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그 중의 한 명이지만, 교육 문제를 다루는 글들은 대개 통탄과 비분강개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통탄은 경우에 따라 적실한 감동이 있기도 할 것이고, 그래서 새로운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적지 않겠지만, 대개는 마음 아픈 사람 마음 한 번 더 아프게 하고 표표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 교육을 칭찬하는 사람은 버락 오바마 한 사람 뿐인 것 같고, 좌파건 우파건, 교사건 학생이건 학부모건 어느 누구도 지금처럼 놔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참으로 기묘한 것은 누구나 저주를 퍼붓는 이 극악한 체제가 예나 지금이나 너무나 탄탄하다는 사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화할 조짐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프랑켄슈타인이 된 아이들


▲ <대한민국 10대, 노는 것을 허하노라>(김종휘 지음, 양철북 펴냄). ⓒ양철북
이런 와중에서 만난 김종휘의 책 <대한민국 10대, 노는 것을 허하노라>(양철북 펴냄)를 꽤 반갑게 읽었다. 김종휘는 문화평론가이면서 서울시 대안교육센터인 '하자 작업장'에서 오랫동안 10대들과 부대끼며 '노리단'이라는 한국 최초의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 기업을 일구어낸 경험을 바탕으로 청년들의 사회 경제적 삶에 대한 대안을 논하고 있다.

김종휘가 바라보는 오늘날 청년들의 현실은 '불효자는 놉니다'는 말 하나로 집약될 것 같다. '건국 이래 가장 높은 학력을 가졌지만, 건국 이래 가장 일상화된 불안에 사로잡혀, 건국 이래 가장 많이 놀고 있는' 바로 그 청년들 말이다. 이렇게 살아봤자 청년들은 '좀비'가 될 뿐이다.

그래서 김종휘는 외친다. "이제야말로 청년들이 손을 잡고 제대로 한판 놀아봄으로써 인생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이다. 동감한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수능-내신-논술)을 돌파해서 대학을 가 봤자 스펙 5종 세트(학벌-학점-토익-연수-자격증)가 기다리고, 그 정글을 헤쳐 대학을 졸업해봤자 기다리는 것은 청년 실업이거나, (맥도날드 점원처럼 규격화되고 기계적인 단순 노동으로 채워지는) '맥잡'뿐이니깐. 그래도 공교육 학교 선생 노릇하며 근 10년간 한숨만 쉬면서 살아온 나 같은 인간에 비하면 김종휘는 꽤 자신만만하다. 그는 확실히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본 것 같다.

김종휘는 우선 아이들의 '정보적 신체'에 주목한다. 예컨대, 물건이 고장 나면, 농경 사회의 신체를 가진 이들은 동네 사람에게 물어보았고, 산업 사회의 신체를 가진 이들은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지만, 정보적 신체를 가진 오늘날 청년들은 개인 미디어를 통해 연결된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비슷한 문제를 겪어본 타인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2004년 당시 어느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280만 개의 카페 중에 10대가 개설하였거나 운영자인 카페가 100만 개를 넘었다고 한다. 하긴, 아이들이 아이폰을 쓰는 모습을 옆에서 볼라치면 참 놀랍기 그지없다. 물론 나는 이런 식의 '정보화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공감과 찬탄과 바탕을 둔 이러저러한 규정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지만, 어쨌든 이런 아이들을 30년, 40년 전과 똑같은 교실에 가둬놓고 정석 문제나 풀게 하고, 야간 자율 학습 빠졌다고, 머리 안 깎는다고 야단치고 속박하는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종휘는 오늘날 아이들이 '프랑켄슈타인' 같다고 말한다. 부모 자신이 가진 온갖 욕망의 조각을 아이에게 덕지덕지 갖다 붙여 조잡하게 꿰매어 놓으니 그야말로 프랑켄슈타인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에게 '미래의 주인공'이라고, '누가 뭐라든 너를 응원한다'고, '네 맘대로 할 자유를 주겠다'고 속삭인다.

물론 이 모든 속삭임은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고. 이러니 아이들은 스스로 감각의 문을 닫고 어른들의 물음에는 '몰라요, 그냥요, 싫어요'라는 한 단어짜리 답변만 주억거리고는 자신들만의 세계로 숨고 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경험을 돌려주라

김종휘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경험 세계'가 아이들의 성장 코스에서 깨끗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자기 힘으로 직접 크고 작은 일상사를 진행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촛불을 들고 세상 앞으로 나올 만큼 성숙한 판단력을 갖고 있으나, 늘 관리당해 왔고, 거기에 복종하고 자발적으로 순종해온 기억이 압도적이었을 뿐 '날 것 그대로의 세계'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안에 사로잡힌 존재가 되어 외부의 작은 충격으로도 인생이 유리잔처럼 금이 가고 깨져버'리는 나약한 존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종휘는 이 책 곳곳에서 아이에게 '경험을 돌려주라'고 수없이 외친다.

십대들을 정답과 모범으로 짜여 있는 교실에만 있게 하지 말고 우연한 일들의 연속인 현실에서 직접 문제들과 만나게 하고, 그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주라. 그러면 십대 스스로 생명력을 발휘하며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들게 될 것이다. (60쪽)

그는 이 책에서 아이들이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수많은 실험을 들려준다. 그 자신이 기획하고 참여한 노리단의 예가 있다. 다섯 명의 30대 공연 전문가와 다섯 명의 10대가 만나 시작한 놀이패 '노리단'에서 10대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성장하여 지금 20대의 공연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노리단은 공연, 조형, 교육, 미디어 분야에서 무려 66명이 함께 일하는 유망한 청년 사회적 기업이 되어 있다.

3년 동안 오직 여행을 통해 직접 다리품을 팔아 세상을 만나고, 그 속에서 가슴 뻐근한 만남과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을 키워나가는 여행 학교 '로드 스콜라', 20대 지적 장애 청년을 가장 잘 웃고 인사성 밝은 요리사로 키워내는 사회적 기업 '오르가니제이션 요리' 이야기, 그리고 이 실험의 모델이 된 영국의 세계적인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사 양성 프로젝트 '피프틴 레스토랑', 그리고 소년원에 가게 될 소년 범죄자 두 사람을 소년원 대신 한 명의 지혜로운 노인 봉사자와 짝을 지어 2000킬로미터를 함께 걷게 함으로써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시켜내는 프랑스 '쇠이유 협회'의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다.

이런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김종휘는 무척 신이 나는 것 같고, 실제로 이런 대목들이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가장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는다. 이들을 통해 김종휘가 주장하는 핵심은 '집 나가서 개고생을 해야 사람이 된다'는 믿음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동기는, 다른 존재를 진정으로 만나 겪어보지 못한 세계를 접했을 때, 그 순간의 충격과 감정의 동료로써 빚어지는 법이다. 나와 다른 그와 몸으로 부대끼면서 같이 몸고생을 해 보는 경험이다. 여기서의 몸고생을 노동이라는 말로 달리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144쪽)

지적하고 싶은 몇 대목

이 책은 오늘날 지옥같은 교육 현실에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몇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김종휘는 이 책에서 여러 번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직접 '사회 경제적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드러내는데, 나는 이런 발상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건 결국 '돈' 얘기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직접 사회 경제적 활동을 하면서 돈을 버는 체험을 통한 자립과 성취감만큼이나 고려되어야 할 것은 '돈'의 압도적인 장악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종휘는 놀고, 일하면서 직접 돈을 벌어 자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놀고, 일하며, 자립하는 모든 원체험을 근원적으로 구속하는 힘을 가진 것이 또한 '돈'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또 하나, 김종휘는 이 책에서 청년의 '비물질, 초월적인 욕구'에 바탕을 둔 대안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잘 노는 것'이 오늘날 교육 현실에서 가지는 전복적인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또한 중요한 것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삶'의 기초이다. 예컨대, 오늘날 청년 세대가 10년 뒤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닥칠 가장 큰 장벽은 단연코 식량 문제와 연동되는 농업 문제, 그리고 에너지 문제 따위가 될 것이다.

노리단의 공연이 없어도 우리는 살 수 있지만, 밥과 된장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오르가니제이션 요리'에서 양성된 멋진 요리사가 있어도, 먹을거리가 없으면 요리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물질적 삶의 기초, 농업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 교육 담론이란 결국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전복적인 문화 담론으로서 부분적인 의의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청년에게 힘껏 노는 것만큼이나 필요한 것은 '농사짓고 먹고 사는 일'에 대한 배움인 것이다.

물론 김종휘가 이런 대안까지 모두 제출해야할 의무는 없다. 다만, 나는 그가 오늘날 청년 세대의 예민하고 분방한 청년 에너지를 '스티브 잡스와 마더 테레사가 결합된 창의적인 사회적 기업가 정신'으로 이끌고 싶어 하는 기색을 이 책 여러 대목에서 드러내 보이는 것에 대한 우려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대단히 흥미롭게 읽었다. 그의 사유와 경험들이 더 넓고 깊은 곳으로 향하면서 생각하면 정말 눈물 날 것 같은 암담한 청년들의 삶에 청신한 한줄기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많은 분야가 또한 그러하지만, 교육 문제에서는, 그리고 오늘날 청년들의 삶의 영역에서는 그야말로 '혁명'이 필요하다. 그의 책을 읽으며 '놀면서' 이루어질 혁명을 잠시나마 꿈꾸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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