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하의 <음식 인문학>(휴머니스트 펴냄), 이 책의 제목을 놓고 생각을 했다. 음식이 과연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이 된 적이 있는가?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논문이나 책들이 분명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음식 문화란 것은 문학이나 철학과는 달리 인문학의 한 영역으로 분류하지는 않는 것이 보통의 통념이다.

사실 음식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의식주라는 인간의 기본 욕구는 모두 인문학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복식사나 건축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역사의 한 부분으로 대개는 호사가들의 호기심이나 변방의 한 부분에서 결실을 맺은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그것들이 너무 일상적인 것이어서 문화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해낸 물질적 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문화의 사전적 정의를 따르면 의식주야말로 문화의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사실 인류의 문화란 것이 모두 이 의식주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며, 정치나 경제, 윤리와 도덕까지도 부차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가 보통 문·사·철이라 부르는 인문학의 영역보다 좀 더 생활에 가깝고 일상적인 것이기에 대체로 의식하고 지내지 않기 때문에 인문학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을 뿐이다.


▲ <음식 인문학>(주영하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
그렇기에 자신의 논문을 모은 이 책에 "음식 인문학"을 붙인 주영하의 입장은 아주 분명한 것 같다. 먹는다는 것은 곧 인문학의 영역에서 깊이 사유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는 뜻이 제목에서부터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주영하 자신을 놓고 보더라도 오랜 기간 동안 음식에 천착해 왔지만 학부의 전공은 역사학이고, 대학원의 전공은 인류학과 민속학인지라 인문학의 세 부분을 섭렵했다.

물론 이 세 가지 학문 영역 자체가 음식의 문화적 함의를 연구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의 원대한 목표는 "음식학"이라고 말한다. 단순한 인문학을 넘어서 자연과학과 다른 사회과학까지 음식과 관련된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런 학문을 꿈꾸는 것이다. 음식으로 이 사회와 문화를 설명하고자 하는 은근한 욕심까지 내비치고 있다.

이 책이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쓴 책은 아니다.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여러 매체에 발표한 논문들을 모은 것이니 10여 년의 시간을 두고 저자가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주제들을 망라한 책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권으로 묶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것은 '한국인과 한국인이 먹는 음식'과 관련된 주영하 교수의 시점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한국인의 음식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오늘날 한국인이 생산·소비하는 음식물은 결코 물질적 속성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20세기 100년을 거치면서 한반도에서 생산·소비되는 음식에는 사회 문화적 맥락이 담겨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 사회가 경제적으로 번영하는 시기 동안 음식과 관련된 기술적 혁신은 특정 음식을 전제 사회로 확산시킨다는 독일 민속학자 군터 비겔만의 주장은 여전히 타당하다.

결국 한국인과 한국인의 음식에 대한 사회 문화적 맥락을 파악하고자 함이 이 책의 전체를 가로지르는 줄기인 셈이다. 그래서 각론에서는 밥을 함께 먹는 '식구'의 의미를 파헤치기도 하고, 매운맛과 비빔밥의 유래를 추적하기도 하고, 근대 서양식 연회에 얽힌 뜻을 풀이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제사나 굿에서 올리는 음식을 현지 조사를 통해 구명하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보면 역사와 민속과 지금 이 시점에 있어서의 한국 음식이 지닌 함의들을 추적해 가는 것이 저자의 가장 큰 관심사인 것이다. 저자는 음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음식은 인간에게 생물학적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물질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음식을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 사회 문화적 경험을 축적한다. 그래서 음식에는 한 사회가 지닌 문화적 경험이 누적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음식의 함의를 파헤치기 위해서 저자가 동원하는 수단은 실로 다양하다. 옛 문헌이나 잡지의 글에 대한 문헌적인 연구는 기본이고, 현지 조사, 고고학의 발굴 자료, 옛 그림에 대한 해석, 심지어는 소설의 분석을 통해서 한국인의 음식 문화가 무엇인가를 규명하고자 하는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 성과들을 이 논문으로 구현해 내었기에 사실은 다른 여러 각도의 고찰을 담은 논문집이면서도 한 주제를 향한 교양서로도 읽힐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다양한 관점으로 우리 음식 문화의 함의들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은 경탄할 일이지만 책 전체를 읽다보면 아직 "음식 인문학"이나 "음식학"을 논의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는 여기에 실린 논문들의 주제가 산발적인 데에도 있지만, 이 책 이외의 관련 연구가 충분치 않아 결론을 이끌어내기에는 미흡하다는 인상 때문이다.

이를테면 쌀과 보리, 조와 같은 주곡과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와 같은 탄수화물의 주요 식량원들이 어느 시기에 어떤 식으로 그 구성비가 변화하고, 그것이 사회 경제적으로는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학의 실증적인 연구 자체가 없는 것 같다.

제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체험적인 현지 조사가 행해지고, <주자가례>, <소학>과 이덕무의 <사소절> 같은 문헌의 내용들이 식사 예절과 제사에 끼친 영향을 고찰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성리학이 한반도를 지배하기 이전인 고려의 불교식 연회나 제사에 대한 고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리학의 철학이 생활 관습에 영향을 미친다면, 고려와 조선 1000년간 성리학이 지배하기 전의 세태에서도 사상사적인 맥락 분석이 더해져야 한다. 굿의 음식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무교적인 생각이 음식에서 어떻게 구현되었으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연구도 상세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역사학에서도 전체의 주곡 생산과 인구의 변화, 경작 면적의 변천, 조세 제도와 행정이 백성들과 지배층의 음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와 같은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음식 인문학의 장래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아울러 기후의 변화나 종자의 변이, 그리고 영양 성분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들도 상세하게 연구되어야만 실제 주영하 교수가 꿈꾸는 "음식학"이란 학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모든 과제가 주영하 교수의 손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다른 인문학자의 시선이 음식을 도외시하는 한 학제 간의 협력이 이루어질 방법은 없을 것이며, "음식학"은커녕 "음식 인문학" 자체도 성립되기 힘들 것이다. 현재 상황을 보건대 한국의 인문학자들의 이런 세세한 의식주에 관한 관심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역사학은 최근 들어 미시사에 대한 관심이 그나마 고조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철학이나 사상 쪽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을 읽으면서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끌러 놓기만 하고 아직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개척자가 처한 곤경이다. 화두는 던질 수 있을지언정 모든 것을 혼자서 마무리 지을 수는 없다. 상황이 여의치 못함은 애석한 일이지만, 그래도 뜻이 맞는 인문학자들이 모여서 여기 이 책이 던진 화두들에 대한 진지한 연구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한국의 인문학이 저 멀리 현실과 떨어진 고담준론에서 벗어나 우리 '한국', '한국인', '한국 문화'에 조금 더 살갑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여기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여긴다"고 했거늘 음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을 논의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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