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철학사를 쓸 만한 학자를 꼽자면 이정우야말로 가장 먼저 떠오를 사람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전공'이라는 좁은 감옥에 갇힌 채 고만고만한 논문들을 써내는 것으로 학자 행세를 하는 것이 우리 학계의 풍경이라면, 저자는 지금껏 그가 내놓은 책들의 목록이 말해주듯이 철학사의 거대한 흐름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면서 자신의 사유를 구축해온 드문 철학자다.

이정우의 <세계 철학사 1>(길 펴냄)은 철학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역사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또한 철학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단지 철학자들의 어록을 시대 순으로 정리해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로잡았던 물음이 무엇이었는지를 들춰낸다. 그리하여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외우고 밑줄 긋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각하게 한다. 단적인 예로 기존의 철학사 책에서 뜻 모를 암호처럼 여겨질 뿐이었던 그리스 초기 자연철학의 전개 과정이 어떤 철학적 깊이를 지니고 있는지 독자들은 이 책에서 보게 될 터인데, 이는 또한 저자의 철학적 깊이를 엿보는 것이기도 하다.


▲ <세계 철학사 1>(이정우 지음, 길 펴냄). ⓒ길
사실 내가 이정우의 철학사를 기다린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첫 저작인 <담론의 공간>(1994년)에서 "기존의 철학사 연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될" 철학사의 기획을 예고했었다. "철학사는 철학적인 원전들을 요약하는 것이 아니다. (…) 철학사는 이 책들에 부재하는 것, 그 책들의 행간 사이에, 그 여백에 보이지 않게 씌어 있는 것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이런 의미의 철학사가 어떤 형태일지 궁금해 하던 나는 이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은 셈이다.

<담론의 공간>의 기획이 <세계 철학사 1>에서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되었는지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살펴볼 일이다. 하지만 얼른 일별하기에도 이 책이 기존의 철학사들과 다른 모습을 띠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를테면 1부 1장에서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지리, 기후, 경제적 환경, 다양한 글쓰기 방식, 정치 체제의 변화, 서정시와 비극 등에 대한 해설을 동원하여 '철학의 탄생'을 설명해낸다. 이런 입체적인 서술 방식은 철학자들의 사유를 역사적 맥락 속에 놓음으로써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이 책의 소중함은 철학적 깊이나 서술 방식의 새로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주목하듯이 이 책은 '세계 철학사'다. 저자의 학문적 여정에 비추어볼 때 이는 우연이 아니다. 역시 초기 저작인 <가로지르기>(1997년), <인간의 얼굴>(1999년)에서부터 이미 저자는 지속적으로 동서 철학을 가로지르는 방법론을 모색하고 실험하기 시작했다. 전해지는 바대로, 그가 대학 강단을 떠난 이유 중 하나가 자기 '전공' 밖의 동양 철학을 강의하다가 동료 교수들과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보아 이 책이야말로 저자의 학문 활동의 중간 결산인 셈이다.

물론 <세계 철학사>는 아직 (기존의 분류대로라면) '서양 고·중세 철학'에 해당하는 1권만 나온 상태이니 본격적인 성취는 2, 3권이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세계 철학사>라는 낯선 이름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그것은 '세계 철학사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이전에도 <세계 철학사>라는 책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이전의 책들이 "실질적으로 서구 철학사"(7쪽)에 불과했다고 지적하며 자신의 책에 참된 의미에서 최초의 세계 철학사의 지위를 부여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름이 세계 철학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세계 철학사를 세계 철학사가 되게 하는 걸까?

나 역시 제목에 끌려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를 펼쳤다가 동양 철학이 극히 적은 분량으로 들러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실망했었다. 그러나 동양 철학사와 서양 철학사에 분량을 대등하게 할애한다 해서 저절로 세계 철학사가 성립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분량의 공정한 배분이 문제라면 새 책을 따로 쓰는 수고를 생략하고 힐쉬베르거의 <서양 철학사>와 풍우란의 <중국 철학사>, 길희성의 <인도 철학사> 등을 한 데 모아서 '세계 철학사 세트'라고 이름 붙이면 그만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세계 철학사는 지역별 철학사라는 낱낱의 부분들을 짜깁기한 합성체가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철학사여야 할 것이다.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그 역시 이름만 세계 철학사일 뿐 각 지역 철학사들의 "단순 병치의 구도"(11쪽)를 넘어서서 못할 것이다. 이제까지는 이런 엉거주춤한 공존으로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아니다. 세계 철학사라는 하나의 큰 흐름에 합류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 흐르고 있는 철학들은 고여서 썩고 말 것이다. 철학은 탈레스에서부터 세계 전체에 대한 근본적 탐구였으며 (칸트 시대 독일 학계의 어법을 빌자면) 그 자체로 '세계 지혜'이기 때문이다. 지역 철학사는 세계 철학사라는 "전체와의 산 관련"(함석헌)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자신의 존재이유를 잃어버린 채 생명력을 잃고 만다. 그러므로 세계 철학사는 각 지역 철학사들 간의 대화의 가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교를 놓으려는 이런 시도는 자칫 "허구적인 보편화를 통한 등질화"(6쪽)로 빠질 수 있다. 서양 철학이 동양 철학이 비해 월등한 현실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어렵게 말할 것 없이 '철학'이라는 말 자체가 필로소피아(philosophia)의 번역어로서 발명된 개념이다(23쪽). 철학 체계를 이루는 존재론, 인식론, 주체론, 윤리학 등의 구분 방식(236~237쪽), 철학과 종교의 구분과 대립(575~576쪽) 또한 서구적 이해에 연원을 둔다. 이런 학문적 지형 위에서 대등한 만남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세계 철학사는 서구 바깥의 시선으로 서구 철학의 근본 전제들을 뒤흔들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동반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 철학사들 간의 차이와 고유성을 보존하면서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어떻게 가능하며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 것인가? 이것은 <세계 철학사>라는 제목을 마주한 독자들이 자연히 갖게 될 물음일 것이다. 그리고 2, 3권을 통해 제출될 저자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은 독자들의 또 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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