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를 둔 부모라면, 덧셈이라도 가르쳐서 학교에 보낼 요량으로 애를 책상 앞에 앉혀놓고 그림까지 그려가며 이리저리 가르쳐보다가, 결국 아이에게 화를 버럭 내거나, 연필로 책상을 치면서 답답해하거나, 밤에 맥주캔을 따면서 한숨을 쉬어본 경험이 한번쯤 있으리라. 나는 "저 나이 때 안 저랬는데" 푸념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착각 마시라. 당신도 '자신의 판박이' 아이마냥 저랬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숫자를 따분해하고, 수학을 어려워하며, 연산은 도통 뭔 얘기를 하는지 낯설어 한다. 도대체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하는 걸까? 연산을 하는 동안, 아이들의 뇌에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것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반가운 책이 출간됐다.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의 안승철 교수가 쓴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궁리 펴냄)가 바로 그 책이다. 그가 번역해 2004년에 나온 <우리 아이 머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궁리 펴냄)는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뇌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 하는 세상의 모든 부모가 읽어야할, 발달신경생물학을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십대들의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바버라 스트로치 지음, 해나무 펴냄) 역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아이들은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안승철 지음, 궁리 펴냄). ⓒ궁리
그런, 안승철 교수가 이번엔 직접 집필에 나섰다. 그가 관심을 가진 주제는 아이들의 수학 지능. 아이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숫자를 이해하고, 사칙연산의 개념을 터득하는지, 사교육 시장의 문제집과 대한민국의 학교 교육은 아이들의 인지 발달 과정에 잘 맞춰져 있는지 집중적으로 검토한 책이다. 우리 아이가 수학을 잘하길 바란다면, 그래서 아이에게 수학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다면, '그들이 어떻게 수를 받아들이고, 연산을 배우는지'를 부모가 잘 알아야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얼마나 유익할까? 이 책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글쎄…. '소름끼치게 잘 쓴 책은 아니지만 나름 분명한 성과와 한계를 가진 책, 부모보다는 교사에게 더 유용할 책'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과연 이 책의 성과는 무엇이고, 한계는 무엇일까?

이 책의 앞부분은 아이들이 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를 검토하고 있는데, '초등 수학 교육의 권위자' 이안 톰슨의 편저 <Teaching and Learning Early Number>(Open University Press, 1997)와 이 책에 인용된 참고 문헌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2008년에 개정판이 나오기도 한 이안 톰슨의 편저 <Teaching and Learning Early Number>는 초등학생의 수학 교육을 위한 발달심리학자들의 연구 논문을 모은 책으로, 그 동안 어린이 수학 교육의 이론적 틀을 제공해온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을 비판하고 수학 교육의 대안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책이다. 유아들에게 바람직한 수학 교육의 방향과 실제적인 교수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쓰인 책으로, 우리나라에선 정민사에서 2002년에 <어린이 수학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으나, 널리 알려지진 않은 책이다.

피아제의 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이 수 개념을 갖기 시작하는 것은 7세 이후. 따라서 그 전에 수학을 가르치려 시도한다면, 아이들이 왜곡된 수 개념을 갖게 되거나 흥미를 잃을 수 있어, 7세 이후에 교육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발달심리학자의 정교한 실험에 따르면, 아이들은 3~4세 무렵 이미 3 이하의 수에 대한 개념을 선험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며, 그 무렵 이미 실생활에서 적용한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안 톰슨과 그 동료들은 7세 이전에 수에 대한 개념과 추상적 상징 체계를 적절하게 가르치면, 오히려 유익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안 교수는 책의 앞부분에서 톰슨 그룹의 주장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선 이것이 선행 학습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조심스럽게 언급하고 있다). 이 책에서 앞부분의 미덕이라면, 저자가 톰슨의 책을 바탕으로 신경심리학 실험 내용을 충실히 소개하고 있어서 '아이들의 수 개념 이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교사에게 각별히 유익할 것이다.

이 책에서 아마 학문적으로 가장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아이들이 사칙연산을 어떻게 하고 받아들이는가를 다룬 3장과, 현재 아이들이 풀고 있는 문제집은 적절하게 구성돼 있는가를 고찰한 5장일 것이다. 앞부분과는 달리, 이 부분은 대개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학문적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물론 꽤 그럴듯하게 들리며, 자신의 주장을 (아이를 둔 아버지답게)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유익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과학적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독자들이 과학적 사실과 저자의 주장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혼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의 사칙연산 처리 과정을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은 일견 타당하나 아쉬움이 크다. 실제로 수학 연산을 담당한다고 알려진 뇌의 다양한 영역, 이를테면 앞중심이랑(precentral gyrus)이나 마루엽(parietal lobe), 각이랑(angular gyrus), 그리고 배측전전두엽(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등이 연산 과정에서 어떻게 기여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더라면 부모나 교사 모두에게 더 유익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의 매력은 거스트만증후군(계산 불능(acalculia)을 보이는 손가락실인증 환자)을 포함해 수학적 사고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나, 남녀의 수학 능력의 차이, 동물도 숫자 개념이 있는가 등 수학과 관련된 흥미로운 주제를 폭넓게 탐색하고 있어, 자녀가 없는 일반 독자라도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다. 물론, '수학 영재들의 사고 과정'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또 하나, 이 책에서 아쉬운 대목은 거창하게 '아이들이 수학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말해줄 것처럼 시작했으나, 결국 사칙연산에만 그 논의를 국한해 설명했다는 점이다. 공간 지각 능력을 바탕으로 한 '공간과 도형'(그러니까 말하자면 기하학)이라든가, 패턴 인식, 추론과 문제 해결 등 수학적 사고의 근간을 이루는 다양한 지적 능력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 크게 실망스럽다.

'사고 공간 안에 위치한 도형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의 문제나, '대뇌가 특징적인 수학 패턴을 어떻게 찾아내는가'의 문제, '대뇌가 논리적인 연결고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인과율을 처리하는가'의 문제, '문제 해결을 위한 추론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의 문제, '그 과정에서 두정엽과 전전두엽의 역할은 각각 무엇인가'의 문제 등은 최근 신경과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인데, 이런 부분들이 논의가 돼 있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은 정작 이 책은 "아이들이 왜 수학을 어려워할까?"라는 야심찬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왜 아이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는지, 어떤 아이들은 수학을 잘 하는데 뒤떨어지는 아이는 무엇이 다른 것인지 등 우리가 정말 알고 싶은 문제들에 대해선 해답을 들려주지 않은 채 마지막 책장이 덮힌다.

글쎄…, '연산 개념도 없는 애들 데리고 너무 일찍 가르치려 하지 마라' 정도? 이 책은 부모에게 '서두르지 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물론 그 말은 백번 옳은 말이다) 기다린다고 해서 애들이 누구나 저절로 수학을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답답할 노릇이다. <아이들은 어떻게 수를 배우는가?>가 이 책에 합당한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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