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 50년을 매진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것도 개인의 안락함과 일신의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험난한 오지에서 특정 대상을 돌보기 위해 길지 않은 인생의 대부분을 바친다는 것은.

'침팬지의 대모'로 유명한 제인 구달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 제목부터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한 50년>(김옥진 옮김, 궁리 펴냄). 1960년 여름, 탄자니아 곰베 강 침팬지 보호 구역에 발을 들였던 20대 아가씨가 70대 할머니가 될 때까지 그녀가 살아왔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일종의 자서전에 가까운 책이다.


▲ <제인 구달, 침팬지와 함께한 50년>(제인 구달 지음, 김옥진 옮김, 궁리 펴냄). ⓒ궁리
제인 구달이란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002년 겨울, 난 그녀를 본 적이 있다. 구달이 참석하는 하우스파티에 운 좋게도 지인을 통해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파티가 있었던 저녁, 난 낮부터 설렜던 걸로 기억한다. 구달을 직접, 그것도 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니, 마치 전설 속의 인물을 만나러 가는 느낌이었다.

막상 파티에 가서는 너무 긴장되고 떨려서 그녀에게 말 한 마디 붙여보지도 못했지만, 그녀의 모습만큼은 아직도 뚜렷이 각인되어 남았다. 거실 한 가운데 그녀를 위해 마련된 안락의자에 앉은 구달은, 일흔에 가까운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번도 허리를 굽혀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차림새도 수수하고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흰 머리를 질끈 묶은 그녀에게서는 뭔가 표현할 수 없는 아우라 같은 것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그 건 수십 년간 자신의 선택을 믿으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에 최선을 다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생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인 구달은 1960년부터 50여 년 간, 자연 상태의 침팬지 연구를 해 온 인물이다. 침팬지를 인간 사회로 끌어내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한 마리의 '하얀 침팬지'가 되어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낸 인물이다. 이제는 상식이 되다시피 한 침팬지에 대한 지식들-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가족들끼리는 돌봐주고 보듬어주지만, 적으로 등 돌린 무리에게는 가차 없는 폭력을 행하기도 하는 등-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그녀인 것이다.

책은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시작', '침팬지', '우리가 배운 것', '새로운 비전' 그리고 '희망'이라는 소제목을 단 다섯 개의 장이다. 각각의 장에서 구달은 동물을 좋아하던 어린 그가 어떻게 자라 침팬지 보호 구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곳에서 침팬지를 접하면서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를 조근조근 설명한다. 마치 추운 겨울, 벽난로 앞에 둘러앉은 어린아이들에게 할머니가 지난 세월을 이야기해주듯이 말이다.

사실 이 책에 실린 내용 자체가 그다지 새롭거나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구달이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생물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음을 드러내주는 꿈틀거리는 분홍색 벌레'와 '갓 낳은 달걀' 에피소드는 전작인 <희망의 이유>(박순영 옮김, 궁리 펴냄)에서도 등장하며, 침팬지들의 생활사 역시 전작들에서 설명했던 것을 다시금 정리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의 책들이 우리가 몰랐던 침팬지의 습성에 대해 보고하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힘주어 소리치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시선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전작에 비해 안정되고 유려한 느낌을 준다. 이는 이 책의 발간 성격 자체가 한 개인의 일생을 돌아보는 회고록같은 느낌이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고, 5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낸 내공이 묵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세월과 신념의 힘이 더한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는 않아도 오래 울리는 여운을 가지게 된 듯하다.

책장을 넘기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지성, 우리의 불굴의 정신을 믿고 함께 나아갑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존중하는 마음을 기릅시다. 폭력과 편협함을 이해와 연민, 그리고 사랑으로 바꾸도록 노력합시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동물들에게는 없는 지성과 고차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그 것이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것이 삶과 죽음을 인식하고, 선과 악을 구분하며, 사랑과 연민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겉모습은 달라도 주어진 삶은 모두 동등하게 존중받을 가치를 가져야 하고, 힘써 선을 구현하고 악을 물리치도록 노력하며, 인간에게 가장 풍부하게 주어진 사랑과 연민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더 널리 적용하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구절을 통해 그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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