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라는 나라는 현대 한국인에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왕과 사대부로 이루어진 지주 계급이 민중을 억압하던 중세 왕조에 대한 분노와 저주이다. 다른 하나는 일제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깎아내리고 왜곡한 우리 역사상 마지막 왕조에 대한 연민과 변호의 욕구이다.

채만식의 단편 <논 이야기>에 나오는 한 생원은 구한말 고을 원님에게 부당한 방법으로 땅을 빼앗긴다. 그래서 이를 갈고 있던 차에 나라가 망하자 "그깟 놈의 나라 시원히 잘 망했다"라고 일갈한다. 백성을 괴롭히던 왕조에 대한 이런 혐오감에 일제의 식민사관이 덧칠되어 오랫동안 조선 왕조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은 부정 일변도였다. <조선 왕조 오백년>으로 대표되는 대중 역사 소설과 텔레비전 드라마는 조선을 궁중 음모와 당파 싸움으로 얼룩진 낡은 왕조로 조롱하곤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식민사관과 대결하면서 조선에 대한 왜곡과 편견을 걷어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와 더불어 한국인이 식민지 시절의 그늘과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되찾게 되자 조선도 다른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성장과 번영이 꼭 서구적 근대화의 산물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전통에 힘입은 것도 있다는 자각 위에서 대한민국의 전사(前史)인 조선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 <조선 평전>(신병주 지음,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신병주의 <조선 평전>(글항아리 펴냄)은 출판과 방송을 통해 그러한 '조선 다시 보기'에 적극 참여해 온 역사학자가 그동안의 성과를 간략한 글들로 정리한 책이다. 간략한 글들이라고 해도 60꼭지에 이르니까 꽤 두툼한 편이다. 그동안 <역사스페셜>,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 조선을 재조명하는 책과 방송을 접해 온 독자에게는 꽤 익숙한 내용이다. 그러나 아직도 조선에 대한 <조선 왕조 오백년> 수준의 인식에 머물러 있는 독자에게는 새로운 조선의 면모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 책이 그리고 있는 조선의 '진면목'을 보자. 이 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전제 국가이기는 하지만 <경국대전>이라는 성문 헌법을 가지고 법과 제도에 의해 비교적 합리적으로 운영된 법치 국가였다. <춘향전>이 극적인 재미를 위해 설정한 것처럼 사또가 제멋대로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었고, 과거에 갓 합격한 애송이가 연고 있는 고을에 암행어사로 출두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었다.

또 이 나라는 세종이 토지 제도 하나를 시행하기 위해서도 17만 명이나 되는 백성을 대상으로 국민 투표를 실시한 뒤 시행 여부를 꼼꼼히 따져보았던 민본주의 국가였고, 창제의 원리와 의의가 명료하게 드러나 있는 세계 유일의 문자를 만들어내 문화의 힘을 뽐낸 나라였으며, 가장 비천한 존재인 노비조차도 출산 휴가를 지내는 것이 보장된 '복지 국가'였다. 또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의궤>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국가 운영의 모든 국면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범으로 물려주고자 했던 역사와 기록의 나라이기도 했다.

식민사학자들이 조선을 깎아내리기 위해 공들여 연구한 것 중 하나가 당파 싸움이었다.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고 가려고 노력하기는커녕 당파를 지어 음모와 살육을 일삼았던 것이 조선의 지배 계급인 양반이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학자들은 이런 논리를 비판하는 데 적잖은 공을 들였고, 이 책에도 그 성과는 어김없이 소개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당파 싸움은 조선 중기 이후 조선의 국가 운영을 책임진 사림 세력의 정치 양식이었다. 그것은 저급한 정쟁이 아니라 학문적 경향과 정치적 지향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붕당을 이루어 다른 붕당과 견제와 균형의 틀 위에서 경쟁하던, 나름대로 합리적인 정치 시스템이었다.

조선이 이처럼 합리적인 나라였고 지금도 이른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배울 것이 많은 나라였다면,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으로서는 새로운 고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은 본래 한국사가 근대로 나아가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나라였다. 엄격한 신분제 하에서 각종 세금과 부역으로 농민을 착취하던 전제 국가 조선이 대한민국과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제도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면,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조선이 평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조선의 이런저런 특징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조선이 왜 그런 특징을 갖게 됐으며 우리에게 그러한 조선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선 평전>이 그러한 '평전'의 필요성에 온전히 부응하는 것 같지는 않다. 조선의 의미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을 시원스럽게 풀어주기를 기대했으나,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은 마치 신발을 신고 가려운 곳을 긁은(격화소양·隔靴搔癢) 것처럼 시원치 않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화폐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쓰는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이 죄다 조선 시대 인물임을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눈이 확 뜨이는 대목이다. 우리에게 조선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모든 돈이 조선 시대 인물, 그것도 조선 전기의 인물로 도배가 되어 있을까?

미국, 일본, 중국 등의 화폐를 보면 모두 근현대사의 인물을 담고 있는데, 우리만 이렇게 비교적 먼 옛날의 인물들, 그것도 진짜 얼굴이 남아 있지 않은 인물들을 그려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뭔가 조선과 우리의 관계에 얽힌 비밀의 실마리 하나가 풀릴 것으로 기대되는 순간, 저자는 "그만큼 우리의 의식 속에 조선의 역사가 가깝게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라는 허망한 결론으로 급하게 글을 마무리하고 만다.

이 책 곳곳에는 이처럼 궁금증을 자아내지만 끝내 궁금증을 해소하지 않고 마침표를 찍는 글들이 실려 있다. 인조반정이 현대의 군사 정변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얘기에 솔깃해서 읽다 보면, 각각의 시대에 두 정변이 가졌던 역사적 의미를 심층 분석해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가 참여해 성공했다는 외형적 유사성만 알려주고 끝나 버린다. 조선 시대에 운하 공사를 시도했다거나 수도를 옮기려 했다는 얘기는 현대 정치의 민감한 문제와 결부되어 관심을 끌지만, '평전'에 값하는 역사적 평가를 내리지 못한 채 "국민의 합의를 제대로 이끌어내야 한다"라는 원론적인 촌평으로 마무리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본래 신문에 연재되면서 시사적인 문제와 연결해 조선사의 이런 저런 측면을 가볍게 다룬 것이었다는 점에서 앞에 지적한 한계를 이해할 수는 있다. 책의 제목이 '조선 평전'이 아니라 '조선사 산책' 같은 것이었다면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출판사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점증하는 조선 시대에 대한 관심으로 볼 때 진정으로 '평전'이라는 말에 값하는 조선 역사책이 나올 필요는 크다.

이 책에서 언뜻 비치는 저자의 생각들, 예컨대 남명 조식을 계승한 북인과 그들의 지지를 받은 광해군에 대한 평가라든가 인조반정의 의의라든가 하는 것을 보면, 저자는 자신의 관점에서 조선사를 평가하고 그 의미를 들려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그 역량을 온전히 발휘해 이번에 못 다한 '조선 평전'을 완성함으로써 독자들이 느끼는 '격화소양(隔靴搔癢)'의 가려움을 해소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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