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어이

그게 그러니까 벌써 23년 전 일이다. 1987년 4월 작가 최인훈의 희곡 작품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어이>가 미국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졌다. 그건 한국 작가의 창작 희곡이 미국에서 최초로 공연되는 사건이었다.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어이>는 평안북도에서 내려오는 아기장수 이야기를 극화한 것으로, 무기력하게 지내던 산골 마을에 기운이 장사인 아기가 태어나지만 이 일이 반역의 기운이 일고 있다는 소문으로 번지면서 결국 아기를 희생시키고 마는 비극이다. 이 작품은 그의 전집(문학과지성사)에 들어 있는 희곡집의 제목이 되었고, 이 공연 이야기는 소설 형식을 띈 그의 회고록 <화두>에도 적혀 있다.

공연 준비에 한창이던 무대 위에는 아기장수가 타고 하늘에 오를 말이 설치되어 움직임을 시험하고 있었고, 최인훈은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인 장두이가 당시 뉴욕 유학 중 이 작품에 출연했고, 공연은 미국 관객의 뜨거운 반응 속에서 성공작으로 기록되었다. 몽환적이면서도 역사성을 지닌 이 작품의 분위기가 그들에게도 독특하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1936년생이니 최인훈의 나이가 그때 막 쉰을 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다. 20대 나의 의식을 마술처럼 사로잡았던 작가를 서른 초의 청년이 되어 이국땅에서 처음 만난 설렘은 두고두고 기쁨으로 남았다.

그때 내가 그에게 던졌던 질문의 골자는 당시 격동하던 한국 정세에 대한 견해였다. 그가 "지금만 유독 특별하다고 여기지 말고 지난 시절엔 더 무서운 격랑이 있었던 것을 깊이 돌아보면서 지혜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돌아본다."는 이 행위는 최인훈에게 있어서 사유의 원형이다.

<회색인>, <서유기>, <총독의 소리> 등 그의 일련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수없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주인공을 계속해서 만나게 되니까 말이다. 앞을 "내다보기" 전에 뒤를 "돌아보는" 존재, 그건 어쩌면 우리가 이 생애와 역사를 살아가면서 역시 끊임없이 마주해야 할 자화상일 수 있을 거다. 이걸 "망각의 지대"에서 놓치는 시대는 폭주하는 야만을 막을 수 없다.

고종석, "독고준"을 다시 불러내다


▲ <독고준>(고종석 지음, 새움 펴냄). ⓒ새움
고종석의 <독고준>(새움 펴냄)은 그 망각 지대에서 다시 <회색인>과 <서유기>의 주인공 독고준을 불러내어 그의 이후의 삶을 상상과 회고로 이어나갔다. 최인훈의 작품 3부작을 고종석이 마무리하고, 15편으로 마친 최인훈 전집에 하나를 더 추가해서 16편으로 만든 셈이다.

회의하는 지식인 독고준은 최인훈의 작품 속의 자아다. <광장>의 이명준이 다른 작품에서 독고준으로 환생한 격이다. 그 독고준이 고종석의 <독고준>에서는 70대가 되어 어느 날 투신자살한다. 그 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과 같은 날이다. 작품은 그의 장녀가 아버지의 유고집이 된 일기를 읽으면서 고인에 대한 단상을 적어가는 방식이다. <독고준>에서 우리는 여전히 시대의 망명자 최인훈의 쓸쓸함을 목격하게 된다. 고종석의 <독고준>을 이해하려면 최인훈의 전작에 대한 나름의 풍경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할 것이다.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에게 최인훈의 <광장>은 분단 시대의 지식인이 겪는 고뇌를 그대로 투영해주었다. 1960년에 출간된 <광장>이 최인훈의 스물네 살 때의 작품이라는 것은 1964년에 나온 <무진기행>이 작가 김승옥이 스물 셋에 쓴 작품이라는 것과 함께 경이로움이었다.

뿐만 아니라 <광장>이 이념의 격돌 속에서 길을 찾는 이야기라면 <무진기행>은 자본의 지배에 빨려 들어가던 시대의 슬픔을 짚어 냈다는 점에서 모두 근현대의 전환기를 통과하고 있던 한국 사회의 거울처럼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민중에 대한 신뢰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굳건히 무장한 민중 문학의 기세가 고개를 들고 청춘의 영혼을 매혹시키려는 즈음에 최인훈의 작품들은 고독한 이단자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그 이단성은 청춘의 뇌를 치열하게 훈련시켜주었다. 그 어떤 이념의 체계나 체제에 대해서도 쉽게 자신을 내주지 않고 회의하고 점검하고 질문을 던지고 선택을 주저하는 자세는 부르주아 지식인 특유의 버릇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는 무엇으로도 억제할 수 없는 자유에 대해 한 치의 양보도 없었고, 그와 동시에 거대한 제국의 야만에 대해서도 신랄한 역사적 비판의 칼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최인훈은 그 어떤 명분으로 포장했던 간에 기존 질서의 거짓과 모순에 대해 사태가 불리하면 얌전하게 긍정하는 무수한 이들의 습관을 뼛속에서부터 이미 추방해버린 지식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진정으로 우리가 "비빌 언덕"이 어디에 있는지 탐색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회색인>은 원산에서 내려온 고향을 잃은 청춘의 지적 오디세이다. 그의 이름 독고준은 "홀로 외로운 사내 준"이다. 그 준도 <광장> 이명준의 "준"을 따온 것이기도 하겠지만 "June", 1950년 저 6월의 전쟁으로 시작된 폭격의 기억과 관련된 작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중학생이던 그에게 그 여름의 폭격과 그걸 피해 방공호로 피신할 때 그의 손을 잡고 온 몸으로 껴안아 준 누나 또래의 여자의 살, 젖가슴의 느낌, 그 숨결에 대한 성충동의 원형이 반복적으로 회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회색인>에서 그는 식민지의 정신사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자기 삶과 진정하게 밀착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고통스러워한다. "비빌 언덕"이 아닌 것을 비빌 언덕으로 착각하고 있는 지적 착란에 대해 그는 신랄하다.

<회색인>과 <서유기>의 기억

독고준은 이렇게 말한다.

"가로되 '니콜라이의 종소리' '성모 마리아' '슬픔의 장미' '낙타와 신기루' '아라비아' 같은 거. 이런 말은 그 쪽에서는 강렬한 점화력을 가진 말이야. 왜냐하면 그 말들 뒤에 역사가 있기 때문이야. '니콜라이의 종' 하면 희랍 정교회의 역사와 비잔틴과 러시아 교회와 동로마 제국의 흥망이 그 밑에 깔려 있는 게 아니겠나?" "주민과 풍토에서 떨어진 신화는 다만 철학일 뿐 신화는 아니야. 신화는 인간과 풍토가, 시간과 공간이 빚어낸 영혼의 성감대(性感帶)지. 거기를 건드리면 울고 웃고 발정하고 손톱을 박아오는 그러한 지역이거든. 이 성감대가 없고 보면 애무는 부자연한 장난이며 실례이며 변태에 지나지 않고 독자는 불감증의 게으른 잠에서 깨지 못해."

그래서 그는 역사의 성감대를 찾아 나선다. 자신이 울고 웃고 기뻐할 수 있는 성감대가 어디에 있는지 더듬어 나가는 것이다. 그 6월의 기억이 그의 뇌리에서 무수히 되풀이 되면서 이유정의 문으로 들어서는 장면이 <회색인>의 마지막 대목이라면, <서유기>가 그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몽환처럼 펼쳐지는 역사와 자기 기억의 복원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얌전하고 독실한 김순임이 아니라, 남이 알지 못할 상처를 지니면서도 활력에 찬 보다 성적으로 매력적인 예술가 이유정을 택한다. 독고준의 성감대다.

망명자의 시간을 멈춰줄 정신의 원초적 떨림이 필요한 그에게 이 "성감대"는 실존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이유정의 방에서 나온 후에도 그의 정신적 유랑은 그치지 않는다. <서유기>는 그런 유랑의 시간을 서역(西域)의 불경을 찾으러 가는 손오공과 삼장법사 일행의 모험처럼 적고 있다. 가는 길마다 요괴가 출몰하고 변신의 재주가 겨뤄지는 것처럼.

어찌 보면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다를 바 없는 이 과거의 재현은 그에게 자기 회복과 치유의 여정이다. 그러나 시대는 독고준을 가만히 놓아두질 않는다. 누구는 그를 반역자, 또는 스파이로 취급하고 또 누구는 환자로 몬다. 기억 속의 원산으로 돌아가는 경로는 그래서 위험하기조차 하다.

이 몽환의 드라마 속에서 논개와 이순신, 이광수, 조봉암 등을 만나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그는 "당국"으로부터 추격 받고, "병원"에는 실종 신고의 대상이 된다. 그의 사상적 성찰과 정신사적 탐색은 기존질서에게 불온한 것이며, 세균과 같은 전염성이 있는 것이라고 판단된 것이다.

원산, 말하자면 독고준의 원초적 성감대의 근원이 있는 곳을 향해 가는 그는 확성기에서 이런 소리가 나는 것을 듣게 된다.

"간첩 침투 사건의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간악한 적은 이미 깊숙이 이곳 우리 시에 잠입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얼마 전에 이곳 서울 시 운동장에서 명상을 범하고 사라진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북쪽 스탠드 중간 지점에 앉아서 명상을 저질렀는데 이 명상으로 그는 공화국에 대한 적의(敵意)를 다시 한 번 확인하였으며 인민에 대한 모욕을 가했습니다.……스파이의 인상을 말씀드리면 그는 관념적이며, 명상적이며, 정신사적이며 목가적이며, 실존적이며……."

성감대 그리고 정신사

또 이런 소리도 듣게 된다.

"여기는 이성병원(理性病院)입니다. 환자 한 사람이 탈출했습니다. 환자는 정신사(精神史) 병잡니다. 잘 아시다시피 정신사병은 이 세기에 들어와 널리 퍼진 병으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균자로 병원체 발견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터입니다. 이것은 서구 사람들의 지리상 발견의 시대와 더불어 시작된 병으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가치 체계의 다원화 현상이 빚어낸 판단 감각의 혼란이라고 하겠습니다……환자의 인상을 말씀드리면 정신적 무국적(無國籍)……방관벽 등입니다……."

때로 몰래 숨어 암약하는 일본 제국의 총독이 방송하는 소리도 듣고 임정 주석의 소리도 듣는다. (후에 이 목소리들은 작품 <총독의 소리>로 확대 심화된다.)

<회색인>과 <서유기>를 읽고 있노라면 최인훈의 역사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독창적인 해석에 기가 질리게 된다. 그것이 나이 20대와 서른의 작가가 쓴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더더욱 말이다. 1960년대에 그가 이미 루카치를 알고 작품에서 거론하고 있다는 것도 그의 지적 영토의 광활함을 느끼게 하며, 우리에게 깊은 열등감을 심어준 식민지 시대의 논리를 뒤집는 <태풍>같은 작품을 대하면 그 문학적 상상력의 경계선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특히 <태풍>에서 그는 동아시아의 국가들을 철자의 순서만 거꾸로 읽어 아니크(China), 애로크(Korea), 나파유(Japan)로 설정해서 아키레마(America)와 나파유의 태평양 전쟁을 드라마 화 한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의식의 내면마저 국가의 관리 아래 두려했던 북쪽에서의 억압적인 경험과 식민지 시대의 청산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서구의 논리에 역사의식 없이 포로가 된 남쪽의 삶은 그에게 오랜 세월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이 되어 그 어느 것도 쉽게 믿지 못하는 지적 의심을 길러냈으며, 그의 정신 내부에 새로운 망명지를 건설해서 이걸 작품화시킨 셈이다.

그랬기에 그는 "회색 의자"(<회색인>의 원제)에 앉아 서역으로 가는 길을 머릿속에서 열심히 그려야 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희귀한 병에 걸린 "정신사를 앓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적지 않은 평자들이 그를 관념에 기운 작가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오진이다. 그는 철저하게 역사의 맥락을 들추어내어 언어와 사고의 사슬을 하나하나 찾아나서는 이이기 때문이다.

독고준의 현실과 그의 생애

그런 최인훈이 독고준이 되어 이유정의 방에서 나와 마침내 그 "여름"을 기억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온 이후 우리는 그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 물론 실재의 최인훈은 <화두>를 통해 자신의 여정을 밝히기는 했지만, 독고준의 삶이 그 다음에 어떻게 펼쳐졌는지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것은 주목되는 작업이다. 고종석 역시 젊은 시절, 최인훈의 <회색인>과 <서유기>의 독자였다. 그것도 열렬한 독자였고, 최인훈은 그가 존경하는 '선생님'이다.

그는 "자서(自序)"라고 붙인 머리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최인훈 선생님의 <회색인>과 <서유기>를 젊은 시절 읽었을 때, 나는 독고준의 미래가 궁금했다. 이 소설은 독고준이 살 수도 있었을 한 삶의 스케치다. 선생님의 허락 없이 독고준을 데려온 것이 죄송스럽다. 이 텍스트가 소설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현실 속의 이름과 역할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인물일지라도, 그는 픽션 속의 인물이다. 그 인물들은 현실 속 인물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최인훈이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제목 그대로 따서 자신의 새로운 소설을 창작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고종석은 이런 방식까지도 최인훈을 이어나간다. 그와 동시에, 고종석이 이 작품을 최인훈의 소설적 자서전처럼 읽히는 것을 경계한 까닭은 작품이 독고준의 자살에서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독고준은 소설 <독고준>에서 이유정이 아니라 김순임을 택한다. 끊임없이 방랑하는 그에게 "정박(碇泊)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여성으로서 김순임은 제격이다. 그에게 있는 두 딸 가운데 독고준의 일기를 정리하는 화자로 등장하는 장녀는 문학 비평가인 동시에 동성애자다. 그리고 그녀는 독고준이 우리의 시대를 살아갔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런 사건 저런 충격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질문과 마주하는 주역이 되어준다. 독고준이 자신의 내면에 남은 상처를 보듬어 자기를 찾아나가려 했던 것처럼, 독자는 그의 가상의 일기를 통해 독고준의 내면과 새롭게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는 달리 말하자면 독고준의 "내면 일기 읽기"다.

독고준의 자살은 전 대통령 노무현의 죽음과 겹쳐 등장한다. 그것도 같은 방식의 투신이다. 그러고 나서 1년 뒤, 죽음의 충격에서 다소 벗어난 시점에 딸 원이는 아버지를 회상한다. 그에게 아버지 독고준은 "자기 마음속으로 망명해버린 한 남자"다. 그녀는 독고준이 "이념 작가였으되, 경색된 이념이 인간 내면의 악마적 부분과 결합할 때 역사에 어떤 상처를 내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의도되지 않은 상처'를 천천히 묘사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서양 속담의 무서운 진실을 서늘하게 드러낸 <알리바바의 아내>같은 작품이 그 예다"라고 말한다.

일기와 독고준의 내면

일기의 첫 시작은 4·19 혁명에 대한 독고준의 단상이다. 그건 딸 원이의 말대로 "이 역사적 사변에 호감을 보이면서도 반동의 가능성에 불안해하는" 기색이 숨겨지지 않았다.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세상의 상식을 고분고분 받아들이지 못하는 회의주의자, 비관론자였던 것일까? 열다섯 해 전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갑자기 나라가 해방되어 있었듯, 이번에도 나는 이승만의 하야와 자유당 정권의 붕괴를 내다보지 못했다. 해방이야 어렸을 적 이야기니 그렇다 치자. 그러나 지금은? 열한 살의 나와 스물여섯 살의 나는 똑같이 정치적 백치다……아무튼 이제 독재자는 물러났고 두 번째 해방이 왔다. 그러나 내 비관주의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이 새로운 체제가 대한민국 시민 모두에게 골고루 자유를 분배할 만큼 사려 깊고 너그럽다 해도, 아니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이 체제는 흔들리기 쉬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등장하게 된 제2공화국에 독고준은 "이 정권은 지금 스스로를 방어할 만한 정도의 권위도 손에 쥐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절망한다. 국제적으로도 독고준은 미국의 베트남 전 개입으로 제국주의 문제를 계속 제기한다. 공산주의의 정치적 독선도 비판하지만 자본주의의 욕망과 제국주의의 범죄에 대해서도 독고준은 침묵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는 우에서는 좌익이고, 좌에서는 우익이라고 보는 지점에 서 있다.

결국 <회색인>인 셈인데 그는 그걸 스스로에게는 칭찬처럼 여긴다. 그러나 딸 원이의 평가처럼 독고준은 사회민주주의자에 가깝다. 소설 <독고준>은 신동엽에 대한 독고준의 비판과 호감을 동시에 기록하고, 번역이나 언어라든가 하는 문제를 놓고 짧은 성찰도 에피소드처럼 끼워놓고 있다.

독고준의 일기에는 이밖에도 호치민이라든가 아옌데에 대한 느낌도 담겨 있고 레몽 아롱이나 카뮈 등 프랑스 지식인에 대한 단상도 빠지지 않는다. 그와 함께 소설가 독고준의 시 읽기도 작품에서 한 몫을 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독고준이 그보다 젊은 세대 작가들의 글을 애정으로 읽고 평을 남긴다는 대목이다. 그건 아마도 최인훈에게 기대하는 고종석의 마음도 그 안에 담겨 있을 터였다.

북에 대한 독고준의 생각은 당연히 비판적이나 그렇다고 그걸 내걸고 달려드는 듯이 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땅치 않아 한다. 독고준의 어떤 날 문학평론가 이동하에 대해 쓴 일기는 이렇게 되어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동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동하 씨 못지않게 북한 체제에 비판적이지만, 남한 문인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작품화하는 것이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신장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과 역사

딸이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복거일과 독고준의 관계는 독고준의 지적 영토의 넓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독고준은 결코 정치의 현실에 깊이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망명자의 시선, 비판적 지식인의 회의정신에 충실한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의 격동적 변화에 무관심하거나 거기에 무반응한 것도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 기록은 독고준의 자살과 같은 날 생애를 마감한 인물과 관련된 기록이었다.

"노무현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나라당은 미쳤다. 민주당은 더 미쳤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겹친 그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가 고종석은 이렇게 해서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독고준은 영원한 망명자였으나 그래도 기대를 걸고 또 거는 희망의 반복 속에서 점점 지쳐갔던 것이다.

그 여름의 기억 속에서 헤매며 찾아 나선 길은 몽환 속에서나 가능했고 이상과 현실은 이유정의 방과 자신의 방 사이의 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종석에 의해 현실에 다시 불려나온 독고준은 <서유기>에서 그에게 불려나온 논개, 이순신, 이광수, 조봉암, 총독, 주석 등처럼 지난 세월의 역사를 일기체로 증언한다.

그 일기 내내 우리는 역사의 성감대가 아직도 우리의 삶에서는 실종 상태에 있다는 독고준의 일깨움과 마주하게 된다. 그 실종은 독고준의 자살로 만들어진 "현실에서의 실종"으로 이어진다. 노무현을 탄핵해버린 "미친 자"들이 다시 권력을 잡고 그를 죽여 버리는 시대에 대한 저 깊고 깊은 절망이 독고준에게 죽음이라는 걸 선택하도록 만들었다는 이 소설적 설정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독재와 정신사적 유랑의 세월을 겪어온 우리가 만들어야 할 현실은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더는 독고준의 죽음이 되풀이 되는 시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최인훈의 소설처럼 서사적 구조가 있다거나 역사와 철학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과 문학적 풍자가 있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종석의 소설은 이제껏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독고준의 내면세계로 여행을 떠났다는 것에 우선적인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일기란 그것을 쓴 필자의 공개되지 않은 의식이라는 점에서 그걸 읽는 것은 비밀을 엿보는 은밀한 긴장과 더군다나 필자가 고인(故人)일 경우 고인과의 대화가 가능하기에 흥미를 더한다. 그로써 우리는 최인훈이 남겨놓은 질문과 우리의 당대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정신사적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최인훈 선생님께

스물한 살 때 읽은 최인훈, 스물넷에 다시 읽은 최인훈, 그리고 사십대에 또 집어든 최인훈, 이제 50대 중반이 되어 다시 또박 또박 읽은 최인훈. 그는 역시 사상적 고뇌와 문학적 상상력을 탁월하게 버무릴 줄 아는 진귀한 작가다. 그런 그에게 고종석이라는 후생(後生)이 나와 독고준의 입을 열게 했으니 행복한 작가다.

젊은 시절, 나 또한 그에게 정신적 빚을 졌고 언젠가는 그에 대한 짧으나마 연구 논문을 쓰고 싶었던 차에 이 글로서 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표하는 기회가 생겨 기쁘다. 독고준은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굳이 옛날 옛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유정의 방에서 나와 미래의 삶을 살아낸 독고준이 되었으니 말이다.

병석에 누워계신 최인훈 선생님의 쾌차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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