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탈학교 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초·중·고 학부모의 2명 중 1명은 자녀가 원하면 공립 대안학교를 선택할 것이라고 답했다. 정부의 교육 정책과 거기서 비롯된 제도권 학교에 대한 거부감이 이런 선택의 큰 이유일 테고, 여기에 새로운 교육 철학, 삶의 가치를 찾는 부모가 늘어나는 것도 한몫했으리라.

이렇듯 교육을 둘러싸고 변화의 조짐은 보이나, 과연 그런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현재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학벌 없는 사회'가 도발적인 제목의 책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메이데이 펴내)를 펴냈다. 이 단체는 이 책에서 지난 10여 년간 해온 주장-한국 교육을 바꾸려면 학벌을 타파해야 한다-을 한 번 더 반복한다.


▲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학벌없는사회 지음, 메이데이 펴냄). ⓒ메이데이
사실 이 책을 받아드는 심정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한때 '학벌 없는 사회'의 성원이었고, 같은 공간을 사용했던 교육 운동의 동료였다. 또 '학교'를 버리고 '배움'을 찾겠다며 몸부림을 치던 자식을 키웠던 학부모였다. 그간의 학벌 타파 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중간 점검하는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할 수박에 없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김상봉, 채효정이 쓴 두 개의 글로 구성된 1부('학교'를 버려야 한다)이다. 김상봉은 '내부로의 망명만이 길'이라는 글에서 총 61개 항에 걸쳐서 한국 교육의 문제와 대안을 정리했다. 내용을 요약하기보다는 그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는 부분을 살펴보자.

32. 내부로의 망명만이 길이라는 것

내부로의 망명만이 길이라면 가장 확실한 망명은 스스로 낙오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낙오자가 아니라 '스스로'라는 자발성이다. 낙오한다는 것은 무능력의 표현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을 가리킨다. 게다가 모두가 현존하는 질서에 순응하고 있을 때 먼저 낙오하는 사람은 그 행위를 통해 낙오하면서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올바른 사회에서 낙오한다는 것은 불행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물구나무 선 사회에서는 거꾸로 성공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그러나 낙오자가 되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자본주의는 두려움에 기생한다. 학벌 사회도 마찬가지다. 경쟁에서 낙오하면 끝장이라고 우리를 위협한다. 그러나 모두가 낙오자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그 때는 낙오자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면 된다. 이미 지금도 이 사회에서는 대다수가 낙오자다. 하지만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낙오자들이 낙오하지 않겠다고 서로 반목하고 경쟁한다. 그러나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사람은 끝에 가면 지혜를 얻게 된다. 그 때가 되면 자발적으로 먼저 낙오한 사람이 선구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히 이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에서 뛰어 내려야 한다. (48~49쪽)

44. 가능하면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 / 45.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것 (55쪽)

부모를 설득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남아야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할 수 있다면 문제아가 되는 것이 좋다. 문제아가 된다는 것은 폭력 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야만적 억압에 순응하지 않고 물음을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최악의 경우라 해야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하라는 일을 아무 생각 없이 하나에서 열까지 고분고분 따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무엇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무엇이 손해가 되는지를 헤아려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남에게 크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아닌 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교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55~56쪽)

가능하면 학교를 떠나라는 이런 주장은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다. 학교 밖은 학교 안보다 더욱더 야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거부하는 자식을 키워본 내 경험을 염두에 두면, 학교를 떠난 학생과 부모를 기다리는 현실은 부모가 가진 경제적, 문화적 계급에 따라서 천지 차이다.

이 책의 3부에 실린 김재홍의 글은 이런 현실의 한계를 염두에 둔 듯하다. 그는 교육이 공공적이어야 하는 이유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철학을 통해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국가의 무관심 아래 시민의 전적인 부담으로 이어지는 홈스쿨링 및 대안 교육이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마땅하다.

대안 학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턱없이 모자란 상황에서, 학생과 부모가 대안 학교를 선택하려면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돈 없는 학생도 다양한 대안 교육의 기회를 접할 수 있도록, 정부가 대안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게도 제도권 학교의 학생에게 지급하는 교육 경비만큼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

이 책을 덮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한국은 핀란드에 이어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육 체계를 가진 것으로 발표되었다. 남의 평가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교육의 밝은 면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한편, 이 밝은 면만 부각하면서 학교 민주화, 학생 인권, 교육 공공성, 교육 재정 확보 등의 어두운 면이 무시돼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어두운 면을 부각하고 해결하려면 어떤 교육운동이 효과가 있을까? 내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다는 부모의 현실적 요구와 교육적 가치를 주장하는 교육 운동의 해법은 계속 겉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이 있고 여력이 되는 부모는 아예 학교를 떠나서 대안 학교를 선택한다.

그러나 대다수 부모는 학교가 내 아이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배움의 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학교를 떠나지 못한다. 어떤 면에서는 학교가 안전하기 때문이며, 최소한 학교에서 버티면 졸업장이라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0대 자녀를 둔 부모는 지금 이순간도 아이를 달래거나 협박하면서 16년을 견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의 주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학교를 바꾼다는 것은 결국 사회를 바꾼다는 말이고 그 일의 어려움은 그간의 민주화라는 역사를 만들고 그 과정을 공유해온 부모세대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학벌 없는 사회'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학벌과 학력 차별의 철폐를 목표로 활동하였다.

학벌 없는 사회가 그동안 이룬 성과가 크든 작든 학벌은 한국 사회의 핫이슈다. 이제 이 단체는 자발적인 낙오라는 탈학교 주장을 통해서 학벌 타파 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책에 실린 주장이 좀 더 많은 토론을 통해서 한국 교육 더 나아가 한국 사회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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