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역시 하나의 담론 체계이기 때문에, 작가가 어떤 의제를 독자에게 제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 설정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황석영이 '강남 형성사'에 대해 쓰고 싶었고, 또 그것을 실제로 써냈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작가의 촉수가 매우 민감하게 발달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의 강남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나 행정구역이 아니다. 그것은 압축 성장의 근대화가 만들어낸 뒤틀린 욕망의 표상 공간이자, 여타 지역의 거주민으로 하여금 강남적 삶의 방식을 끝없이 모방하고 선망하게 만드는 한국판 궁정 질서다. 그러니 세칭 '강남 공화국'이라는 표현은 현실에 대한 심각한 오인을 낳는다. 강남이라는 표상 공간을 형성하고 지탱시키며, 한국인들로 하여금 강남에 대한 경쟁적이며 모방적인 삶의 투쟁으로 이끄는 힘과 의례와 역학은 사실상 민주주의와 무관하다.

서구의 근대를 추동해냈던 부르주아들이 궁정의 삶을 경멸하면서도 그것을 분열증적으로 모방해왔듯이, 황석영의 <강남몽>(창비 펴냄)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은 제 각각의 욕망의 차별성에도 불구하고 강남적 삶의 질서 속에 용해된다. 그러나 모방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남는 법이며, 선택과 배제의 질서 역시 끈질기게 관철되는 법이다. 어떤 자들에게 강남의 형성과 성장 과정은 '황금광 시대'로 비치겠지만, 또 어떤 자들에게는 '악마의 맷돌'로 경험될 것이다.


▲ <강남몽>(황석영 지음, 창비 펴냄). ⓒ창비
<강남몽>은 상대적으로 '황금광 시대'의 열정으로 충만해 있는 인물군상에 포커스를 집중하고 있다. 1장의 주인공인 박선녀는 "인맥과 금맥은 물처럼 바뀌는 것"이라는 세속적 성공 신화를 룸살롱과 나이트클럽과 같은 밤 문화의 교차로에서 체득하며, 부와 권력을 잔뜩 쥐고 있는 남성들 사이를 오가면서 복부인으로 승승장구한다. 2장의 주인공인 김진은 일제 말기 관동군 밀정으로 출발하여 해방 후에는 미군의 정보 요원으로, 이후에는 건설 업체 회장으로 변신을 거듭하는데, '권력의 교차로'에서 인맥과 비자금으로 정보의 흐름을 장악함으로써 기업가로서의 성공 신화를 창출하는 인물이다.

3장의 주인공인 심남수는 어떠한가. 박기섭과의 우연한 만남 끝에 기획 부동산업에 뛰어드는 인물인데 "길 가는 데 땅이 있고 땅은 돈이 된다"는 박기섭의 신념을 확대 재생산하는 인물이다. 공무원 및 관료들과의 유착과 로비를 통해서 강남 개발 계획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헐값에 원주민의 토지를 매입, 이를 '떼기' 등의 방식으로 호가를 높인 후에 되파는 방식으로 부동산 투기 및 거액의 매매 이익을 취득한다. 이러한 사업 수완 때문에 청와대의 정치 비자금을 형성하는 매개자 노릇도 하게 된다.

4장의 주인공인 홍양태나 강은촌과 같은 조폭들 역시 강남에 건설되는 호텔을 근간으로 한 유흥업소의 각종 이권을 독점하기 위한 기업형 조폭의 욕망을 실현해나가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윤무혁과 같은 중앙정보부 요원을 매개로 정치 폭력의 수행을 통해 일시적으로 밤의 대통령으로 성공 신화를 이루는 듯하지만, 결국엔 비정한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인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거의 유일하게 황금광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환기시키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5장에서의 임정아와 그 주변 인물이다. 이들은 1970년대의 평범한 민중들이 그렇듯 이촌향도의 대열을 따라 희망을 품고 상경하지만, '광주 대단지 사건'과 같은 도시 빈민의 헐벗은 삶의 질서 속에서 거듭 절망적인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가여울 정도의 순정한 인간애와 삶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지만, 희망의 실현은 멀고 아득하다.

<강남몽>의 시작과 끝은 실제 있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수미상관의 구조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서 제시되는 시간적 배경은 일제 말기에서 시작되어 1995년까지의 한국현대사의 거의 전시간대를 포괄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쉴 새 없이 스쳐간다. 일제 말기와 해방, 10월 항쟁과 제주 4·3 항쟁, 김구 암살, 4·19 혁명과 5.16 쿠데타, 광주 대단지 사건, 박정희 암살과 신군부의 대두 등의 사건이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이 소설 속에서, 인과적 연계를 갖고 나타나지 않고 다만 등장인물의 가열한 욕망의 부침을 보조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기제로서 활용된다. 작가가 가장 공들여 묘사하는 인물은 아무래도 김진, 김창수, 이희철과 같은 일제 당시 일본군이나 경찰에서 친일 인사로 활동하다가, 해방 이후 변신을 거듭해 기업가나 권력의 실세로 등장하여 권력과 자본의 합종연횡을 연출하고 있는 인물이다(주인공도 아니면서 이례적으로 장황하게 박정희를 강직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자못 기묘해 보인다). 중반부를 넘어갈수록 윤무혁과 같은 중앙정보원 및 국가정보원 인사가 자주 등장하여, 권력과 자본의 치밀한 관리 및 이권거래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강남몽>은 한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이야기의 매력이 있다. 물론 이는 황석영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역량 탓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권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에 대한 묘사나 성공과 몰락에 대한 드라마틱한 압축적 구성이 일종의 영웅 신화의 구조, 더 정확히 말하면 소영웅들의 인생 극장 식으로 병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갓 헛꿈에 불과할지라도 가히 '황금광 시대'를 연상시키는 등장인물의, 강남을 매개로 한 성공에 대한 가열한 열망과 절망은 시종일관 치밀한 책략을 통해 가동되고 있는데, 그것이 대중 독서의 차원에서 무협지와 같은 강렬한 흡인력을 끌어내는 것은 분명하다. 권모술수의 현실주의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독자들이 오늘의 강남을 형성시킨 한국적 압축 성장에 대한 입체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이해에 도달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반대로 대중적 차원에서는 결국 한국에서의 부와 권력, 그리고 폭력의 신성동맹이란 그저 힘 있는 세력들 간의 이해관계의 간통이나 유착에 불과한 것이고, 힘없는 대다수 서민들이란 소설의 끝에서 발가벗겨져 구조되는 임정아처럼 그저 언젠간 나아지겠지 하는 선량하지만 결국 막연한 희망으로 살아갈 뿐 아닌가라는, 별다른 의식의 충격 없는 일상적 냉소주의의 확인이나 감정의 휘발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등장인물의 인생의 부침이 대개 '우연'에 의해 출발한다는 것 역시 좋은 소설적 설정은 아니다. 소설의 묘사를 따르면 "쭉쭉빵빵 꽃"핀 몸매밖에는 없었던 여상 출신 박선녀는 우연히 모델로 발탁되고 또 새끼마담이 되고, 또 김진을 만나고, 또 심남수를 만나 부동산 투기에 눈뜬다. 김진은 어떠한가. 유년시절 우연한 계기로 김창수를 만나 밀정이 되고 특무기관에 차출되더니, 해방이 되어서는 서울 거리에서 다시 우연히 이희철을 만나 미군 특무기관원이 된 후 승승장구한다. 심남수는 또 어떤가. 군대 제대 후 취직 시험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군대 시절의 동료를 만나 만취해 통행 금지를 어겨 유치장에 갇히는데, 거기서 부동산 업자 박기섭과 "운명적으로" 만나 인생역전이 시작된다. 기자를 꿈꾸던 청년의 변신치고는 너무 돌연하다.

작가 역시 이러한 소설 구조상의 문제를 알고 있는 때문인지 '몽자류 소설' 등의 전통소설 양식을 거론하며 "서서히 몰락해가는 상류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현실 세계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드러낸다"는 시각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강남몽>에 등장하는 가령 김진 류의 권력 해바라기형 인물은 현실 속에서 결코 몰락하지 않았다. 반대로 1997년 이후의 '거대한 전환'을 겪으면서 오히려 집단적으로 몰락하고 있는 사람들은 임정아와 같은 '하류가족'이라는 명백한 사실이 지적될 필요가 있다. 강남 형성기에 단단히 한몫을 챙겼던 김진 류의 세력들이야말로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 이후에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강남 형성기를 일종의 성공 신화로, 황금광 시대로, 불패 신화로 생각하고 있는 편에서야 그것을 '강남몽'으로 인식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독자에게 그것은 이제는 도착의 형태로 굳어진 '헛꿈'이다. 소설 <강남몽>은 이런 '헛꿈'에 고통 받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보다는, 도착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진실로 그것을 물신의 꿈 혹은 유토피아의 실현으로 생각했던 뒤틀린 인간들의 사회생태학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옛 표현을 떠올리면, 부르주아적 리얼리즘의 고착화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 소설에는 진실로 '강남'의 너머에서, 오늘의 한국인이 꾸어야 될 '진짜 꿈'의 비전과 설계도가 생략되어 있다. 소설이 아니더라도 대중들로 하여금 '헛꿈'을 꾸게 만드는 현실의 세목은 부지기수로 널려 있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선망과 공포의 복합 감정으로 대중들의 내면은 구조화되어 있다.

작가를 포함하여 어떤 독자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벌거벗겨져 생환되는 임정아의 모습에서 희망이나 감동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나는 그녀에게서 무방비의 상태로 세계의 거대한 폭력에 가감 없이 노출된 이 시대의 선량한 호모 사케르가 자꾸 연상되어 착잡했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졌지만, 그 사건 이후 자본의 욕망은 오히려 더 팽팽해져졌다. 그래서 나는 <강남몽>을 '지지할 수 없는 문제작'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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