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한때 한국 사회에서도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미래 사회의 비전으로 "지속 가능 사회 실현"이라는 모토가 등장하였고, 정부 산하에 지속가능위원회도 설립되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지속 가능'이란 단어를 '녹색 성장'이 대체하고 있다.
1987년 <브룬트란트 보고서>에 처음 등장한 '지속 가능' 발전은 "미래 세대가 그들 스스로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을 의미하였다. 이는 자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경제, 사회, 환경 부문의 균형 있고 조화로운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녹색 산업을 통해 새로운 경제 성장을 지향하는 녹색 성장으로 대체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지속 가능 사회로부터 녹색 경제 사회로의 비전 후퇴가 가져온 결과였을까. 최근 한국 사회가 겪은 일련의 사태들은 여러 영역에서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품게 한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발생했다고 하는 유례없는 한파는 저소득층의 난방비 증가를 가져오며 부의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연관되어 있는 한 올해와 같은 한파가 일회성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에너지 빈곤을 대처하는 종합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기록적인 살처분으로 이어진 구제역 역시 축산 농가의 경제적 몰락은 물론 거주 환경의 피폐화를 가져왔다. 이에 대처하자면, 방역 행정 개선을 넘어서 공장형 축산이라는 산업 지향형 농정 패러다임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급작스럽게 진행된 재스민 혁명의 여파로 치솟는 석유 가격, 기후 변화와 재배 면적 감소 등에서 연유하고 있다는 국제 곡물가의 급등도 식량 자급률 26.9%, 석유 대외의존도 55%인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너지 수입의 다변화, 강력한 에너지 절약 정책의 실시와 선물 계약을 통한 곡물 확보 등이 이들 문제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이다.
이들 일련의 사태들은 우리 사회의 에너지, 농업 시스템이 현재의 상태로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에는 동의하는 이들도 그러면 현재의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 아니 바꾸는 것은 가능할까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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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자본주의>(폴 호큰·에이머리 로빈스·헌터 로빈스 지음, 김명남 옮김, 공존 펴냄). ⓒ공존 |
무엇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 농업 시스템일까?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 시스템이 정유회사 등의 강력한 로비와 이들에 유리한 각종 제도들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질 수는 있는 것일까? 1999년에 '자연 자본주의' 개념을 만든 폴 호큰과 자원 생산성 혁신을 주창한 로빈스 부부가 공동 집필하여 출간한 <자연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신산업 혁명의 패러다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자연 자본주의'의 새로운 전략을 따르면 에너지 낭비를 조장하여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을 전환할 수 있고, 산업적 농업과 단절하고 자연의 지혜를 따르는 새로운 농업의 출현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전환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전해주고 있다.
환경운동가이자 사회적 기업가이기도 한 폴 호큰과 대안 에너지 전문가로 유명한 에이머리 로빈스, 역시 환경운동가이자 지속 가능 경영 전문가인 헌터 로빈스의 <자연 자본주의>는 출간 후 현재까지 지속 가능성에 관한 필독서, 최고의 친환경 도서로 꼽혀왔다. 여기에는 이 책이 산업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지속 불가능성의 원인을 지적함과 동시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해법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저자들이 들려주는 해법들 대부분이 기업, 엔지니어, 시민단체 혹은 지방자치단체, 중앙 정부들에서 실행했던 것들이어서 독자들에게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었다. 700여 쪽에 걸쳐 서술되어 있는 이들 다양한 해법들에서 우리는 앞서 언급한 한국 사회 시스템 전환의 단초들을 읽어낼 수 있다.
에너지 과소비를 방치하면서 사회적으로 에너지 빈곤을 양산하는 현재의 우리 에너지 시스템은 어떻게 전환되어야 할 것인가? 저자들에 따르면, 근원적으로는 물질과 에너지 면에서 비효율적인 현재의 경제를 자원 생산성이 높은 '자연 자본주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자연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산업 자본주의와 달리 자연 자본주의에서는 인적 자본, 금융 자본, 제조 자본 이외에 자원, 생명 시스템, 생태계 서비스로 이루어지는 자연 자본을 경제의 주요 요소라고 본다.
한편, 자연 자본주의는 가치 체계에서도 산업 자본주의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자연 자본주의에서는 환경을 "경제 전체를 포괄하고 제공하고 지탱하는 외막"으로 보고, 현재 시장 가치가 없는 생명 유지 서비스를 포함하는 "자연 자본의 가용성과 가능성"을 경제 발달의 제한 요소로 본다. 때문에 여기서는 자연 자본을 온전하게 가치 평가하고 자원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높여 자연 자본의 고갈을 막는 활동이 중요해진다. 이런 자연 자본주의 실현에는 네 가지 핵심 전략이 존재하고, 이 전략이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되면서 에너지 시스템과 같은 자연 자본주의의 하부 시스템도 변하게 된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자연 자본주의의 네 가지 핵심 전략에는 1) 자원 고갈을 늦추고 사회 비용을 절감시키는 혁신적인 자원 생산성 2) 물질 투입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생물 모방 3) 상품과 구매 경제 대신에 서비스와 흐름의 경제 4) 자연 자본을 유지하고 복원하기 위한 자연 자본에 대한 투자가 있다. 이들 네 가지 전략을 국가, 기업, 공동체들에서 따르자면, 산업 자본주의에서와는 다른 기술 혁신, 정책 제도의 개발, 법제 정비 등이 필요하게 된다.
<자연 자본주의>는 네 가지 전략들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원칙, 이행 결과의 사회 경제적 이익과 더불어 실제로 전략에 따라 실천하고 있는 사례들을 정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에너지 분야에서 자연 자본주의 전략 이행은 건물의 외장뿐만 아니라 조명, 전기 제품, 설비 등을 앞서서 고려하는 통합적 설계를 활용한 건물 에너지 효율 증가, 건축가에게 설비 가격 기준으로 보수를 측정하는 대신에 효율성 달성에 대한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기, 건물의 에너지 효율이 건물 자산 가치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 바닥 아래에 설치한 치환 환기 시스템, 슈퍼윈도 등 혁신 기술 도입을 통한 에너지 절감, 건물 부지 및 폐자재의 재활용을 통한 에너지 절감, 주택 단열 사업, 자원 효율 개선을 지향하는 마을 재설계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건물을 설계하는 과정에 장기간의 운영에서 발생할 모든 편익을 계산에 넣는 간단한 원칙만을 지켜도 낮은 비용으로 효율이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물질 저감의 자원 생산성과 유사한 에너지 효율을 건축의 목적으로 놓는 사고의 전환, 이에 근거한 기술 혁신, 이들 혁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제도의 도입과 관련 사업의 지원들이 건축 에너지의 혁명적 절감을 결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에너지 시스템은 이런 방향으로의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정책들의 공조는 어떠한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저자들의 자연 자본주의의 전략 실행은 농업 분야에서는 산업화된 농업과의 단절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들은 현재의 산업화된 농업은 농업의 근간인 자연 자본의 훼손을 결과하고 궁극에는 농업 시스템의 전반적인 생산 하락을 가져왔다고 본다. 화학 물질에 의존하는 단일 재배에서 벗어나 자연에 가까운 농법을 따름으로써 토양의 균형이 회복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농법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태 농업을 수행하는 아프리카 여러 지역에 대한 현장 연구는 고수확 종자와 인공 비료 대신에 지역 종자만으로도 예전과 같은 수확량을 얻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축사에 에너지 절약 기술을 사용하고, 수확기에 의해 흠이 난 곡물 폐기물을 에탄올 생산에 사용하도록 해서 농업에서의 자원 생산성을 높이는 것, 지역 생산을 장려하여 수송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 등이 자연 농법으로의 전환과 병행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축산과 연관해서는 생태학적 방목법을 따르고, 소에 주는 보조금을 폐지하여 소 사육으로 인한 메탄 방출을 줄이는 것, 가축 분뇨에서 나오는 메탄을 규제하거나 세금을 부과하는 일, 쇠고기 등급 기준의 개혁 등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무비료, 무농약, 무제초의 '3무 유기 농법', '다품종 재배', '윤환 방목법', '생물 집약형 소농법' 등은 농업 전환이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며, 자연 자본을 복원하는 방식의 농업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축산을 비롯한 우리 농업 시스템은 자연 자본을 얼마나 훼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농업 시스템 전환을 위해서는 어떤 경험들에 주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농업, 에너지 분야 이외에도 저자들은 서비스-흐름 개념을 활용하여 제품 수명을 늘려 자연 자본의 고갈을 막는 원칙과 이를 실행하는 다양한 사례들, 기술적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생태계 서비스들을 보존하기 위해 어떻게 자연 자본으로의 투자를 늘릴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자연 자본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세금과 보조금 체제가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수정의 원칙으로는 다음과 같은 과감한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자원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높이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는 노동과 소득에 부과된 세금을 없애고 대신에 오염, 쓰레기, 탄소 연료, 자원 착취 등 현재 보조금을 받는 대상들에게 부과하는 것이다." (331쪽)
저자들은 자연 자본주의의 원칙들이 사회의 미래 계획에 통합될 때 사회의 기반을 지속 가능하게 다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들이 이미 많은 곳에서 때로는 기술 혁신으로, 때로는 정책 제도의 변화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자본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단순한 상식에 기반을 두고 자연 자본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기술 혁신 분야에서는 저자들이 주창하는 자원 생산성, 생물 모방의 원칙들에 따른 기술 개발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럽의 경우, 유기 농법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다양한 사례들에서 사고의 혁신이 어떤 실행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지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 자본주의 전략들이 정치, 경제, 사회 차원에서 어떻게 통합적으로 전개되어야 할지에 대한 그림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기업에서, 서비스 분야 등에서 각각의 전략들이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가를 보여 줄 뿐이다. 부문 혁신들이 어떻게 추동될 수 있는가에 대한 서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기술 혁신과 더불어 자연 자본주의의 실현에 중요한 것이 사회적 혁신인데, 이들 혁신이 어떻게 수행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언급은 적다.
산업 자본주의의 강고한 패러다임이 만들어내는 소위 잠김 효과가 자연 자본주의 전략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산업 자본주의에 유리하게 구축된 각종 제도 장치, 법제, 정치, 사회 문화들이 빚어내는 잠김 효과가 자연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어렵게 한다. 성공 사례만이 아니라 실패 사례를 통해 이들 효과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는 것은 아쉽다.
산업 자본주의에 속박된 정치 레짐, 문화 종속성들은 기업의 다양한 기술 혁신이 축적된다고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