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 잡설>(동녘 펴냄)은 서평 모음이다.

이 책 뒤표지의 추천사에 나오듯 재미없는 서평은 엄연한 현실이다. "재미만 없는 게 아니라 숫제 읽을 수"조차 없을 정도다. 하물며 개별 서평이 그럴진대 그런 글을 모아놓은 서평집은 오죽하랴! 그러나 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 잡설은 서평이 지닌 통념을 거스른다. 참 재미있다. 작가의 본업인 소설보다 더 재밌다. 그 비결은 뭘까?

나는 작가와 이름이 비슷하다. 앞의 두 글자가 같다. 가수 안치환이, 작곡가 안치행이나 연극평론가 안치운과 혈연관계가 아닌 것처럼 나하고 작가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이제 보니 그와 나는 띠 동갑이다. 그는 "50대 중반의 양띠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건 내 첫 일터에서다.


▲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최성각 지음, 동녘 펴냄). ⓒ동녘
14년 전, 나는 서평 전문지의 신출내기 기자였다. 당시 그는 '책갈피 산책'이라는 꼭지의 첫 번째 필자 셋 중 한 명이었다. '책갈피 산책'은 읽히는 서평을 지향한 기획으로 그에게 환경 분야 책이 맡겨졌다. 그쪽 사정에 밝았던 선배 기자가 필자로 그를 택했다. 그는 뭔가를 전달하려고 우리 사무실에 들렀다. 그게 뭔지는 아직도 모른다. 나는 그저 그의 방문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 나는 첫 직장에 복귀한다. 이번엔 내가 취재를 갔다가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취재원의 지인이었지만, 나는 그와도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그는 곧 나를 잊는다. 얼마 안 있어 경기도 과천에서 열린 수돗물 불소화 반대 집회에서 그를 또 다시 봤다. 그는 나를 못 알아봤다. 내 자존심은 여지없이 구겨졌지만 이를 계기로 내 존재감이 그에게 각인된 모양이다. 나는 이따금 그의 호출을 받곤 한다. 덕분에 그가 산파 역할을 한 '환경책 큰잔치' 실행위원이라는 중책을 맡기도 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연전의 어느 연말 모임에서 '김수영 시인은 (단군 이래)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했다가 '그 말 책임질 수 있느냐?'는 참석자 한 분의 면박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렇다고 내 주장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반쯤 물러나 '김수영은 가장 위대한 현대 시인'으로 바로잡았다." (<고전의 향연>, 한겨레출판 펴냄, 316쪽) 내게 책임 추궁을 하신 분이 바로 그다.

독서가로서 최성각은 까다롭다. "범람하는 잡서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바보짓은 없을 것이다. 아예 책을 읽지 말거나, 읽으려면 좋은 책, 진실이 담긴 '뜨거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의 독서지론으로 봐도 무방하다.

독서의 영향력에 대해선 꽤 회의적이다. "필자는 솔직히 말해 한 권의 책이 사회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적잖이 의문이다." 물론 "혁명가와 실천가의 삶이 널리 읽히는 세상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

소설가 최성각은 문학에도 엄밀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런 작품이 바로 '문학'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작품을 접하고 나면, 지금 발표되고 있는 우리 소설들을 읽기가 힘이 들어진다. 문학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은 문학에 대해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고, 한 줌도 안 되는 문학 권력 주변의 패거리주의에 빠져 세월 몰라라 음풍농월하고 있다. 가히 역겹다." 진짜 문학인 이런 작품은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다. 이어지는 문구가 짠하다. "1986년 겨울에 나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응모했는데, 다행히 당선이 되어 쌀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쓰지 신이치의 <행복의 경제학>을 놓고, 최성각은 저자와 추천사를 쓴 이가 함께 부탄에 갈 기회를 가졌고, 부탄에서 20일을 머물렀다는 추천사의 한 대목에서 "이 책을 손에 잡고 계속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이유인 즉슨 "입국을 하자면 부탄이 지정한 인도의 특정 여행사를 통해 누구나 예외 없이 하루 200달러의 돈을 선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20일이면 한 사람이 4000달러를 부탄에 지불했다는 얘기다.

<삼성을 생각한다> 책의 저자를 보는 눈길 또한 곱지만은 않다. 그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똬리를 튼 대목이다.

"삼성그룹이 사실상 부도를 맞아서 임직원들이 대대적으로 쫓겨났던 1999년 나는 제주 호텔신라 퍼시픽스위트룸에서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냈다. 며칠 지내고 체크아웃할 때 보니 계산서에 1500만 원가량이 나왔다. 당시 휴가는 회사 임원들이 연루된 연예인 윤락 사건을 잘 해결해주었다고 해서 받은 것이었다." (129~130쪽에서 재인용)

어떤 책에 대해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책을 한번 접하고 나면, 책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것과 혹 어쩌다 책을 펴냈더라도 책을 펴내기 전보다 더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독자는 그러나 특별히 무장할 필요가 없다.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위대한 저작을 읽어나가면 될 것이다. 반드시 그 정신이 격랑을 만난 뗏목처럼 요동칠 것이다." 이런 책이란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이다.

최성각에겐 애독서가 몇 권 있다. 그는 "특별한 책" 피터 드러커의 <방관자의 시대>를 "젊은 날 광산촌에서 구했던 빛바랜 '갑인 판'으로 거듭 읽곤 한다. 내 꿈을 되살피고, 내 보잘것없는 좌절의 내용을 때로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때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기회만 허락되면 다시 뒤적이는 책이다. 낡아빠진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가끔 뒤적이는 까닭은 "이 한 권으로 인해, 그 후 내 보잘것없는 기나긴 독서 편력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김재용이 엮은 <백석 전집>은 "전집이라 시집 같지 않게 두껍지만 자주 만져 가장자리가 좀 해어"졌다.

소설가 김성동의 말처럼 "최성각은 사상가"다. "이 기절초풍하고 혼비백산하는 정신의 대공황 시대에 한 점 등불 든 생명 사상가"다. 서평집에서 그의 통찰과 혜안은 빛난다.

"훌륭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대개 긴 무기력의 시간과 짧은 저항의 순간으로 채워져 있기 일쑤다. 아주 가끔씩 아름답고 눈부신 저항이 일어나긴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게 순치되어 불쌍하고 애처롭게 자신의 삶이 노예의 삶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사라지는 게 사실이다."

"사람이란 토론에 의해 자기 생각이 수정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는 것도 아니다. 모두 자기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TV 토론이 아니라도 사람 사이에 정말 멋진 토론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문제는 인간의 한계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그곳의 산천은 내 여전히 사랑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경멸하게 되었다."

"손의 상처야 보려고 들면 보이지만, 사람들 가슴속에 꼭꼭 숨겨져 있는 상처들은 기실 제각각 오죽 깊을까."

"생태적 시각이란 뭘까? 우리 삶의 바탕에 대한 깊은 생각이고 염려이고, 사랑이다. 혹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앞으로도 이 지상에서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을 찾는 자세라 할 수 있다."

최성각의 오랜 독서 이력을 보여주는 이 책에 언급된 도서의 서지 정보가 충실하다. 다만 한두 개 부정확한 정보를 바로잡는다. 이동진 옮김 <장미의 이름으로>는 우신사에서 나왔다(116쪽). 1980년대 초반 박태순이 펴낸 '국토 기행'은 <국토와 민중>이다(154쪽).

"황 아무개"는 "이 고약한 시대에 좌에서 우로 왔다리 갔다리" 했다. 부록으로 덧붙인 '다음 100년을 살리는 141권의 환경책' 목록에 있는 생태에서 반생태로 왔다리 갔다리 한 차 아무개의 책 세 권은 빼는 게 순리가 아닐는지. 표지 사진의 견공에게 말풍선을 붙이면 이러지 않을까. "우리 주인장, 제법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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