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국제 정세는 변화의 시점에 직면해 있다. 양극 체제의 붕괴로 확고히 형성된 미국 중심의 단일극 체제가 점차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미국의 지위에 도전할 세력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9·11 사태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특히 2008년의 금융 위기는 상대적으로 미국의 국제 정치, 경제적 지위를 하락시켰다. 반면 중국은 1978년 이래의 개혁 개방 정책의 성공과 고속 성장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에서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대국으로 부상하였다. 미국의 상대적인 지위 하락과 중국의 급부상은 이제 국제 사회에서 G2라 불리는 새로운 구도를 형성하게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발생 이후 중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이 세계 경제의 회복에 큰 기여를 하였다는 것이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의 대체적인 평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속내는 편치 않다. 실제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난 '중국 위협론'에서 중국 제품의 세계 확산과 중국 경제 발전이 다른 나라를 위축되게 하는 부정적인 영향 및 중국의 발전으로 인한 세계적 에너지, 원자재 확보 경쟁 격화는 '미·중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 관계'를 나타내는 새로운 근거로 대두되고 있다. 상이한 경제 성장 모델과 에너지 수요 및 자원 경쟁으로 인해 지정학적인 측면에서의 정치 안보와 전략적 고려를 피할 수 없게 하고 있는 상황이며, 세계 안보 국면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미국이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대국의 경제 발전은 전례 없는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를 가져 왔으며, 더 나아가 이러한 대국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더 높은 국제 지위를 추구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중국의 부상'이 미국에 대적할 만한 '능력'을 중국에 가져다주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부상'을 '능력의 부상'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미국의 대 중국 인식에서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인 인식 패턴은 정치심리학에서 인지 대상의 '거울 이미지(mirror image)'라는 기본 모형에 부합한다. 즉 미국은 언제나 자신의 눈높이로 자신의 공동체의 시각에서 중국을 관찰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인은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상식적인 이치(conventional wisdom)'를 중심으로 중국 문제를 인식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우월주의'적인 모습을 유지하면서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적 시각으로 중국과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미국의 이상에 맞도록 중국을 개조하고 심지어 미국의 이상과 가치로 중국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중국이 진정한 민주화의 노선을 택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중국은 미국의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위협론적 시각에 가려 크게 부상되지는 못했지만 미국 자신만의 잣대로 중국을 평가하지 않는 '실용주의적 대 중국 인식'도 있다. 이 관점은 현실에 맞지 않는 미국의 가치로 중국을 평가하는 것에도 반대하며, 미국의 경험으로 중국의 옳고 그름과 미래를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국 문제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직접적으로 중국을 미국의 입맛에 맞추어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램튼(David Lampton)교수는 21세기 들어 미국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대 중국 인식은 '잃어버린 패러다임(paradigm lost)'으로 중국이 이미 세계적 권력 재분배 과정에서 전략적 경쟁 상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배경 아래 중국에 대해 '중국은 위협적이다'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보다 진지한 입장을 보이는 학자들의 경우에는 향후 중국 발전의 불확실성에 초점을 맞추고 중국을 분석하면서 오히려 중국식 발전 모델도 충분히 의미 있는 발전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이 순조롭게 경제 발전을 계속할 것인지의 여부, 경제 성장을 계속하면서 한편으로 중국에 내재된 사회 관계의 긴장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G2의 일원으로서 국제 사회가 기대하는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인지 여부, 그리고 중국이 미래에 어떠한 정책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망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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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전쟁>(에이미 핑클턴 지음, 이양호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에코리브르 |
에이먼 핑글턴이 쓴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전쟁>(이양호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은 미국과 중국의 주도권 싸움,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힘의 경쟁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중국이 지속 성장을 할 수 있는 길이란 서구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중국이 부유해지는 과정이 베이징 정부의 권위주의 잠식에 기여할 것이라고 여기는 기존의 관점에 도전한다.
그리고 생활 수준 향상이 필연적으로 정치 자유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신화라고 못 박는다. 결론적으로 중국이 미국 사회를 스텔스처럼 몰래 침투함으로써 오히려 미국의 가치와 제도를 잠식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중국이 미국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중국처럼 될 것이라는 의미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책은 그동안 일반적인 대 중국 인식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재단에 의해 이루어져왔는지를 통박하고 있다. 필자가 지적한 여러 가지 중국적 정치 권력 운용 시스템이나 동아시아 발전을 지탱하는 저축률 등의 문제에서 논리적 비약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오늘날 중국의 발전을 전방위적인 발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자신의 전통과 현실의 발전에 따른 '베이징 컨센서스'가 기존의 '워싱턴 컨센서스'에 도전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결국 필자도 중국을 도전으로 간주하는 서방주의적 인식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두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이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혹시 미국적 시각에서 중국을 바라보지 않았는지 미국의 중국학을 한건 아닌지, 또는 상대적으로 천박한 우리의 중국적 이해를 반성할 수 있는 중요한 일단의 단서를 제공했다는데 일독의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