가족 관계 등록부에도, 그리고 더 나아가 새들의 짝짓기 방식에 대한 우리 인간의 사고에도 혁명의 바람을 몰고 왔다.

분자 생물학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많은 새들에서 암수 한 쌍이 짝을 맺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일부일처제(monogamy)를 채택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조류학자 데이비드 랙은 새들의 90퍼센트(%) 정도가 이러한 일부일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고 자연 상태에서 관찰, 수집된 정보들은 랙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듯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DNA 검사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지고 심지어 일상화되자, 대부분의 종이 짝외교미(Extra Pair Copulation, EPC), 즉 혼외정사를 벌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둥지 내 새끼들과 그 부모 새들의 혈액 샘플을 채취하여 친자 확인을 해 보니, 적어도 새끼 한두 마리는 옆집 아저씨든, 길 건너 사는 아저씨든, 하여간 씨가 다른 자식이었던 것이다(그렇게 해서 생긴 용어가 사회적 일부일처제(social monogamy, 겉으로 보기에 함께 둥지를 짓고 새끼를 기르는 부부 결합)와 사회적 수컷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조류학이 뿌리부터 뒤흔들린 순간이었다. 동 트기 전부터 쌍안경에, 수첩에, 바리바리 싸 들고 해 떨어질 때까지 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조류학자들, 행동 생태학자들이 느꼈을 배신감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른 결과가 도출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새들의 하룻밤의 정사(情事) 또한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아무도 모르게 은밀한 곳에서, 게다가 눈 깜짝 할 사이에 이루어지는 때문이다. 영역이든 먹을거리든 수컷이 보유한 자원에 기대 새끼를 양육해야만 하는 암컷의 입장에서는 바람을 피웠다 발각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든 것을 잃게 될 위험에 처한다. 배우자로부터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새끼들을 성공적으로 길러 내기 위해서는 절대 의혹을 살 만한 상황, 즉 바람피우는 장면을 들켜서는 안 되며, 따라서 신중을 기해 하룻밤의 정사를 벌이는 탓에 아무리 눈치 빠르고 뛰어난 관찰력을 자랑하는 인간 과학자라 할지라도 그 장면을 목격하기가 힘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마 전 세계 곳곳의 야생에서 새들의 간통 장면을 목격하겠다고 두 눈을 부라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터덜터덜 숲길을 되돌아 나오는 생물학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련 따위 상관없이 20여 년간이나 꿋꿋이 새들의 사생활을 캐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여성 학자가 한 명 있으니, 바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명금류(참새목의 노래하는 새들)의 행동을 연구하고 있는 동물 행동학자이자 <암컷은 언제나 옳다(Bird Detective)>(정해영 옮김, 이순 펴냄)의 저자인 브리짓 스터치버리이다.


▲ <암컷은 언제나 옳다>(브리짓 스터치버리 지음, 정해영 옮김, 이순 펴냄). ⓒ이순
스터치버리는 스스로를 새 탐정(Bird Detective, 원제이기도 하다)이라고 부른다. 불륜의 현장을 검거하기 위해 스리슬쩍 아내나 남편을 미행하고 모텔로 숨어들어 카메라 셔터를 누를 기회를 엿보는 우리네 흥신소 사람들처럼 몰래 새들의 뒤를 쫓으며 간통의 증거란 증거는 죄다 수집한다. 물론 자신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는 아내나 남편으로부터 사실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은 절대 없지만 말이다.

<암컷은 언제나 옳다>는 그런 저자의 20여 년간의 야생 조류 관찰기 내지는 야생 조류 탐험기를 담은 책이다. 펜실베이니아 북서부에 있는 집 근처 숲의 아카디아딱새에서부터 파나마 열대림에 서식하는 흙색울새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레이더에 걸렸다 하면, 사생활은 물론 요즘 말로 신상이 탈탈 털리고 만다.

새 탐정의 업무는 새들에게 개별적으로 소형 무선 추적 장치와 이름표(개체 인식표)를 달아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정해진 때에 맞춰 행동 하나하나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외간 새와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으러 몰래 빠져나온다 싶으면, 숲을 헤치며 쏜살같이 달려가 살금살금 뒤를 밟는다. 번식기에도 암컷이 수정을 하는 때가 가까워져 오면, 부부가 함께 있는지, 암컷이나 수컷의 외출이 잦은지, 수컷이 암컷에게 먹이를 얼마나 물어다 주는지, 침입자가 있는지, 침입자가 왔을 때 부부가 함께 방어에 가담하는지 등 새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와 관찰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역시 오랜 시간 동고동락하며 새들의 행동 관찰에 도가 튼 스터치버리에게도 간통 행각은 쉬이 발각이 되질 않는 탓에, 결정적인 증거는 분자 생물학의 도움(DNA 지문 검사법)을 빌리는 때가 많다.

스터치버리는 새 부부의 간통 행각을 발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엄연히 제 짝이 있는 암컷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바람을 피우는 것인지, 그 이유를 찾는 데에도 주력한다. 물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실제 연구 결과 총각 수컷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짝외교미의 상대 수컷은 이웃집이거나 주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즉 임자 있는 수컷들로 밝혀졌다(집집마다 복잡한 친자 관계를 일일이 확인하다 보면 분명 맞바람 사례도 발견이 될 것이다.).

또한 암컷이 직접 외간 수컷을 찾아 나서기도 했지만, 바람을 피우러 내 집 담을 몰래 타고 넘어온 외간 수컷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둥지를 기준으로 그 속에서 난 새끼들과 둥지 소유주인 부모들의 친자 관계를 확인하다 보니, 수컷보다는 암컷의 간통이 먼저 명약관화하게 드러나는 터, 이 책에서는 우선적으로 암컷의 바람과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자는 암컷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짝외교미를 시도하는 데에는 유전적인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몸집이나 싸움 능력이 좋은, 즉 좋은 형질을 지닌 수컷과 바람을 피운다면 자신의 자식에게도 그러한 형질을 물려주어 후대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보다 번성하게 될 것이다(좋은 유전자 가설(good genes hypothesis)이라고 부른다). 또는 자신과 다른 MHC 단백질((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주조직 적합성 복합체, 면역 반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세포 표면 단백질)을 지닌 수컷을 찾아 짝짓기를 함으로써 자손으로 하여금 보다 향상된 면역 체계를 갖게 해, 번식 성공에서 암컷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도 있을 것이다(유전적 적합성 가설(compatible genes hypothesis)).

그렇다면, 암컷의 바람기를 수컷들은 그저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을까? 까딱 하면 오쟁이를 져서 제 새끼도 아닌 녀석을 재우고 먹이고 금이야 옥이야 키워 결국에는 얼굴도 모르는 그 녀석 아비의 번식 성공도를 높여 주게 생겼는데, 그걸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을 수컷은 없을 것이다. 마치 두어 시간에 한 번꼴로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 어디에 있는지, 무얼 했는지 꼬치꼬치 캐묻거나 아예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아내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의처증 남편처럼, 수컷 새들도 암컷을 쫓아다니며 "배우자 지키기(mate guarding)"에 돌입한다. 암컷이 둥지를 떠나 다시 둥지로 되돌아올 때까지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암컷 근처에 접근하는 수컷이라도 있을라치면 맹공격을 퍼부어 아예 만남 자체를 원천봉쇄하려는 것이다. 교미하는 빈도수를 높여서 암컷 체내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다른 수컷 정자와의 경쟁에서 양적 우위를 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원서의 부제처럼(Investigating the Secret Lives of Birds) '새들의 은밀한 사생활' 정도가 적합할 듯싶다. 책 속 어디에서도 스터치버리는 암컷이든 수컷이든 새들의 특정 행동에 대해 옳다거나 그르다느니 하는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단,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를 야기해 야생 서식지를 파괴하고 번식을 교란시켜 새들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는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만큼은 유일하게 윤리적 잣대를 들이민다. 오랜 동안 야생에서 새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동물 행동학계에 발을 담가 온 타짜인 저자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업계 불문율인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 사실에 관한 명제로부터 가치에 관한 명제를 추론하는 잘못)"를 범할 리는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한국어판 제목인 "암컷은 언제나 옳다"는 근본이 없으며, 괴상(乖常)하고,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책에는 짝외교미뿐만 아니라 부모 역할과 자식 양육, 지배 서열 관계, 영역 행동, 협동 양육 등 새들의 행동 생태에 관한 모든 것이 저자의 꼼꼼하고 자상한 관찰과 기록으로 담겨 있다. 드라마로 치자면 저녁 시간대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시청할 수 있는 일일 드라마에 가깝다. 새들 가족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을 온화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조곤조곤 설명하고 있는 스터치버리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 새 북아메리카 숲 한가운데 홀로, 포근한 햇살을 받으며 새 둥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일 드라마는 좀 심심하고 막장 드라마가 더 좋다, 내지는 새들 가족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과 갈등의 역사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세계적인 조류학자 더글러스 모크가 쓴 <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More Than Kin And Less Than Kind)>(정성묵 옮김, 산해 펴냄)를 읽어 보기를 권한다. <카인과 아벨>, <헨젤과 그레텔>, 심지어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이 된 드라마 <로열패밀리>보다 몇 배는 더 흥미진진하고 역동적인, 새 가족이 펼쳐 보이는 잔혹한 일상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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