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고닉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전5권, 래리 고닉 지음, 이희재 옮김, 궁리 펴냄)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또 다른 만화책을 떠올렸다. 오바 츠구미, 오바타 타케시의 <데스 노트>. 래리 고닉의 책 역시 만화책이라서만은 아니다. '데스 노트'와 '세계사'의 공통점은 천재만이 감당하고 쓸 수 있는 책이라는 데 있다.

단지 "하버드 대학교 수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여 학업 성적이 우수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파이베타카파 회원이 되었으나, 하버드 대학원에서 수학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밟다가 홀연 그만두고 전업 논픽션 만화가의 길에 들어섰다"는 무시무시한 이력 때문에 래리 고닉을 '천재'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전5권, 래리 고닉 지음, 이희재 옮김, 궁리 펴냄). ⓒ궁리
그가 이 책 이전에 유전학, 통계학,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등의 전문가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통계학>,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유전학> 등의 만화책을 냈고 이 책들이 하버드 대학교, 버클리 대학교, 예일 대학교에서 부교재로 활용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는 사실도 아니다.

그의 천재성은 세계사를 다루는 특유의 균형잡힌 시각에서 드러난다. 이 5권짜리 세계사가 다루는 내용은 우주의 탄생, 빅뱅에서부터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까지 다루고 있다. 그의 책의 제목을 빌자면 '세상에서 가장 긴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난삽하거나 어렵지 않고 무엇보다 치우쳐 있지 않다.

문명과 문명은 어떻게 이어졌나?

오히려 놀라운 것은 이 책이 대부분의 세계사 교과서나 '만화 세계사' 등의 책에서 병렬적으로 나눠 정리하고 있는 각 문명 간의 '교섭'을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가로서 래리 고닉의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1200년 대를 보자. 메카 순례는 어떻게 이탈리아 르네상스로 이어질까?


▲ 역사의 각 장면을 매우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려내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궁리

"서아프리카에 자리잡은 이슬람 국가 말리의 만사 무사왕은 1324년 메카로 순례를 떠났다. 수천 명의 사람과 수없이 많은 낙타가 산더미 같은 짐과 물 자루, 넉넉한 황금을 잔뜩 짊어지고 요란하게 사하라 사막을 가로 질렀다. 도중에 몇 명이 죽었는지 몰라도 마침내 그들은 이집트에 도착했다. 말리 순례단은 기념품을 사러 노천시장에 갔다. 카이로 상인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이렇게 많은 황금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은 본 적이 없었다. 가난한 상인 중에는 순례단에 바가지 요금을 씌우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만사 무사의 탕진으로 왕국은 재정이 파탄났다. 몇 년뒤 말리는 이웃한 송가이 제국에 무너지고 말았다. 한편 이집트에서는 벼락부자들이 생겨났다. 돈이 넘쳐나니까 덩달아 물가도 올라갔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빈민은 물론 서민도 카이로에서 살기 힘들었다. 말리 순례단이 다녀간 지 10년이 지나도록 이집트는 물가고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당시 많은 이탈리아인이 이집트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집트의 높은 물가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떼돈을 벌었다. 결국 만사무사가 가져온 황금은 이탈리아 상인이 거둬들였다. 이집트에서 벌어들인 황금은 이탈리아 은행가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이탈리아에서 화려한 르네상스 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든든한 자금 덕분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시대도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래리 고닉이 서양 중심의 역사만이 아닌 세계 각지의 역사에 고른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중국사와 아프리카, 인도 남미 등 서양 이외의 지역의 역사도 자세히 소개하면서 이들의 역사에 무관심한 기존의 역사 풍토를 비판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다루기에 앞서 나온 작가의 말을 보면 이렇다.


▲ 래리 고닉은 아프리카야말로 다양한 문화의 보고라고 강조했다. ⓒ궁리
"애석하게도 아프리카의 역사를 덮어놓고 오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도무지 마음을 안 여는기라! 아프리카는 미지의 '검은' 대륙이라는 거지. 밀림으로 뒤덮인 '흑인'의 본고장, 배웠다는 사람도 겨우 이 정도 밖에 생각을 못해요! 말도 안 되지!

아프리카의 역사는 보기보다 풍성해요. 아프리카 대륙에는 온갖 기후와 풍물이 모여있고, '흑인종'이란 건 애당초 없다, 이 말씀이야! 아프리카는 어떤 대륙보다도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어. 왜냐고? 인간이라는 '종'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거든. 아프리카인에게는 다양성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다 이 말씀이야! 그러니 우리 제발 편견을 버리자고요! 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고, 낡은 선입견은 떨쳐버리기 위해서!"


▲ "역사가들은 원주민은 대부분 전염병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을 한다!" "어쩐지,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몰상식했을리가 없거든요!" ⓒ궁리

이러한 공정한 시각은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물론 래리 고닉은 모든 침략과 살육에 비판적인 사각을 견지한다. 래리 고닉은 4권에서 백인들이 정착하기 전에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이 이룬 멕시코 문명, 잉카 문명을 자세히 설명하고 나서 스페인과 포르투갈 왕국의 파괴에 대해 이런 고찰을 내놓는다.

"멕시코에서 벌어진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역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원인과 결과를 알아내고 평가하고 저울에 달고 분석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역사가 심판을 할 수 있을까? 알아서들 판단하시라. 그렇지만 한 가지는 꼭 묻고 싶다. 무차별 학살과 탄압과 한 문명이 이룩한 문화적 위업을 깡그리 부순 것에 대해서 어떻게 달리 반응할 수 있겠느냐고. 그 파괴자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시대도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보다는 좀더 이성적이고 인간적이고 덜 편협해지도록 만들어나가야 한다."


▲ 래리 고닉은 "우리는 그들의 시대도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글 밑에 이런 그림을 그렸다. 이것이 역시 비평에 대한 우리 자신의 냉소적인 태도인지 모른다. ⓒ궁리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쏠쏠한 재미다. 가령 처음으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사람은 포르투갈 태생 페리드난드 마젤란이 아니라 포르투갈과 스페인, 남아메리카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간 엔리케 말리카라는 필리핀 출신 노예라는 사실이 그렇다. 또 러일전쟁 당시 미국 은행가 제이콥 시프가 일본에 전쟁 자금으로 2억 달러를 융자해준 것이 국제 유대인 음모론의 기원이 됐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것은 마젤란이 아니라 그의 필리핀 노예 엔리케 말라카였다. ⓒ궁리

"붓다는 80세에 식중독으로 열반에 들었다"

그의 가차없는 시선은 종교라고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는 불교,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의 종교도 인간에 의한 하나의 역사로 기록한다. 그는 각 종교가 내세우는 가치와 함께 이들의 오류투성이의 현실도 함께 전한다. "붓다는 80세에 식중독으로 열반에 들었다"고 말하는가 하면 예수를 두고는 "메시아의 일은 힘들었다. 예수는 신경 과민의 조짐을 보였다"고 풍자하기도 한다.


▲ 루터는 "내가 방귀를 끼면 로마까지 냄새가 가는 모양입니다"라고 독설을 쏟아냈다. ⓒ궁리
종교의 뒤에 숨겨진 재미있는 풍경도 많다. 1517년 마르틴 루터는 교회의 면죄부 장사를 비판하는 글을 교회 문에 붙이고 논쟁을 시작했다. 로마에서 교황 레오 10세는 독일의 수금액이 기대에 훨씬 못미친다는 소식을 듣는다. 교황은 루터를 로마로 부르지만 신학교수는 아프다는 핑계로 독일에 남아 교회를 공격했다. 루터는 "내가 비텐베르크에서 방귀를 끼면 로마까지 냄새가 가는 모양입니다!"라고 비아냥댔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종교에 대한 풍자에 눈살을 찌푸릴지 모른다. 그러나 책을 읽다보면 어느 종교에나 같은 잣대를 대는 래리 고닉에게 섭섭하지는 않을 법하다. 그리고 실제로 역사에는 종교의 가치를 앞세운 오류가 너무나 많았다! 래리 고닉의 말대로 십자군 전쟁이 일으킨 참상은 "말할 나위도 없다."


▲ 래리 고닉은 십자군 전쟁에 통렬한 비판을 내놓는다. ⓒ궁리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충분히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다는 점이다. 그는 각 시대에서마다, 마치 그 시대의 만평가인 것처럼 풍자와 유머를 한껏 불어넣는다. 프랑스 혁명 당시 발명된 기요틴을 지켜보던 시민 중 하나는 "단두는 역시 손맛인데"라고 말하는가 하면 핵무기 폐기를 위해 만난 미국의 레이건과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댁이나 나나 히피가 딱인데"라는 농담을 주고 받는다.


▲ 심지어 래리 고닉은 인류사가 시작되기 전 페름기의 파충류에게도 풍자와 유머를 아끼지 않는다. '만화 우주 역사(The Cartoon History of The Universe)'라는 제목처럼 그의 관심은 역사와 과학을 넘나든다. ⓒ궁리

그러나 그의 유머가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의 시선 덕분이다. 그는 여성, 노예, 원주민 등 약자의 시선에서 강자를 풍자하고 '강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이야기해온 역사가들을 꼬집는다. 편견과 독설, 공격이 유머가 되는 시대에 '공정함'과 '정의'도 유머가 될 수 있을까? 이 유쾌하고 천재적인 만화가는 답을 갖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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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lkjl 2012-07-0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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