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교본>(배수아 옮김, 워크품프레스 펴냄)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만든 제2차 세계 대전 사진첩이다. 그는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 나름의 안목으로 보도 사진들을 뽑아내고, 사진의 주석으로 자신이 '사진시((Fotoepigramm)'라고 부른 4행시를 달았다. 이는 진실을 재구성 하는 작업이었다.

"속임수를 강요하고 사람들을 혼돈에 휩싸이게 하는 시대라면, 사색하는 자는 자신이 읽고 들은 정보를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읽거나 들은 사실을 낮은 목소리로 함께 따라서 얘기해 본다. 그러는 사이 그는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한 문장 한 문장에 나타난 진실하지 못한 진술을 진실한 것으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이런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그는 어느새 올바르게 읽고 듣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브레히트, '진실의 재구성')

브레히트는 우리에게 '사진을 읽는 방법'을 가르치려 한다. '진실'을 말하는 4행시는 그 사진이 원래 실렸던 매체의, 우리를 '혼돈에 휩싸이게 하는' 맥락과는 반대이다. 이를테면 연합국 측에는, 우리에게도, 전쟁의 영웅인 영국 처칠 수상의 사진에 달린 시.

"나는 갱들의 법칙을 알지 식인종들과도 /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 지내왔다네. / 그들은 얌전하게 내 손에서 고기를 받아먹었으니, 나보다 / 더 나은 문화의 보호자는 아마 찾기 힘들 걸."

또 '평범한 일상의 복원'이라는 제목의, 미국 군정청 장교들이 시칠리아 민간인들에게 미국산 밀을 팔고 있는 사진에 대한 시.

"우리는 밀과, 그리고 왕도 한 명 데려왔으니, 받아라! / 누구든지 밀가루를 받는 자는 왕도 함께 받아야 할 테니 / 장화를 핥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 계속해서 굶주리는 일이 마음에 들어야 하리라."


▲<전쟁교본>(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배수아 옮김, 워크품프레스 펴냄). ⓒ워크룸프레스
브레히트가 그 사진에서 본 것은 제목과는 다른, 미국 거대 식품 기업의 대박 장사였다. 책 뒤에 실린 해설에 따르자면 그 기업들이 잉여 농산물을 국제 원조 단체에 팔아치웠으며, 그 대금은 미국 국민들이 세금으로 치렀다. 원조품은 '경제 전문가', '정치 고문단'과 함께 유럽에 건너와서 유럽 국가들의 정책을 미국 대기업의 이익 맞춤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에게도 눈에 익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긴박감으로 떨리는 사진에서 손에 총을 들고 바닷물을 헤치고 나오던 미군 병사는 자기가 유럽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줄만 알았다. 제가 들고 있는 총이 '사실상 스탈린그라드에서 출발하는 자(같은 연합군인 소련군)를 겨눈' 줄은 몰랐다. 유럽에서 빈약한 배를 타고 탈출하여 피난처의 해안에서 난파한 유대인들은 해안에 있는 이들이 알기만 한다면 도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이미 알고 있음을, 익사해가는 유대인들은 몰랐다.

반세기도 지나 이 사진첩을 보게 된 우리는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된 충격을 느끼지는 않지만, 곧바로 우리가 빠져있는 현재의 혼란이 있을 것이다. '영국 공군의 블루'천으로 섹시한 드레스를 지어 입고 전쟁 훈장으로 치장했던 그때의 할리우드 여배우는, 오늘날 우리가 환호하는 연예인 혹은 존경하는 석학일 수도 있다. 자동차에 소형 제단을 장착하여 나치 군부대를 돌아다니며 예배를 드려주던 그 기동식 교회의 신이 지금 우리가 기도하는 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2차 세계 대전 당시에도 진실을 간파한 이가 브레히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 침략에 동원되었던 젊은이들이 '살기 위해서' 전선까지 가게 되었다는 것. 군수품 공장에서 장갑차와 장갑차를 꿰뚫을 총탄을 한꺼번에 만들던 남성 노동자들, 흰 두건을 쓰고 집중하여 폭탄을 용접하던 여성 노동자들도 같은 이유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 독일 폭격기의 승무원들마저 '공포 때문에' 인구가 밀집된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렸다는 것. 본인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도 알고 있다. 우리가 그렇다는 것. 제 나라의 군사 무기 수출 물량이 많다고 문제 삼는 국민이 어느 나라건 얼마나 될까? 수출해서 경제에, 먹고 살기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경제에 도움만 되면 단가? 그것은 쓰인다.

"여기 우리가 있다, 너희가 무찌른 대상들이. 승리 만세!"

브레히트가 이런 시구를 단 사진의 주인공들은 다치고 굶주린 어린이들이다.

"오, 정글용 탱크에서 발견된 가엾은 요릭! / 네 머리가 탱크 손잡이에 꽂혀 있구나 / 너는 도메인 은행을 위해 불 속에서 죽어갔는데 / 네 부모는 아직도 그 은행에 빚이 많구나."

불타버린 일본군 탱크에 미군들이 얹어 놓은 한 일본군의 해골 사진에 달린 이 시는,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점령군으로 죽음마저 무릅쓰는 여러 국적의 병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재래식 무기 중 '집속탄'은 민간인에게 피해를 가장 많이 끼쳐서 피해자의 98%가 민간인이라고 한다. 때문에 국제적으로 금지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 금지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주요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최근에는 국산 자주포의 수출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할 때 우리도 살기 위해서(국익) 그랬고, 공포(대미 관계, 북한 핵)에 질려 있었다.

반세기 전의 사진첩을 보면서 우리는 세월 이상의 것에 부딪친다. '정확한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의 의미, '올바르게 읽고 듣는다는 것'의 결과 말이다. 매체의 속임수에 속지 않고 정보를 제대로 걸러내는 기술은 관건이 아니다. 이 책은 진실을 대면하는 용기,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 브레히트가 신문과 잡지에서 보도 사진을 오리고, 사실의 기록인 보도 사진에 시로 주석을 달았던 것이다.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와 간편하고 효율적인 컴퓨터를 갖추고 있음에도, 우린 그보다 위축되고 부자유스럽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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