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로시 데이라는 인물을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김종철 옮김, 녹색평론사 펴냄)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호이나키의 책은 근대와 대결한 한 지성인의 삶을 뿌리째 보여준다. 그는 '회의하는 삶'을 '좋은 삶'으로 바꾸기 위해 대학 교수직을 스스로 그만두고 농부가 되는 결단을 내렸다. 그가 대학 교수로서의 부르주아의 삶을 포기하도록 영향을 미친 인물이 도로시 데이였다. 그는 대학 교수의 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중 데이의 영적 삶에 자극을 받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결심을 했던 것이다.

사후적이기는 하지만, 리 호이나키는 도로시 데이를 '복음주의적 급진주의자' '비타협적인 평화주의자'라고 지칭했다. 데이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언어의 조합을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한 모순적이면서도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미국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가톨릭 사회운동가'로 꼽히지만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2010년, 한국에 도로시 데이의 자서전 <고백(The Long Loneliness)>(김동완 번역, 복있는사람 펴냄)이 출간되었고, 2011년 초에는 로버트 콜스의 <환대하는 삶>(박현주 옮김, 낮은산 펴냄)이 연이어 간행되었다. 나는 리 호이나키의 영향으로 작년에 <고백>을 구입했지만, 종교 서적에 가까운 편집 스타일 때문에 손때를 묻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 <환대하는 삶>을 먼저 읽고서야 <고백>을 다시 꺼내 읽었다. <고백>은 자서전이기에 내면의 기록이고, <환대하는 삶>은 대화의 기록이다. 자서전은 어떤 식으로 발화자의 의도에 갇히게 마련이고, 대화의 기록은 상호성으로 인해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종종 벗어나게 마련이다. <고백>과 <환대하는 삶>은 어깨를 마주하듯 서로를 의지하는 책이다.


▲ <환대하는 삶>(로버트 콜스 지음, 박현주 옮김, 낮은산 펴냄). ⓒ낮은산
그 중 <환대하는 삶>은 의사이자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콜스가 도로시 데이의 정신 세계를 대화를 통해 재구성한 책이기에 흥미롭다. 이 책은 두 사람의 대화의 기록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도로시 데이의 저작과 삶의 핵심을 파헤치는 분석서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환대하는 삶>의 주제이기도 한 문제적 인물인 도로시 데이(1897~1980년)는 누구인가? 내게 그의 삶을 요약하는 단어를 떠올려 보라면, 헌신적인 가톨릭 신자, 사회주의자에서 가톨릭 종교인으로 회심한 자, 급진적 실천주의자, 신념을 밀어붙인 능력자 등일 것이다. 1897년생인 도로시 데이는 20대에는 신문기자, 간호사, 작가로 활동하며 급진적인 사회주의 운동 진영과 관계를 맺었다.

그러다 미국 대공황이 절정기에 이르렀던 1933년에 피터 모린과 함께 <가톨릭 일꾼>을 창간하면서 인생의 급격한 반전을 겪었다. 그는 사회주의자에서 가톨릭 신앙인으로 '회심'한 전향자인 것이다.

그 전향의 전환점에 <가톨릭 일꾼>이라는 신문과 '환대의 집' 운동이 자리한다. <가톨릭 일꾼>이라는 매체를 통해 도로시 데이는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반전 평화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국가와 가톨릭교계와 대립했다. 이러한 <가톨릭 일꾼>의 입장은 미국 가톨릭과 미국 지식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국가와 애국주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도로시 데이는 당당하게 "전쟁은 국가의 활력"이라고 외쳤다. 이러한 외침으로 인해 <가톨릭 일꾼>은 개인 구독자뿐만 아니라, 수백, 수천 부씩 가져가던 단체 구독자들이 떨어져 나갔지만, 미국 사회 내에서 '근본주의'적 사고의 필요성을 강렬한 언어로 환기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환대의 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공항기에 설립된 '환대의 집'은 노숙인에게 시혜를 베푸는 방식으로 봉사하는 곳이 아닌, 그들과 더불어 동등한 입장에서 곤궁을 나누는 곳으로 설립되었다. 무료 급식소에서 줄을 서게 해 배급하는 것과 같은 방식을 거부하고, '환대의 집'은 노숙인을 손님으로 맞아 함께 음식을 나누고 잠잘 곳을 대접했다. 이러한 실천은 차별과 구별을 넘어서 동등한 위치를 회복함으로써 종교적 헌신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환대의 집'은 1933년에 설립된 이후 3년 만에 미국 전역에 33개소가 생길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1950년대를 살았던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을 찾아 직접 실천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미국 지성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시민사회의 윤리적 자의식이 종교적 실천 운동과 결합함으로써, 청년 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사례이다. 그렇기에, 리 호이나키 같은 이들이 도로시 데이의 영향으로 강한 윤리적 자의식을 키울 수 있었으리라.

그렇다면, <환대하는 삶>은 도로시 데이에 대한 존경어린 헌사로만 채워져 있을까? 이 책의 매력은 글쓴이 로버트 콜스의 조심스러운 태도에 있다. 로버트 콜스는 도로시 데이에 대한 존경의 감정을 갈무리한 채, 예민한 곳은 건드린다. 이에 호응하는 도로시 데이의 태도는 때로는 다시 숙고하고, 때로는 회의하며 짜증을 내기도 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전반적으로는 우호적인 대화가 이어지지만, 간간히 이뤄지는 긴장 넘치는 대화는 독자를 흥미로운 호기심의 세계로 이끈다. 대중과 가톨릭 교계는 도로시 데이를 "성인으로 호명"하려 하지만, 로버트 콜스가 보여주고 있는 도로시 데이는 '갈등한 개인'의 모습에 가깝다. <환대하는 삶>을 읽으면서 나는 때때로 데이의 말보다는 콜스의 감상과 냉정한 평가에 더 귀 기울이곤 했다.

종교적이어 고결하게 느껴지는 도로시 데이보다는 갈등하는 세속인의 면모를 드러내는 로버트 콜스의 내면에 더 쉽게 동일시되었던 까닭이리라. 성과 속의 대화를 엿듣는 자의 태도에 가까운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존경스러운 종교인 앞에서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 로버트 콜스처럼 '말하는 자가 아닌 듣는 자'에 가까운 처지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 때문일까? 고백컨대, 나는 <환대하는 삶>과 <고백>을 읽은 후에도 여전히 도로시 데이가 낯설다. 그는 종교적 삶에 헌신한 사람이고, 또 영적 가치에 자신을 내던진 인물이다. 내게는 그의 종교적 신념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앞으로의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내게 종교적 헌신은 감동적일 뿐 설득적이지는 못했다. 이는 현재의 나의 삶과도 깊은 연관이 있으리라. 내가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한 내면적 거리감은 비교적 뚜렷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내게 대공항 이후 미국 지식인 사회의 풍경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와 조지 오웰, 이그나치오 실로네, 시몬 베유가 당시의 미국 지식인에게 미친 충격을 실감하게 하는데도 유용한 자극을 주었다. 무엇보다 산업화 시대의 대량 생산 시스템에 저항했던 미국 사회운동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계기를 준 것도 큰 수확이었다.

나는 조그맣게 일궈낸 실천을 통해 사람들을 크게 움직인 인물로 그녀를 기억하고자 한다. 도로시 데이는 내게 공동체 운동을 통해 오히려 독립적 인간을 깊이 사유하게 한 '실천가'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렇듯 상이한 인물 접근법을 가능하게 해 준 책이 <환대하는 삶>임을 인정해야할 것 같다.

더불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도 조심스러워서 다소 불만이었던 저자 로버트 콜스에게 조그만 헌사를 보내야 할 것 같은 부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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