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16일, 영국 옥스퍼드의 어느 병원의 외과 응급실은 여름방학의 주말답지 않게 적막했다. 평소 같으면 상처가 나고 팔다리가 부러진 아이들 70~80명으로 북적거려야 할 주말 응급실에 환자가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일까? 마녀들이 나타나서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지 못하게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는 마법이라도 부린 것일까?
마녀 대신 마법사가 나타났다. 그날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인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가 출간된 날이었다. 이 책은 당일에만 900만 부가 팔렸다. 이날 아이들은 놀이터나 수영장을 찾는 대신 소파에 얌전히 앉아서 책을 읽느라 사고 칠 시간이 없었다. 또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가기보다는 꾹 참고 해리 포터를 읽었다.
과연 그래서 응급실이 평온했을까? 호기심을 느낀 의사들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인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출간된 후 첫 주말인 2003년 6월 21~22일의 진료 기록을 살펴보았다. 이날의 응급실 환자도 평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해리 포터와 골절 환자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오호! 독자들을 사로잡는 좋은 책이 많이 나오면 국민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를 막을 수 있다!)
종의 기원을 읽고 열 받는다고? 천만에!
해리 포터만큼이나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킨 책이 1859년 11월 24일 발간되었다. 발매 당일 초판 1250부가 매진될 정도로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 그 책의 이름은 <종의 기원>.
당시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했을까? 혹자는 신이 7일 동안에 모든 생물 종을 지금 모습 그대로 창조했다는 믿음을 단칼에 부인한 찰스 다윈의 주장에 열 받은 노인 독자들이 고혈압 증세로 병원을 찾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난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종의 기원>을 실제로 읽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구입한 책 두 권은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종의 기원>이다. 아무도 그 책들을 읽으라고 강요하거나 추천하지 않았다. 단지 대학 1학년이면 그 정도는 읽어줘야 사람 취급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높은 가격의 책을 한꺼번에 두 권을 산 것이다.
졸릴 것만 같은 이른바 <해전사>는 학교에서 틈틈이 읽고, 흥미진진할 것 같은 <종의 기원>은 집에서 집중해서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해전사>는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이틀 만에 다 읽었고, 노트를 만들었고, 친구들과 열띤 토론을 하였다. 생각해 보면 <해전사>는 학력고사보다도 내 인생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런데 <종의 기원>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끝내 다 읽지 못했다. 이후에 독일어와 영어로도 시도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불과 4년 전에야 <종의 기원>을 마쳤다. 다윈은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너무 조심스러웠고, 도대체 그가 뭘 말하려는 것인지 내게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나마 20년이 지난 후에야 <종의 기원>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진화 이론에 관한 책을 이미 여러 권 읽은 다음이라서 가능했던 것 같다.
1859년의 영국의 지식인이라고 크게 달랐겠는가? 그들도 무지 졸리고 헷갈려 하며 오랜 시간 동안에 읽느라고 급하게 혈압이 오르거나 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한 주 걸려 읽은 <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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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트>(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명남 옮김, 동아시아 펴냄). ⓒ동아시아 |
최근 출판된 <버스트>(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지음, 강병남·김명남 옮김, 동아시아 펴냄) 역시 우리나라 병원 응급실에 특별한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다. 나는 <종의 기원>을 읽는 데 20년이나 걸리기는 했지만, 보통 과학책을 읽는 데는 2~3일이면 충분하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버스트>를 읽는 데는 꼬박 한 주가 걸렸다.
재미가 없다거나 내용이 흥미롭지 않아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일단 책은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것도 유수의 학술 잡지에 실려 그 독창성을 인정받은 논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 구성이 매우 낯설다. 과학 이야기와 역사 이야기가 홀수와 짝수 챕터에 번갈아가면서 나오는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게다가 그 역사라는 게 처음 들어보는 16세기 헝가리 십자군 이야기다. 도대체 왜 두 개의 이야기가 나란히 전개되는지는 끝까지 다 읽은 다음에야 이해되었다. 이 역사 이야기만 없었다면 이틀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랬다면 번역자도 훨씬 작업이 편했을 것이다. 난해한 구성에 불구하고 번역은 매우 훌륭하다!)
역사 이야기를 간추리면 이렇다.
어떤 추기경이 교황이 되고 싶었지만 교황으로 선출되지 못했다. 여기에는 복잡한 암투가 있다. 그 암투의 결과, 이야기에서 교황은 사라지고 죄르지 세케이와 이슈트반 텔레그디라는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
십자군 원정대 대장인 세케이는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도중 귀족들로 구성된 아군 기병대의 공격을 받자 반란을 일으켜 농민군을 이끌고 싸우다 처형된다. 한편, 또 다른 주인공인 텔레그디는 농민들로 십자군을 모을 때 반대했다. 텔레그디는 세케이의 십자군이 반란군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세케이가 변덕스런 역사의 희생물이 될 것을 예견했다.
<버스트>의 저자가 이 복잡한 이야기를 (장장 14장이나) 책에 끼워 넣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과학이 역사까지 예측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던 것이다. 세케이는 역사의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상징하고, 텔레그디는 예언와 예측 가능성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동은 예측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무작위성, 표준분포곡선, 예측 불가능
난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가 싫었다. 솔직히 재미없었다. 재미있으면 공부가 아니라 놀이 아닌가? 그 와중에도 화학과 물리 수업은 '가끔' 기다려졌다. '주기율표'로 모든 결합을 설명하는 화학 선생님과 'f=ma'라는 간단한 공식으로 모든 것을 예측하는 물리 선생님이 신기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9개월 후에 화성에 로봇이 착륙하도록 위성을 발사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정확히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물리가 재미있었다. 두 선생님을 통해서 우리가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묘사하고, 정량화하고, 예측할 수 있으며, 결국 통제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앙을 물려받았다.
그런데 웬걸! 대학에 들어오니 물리학은 이제 예측 가능한 세계를 다루는 게 아니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따르면 우리가 입자의 위치를 더 정확히 알려고 할수록 입자의 속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둘 다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전자에서 사람까지 세상의 모든 물체에 적용되는 원리다.
이제 모든 것은 확률로 이야기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미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종 모양의 표준분포곡선에 익숙해 있다. 학급 아이들의 성적, 키, 몸무게, 가정의 소득수준, 100m 달리기 시간 등 모든 것들은 정규분포곡선을 보인다. 이것은 무작위성의 결과다.
우리의 행동도 마찬가지일까? 인간은 확률적으로 행동할까? 만약 그렇다면 인간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폭발성, 멱함수, 예측 가능
책의 원제는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The Hidden Pattern behind Everything We Do)"이다. 번역서는 그 숨겨진 법칙의 정체를 제목으로 삼았다. "버스트(Burst)". '버스트'란 폭발이다. 인간 행동의 패턴은 '무작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은 확률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 '폭발성'을 제시한다. 잔잔한 생활 와중에서 사건이 가끔 폭발한다는 것이다. 독자들이 <프레시안> 사이트를 매 시간 들어오지는 않지만 일단 들어오면 몇 건 내지 수십 건을 폭발적으로 열람한다. 이메일을 일과 시간 중에 일정한 비율로 보내지 않는다. 갑자기 폭발적으로 이메일을 발송한다.
저자는 폭발성을 수식화하는 '멱함수'로 행동 패턴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폭발적인 행동 패턴이 '우선순위'를 두고 행동하는 생활 방식에서 왔음도 보여준다. 글머리에 제시한 2005년 7월 16일의 응급실 상황도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인간 행동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데이터다. 최근에는 수백만 명의 행동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시각 정보까지 기록한 데이터베이스 몇 가지를 컴퓨터 과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경제학자들이 분석하고 있다. 그들의 결론은 "우리 행동 대부분은 자연과학 법칙만큼이나 재현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패턴, 메커니즘, 법칙을 따른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일일이 매핑(mapping)한 작업을 토대로 성장한 회사가 바로 야후와 구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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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 모양의 정규분포곡선을 보면 링크의 개수가 아주 많거나 적은 노드의 수는 적고 평균값의 링크 수를 갖는 노드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멱함수 분포 곡선에 따르면 대부분의 노드들은 링크의 수가 적은 반면 구글, 야후, 아마존처럼 극히 많은 링크가 있는 극소수의 허브들이 있다. 이런 허브들을 '척도 없는 네트워크'라고 한다. ⓒ동아시아 |
바라바시의 경고
이 책의 저자는 1999년에 '척도 없는(scale-free) 네트워크'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하였던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다. 2002년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링크>(강병남·김기훈 옮김, 동아시아 펴냄)를 통해서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을 소개한 장본인이다. 이 책은 <링크>의 후속작이다.
<링크>가 공간적인 요동 현상에 의해 나타나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를 소개했다면, <버스트>는 시간적인 요동 현상으로 숨 돌릴 수 없이 밀어닥치는 폭발 현상 이면에 멱함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면서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인간역학(Human Dynamics)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바라바시는 "전 세계의 역사, 사건 등은 네크워크화되어 있으며 미래 행동은 예측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현대는 블로그, 트위터 등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 인터넷과 GPS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수집 데이터의 양이 늘어나 행동 패턴 분석과 예측이 점차 더 쉬워지고 있다. 바라바시는 "미래에는 프라이버시 박탈 위기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생각해 보니 나도 트위터 덕분에 어느 총각 물리학자가 이번 주말에 할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트위터하기가 부담스러워진다.
사족
<버스트>가 출판되자 많은 신문들이 서평을 실었다. "인간 행동의 이면에 숨어있는 법칙을 자신의 가계의 유래를 모티프로 삼아 픽션과 역사와 과학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팩션"이라는 숱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절묘한 결합이 전혀 아닌 것 같다. 바라바시가 자신의 가계를 탐구한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을 억지로 독자들에게까지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만약 내가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읽겠다.
1. 강병남 교수의 해설과 김명남 선생님의 옮긴이의 글을 읽는다.
2. 과학 이야기(홀수 챕터)를 모두 읽는다.
3. 마지막 챕터(28장)의 뒷부분(383쪽부터)을 읽는다.
4. (흥미가 생기면) 역사 이야기(짝수 챕터)를 읽는다.
5. <버스트>의 전작인 <링크>를 '꼭'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