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올바른 정치의 출발이 '정명'(正名), 즉 이름을 바로 하는 일이라고 했다는데, 현대 정치 세계처럼 이름들이 혼란스러운 경우도 없다.

'민주주의'니, '자유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말들이 쓰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른 뜻으로 쓰인다. 반공주의자들은 공산주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하고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인민민주주의 체제만이 참된 '민주주의'라고 선전하는 식이다.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기표 안에 정반대 의미들이 경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치 수학의 세계처럼 학자들이 표준적인 정의(定義)를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 용어의 생산자는 학자들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생활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가령 <조선일보>가 아무데나 다 '좌파' 딱지를 붙인다고 해서 그것을 "무식하다"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차라리 세계 정치 용어 사전의 '좌파' 항목에 한국 보수 언론의 독특한 용법을 용례 중 하나로 추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교통정리는 필요하다. 같은 기표의 이면에 자리한 동상이몽들을 일목요연한 지도(地圖)로 정리해주는 작업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생활인들이 이 지도를 참고삼아 좀 더 정돈된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쓸데없는 말다툼은 줄이고 토론의 격을 높이며 합의의 지대를 제대로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이야말로 민주 사회에서 정치학자들의 중요한 사회적 임무 중 하나다. 한국 자유주의의 역사적 계보를 그리는 작업을 벌여온 정치학자 이나미는 최근작 <한국의 보수와 수구>(지성사 펴냄)를 통해 이러한 정치학자의 과제를 충실히 수행했다. 이 책은 정치 용어 중에서도 특히 뜨거운 논쟁의 한 가운데에 있는 '보수'와 '수구'에 대해 친절한 지도를 제시하려 시도한다.

"현실을 지키자"는 보수와 "과거로 돌아가자"는 수구


▲ <한국의 보수와 수구>(이나미 지음, 지성사 펴냄). ⓒ지성사
저자는 결코 불편부당한 채 하며 이 과제에 임하지는 않는다. 이 책의 첫 몇 쪽만 훑어봐도 저자가 기본적으로 진보파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대번 알 수 있다. 가령 자칭 보수파 치고 "진보는 인간의 특징이요, 보수는 동물의 특징이다"(13쪽) 같은 문장을 읽고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저자는 아주 솔직하게 당파적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보수와 수구>가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갈 독자층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진보파의 시각을 가진 이들이다. 이런 독자들에게 이 책은 이들이 극복해야 할 상대들에 대한 아주 훌륭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 이 책은 300여 쪽에 걸쳐 한국의 보수 집단이 어떠한 이들인지, '보수'라고 불리는 게 적당한 이들과 '수구'라고 불리는 게 적당한 이들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지, 이들의 강점은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지, 소상히 짚어나간다. 이 땅의 진보파에게는 <삼성공화국> 같은 책만큼이나 훌륭한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수단인 셈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흔히 '우파'로 통칭되는 정치적 흐름들 중에서 '보수'와 '수구'를 엄밀히 구별한다. 사실 이러한 구분은 한국의 정치 세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관심사다.

많은 이들이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같은 극우 성향 신문들을 '보수' 언론이라 하기보다는 '수구' 언론이라 불러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에게 '보수'는 뭔가 합리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있음직한 한 흐름이라면, '수구'는 그런 사회 자체에 역행하는 암적인 존재를 뜻한다. 그래서 한나라당, 조·중·동, 재벌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우파 세력은 '보수'가 아니라 '수구'일 뿐이며, 한국 사회에서는 반(反) 수구 투쟁이 현안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저자의 '보수'/'수구' 구분은 이러한 통상적인 용법과 차이가 있다. 어쩌면 이 차이, 통상적인 '보수'/'수구' 구분에 대한 이러한 개입이야말로 <한국의 보수와 수구>의 핵심 테마라 하겠다.

이나미는 서구 근대 형성 과정에서 등장한 '보수'와 '수구'의 분기(分岐)에 주목하며 그 보편적인 맥락에서 한국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의 '보수'적 요소와 '수구'적 요소를 식별한다. 그에 따르면, '보수'는 "현실을 지키자"는 보수주의(conservatism)이며, '수구'는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반동주의(reactionism)다. 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 실리주의/실용주의, 반공주의 등의 저류에 흐르는 것이 보수의 계보이고, 반면 수구의 계보는 반자유주의, 국가주의, 유교/기독교 근본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단순화해보자면, 보수는 근대 자본주의의 지배 계급(자산 소유자들)이 현상 유지를 위해 선택하는 정치적 입장들을 뜻하며, 수구는 이미 역사의 유물이 된 이데올로기 자원들(군주제, 종교 근본주의 등)을 바탕으로 근대의 모순들에 대결하려는 나름대로 저항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경향들이다. 보수파는 실용인들이고, 수구파는 이념인들이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수구는 몰라도, 적어도 보수에 대해서는 우리의 시야를 밝히는 힘을 갖고 있다. 보수의 관심사는 오직 현상 유지이기에 보수파는 그것에 이롭다면 어떠한 변신도, 궤도 수정도 감행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자와 여성의 참정권에 반대하던 '자유주의'는 사회주의의 위협 앞에서 보통선거권을 인정하는 '자유민주주의'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그 사회주의의 위협이 역사 속 기억으로 사라진 우리 시대에는 다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고전 자유주의가 회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재벌 언론, 족벌 언론이 취하는 입장은 보수인가, 수구인가? 저자 자신은 직접 말하지 않지만, <한국의 보수와 수구>의 논리대로라면 이들은 수구라기보다는 보수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좌파'라고 질타하다가도 때로 복지 제도 확대를 주장하는 이들의 갈지(之)자 행보에서 일관된 것은 결국 이 사회의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좋다는 단 한 가지 준칙이기 때문이다.

즉, 조·중·동을 지배하는 것은 신앙이라기보다는 실리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이들에 맞선 싸움이 신앙 대 신앙의 그것일 수 없으며 이제는 기생적이 된 어떤 사회 세력을 극복하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조선일보>의 '좌파' 딱지 붙이기에 맞서 '수구' 딱지 붙이기에 열중할 일이 아니라 기득권 연합의 전략 구사를 분석하고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좀 더 파고들었으면 좋았을 물음들

그런데 <한국의 보수와 수구>는 보수론에 비해 수구론이 좀 미완의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흥미 있는 분석이나 시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한국 수구 이념의 중요한 한 구성 요소인 국가주의를 다룬 부분이 그렇다. 이나미는 이 점에서 이승만의 일민주의, 박정희의 민족적 민주주의, 더 나아가 김일성의 주체사상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일민주의라는,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독재 이념이 주체사상과 놀랍도록 닮았었음을 확인하는 것은 분명 한반도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개안(開眼)의 기회다.

하지만 수구론이 보수론에 비해 파편적이라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저자는 한국 수구 이념의 주요 요소들로 반자유주의, 국가주의 그리고 유교/기독교 근본주의 등을 지적하는데, 그 담지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각 요소들 사이의 연관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시원한 설명이 없다.

오히려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보수 이념의 담지자로 지목한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고스란히 수구 이념의 담지자로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수와 수구를 엄격히 구분하려는 저자의 의도와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 보수 이념과 수구 이념이 엄연히 다른데, 한국에서는 보수파가 수구 이념의 담지자이기도 했던 것인가?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은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보수파가 수구 이념을 일정하게 활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명쾌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한국 사회 지배 계급의 특성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국가를 중심으로 위로부터 육성된 탓에 일본 천황제 이데올로기와 일제말의 군국주의(더 나아가 만주국의 '파시즘+스탈린주의' 복합체까지)로부터 이어받은 국가주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보수-수구 융합의 중요한 한 배경일 것이다. 그리고 현 지배 계급의 위신을 높여줄 이데올로기 자원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점이 유교 자본주의론이나 기독교 근본주의 같은 억지를 동원해야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래도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방향을 잡도록 자극하는 점만으로도 <한국의 보수와 수구>는 나름대로 제 몫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보수'는 괜찮고 '수구'는 안 된다" 유의 시각에서 한 발 앞서 나아가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은 중대한 기여이고 뚜렷한 성취다. 이 책을 계기로 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사회 세력 간 관계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들이 더 활발히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