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안대회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이 담고 있는 흥미로운 내용부터 전해야 할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조선 시대 스타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독자들은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이 책은 한 치도 과장하지 않고, 조선 시대 음지에서 활약했던 마이너들의 생과 그들이 살았던 앞 뒤 골목의 숱한 광경들을 들려준다. 사회 밑바닥의 음습한 세계에 기생했던 인물들, 그들에 관한 숨겨져 있던 이야기들이 샘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책이다. 시대와 그 인물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미시사에 속한 책이다.

하여 한번 잡으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금서'와 같은 책이기도 하다. 시대의 낮은 곳에 임했던 그들의 삶이 액정화처럼 송두리째 드러날 때, 책 읽는 이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책의 제목 가운데 '조선을 사로잡은' 이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마뜩치 않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들에게 사로잡혔고, 다 읽고는 풀려나고 싶지 않았다.


▲ <조선을 사로잡은 꾼들>(안대회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한겨레21>에 '조선의 비주류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을 다듬어 낸 이 책에 등장하는 스타들은 참으로 놀라운 인물들뿐이다. 오늘날로 치면 주류 사회의 명사가 아니라 비주류 사회의 명물들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가수, 구기 연기인, 재담꾼, 책 읽어주는 사람, 광대, 유랑 연예인, 사업 사업가, 노처녀 떡장수, 비구니, 무인, 기녀, 노비 시인, 서당 선생, 강도, 도둑, 조방꾼, 점쟁이"(4쪽) 등과 같은, 저자가 고문헌을 통하여 발굴한 다채롭기 그지없는 인물들이다.

그들을 분류하면, 도회지 거리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기예를 타는 대중예술가들이고, 18세기에 큰 화제를 뿌렸던 여성들이고, 도시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인물들이고, 도회지의 어둠과 환락가의 재산을 갈취하는 대도와 신출귀몰한 의적들이다. 책의 내용을 줄일라치면, 저자가 쓴 것처럼, 조선의 "도시 공간에서 그들이 펼치는 인생은 우리가 자주 접해왔던 조선 시대 사람들, 그것도 상류층 양반들의 그것과는 꽤 거리가 있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삶이 아니라 감성적인 삶이 앞서고 금욕적인 태도보다는 욕망의 충족을 지향하고, 향촌의 고즈넉한 분위기보다는 도회지 시장의 왁자지껄한 소음을 배경으로 (…) 여기에 등장하는 대중예술가나 그 예술을 향유하는 도회민들은 볼거리, 들을 거리, 즐길 거리를 두고서 망설이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이를 통하여 우리들은 "도회지 서민들 틈에서 성장한 대중예술이 문화와 예술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어 조선 후기 서민문화의 한 축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9쪽)

이렇게 쓰고 나면, 이 책은 조선 시대 후기 시민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쪽으로 기울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이들을 통하여 "예술과 재능 너머에 도사린 따뜻한 인간적 품격, 제 아무리 시장 윤리가 깊숙이 파고든 도회지 시장과 골목일지언정 아직은 인륜적 가치가 살아있어 살 만한 세상이라는 위안, 적어도 이들 명물들은 비슷한 수준의 재능을 가지고 삶을 영위한 부류들 가운데서 사람다운 품위를 지켰다는 점, 그것이 세대와 지역을 넘어 후대에까지 기억되는 또 하나의 이유"(11쪽)임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옛 문헌을 읽으면서 글을 쓰는 저자의 학문적 태도를 말하는 부분이기도 한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지배 집단에 속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영역을 개척한 이들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하여 저자가 읽은 흥미진진한 책들을 덤으로 알려주고 있다. 조선 후기 도시 뒷골목의 인물들과 이야기들이 문사들의 붓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명성이 대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책들은 거의 잊힌 채 도서관에 누워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그 책들을 일으켜 세우고, 한장한장 읽어간다. 저자가 손으로 넘긴 것은 책이 아니라 옛 사람들의 은밀한 삶이었을 것이다. 그 책들을 여기에 적어보자.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문헌은 <추재기이>(조수삼)이다. (조선 후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명물들을 다룬 이 책은 저자에 의해서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그리고 <오주연문장전산고>(이규경), <녹파잡기>(한재락), <도협서>(유희), <운소만고>(이영유), <어우야담>(유몽인), <학산한언>(신돈복), <소심유고>(신익), <이향견문록>(유재건), <해암고>(유경종), <해동죽지>(최영년), <청구야담>(편자 미상), <음청사>(김윤식), <대릉유고>(홍낙순), <천예록>(임방), <어수신화>(장한종), <연석>(유언호), <무명자집>(윤기), <석북집>(신광수) 등이 덧보태진다.

이런 책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역사책, 문학책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들이다. 소중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책들 속에 조선 시대 새로운 유형의 인물들이 살아있다. 책 끝에 붙어있는 참고 문헌들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가 이런 문헌들을 소상하게 적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개별적인 현상과 인간에 관한 보고서에 그치지 않고", "조선 후기 사회의 역동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근대와 현대로 이어지는 변화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적절하게 기여할 수 있"(12쪽)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과 등가로 놓을 수 있는 저자의 또 다른 책은 '자신이 믿는 한 가지 일에 조건 없이 도전한 사람들'이란 부제가 붙은 <조선의 프로페셔널>(휴머니스트 펴냄)이다. 이 책도 역사가 주목하지 않은 분야의 프로페셔널들을 찾아 서술하고 있다. 그들은 "여행가, 프로 기사, 춤꾼, 만능 조각가, 책장수, 원예가, 천민 시인, 기술자 등등 역사 교과서는커녕 자유롭게 서술한 역사책에서도 한 줄 소개되지 않는 분야와 사람들"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바는 우리들이 곱새길 필요가 있는 중요한 언급이다. 저자는 이렇게 확신하고 있다.

"그렇게 세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와 인간들을 조금이나마 조명할 수 있다면, 역사와 문화는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 역사가 정치나 제도 같은 공식적이고 중요한 것만 다룬다면, 구체적으로 생생한 인간의 삶과 문화는 어디에서 찾을까요? 그러므로 일상의 삶과 인간의 문화로 역사의 시선을 넓혀야 합니다." (7쪽)

승자독식의 사회, 신자유주의 망령, 자연을 파괴하는 거짓과 부패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여기, 이 책은 우리들에게 깨어있는 시선, 의식, 삶이 무엇인지를 통렬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럴수록 힘든 길을 걸어야 하고, 자신을 다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한 길과 자신의 모습이 하나로 포개졌던 조선 시대, 후미진 곳에서 진정한 삶을 살았던 '선수'들, 제 삶에 사로잡혔던 영혼들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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