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자 사회>(김환석 외 4인 지음, 궁리 펴냄)는 한국 과학기술사회학의 집단 연구 성과의 반영이자 앞으로의 연구에 하나의 좌표를 제시했다. 과학기술사회학 (또는 과학기술학) 분야의 리더인 김환석과 젊은 연구자들의 지난 수년간의 공동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된 것에 큰 축하를 보낸다.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닌다. 첫째, 경험적 연구가 일천한 한국 과학기술학계에 심도 있는 경험 연구를 선보였다. 이 분야의 기존 연구자들은 주로 외국 이론과 연구를 소개하고 정리하는 경향이 많았다. 경험적 연구들이 최근에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한국의 과학자 사회>는 단일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결과를 선보였다.
둘째, 한국의 과학자 사회라는 방대하고 어려운 연구 주제를 여러 연구 방법을 동원하여-역사적 방법, 서베이 방법, 질적 면접 방법-더 다차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셋째, 한국 근대 연구에서 소외되어 왔던 과학기술의 영역을 분석의 전면에 내세워 한국 근대 연구에 대한 틈을 메워주었다.
넷째, 한국 과학기술자 사회에 대한 다양하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한국 과학기술자 사회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가 되었다. 다섯째, 과학기술학이 한국에서 아주 최근에 태동하였다는 점에서 <한국의 과학자 사회>는 대내외적으로 이 분야의 존재와 집단 연구 그룹의 형성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
▲ <한국의 과학자 사회 : 역사, 구조, 사회화>(김환석·김동광·조혜선·박진희·박희재 지음, 궁리 펴냄). ⓒ궁리 |
이런 큰 성과와 더불어 나는 앞으로 이 분야가 발전하기 위해서 <한국의 과학자 사회>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이론적 부분과 경험적 연구 사이의 거대한 괴리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이 채택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은 과학자 사회의 규범, 제도화, 보상 체계, 일탈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지만 한국 과학자 사회의 역사적, 구조적 형성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의 이론적 부분에 가장 적합한 부분은 제2부 '구조적 접근 : 한국 과학자 사회의 구조'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1부에서는 한국 과학자 사회의 역사적 형성을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다루는데 이는 기능주의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이다. 3부 또한 대학원생들의 사회화만을 다루어 한국 과학자들의 생애 궤도에 대한 종합적인 사회화 과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1부에서는 한국 과학자 사회의 역사적 형성을 구한말의 유학 정책, 일본의 식민지 정책, 한국전쟁, 박정희의 독재와 근대화 정책 등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설명하는데 이러한 역사적 접근과 이 책이 채택하는 기능주의적 설명 방식이 전혀 맥을 같이 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론에서 제시된 '안락하고 정적인' 기능주의적 시각과 1부에서 펼쳐지는 식민, 전쟁, 독재, 근대라는 '피 튀기는' 현실 속에서의 한국 과학자 사회의 역사적 구성 사이의 엄청난 괴리는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 것이다.
둘째, 첫 번째 문제점과 연관하여 한국 과학자 사회의 형성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능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식민성, 탈식민성, 근대화, 지구화와 같은 역동적, 갈등적, 권력 배태적인 시각이 필요한 데 이러한 노력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머튼식의 기능주의적 시각의 문제점은 8장과 11장에서 보여주는 연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즉, 이 책은 공동 연구에서 나타난 기능주의의 문제점들조차도 비판적으로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왜 한국의 과학자 사회의 형성을 분석함에 있어서 기능주의에 의존해야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과학자 사회에 대한 분석의 주요 자원이 분명 머튼에서 출발한 기능주의와 제도주의에 빚지고 있지만 한국적 상황을 설명하는데 명백한 한계가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과 노동이 수반되었어야 했는데 그런 점을 발견하지 못해 아쉽다.
셋째, 한국의 과학자 사회의 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국가의 역할이 지대한 것이 각 사례 연구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를 좀 더 심도 있는 분석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점이 아쉽다. 국립서울대안,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전 국민 과학화 운동, 정부출연연구소(기관), 연구비 구조 등의 일련의 사례들은 한국의 과학자 사회의 형성이 국가와 정책 결정 집단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 책은 국가와 과학자 사회 간의 권력 관계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국 과학자 사회가 가지는 과도한 민족주의,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주의, 국가주의라는 흥미로운 현상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기능주의와 제도주의가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측면이다. 즉, 원석과 같은 경험적 자료를 보석과 같은 탁월한 분석으로 전환시키지 못한 나태함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넷째, 각 부의 연결과 각 부 안에서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분석의 수준이 상이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각 부를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별개의 장이 앞부분에 나와야 하는데 각 부에서 상이한 연구 결과를 통합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공동 연구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결점 중의 하나인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자들 사이의 지속적인 의견 교환과 상호 비판이 있었어야 했다.
예를 들자면, 1부에서 다양한 역사적 시각에서 한국 과학자 사회의 형성을 검토하는데 각 장들이 상이한 분석 단위, 분석 대상, 분석 틀을 가지고 있어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나서 과연 한국의 과학자 사회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얻기가 힘들 것이다. 또 1부의 몇몇 장들은 1차 자료의 발굴 없이 2차 자료에만 의존하고 있어 연구자들의 나태함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2부가 책의 전체적인 기획과 가장 잘 들어맞고 이 중에서 8장, 9장, 10장, 11장은 한국 과학자 사회에 대한 뛰어난 통찰과 분석을 제공하고 있다. 3부는 질적 면접과 서베이를 통해 한국 대학원생의 사회화 과정을 미시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나 사회화 과정 중 초기 훈련 단계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아쉽다. 과학자의 이력 궤도에서 대학원 과정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박사 후 과정, 연구원, 연구책임자(대학에서는 주니어 교수, 시니어 교수 등)의 단계에서의 사회화 과정이 빠져있다. 또 3부에서 질적 연구라는 '아래로부터의 접근'이 가지는 풍부함, 세밀함, 깊이를 찾아보기 힘들고 기존의 이론과 개념을 몇몇 인용구와 그대로 연결시키는 조악함을 보이고 있다.
종합하자면 <한국의 과학자 사회>는 한국 과학기술학에서 경험 연구라는 차원에서 중요한 일보를 이루었지만 앞으로의 연구에서 이 책의 시각은 철저하게 수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 책이 드러낸 이론적 빈곤함, 이론과 경험적 자료 사이의 불일치, 경험적 자료들 사이의 부조화와 비통일성, 각 경험적 연구들 간의 상이한 수준의 차이 등은 앞으로의 연구와 비판에서 이 책이 계속해서 좋은 먹잇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학에서 머튼 학파의 기능주의와 제도주의가 뒤에 등장한 과학기술사회학과 구성주의의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된 것과 같은 숙명에 이 책은 처할 것이다. 가치 있는 한 권의 책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신빙성 있는 논변을 구성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동과 고민이 필요한 것인지, 그리고 하나의 이론을 한 사회의 역사성과 구조를 철저하게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나의 이러한 비판에도 <한국의 과학자 사회>는 한국 과학기술사회학(넓게는 과학기술학)에 중요한 획을 긋는 연구이다. 이 책은 한국의 과학기술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필수적으로 알아야만 할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한국 과학자 사회에 대한 빼어난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또 한국 과학자 사회의 역동성과 한국 근대의 또 다른 측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