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찬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은 두 가지이다. 너무도 뻔한 내용을 가지고 장광설을 늘어놓은 그래서 읽고 나서 후회할 허접한 책, 그리고 책 여기저기에 밑줄을 쳐가면서 아껴가며 읽게 되는 좋은 책이다. <타격의 과학>(김은식 옮김, 이상미디어 펴냄)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수천 번 되풀이해 말하지만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서 야구공을 때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저자의 이런 자신에 찬 문장들은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는 보스턴에서 뛰었던 20년 내내 50타점 이상을 기록했다. 나의 통산 타율은 0.344이다. 나는 베이브 루스보다도 많은 결승 홈런을 때렸고, 장타율에서도 베이브 루스 말고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나는 루스보다 볼넷을 많이 얻었으면서도 삼진은 적게 당했는데, 그런 측면에서 루스가 나보다 나았던 건 7년에 한 번 정도씩뿐이었다. 그리고 조금 생각을 달리 했다면 아마 훨씬 더 큰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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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격의 과학>(테드 윌리엄스 지음, 김은식 옮김, 이상미디어 펴냄). ⓒ이상미디어 |
저자 자신이 직접 쓰기에는 온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과한 자화자찬처럼 들린다. 하지만 저자가 메이저리그에서 19시즌을 뛰면서, 521홈런, 2654안타를 치고 통산 타율 0.344(역대 6위), 출루율 0.482(역대 1위), 장타율 0.634(역대 2위)를 기록한 야구 선수라면? 그리고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선수인 스탠 뮤지얼이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타자"라고 칭송했던 타자라면? 그렇다. 저자의 이름은 테드 윌리엄스이다.
이 책은 "타격의 과학"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과학"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다. "만일 스포츠가 과학적이라면 야구의 타격이야말로 과학"이라는 선언적인 말 외에는 특별한 물리 법칙도 생리학적 설명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모든 과학이 그렇듯 야구의 타격에도 기초가 있고, 모든 훌륭한 타자와 타격코치들이 말해줄 수 있는 어떤 원칙들이 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몸으로 체득해가며 익힌 비결을 담긴 책이다. "훌륭한 타자" 윌리엄스가 <타격의 과학>에서 제시한 타격의 법칙은 세 가지이다.
첫째, 좋은 공을 골라서 쳐라.
둘째, 적절한 생각을 하라.
셋째, 배트 스피드를 빠르게 하라.
그런데 메이저 리그 역사상 마지막 4할 타자라는 사람이 전해주는 비결 치고는 너무 단순한 건 아닐까? 하지만 그는 이 세 가지를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각각의 비결에 대해 설명을 덧붙인다. (이 서평에서 윌리엄스가 말하는 비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면 된다.)
이 책을 집어 든 혹은 앞으로 집어 들게 될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야구를 '하는' 사람, 그리고 야구를 '보는' 사람이다. 내 생각에는 당신이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이건 책을 사는 데 든 돈, 그리고 책을 읽는 데 든 시간 둘 중 어느 하나도 아깝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
당신이 야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윌리엄스의 충고를 머리에 꼭 담고 몸에 배게 한다면 당신의 타율은 분명 올라갈 것이다. 윌리엄스는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내 생각은? 직접 야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윌리엄스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장담할 것이 하나 있기는 하다. 당신이 야구를 '보는' 사람이라면 윌리엄스가 들려주는 말들을 잘 새겨두면 분명 달라질 것이다. 야구를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고, 야구를 보는 재미가 훨씬 더 많아 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말한다.
"이것도 내가 수천 번은 했던 말이다. 타격의 절반은 머리로 하는 것이다."
이 말은 타자가 아니라 팬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야구 한 경기를 보는 데는 적어도 두 세 시간이 걸린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무척 긴 시간이다. 그저 '우리 팀'이 이기느냐 마느냐, 혹은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홈런을 치느냐 마느냐에만 온통 정신을 쏟으며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아닐까?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야구는 아는 만큼 보이고 그럴수록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도 머리를 써야 한다. 저 타자는 스리 볼 노 스트라이크에서 얼토당토않은 공에 왜 방망이가 나가지? 저 선수가 나올 때면 왜 투수가 초구를 늘 한 가운데다 던지는 걸까? 그러다 큰 거라도 한 방 맞으면 어쩌려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이제 앞으로 야구 경기를 볼 때, 타자와 투수의 머리싸움. 타자의 타격 습관 등에 대해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야구가 훨씬 더 재미있어 질 것이다.
'보는' 사람의 처지에만 치우친 것 같다. 이 책을 읽을 야구를 '하는' 사람을 위해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하겠다.
"그리고 연습, 연습, 연습. 나는 물집이 잡히고 터질 때까지 배트를 휘둘렀고, 손바닥에 아주 단단하고 거친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스스로를 몰아쳐대곤 했다. 여러분들은 요즘 그렇게 무시무시한 굳은살을 본 적이 아마 없을 것이다."
꿈이 절실하다면, 저자의 말을 믿기 바란다. 그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야구만 생각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보스턴 홈구장의 타석이 앞쪽보다 뒤쪽이 조금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타격을 할 때는 항상 뒷발이 좀 더 단단하게 지면에 고정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캔자스시티에서는 타석이 반대로 뒤쪽으로 조금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위쪽을 올려다보면서 치는 느낌이었다 하루는 내가 홈런을 두 개나 쳤는데 캔자스시티의 감독이 나중에 그 사정을 알고 구장 관리인을 해고해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사용하는 야구 방망이가 습기를 머금어 무거워질까봐 걱정하던 사람이기도 하니까.
한국 프로 야구도 이제는 3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30년 동안 한 팀에 푹 빠져 지내 온, 그래서 딸아이가 태어난 바로 그 날 오후에 딸을 구단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내 책꽂이에는 <타격의 과학>만큼이나 확신에 찬 문장으로 시작되는 야구 책이 한 권 더 꽂혀 있다.
"두려움, 타격을 야구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라고 한다면, 타격의 가장 기본적인 요체는 두려움에서 출발한다."
윌리엄스만큼이나 야구에 빠져 산 레너드 코페트라는 사람이 쓴 <야구란 무엇인가>(이종남 옮김, 황금가지 펴냄)라는 책이다.
나도 단호하게 "수천 번을 되풀이해서 말할 수" 있다. 두 책을 읽고 난다면 당신이 "하는" 야구가, 그리고 당신이 "보는" 야구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두 권 다 여느 책들과는 급이 다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