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 시(視)는 흡착성이 뛰어나서 제 앞에 다른 말과 붙어서 잘 쓰인다. 합성어를 쭉 훑어보면 시가 중·앙과 어울려 존중의 맥락으로 쓰이는 단어보다 경·냉·멸·천과 어울려 비하의 맥락으로 쓰이는 단어가 훨씬 많다. 우리가 서로 인정하며 살기기보다는 인정받지 못해서 고통 받으면 살아온 역사를 어휘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오죽했으면 후자를 아우르는 무시(無視)는 있지만 전자를 아우르는 유시(有視)는 없다. 무시라는 말은 우리가 잘 쓰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뜻이 심각하다. 뻔히 사람을 앞에 두고도 못 본척하거나 엄연히 일을 했는데도 깔아뭉갤 정도로 존재를 무존재로, 또는 건강한 사람을 병든 사람으로 만드는 인격 살인의 사건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사실 맹자는 동양 철학도 개념적 사유가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훗날 널리 쓰인 철학 개념을 만들어냈다. 예컨대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들어본 인의, 성선, 사단, 양지, 민본, 왕도와 패도 등을 동양 철학의 대표적인 개념으로 알고 있지만 이들 모두 맹자가 조금 손보아서 내놓았거나 새롭게 만든 것이다.

이 말은 맹자의 것이라기보다 동양 철학의 것으로 더 알려져 있다. 또 '공자왈 맹자왈'이라고 해서 맹자를 공자와 같은 등급으로 쳐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 뜻이 영 아니다. 이 말은 책상물림의 공리공담을 가리키니 시대의 아픔을 누구보다 아파했던 맹자가 들으면 기절초풍하고도 남을 일이다.


▲ <맹자 : 바른 정치가 인간을 바로 세운다>(장현근 지음, 한길사 펴냄). ⓒ한길사
왜 이렇게 서두를 시작할까? 맹자도 '우리'처럼 철학사와 한국의 인문학 풍토에서 무시에 가까운 대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약간 다혈질에다 언변이 뛰어났던 맹자가 살았더라면 제 스스로 인정 투쟁이라도 했겠지만 죽었으니 다른 사람의 손길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근래에 나온 장현근의 <맹자 : 바른 정치가 인간을 바로 세운다>(한길사 펴냄)는 맹자의 그런 억울함을 풀어줄 만한 책으로 볼 만하다.

이 책의 얼개를 간략하게 더듬어보자. 먼저 맹자의 삶과 시대를 전식으로 내놓는다. 이어서 10가지 반찬을 만들어서 각각을 요령 있게 풀이하고 있다. 예컨대 공자의 사상을 인의로 압축하고서 그것을 힘의 정치를 반대하다로 여기고, 당시 사상계를 휩쓸던 개인주의자 양주와 국가공리주의자 묵적의 주장을, 맹자의 말을 빌어서 군주를 인정하지 않고 부모를 인정하지 않는 짐승으로 안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후식으로 맹자의 후예들이 맹자를 높이 받들었던 이야기와 참고할 만한 자료를 내놓고 있다.

지은이는 왜 이처럼 풍성한 맹자 밥상을 차리려고 했을까? 서너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맹자> 원문을 통해 맹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살펴보고, 맹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유가 사상의 원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전통 시대 동아시아 국가들이 추구한 왕도의 진수를 이해하려고 한다. 아울러 현대 정치의 병폐에 대응한 유용한 방안과 대안의 단서를 제공하려고 한다.

책의 구성을 보면 먼저 배경 설명을 하고 다음으로 원문 번역을 제시하고서 마지막으로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책에서는 지은이보다는 맹자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그 결과 맹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전략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요령 없이 <맹자>를 끝까지 읽겠다며 첫 장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다 실패한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읽기 전략은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배경과 번역 그리고 해설로 이어지는 10가지의 반찬을 쭉 훑어 내린다면 유가 사상의 원리라든지 왕도의 진수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지은이가 해설과 이해를 방점을 둔 탓에 10가지 반찬을 어떻게 골라먹고 떠먹는지에 대한 안내가 약하다. 이 원인으로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10가지 반찬의 논리적 연관성이랄까 유기적 상호관계랄까 이에 대한 배려가 약하다. 반찬이 다 좋은 줄은 알겠지만 그것이 우리 몸에 들어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해설을 넘어선 지도의 제시가 있었으면 좋은데 없다.

예컨대 맹자의 사상을 첫째 규범의 근원과 근거, 둘째 인간의 자각과 지각, 셋째 개인적 노력과 넷째 사회적 실천으로 나누어보자. 첫째는 천명·인의·성선이, 둘째는 사단·양심, 셋째가 양기·지언·군자, 넷째가 의전·왕도·권도 등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구분을 따른다면 사람은 도덕적 인간이 되어서 도덕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천명과 동일선상에 있는 성선으로서 인의를 존중하고, 자신의 의식에 현전하는 사단(도덕의 싹)과 양심을 자각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같은 사람도 때에 따라 다르므로 기(氣)를 기르고 말의 의미를 구분하는 등 노력을 하고 그 노력의 결실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도록 하기 위해서 정의로운 전쟁을 사양하지 않고 상황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왕도를 현실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개념적 지도를 그리게 되면 맹자의 사상은 입구와 출구가 다 갖추어지지 않을까 싶다.

다음으로 현대 정치의 병폐에 대안 제시는 만족스럽지 않다. 이 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예컨대 힘의 정치를 반대하는 인의를 보자. 지은이는 <맹자>가 각각 인의와 이익을 대변하는 맹자와 양혜왕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에 주목을 하고 있다. 아울러 맹자는 모든 것에 이익을 앞세운 정치가 파멸적인 경쟁으로 치닫는 것을 힘주어 경고하고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 우리는 맹자와 양혜왕을, 현실의 인물과 현안으로 대입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의료보험 민영화, 4대강, 자유무역협정, 해외 파병 등을 떠올 수 있다. 맹자의 과거와 우리의 오늘날을 한 줄로 꿰매는 생각 보따리를 떠올리는 것은 철저하게 읽는 사람의 몫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은이가 책으로서 <맹자>나 인물로서 맹자로부터 객관적인 거리를 두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객관적 거리는 나와 맹자를 나누어보려는 인식의 준비 자세이다. 준비 동작을 하지 않으면 나는 맹자와 자꾸 닮아져서 하나가 되는 것을 과제로 설정하게 되지 맹자의 장단점을 나누어서 보려는 시도를 하기 어렵게 된다. 그 결과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이 놓지 않은 실수를 하지 않았나싶다. 이런 주문이 이해와 해석에 목적을 설정한 지은이에게 엉뚱하게 해석과 비판을 하지 않았느냐고 트집으로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비판적 책 읽기를 위해서 사족을 하나둘 그려보고자 한다. 하나는 들어가는 말의 제목을 성인이 아닌 맹자를 만나자라고 해놓고 그곳과 후식에 해당되는 부분에서 전통적인 평가를 받아들여 맹자를 버금 성인(아성)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모순으로 보인다. 그리고 너무 맹자를 인간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그런지 성인으로서 맹자 이미지를 너무 급하게 지우려고 하고 있다.

지은이가 동양 사상의 성인이 초월적인 존재로 보면 서양의 신과 비슷하지만 현실의 삶 속에서 탁월한 성취로 보면 신과 다르다고 본다. 차라리 성인을 신과 대비시키기보다는 동양 사상에서 맹자 이래로 누차 강조해온 성인과 범인(보통 사람)의 소통성에 주목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이익을 넘어서 인의의 길로 들어서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 맹자이기도 하지만 성인 맹자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이기성을 유보하고 호혜성 나아가 공동선을 말하고 그곳에 나아가려면 이해에 갇힌 자연인을 부분적으로나마 넘어서는 것이고 그것이 양혜왕을 질타하는 맹자의 목소리에 가까우리라 생각된다.

다음으로 지은이는 인간 맹자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제자백가만이 아니라 명청 시대 사상가 심지어 현대 연구자의 성과를 끌어들이기도 있다. 아쉽게도 현대 연구자는 국적을 나누기는 좀 뭣하지만 본인을 제외하고서는 대만 출신 연구자에 집중되어있다. 꼭 연구의 민족주의를 내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각을 위해서도 백민정의 <맹자, 유학을 위한 철학적 변론>, 이혜경의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 등 <맹자> 연구 단행본 정도는 비평이 아니면 소개라도 해주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무시 받았던 맹자의 누명을 해원해주었다면 오늘날 고군부투한 동업자의 신원 운동도 그에 못지않게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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